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necromancer villain in a game novel RAW novel - Chapter (472)
472화
수일 후.
망망대해 위를 철갑선 한 척이 가로질렀다.
그 배의 갑판에서, 파프닐은 지도를 보고 있었다.
“흠…….”
몇 번 스트레칭을 하고 기지개를 켠 파프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가면 되겠군.”
해도를 열자 월드맵 위로 금빛으로 빛나는 선이 그어졌다.
그 선은 바다 한가운데의 한 점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지도상에는 아무것도 없는 바다로 나타나 있었다.
그때였다.
방향타를 움직이던 선장 드워프가 다가왔다.
“이제 얼마 후면 도착합니다, 선장님.”
최초의 철갑선을 만든 후.
호탕한 웃음을 뿌리며 수많은 바다를 누비던 선장이지만, 지금 파프닐을 보는 눈엔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럴 만했다.
지금 이들이 가는 항로의 끝에는 섬이 한 곳 있다.
한국 서버 10대금역 중 한 곳인 ‘미스트 섬’이었다.
최고 레벨이 700을 넘은 현재.
기존 10대금역들 중 여러 장소에 대한 정보가 커뮤니티에 풀렸다.
하지만 이곳만큼은 아직 어떤 정보도 나오지 않았다.
생태나 지형, 섬의 크기나 모양까지도.
물론 도전이 없었던 건 아니다.
루 신전에서 에픽급 퀘스트를 내걸며 개척을 명령했고, 성기사 랭킹 2위 세인트로치를 필두로 3천 명 플레이어, NPC 토벌대가 레이드에 도전한 적 있었다.
최신형 대형 범선 15척에 타고, 뛰어난 선원과 함장, 마법 엔진과 대포까지 만반의 준비를 마친 그들은 자신만만하게 항구를 떠났다.
결과는 대실패.
원정대는 미스트 섬 주변 바다의 마수들, 그리고 위험천만한 해류들 앞에서 섬을 보지도 못하고 전멸했다.
그러나 파프닐은 알고 있었다.
이 섬까지 오는 수많은 해로 중, 안전한 곳이 있음을 말이다.
물론 원작 소설 덕분이다.
원작 소설 속에서 이곳은 더 이상 미지의 땅이 아니었다.
플러시가 여신 니케와 함께 와, 지옥의 섬을 정화하는 대규모 퀘스트를 받았기 때문이다.
상대는 무려 삼대주신 중 한 명인 여신 헤스티아.
외신 ‘무수한 발걸음’의 사도를 처치한 플러시는, 그 공로를 인정받는 자리에서 지옥의 섬을 정화하라는 퀘스트를 받고 이곳에 오게 된다.
‘오는 것조차도 어렵긴 하지만……. 그 녀석은 운빨 덕분에 편하게 섬에 도착할 수 있었지.’
우연히 들른 항구의 한 노인이, 평생 미스트 섬 주변 해역을 연구하던 잔뼈 굵은 선장이고.
인어들에게 받아 둔 신성한 진주가 안개 속에서 길을 안내해 주는 능력이 있거나.
가던 도중 우연히 해저 괴수들이 서로 영역 다툼을 하는 사이 지나가는 등의 행운들!
그런 운빨 덕분에 플러시는 결국 섬에 상륙할 수 있었다.
파프닐은 그곳에서 나온 마을과 주변 장소, 그리고 해도 등을 확인하고 철갑선 함대를 띄웠다.
블랙 마리아호, 그리고 다이야마토에 실려 있던 야마토 함대.
플러시가 갔던 항로로 가자, 놀랍게도 검은 안개 사이로 통과할 수 있었다.
끼리리릭!
쉬이익!
수많은 해양 마수가 이를 드러냈다.
블랙 크라켄이나 블랙 씨 서펜트, 블랙 데몬 샤크들!
그러나 파프닐은 담담했다.
플러시처럼 몬스터를 피해 가는 운빨은 없지만, 대신 그 이상의 힘이 있었으니까.
“크, 좋은 공기로군.”
“어디 힘 좀 써 볼까?”
배 안에 있던 흑마법사들이 갑판으로 올라왔다.
검은 보호막이 문어 다리를 막고, 바다에 뿌려진 뼈들이 폭발하며 몬스터들을 몰아냈다.
‘아직까지는 순조롭군.’
수일 전.
흑마법사 간부들을 모두 모은 파프닐은 한 가지 계획을 말했다.
“교국의 토벌대가 올 수 없는 곳으로 가서 힘을 키우는 겁니다.”
신성 교국과 각 교단이 재차 공격을 해 오면 흑마법사 세력들만으로는 당해 낼 수 없다.
싸우다 죽을 바에는 안전한 곳으로 가서 힘을 키우자는 것.
다만 여기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교국의 추적을 피할 장소가 어디 있으며, 또 도망치더라도 어떻게 힘을 키울 수 있냐는 게 둘째였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한, 도망치는 건…….”
