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necromancer villain in a game novel RAW novel - Chapter (414)
414화
“여기다. 차례대로 줄 서!”
폐성 앞 광장.
흑똘똘 패거리의 개들은 세뇌견들을 그곳에 일렬로 줄지어 세웠다.
결코 작지 않은 광장을 가득 채운 개들은, 멍한 눈으로 정면의 단상을 응시했다.
“전부 모였습니다.”
곳곳에서 상황을 살피던 개들이 말했다.
“좋군.”
흑똘똘은 보고를 듣고 지시했다.
“바로 시작하지.”
“예.”
개들이 움직이자 곧 연단 한복판에 그럴듯한 강대와 마법 마이크가 놓였다.
그 위로 오른 흑똘똘이 말했다.
“개 동지들이여!”
제각기 다른 곳을 보고 있던 개들의 눈이 한데 모였다.
“너희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흑똘똘은 그런 개들에게 말했다.
“바로 너희의 주인들에게 버림받았다는 점이다.”
연설을 이어 가는 흑똘똘의 목소리는 강인하면서도 사람, 아니 개의 마음을 파고드는 부드러움이 있었다.
처음엔 마약 츄르에 취해 있던 개들도, 점차 흑똘똘에게 눈을 고정하고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물론 모든 개가 그런 건 아니었다.
세뇌가 덜 되었거나 심지가 굳은 사냥개 출신들은 뭔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몸을 빼려 했다.
그럴 때를 대비한 보험이 있었다.
‘지금이군.’
흑똘똘의 손짓에 광장 주변의 벽 틈에서 투명한 연기가 퍼져 나왔다.
일당이 파는 마약 츄르와 같은 성분이지만, 세 배나 진한 고도의 약물 성분이 광장을 덮었다.
“멍…….”
“끼이잉…….”
개들의 눈이 게슴츠레하게 풀렸다.
그 모습을 본 흑똘똘의 한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효과가 잘 먹히는군.’
사실 연설의 내용 따위는 아무 상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개들의 시선을 한데 모아 시간을 끌고, 그사이 특별한 마약을 통해 개들의 심령을 제압하는 것.
가상현실 게임 속에서 그게 가능할 리 없다는 게 지금까지의 통념이었다.
그러나 고양이 도적단이 가져온 마약은 그게 가능했다.
일단 맛을 보면, 어떤 개들이건 간에 이지를 상실한 노예로 만들 수 있다.
그야말로 신의 약.
활용하기에 따라, 이걸 쓸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흑똘똘은 그래서 더욱 부하들을 다그쳤다.
조직의 위에 오르고, 이 약을 취급할 수 있는 권한을 얻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개들로 이루어진 수천수만 마리의 길드를 만들 수 있었으니까.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게 단점이긴 하지만.
어차피 인간은 스스로 와도 받지 않을 거다.
‘인간의 시대는 간다. 개들의 시대가 올 것이다.’
흑똘똘은 어조에 힘을 실었다.
“인간들로 하여금 개들의 이빨과 앞발 앞에서 벌벌 떨게 하라! 개들이 혁명에서 잃을 것이라고는 목줄뿐이요, 얻을 것은 전 세계다. 만국의 개들이여, 단결하라!”
“멍멍멍!”
“아우우우!”
연설의 내용과 관계없이 약에 취한 개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대로 하울링을 했다.
원문은 공산당 선언이지만, 어차피 저 개들은 무슨 소린지 알지도 못하고 그냥 짖는 것이리라.
“세뇌가 완벽히 다 된 것 같군요.”
“이대로 보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좋지만, 그분께 보낼 것에 하자가 있으면 안 되지요.”
탁, 고양이가 손짓하자 다른 고양이와 개들이 사슬에 묶인 암견 한 마리, 플레이어 몇을 끌고 왔다.
그들은 경악과 혼란에 잠긴 눈동자로 흑똘똘과 고양이 도적단을 올려다보았다.
“이 녀석들은 감히 몸값을 내길 거부하고, 우리를 힘으로 눌러 보겠다고 한 녀석들이지.”
그 사이에 섞인 진달래를 본 흑똘똘의 표정이 굳었다.
“……저 개는.”
“인간들을 불러오는 자리에 있던 걸 잡았소. 흑똘똘. 당신이 구애하던 이 녀석도 결국 인간의 쓰다듬을 택한 것이외다.”
진달래가 외쳤다.
“미쳤어! 인간이랑 싸우겠다고? 진짜 미친 거야?”
“그게 뭐가 문제지?”
“주인님들을 배신하라는 거야? 이 마을이랑 장비랑 다른 것들 모두 주인님들이 주신 거잖아!”
“그렇긴 하지.”
흑똘똘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차가운 시선이 진달래를 향해 말을 이었다.
“그럼 그 말을 저들에게도 할 수 있는가.”
진달래의 말문이 턱 막혔다.
