Became a necromancer villain in a game novel RAW novel - Chapter (393)
393화
맑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쾌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리던 데스 드래곤은 고개를 치켜들며 긴장하는 일본 플레이어들을 오만한 시선으로 깔아 보았다.
“1만 년의 세월 동안 살아오며 미물에게 들은 말 중에서 가장 우스운 얘기로군. 감히 그대 따위가 나를 하수인으로 부리겠다는 말인가?”
데스 드래곤이 풍기는 위압감에 일본 유저들은 긴장감에 휩싸였다.
그러나 오랜 시간 이형의 괴물과 싸워 온 타케루만큼은 태연한 자태였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저희의 청을 들어주십사 하고 찾아왔을 뿐입니다.”
“못 하겠다면? 너희 떨거지들이 나를 제압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추호도 그런 마음은 없었습니다. 다만 저희는 주군의 명에 따라…….”
“그럼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다.”
데스 드래곤이 곧바로 뒤돌려는 그 순간.
“데스 드래곤 님! 이걸 봐 주십시오!”
타케루가 손을 휘두르자, 그 앞으로 인벤토리에서 빠져나온 온갖 고풍스러운 상자들이 나타났다.
멈춰선 데스 드래곤이 차가운 시선을 보내자, 상자가 하나둘 개방됐다.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온 건 눈이 멀 것만 같은 보석의 바다.
“모두 상등품입니다. 한 알만 팔아도 집 한 채를 가질 수 있지요.”
“세상이 모두 내 집인데 그딴 게 무슨 소용이냐.”
심드렁한 말이건만 타케루는 희미하게 웃었다.
서역 땅의 용들이 금은보화를 좋아한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건만, 데스 드래곤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는 이미 파악해 둔 바였다.
“물론 이건 단지 고귀하신 데스 드래곤 님을 접견하기 위해 준비해 둔 예물에 불과합니다. 진짜 선물은 따로 있습니다.”
타케루가 인벤토리를 열고 상자 여러 개를 꺼냈다.
개봉되는 순간.
데스 드래곤의 눈이 커졌다.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그야 알아볼 수밖에 없다.
플레이어인 파프닐의 눈에 선명한 상태창이 떠올랐으니까.
‘저건……. 운철!’
호라이즌은 서버마다 각국에 걸맞은 세계를 제공한다.
일본 서버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일본 서버는 각각 검·도·창·궁을 비롯한 무예 전반과 음양술이라는 독자적인 주술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솜씨 좋은 장인들이 많은 게 특징이었다.
물론 이런 어드밴티지만 있는 게 아니다.
일본의 지리적 고증에 걸맞게 일본 서버는 금속이 귀한 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질 좋은 금속’.
솜씨 좋은 대장장이들이 아무리 옵션을 덕지덕지 붙인 커스텀 장비를 만든다 할지라도, 주체가 되는 금속의 질이 안 좋다 보니 정작 중요한 방어력 같은 메인 옵션이 구리기 마련이었다.
그런 일본 서버에도 희귀한 금속, 즉 레어 메탈이 있었다.
판타지 세계관에서 볼 수 있는 미스릴, 아다만티움이나 중국 쪽 세계관에서 볼 수 있는 묵철, 만년한철 같은 것들처럼.
운철.
또는 메테오 메탈.
저게 바로 일본 서버의 레어 메탈이었다.
바로 랜덤한 확률로 떨어지는 운석에서 채취할 수 있는 금속인 것.
[운철]-등급 : 레전더리
-분류 : 일반, 재료
-레벨 제한 : 없음
[효과]-각종 장비 및 도구의 제작, 강화에 사용 가능.
-장비 제작이나 보석으로 장착 시 스킬 무효화, 대미지 무효화 관련 옵션 생성
-소유 시 행운+3
-우주와 관련된 스킬에 피격되거나 사용, 관련 퀘스트를 진행할 시, 특정한 상호 작용을 할 수 있음.
-설명 : 우주에서 떨어진 운석에 함유되어 있던 철.
우주의 빛을 가득 담고 있다.
지상의 어떤 금속과도 비견할 수 없음에, 대장장이들은 밤하늘 위를 보며 경외감을 품었다.
능력 역시 대단했다.
워낙에 희귀한 금속이다 보니 가히 오리하르콘에 버금가는 수준.
보석 상자들 따위보다 곱절은 귀한 공물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로 이 나를 꼬드기려 하는 것이냐? 우매한 인간들 같으니.”
“무슨 말씀입니까?”
타케루는 작은 상자를 손수 들어 데스 드래곤에게 공손히 진상하며 말했다.
“이건 단지 선약도 없이 찾아온 저희의 무례를 용서받기 위해 바치는 공물에 불과합니다.”
“그럼 이 모든 걸 그냥 주겠다는 거냐?”
“물론입니다.”