“저 개들 모두 주인이 내팽개친 녀석들이다. 애초에 주인과의 유대가 그렇게 깊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나는 개의 몸값을 내겠다는 인간은 내버려 뒀어. 저 녀석들처럼……. 무력으로 짓밟으려는 녀석들은 빼고.”
흑똘똘은 차갑게 명령을 내리고 돌아봤다.
“고양이 양반, 그래서 무슨 이야기요. 약이 더 필요하다?”
“별건 아니고……. 세뇌 테스트 겸 저 개들에게 이 녀석을 죽이게 해 보시오. 인간을 때린다면 믿을 수 있지.”
“그거 좋군.”
흑똘똘이 손짓하자 세뇌당한 개들이 연단 위로 올라왔다.
진달래는 짖지 않았다. 짖어 봤자 저들에겐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심혼이 제압당한 채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하는 세뇌견들.
“으……. 으아아!”
“젠장!”
“개, 개한테 죽나?”
“두고 보자, 두고 보자, 이 개새끼들아……!”
사람들의 비명이 들리는 가운데 개들이 하늘로 뛰어올랐다.
진달래는 눈을 질끈 감고 고통을 기다렸다.
그때였다.
“개새끼가 개새끼답지 못하네.”
“깨갱!”
“깽!”
세뇌된 개들이 나뒹굴었다.
“뭐야!”
“너는…….”
흑똘똘의 눈에 이채가 담겼다.
그때 봤던 그 녀석이다.
당당하던 기세가 마음에 들었었던.
약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끊었었는데, 이제 보니 전혀 그런 느낌이 안 난다.
“나는 아직 어려서, 뭐가 옳은지 잘 몰라.”
앞을 가로막은 복돌이가 말했다.
“약이란 것도 해 봤지만 이게 옳은지도 잘 모르겠어.”
“건방진……!”
“크아앙!”
달려들던 졸개 개들이, 앞발 한 방에 뒤로 밀려 나거나 쓰러졌다.
세뇌견들을 밀어 낸 복돌이는 그대로 앞으로 나오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하나는 알겠어.”
“음?”
“너는 실컷 패야겠다.”
***
크크.
복돌이에게 흑똘똘이 보인 반응은 웃음이었다.
한껏 웃음을 터뜨린 흑똘똘이 대답했다.
“네가 어디서 굴러먹던 개 뼉다구 같은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까지 와서 우리 사업을 방해한 이상 살아남을 생각은 내려 두는 게 좋을 거다.”
흑똘똘이 네 발을 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돌이는 그제야 흑똘똘이 얼마나 거대한 개인지 알 수 있었다.
종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생김새는 개보다는 늑대에 가까웠다.
실제로 흑똘똘은 회색 늑대와 개의 잡종인 울프독의 일종이었지만, 복돌이가 거기까지 알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검은 털, 위압적인 체구, 날렵한 눈에서 풍기는 기세.
초보견 사냥터의 제왕.
흑똘똘은 더 이상 짖지도 않고, 땅을 박찼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흑똘똘은, 그 거대한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재빨랐다.
검은 번개처럼 허공을 찢는다.
“워, 월…….”
지켜보던 개들, 특히나 철망파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던 개들은 긴장감에 몸을 떨었다.
개중에는 실금하는 개도 있었다.
그만큼이나 흑똘똘의 움직임은 위압적이다.
거대하고, 거만하고, 강렬하다.
무겁다.
그리고 눈 한 번 깜짝이는 사이에 흑똘똘은 이미 복돌이의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대로 체중을 실은 앞발이 복돌이를 타격해 간다.
‘……분명 빠르긴 하지만.’
그러나 연약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복돌이의 가냘픈 앞발이 흑똘똘의 공세와 맞부딪친다.
흑똘똘의 눈에 이채가 핀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땅에 착지한 순간 다시 연격을 가했다.
일반적인 개들은 상상하기 힘든, 뒷발로 땅을 디디며 앞발로 연달아 타격을 가한다.
검은 폭풍우가 사방을 뒤덮는다.
그러나 더욱 놀랍게도, 복돌이는 그 공세를 하나하나 완벽하게 수비해 냈다.
“……이거 재미있군.”
연격을 가한 이후, 흑똘똘은 그대로 거리를 벌리며 조용히 읊조렸다.
그 목소리에 깃든 스산한 한기에 개들이 털을 쫑긋 떨었다.
“너……. 투견 출신이냐?”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투견 출신인가 보군. 그 연격 기술은 투견들이나 쓰겠지. 그것도…….”
반면 복돌이는 차분한 음색이었다.
호수처럼 맑은 눈이 흑똘똘을 직시한다.
마치 그 존재 자체를 투영하듯.
“견원회 출신인가?”
“거기까지 알고 있다니, 마냥 편히 살아온 놈은 아닌가 보구나.”
흑똘똘은 눈을 크게 뜨며 재밌다는 듯 웃었다.
이렇게 즐거웠던 적이 있던가.
이런 변방에서, 동족들을 착취해 가며 다 죽은 것이나 다름없게 살아왔다.
언젠가 다시.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이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기회는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네 이름은?”
흑똘똘의 물음에도, 복돌이는 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흑똘똘은 더 묻지도 추궁하지도 않고, 그저 뒷발로 땅을 한 번 굴렀다.
이 세상에 흑똘똘이 족적을 남길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다 타 버린 줄 알았던 잿더미가, 검은 불꽃이 되어 살아난다.
본능에 각인된 투쟁 본능, 심장이 과열된 엔진처럼 뜨겁게 타오른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들끓는 핏속에, 노르아드레날린이 가져다주는 싸움의 희열에, 흑똘돌은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선의 공세를 펼쳤다.
300레벨이라는, 호라이즌의 견공 중에서도 상당한 고레벨에, 그간 한시도 쉬지 않고 갈고닦은 스킬과 어빌리티들이 폭발했다.
지켜보던 개들의 주둥이가 떡 벌어졌다.
이번에는 흑똘똘의 부하들조차 마찬가지였다.
흑똘똘이 펼치는 스킬의 연계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보, 보스가 저 정도였단 말인가?”
그간 곁에서 보좌해 오던 철망파 견공들조차도 놀랄 정도였다.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흑똘똘의 연환 공세는 그야말로 300레벨의 품격에 걸맞은 것이었으며.
그뿐만 아니라 같은 300레벨 대의 견공이라 할지라도 누구나 펼칠 수 있는 만한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켜보던 견공들은, 수 초가 지난 이후 어딘가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에서 당연히 가졌어야 할 의문이었지만, 흑똘똘의 가공할 기세 때문에 대부분 잊고 있던 것이었다.
‘왜 저 흰둥이는 멀쩡한 거지?’
복돌이는, 처음과 다를 바 없는 나른한, 어딘가 멍청해 보이는 시선을 하며 차분하게 흑똘똘의 공세를 막아 내고 있었다.
악귀 나찰과도 같은 흑똘똘의 공세는 조그만 백구의 털끝 하나도 못 건드리고 있었다.
통나무도 분지를 만한 경력을 담은 앞발을 가볍게 쳐 내고, 뼈까지 씹어먹을 기세로 날아드는 주둥이는 가볍게 피해 낸다.
공방 같지도 않은 공방이 연달아 계속되었을 때, 지친 건 MP와 체력이 먼저 바닥난 흑똘똘 측이었다.
“너, 너……. 그 정도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나를 우롱하는 게냐!”
증오를 담은 흑똘똘의 하울링이 거칠게 울려 퍼졌다.
그러나 복돌이는, 여전히 맑은 눈동자로 흑똘똘을 바라보았다.
“재밌어?”
“……?”
“이만하면 아저씨도 상당히 고수견 같은데.”
복돌이는 턱을 치켜들며 목소리에 점점 힘을 집어넣었다.
“약한 개들을 핍박하고 쥐어뜯는 게 재밌냐고.”
“약한 개? 약하다는 건 죄일 뿐이야! 주인 밑에서 곱게 자라며 사랑받아 온 개새끼들이 우리의, 나의 분노를 이해할 수 없듯이……. 나도 그딴 개새끼들을 이해할 생각 없으니까!”
“그래.”
그리고 복돌이의 미간이 처음으로 찌푸려졌다.
툭.
복돌이가 땅을 내디디는 순간.
좌중의 개들은 순간 이질감을 느꼈다.
공기가 멈췄다.
아니.
떨리고 있었다.
아니.
떨리고 있는 건 자신이었다.
삐죽 솟은 털,
두려움에 달달 떨리는 주둥이.
개중에는 실금하는 개들도, 심지어 똥을 지리는 개도 있었다.
“……!”
흑똘똘의 눈이 커졌다.
“그럼 아저씨도 약자의 입장이 한번 돼 봐.”
부드드득.
가죽 포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복돌이의 몸을 감고 있던 장비들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복돌이가 감추고 있던 근육들이 꿈틀거리며 발산하는 힘.
그 힘을 감당하기에는 초보자용 장비는 너무나 허약했다.
찢어지며 드러나는 백금처럼 새하얀 털.
그 사이로 보이는, 강아지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발달된 근육.
순간 복돌이의 신영이 사라졌다.
‘어디 갔지?’
흑똘똘이 사라진 적수를 찾으려는 순간,
복돌이는 어느 순간 흑똘똘의 정면에 나타났다.
그 자리에 있던 어떤 개도 복돌이가 어떻게 움직여 언제 그곳에 도달했는지 보지 못했다.
단.
뒷발 한쪽을 땅에 딛고, 그걸 축으로 삼으며 비틀며, 날아드는 가공할 뒷발 차기.
복돌이 스스로는 드래곤 사이클론라 부르는 그 기술이 흑똘똘의 턱을 직격한다.
날아가는 순간 흑똘똘은 봤다.
일반적인 개들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특수한 근육의 흐름이 만들어 낸 귀신의 모습.
‘설마 이 녀석은…….’
새하얀 등에 새겨진 아수라의 형상을.
#게임 소설 속 네크로맨서 빌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