“너희 주군이라는 작자와 얘기를 나누지 않는다면?”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이건 단지 선물일 뿐이니까요.”
데스 드래곤은 턱을 매만지며 미간을 찌푸렸다.
“감히 이 몸과 거래를 하려는 주제에 직접 찾아오지 않는 그 불경함, 천 번 만 번을 피로 씻어 그 삼대를 멸해도 사라지지 않을 대죄이거늘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는 아는 모양이로구나.”
“그렇다는 말씀은…….”
“공물은 내버려 두고 가거라.”
타케루와 그 수하들이 공손히 공물을 두고 자리를 떠나가는 순간.
저 멀리서 데스 드래곤의 말이 들려왔다.
“다음번에는 네놈들의 주군이 직접 찾아오라 하여라.”
타케루의 입꼬리가 그제야 올라갔다.
‘모든 게 오다 님의 계산대로군.’
***
수일 후.
‘이곳이 그 고치현이란 말인가.’
생기로 가득 찬 울창한 밀림 사이로 한 무리의 사내들이 걷고 있었다.
선두에 선 우두머리는 주변을 살피며 연신 놀란 빛을 감추지 못했다.
이곳이 어디인가.
설정상이라고는 하지만 수천 년간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부정하던, 독기와 장기로 범벅이 돼 마경이라 불리던 야마타노오로치의 사해(死骸).
그런 곳이 지금은 생명 그 자체를 머금은 것 같은 대자연의 위광을 뽐내고 있다.
“자네가 그자를 만난 지 며칠이나 지났지?”
“7일째입니다.”
“7일 만에 이 정도? 현재 일본에 있는 신격 중에서 이만한 위업을 보일 만한 이가 있나?”
“천진신 중에서도 삼환신급의 화신체 정도가 아니라면 무리겠지요.”
“삼환신인가.”
사내, 일본 서버를 통일한 대쇼군 오다 노부나가는 염소수염을 쓸어넘겼다.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삼환신이 누구인가.
아마테라스, 츠쿠요미, 스사노오.
일본의 신격 중에서도 지고의 자리에 앉아 있는 최고 신격들을 뜻한다.
그런 이들의 화신체라면 현재까지 호라이즌에 등장한 어떤 보스 몬스터나 NPC들도 견주지 못할 정도의 스펙이다.
추정 레벨만 하더라도 900…….
‘아니, 최소 1,000 이상. 네 자릿수는 되겠지.’
그만한 강력한 NPC를 등에 업을 수 있다면?
눈엣가시 같은 한국이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를 상대로도 싸워 볼 만하다.
‘대체 어느 국가의 NPC인지 궁금하군.’
나라와 나라를 마음대로 지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NPC.
못해도 외국의 최고 신격에 버금가는 고룡이 틀림없었다.
“이곳인가.”
“원래는 이런 동굴 같은 건 없었습니다만…….”
한창 밀림을 걷던 이들의 눈앞에 거대한 동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누가 봐도 용의 굴이라는 게 느껴질 만한 위압감이 풍겨 온다.
그 순간.
동굴 속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탁한 색의 묵철로 만들어진 카부토(갑옷)를 착용한 기괴한 형태의 창을 든 무사.
얼굴을 가리고 있는 귀면갑(鬼面甲) 너머로 보이는, 불꽃 같은 안광에서는 예사롭지 않은 귀기가 풍겼다.
“그대들이 내 주인을 만나러 온 인간들인가.”
턱 하니 울려 퍼지는 목소리.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일본 서버의 정점에 다다른 플레이어들.
하나같이 눈앞에 있는 귀무사가 평범한 자가 아니라는 걸 눈치챘다.
“그렇소. 본인이 바로 오다 노부나가요.”
“주인께서 기다리고 있다.”
귀무사가 옆으로 물러서자, 사내들이 동굴에 들어서려 했다.
그러나 오다와 타케루가 지나가는 순간.
귀무사가 갑자기 창대를 기울였다.
“뭐지?”
쌍검을 찬 무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귀무사를 쏘아보았다.
“주인께 허락받은 이는 이 둘뿐.”
무사는 코웃음을 쳤다.
“허락이라면 네 주인에게 받겠다. 허튼소리 하지 말고 비켜라.”
귀무사는 물끄러미 무사를 쏘아보았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놈이군. 이곳이 누구의 영역인지 모르는 게냐.”
“데스 드래곤 님이라면 모를까, 그 떨거지에게까지 내가 예의를 차릴 것 같으냐?”
뒤편에 있던 일본 유저들이 바르르 몸을 떨었다.
반면 선두에 선 오다와 타케루는 흥미진진하다는 시선으로 광경을 지켜보았다.
‘괜히 데스 드래곤과 부딪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그 힘이 어느 정도인가.
파악 정도는 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데스 드래곤 본인이 야마타노 오로치의 분령들을 처치할 정도의 초월적인 강자라는 건 안다.
하지만 그 세력이 과연 얼마나 강대할까?
상대를 알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갈등도 빚어 봐야 하는 법.
일국의 패자이자, 무력 하나로 모든 걸 발아래 꿇린 오다 노부나가에게는 몸에 익어 있는 용병술이었다.
힘의 깊이에 대한 측량!
그뿐만 아니라 오다는, 귀면갑의 창사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 무사에게 절대적인 신뢰가 있는 편이었다.
“재밌군. 본국에 있을 때는 감히 내게 시비를 거는 놈이 없었거든.”
귀면갑의 무사는 창을 빙글 돌리더니 쌍검 무사의 정면에 섰다.
“그거참 재밌군. 본인 역시 그렇거든. 이 열도에서 내게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건 오직 오다 노부나가 님뿐.”
무사는 양팔을 교차하며 허리에 맨 두 자루의 칼자루를 쥐고 천천히 뽑아 들었다.
소름 돋도록 깔끔한 출검.
단순히 레벨 업과 스킬 숙련도를 갈고닦는 것만으로는 나올 수 없는 무예의 품격이 느껴진다.
반면 주억이는 얼굴에는 방자하기까지 한 표정이 엿보였다.
“본인은 미야모토 무사시. 유파는 이천일류다. 그대는?”
“알 필요 있나?”
귀면창사는 그러나 창을 땅에 꽂은 채, 반대쪽 손을 죽 펴며 무사시를 향해 까닥였다.
“주제 파악을 시켜 주지.”
***
동굴 내부는 생각보다 깔끔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전이 전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으며, 문제의 데스 드래곤은 가죽 소파에 앉은 채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앉아, 먼 곳 오느라 고생했을 텐데.”
그뿐만 아니라 생각보다 친절하고 온화한 태도였다.
“실례하겠습니다.”
오다가 데스 드래곤의 앞에 앉았다.
타케루는 그 옆을 보좌하듯 섰다.
데스 드래곤이 손짓하자, 저 멀리서 검은 갑주로 된 이가 걸어와 오다에게 차를 건넸다.
‘저게 데스 드래곤이 부린다는 사역마인가.’
오다 노부나가는 데스 드래곤을 보며 가볍게 묵례했다.
“본인이 오다 노부나가입니다. 지난번에는 결례를 범했습니다. 제가 직접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알아. 하지만 좋은 선물을 가져다줬더군.”
“운철 말씀입니까?”
“그래. 마음에 들었어.”
데스 드래곤은 턱을 괴며 오다를 바라보았다.
“이만한 공물이라면 그 정도 무례는 용서해 줄 수 있지. 하지만 네 밑에서 일하라는 이야기를 들어줄 정도의 재물은 아닌 거 같군.”
“설마! 데스 드래곤 님과 같은 위대하신 분을 그 정도 재물로 움직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 오해가 있으신 거 같습니다.”
“오해?”
“일본에는 신토라는 문화가 있습니다.”
오다는 신이 나서 신토에 대해 설명했다.
그의 설명은 간결하고, 또 힘이 있었다.
과연 현실에서도 대기업의 CEO 자리에 있는 남자다웠다.
“세상 모든 것에는 신이 깃들어 있다. 따라서 저희는 굳이 하나의 신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원하신다면 데스 드래곤 님을 일본에서 제일 숭배받는 존재로 숭경받게 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단지 당신을 섬기고 싶을 뿐입니다.”
“허울을 만든 다음 이용해 먹겠다는 말이로군.”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오다는 순순히 긍정했다.
“그러나 서로가 이득이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말하면 저희 인간은 별로 약하지 않습니다. 제아무리 당신이 위대한 신들의 화신에 버금가는 강자라고는 하지만 저희를 적으로 돌려서 좋을 건 없을 겁니다.”
“그야 그렇지. 나도 우습게 보지는 않아. 이래 봬도 나 역시 인간에게 쫓겨서 이곳까지 오게 된 거니까.”
“……데스 드래곤 님께서요?”
“그건 지금 우리 사이에 해 줄 말은 아닌 거 같군. 아무튼, 내게 무슨 제안이 있어서 온 것이겠지? 이야기해 봐. 조건에 따라서는 들어줄 수 있을지 아닐지도 모르겠군.”
“……그전에, 한 가지만 질문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뭐지?”
“입구를 지키는 파수꾼 말씀입니다만…….”
“아, K 말인가?”
“K?”
“이름 짓기가 귀찮아서 말이야.”
그 말은 들은 순간, 지금까지 당당하던 오다 노부나가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었다.
물론 아주 잠깐, 아주 잠깐이긴 했지만.
‘미야모토 무사시를 이길 정도의 사역마에게……. 이름도 제대로 안 지어 줄 정도라고?’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데스 드래곤.
파프닐은 희미하게 웃었다.
‘카라미트 경이 잘해 주셨나 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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