“아니요, 둘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파프닐은 그렇게 말하고 이 섬을 지목했다.
잠시 후 엄청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그럴 만했다.
고위 흑마법사들이 지금까지 쌓아 온 모든 기반을 버리고 아무것도 없는 미개척지에서 모든 걸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것이었으니까.
게다가 미스트 섬의 악명은 흑마법사들에게도 널리 퍼져 있었다.
항시 어둠이 가득 차 있으며, 들어간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돌아오지 못하는 마경.
“우릴 다 죽이려는 셈인가?”
“아무리 자네라 하지만……. 이건 좀…….”
그다지 불만이 있어 보이진 않지만, 힘의 논리에 지배되는 흑마법사 세력에서는 엄청난 반발이다.
하지만 파프닐의 설명을 듣자 그 반응은 점차 가라앉았다.
어둠의 마나로 가득 찬 섬이지만, 흑마법사들에게는 오히려 장점이 된다.
문제는 그곳에 터를 잡고 있는 미지의 괴수들.
그러나 그 점은 파프닐이 해결했다.
“저도 흑마법사의 일원으로서 그 섬이 필요합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개척하겠습니다. 제 모든 힘을 써서요.”
파프닐의 전력을 다한 서포트를 받을 기회.
어차피 교국의 토벌대를 계속 상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흑마법사들은 속는 셈 치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해양 괴수들의 습격을 격퇴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블랙 크라켄의 다리(노말)를 획득했습니다.
-8급 마나석(에픽)을 획득했습니다.
“슬슬 도착인가…….”
해도를 확인한 파프닐이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눈앞으로 거대한 산과 언덕의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 옆으로 선장이 다가왔다.
“해로의 목적지에 도달했습니다. 슬슬 속도를 줄이겠습니다.”
드디어 상륙의 시간.
블랙 마리아호를 시작으로, 각 철갑선들이 천천히 속도를 줄여 나갔다.
‘저곳이 그 섬이군.’
미스트 섬.
아무도 목격한 적 없는 섬이 눈앞까지 다가왔다.
-새로운 필드 ‘미스트 섬 서쪽 해변가’를 발견했습니다.
-미스트 섬 서쪽 해변가에 입장했습니다.
-현재 레벨에 비해 몬스터의 레벨이 과도하게 높은 지역입니다!
-강력한 어둠의 마나가 가득합니다.
-흑마법과 어둠의 마나를 쓰는 스킬의 위력이 상승했습니다.
-언데드 소환 시 보다 강한 언데드가 소환됩니다.
‘여기가 미스트 섬이군.’
파프닐은 검은 모래가 깔린 해변가를 둘러보았다.
모래 곳곳이 움직이고, 그 뒤쪽의 숲속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공기에는 오랜 시간 동안 쌓인 어둠의 마나가 짙게 깔려 있었다.
“드디어 도착인가…….”
“땅은 좋군.”
갑판으로 나온 흑마법사들이 눈을 빛냈다.
그때였다.
쿠웅!
갑자기 블랙 마리아호가 크게 흔들렸다.
“이건…….”
“어디 암초에라도 박은 건가?”
“아, 아닙니다!”
굴드의 질문에 드워프 선장은 대번에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선장의 결백은 금방 증명되었다.
뒤따라오던 야마토 선박들이 갑자기 무언가에 부딪힌 듯 멈춰 서더니, 그 사이로 거대한 촉수들이 솟구친 것이다.
“개리리리릿-!!”
해안가에서부터 나타난 몬스터의 공격.
하나하나가 기차만 한 거대 촉수들이 배를 휘감으려 들거나, 갑판의 흑마법사들을 덮쳤다.
“여기까지 따라온 마수인가……!”
“아닙니다.”
파프닐은 고개를 저었다.
원작 소설에 저 녀석들의 정체가 나온다.
해안가에 서식하며, 영역을 침범한 적들이 생기면 저렇게 나타나 날뛰는 놈들의 이름은 바로…….
“미스트 섬에 살고 있는 마수, 미스트 갯지렁이입니다.”
원작 소설에서 나온 그대로의 모습.
파프닐은 그렇게 말하며 궁드닐을 들었다.
“처음부터 거센 환영 인사를 보여 주니, 이쪽도 그에 맞게 대응해야겠지요.”
***
신성 교국.
정교일치의 시스템으로 돌아가며, 바란왕국은 물론 어지간한 왕국보다 크다.
여러 교단이 힘을 합쳐 만든 덕분에, 수도에 있는 크리스탈 성전은 수많은 NPC가 입을 모아 칭찬하는 절경이기도 했다.
그런 크리스탈 성전 안.
지하 깊은 곳에 있는 회의실에 여러 성직자가 모여 있었다.
“이번 실패는 타격이 크군요.”
헤스티아 교단의 추기경이 말했다.
“정예 성기사 3천에 성직자 2천, 그리고 성군단 병사들. 그들만으로도 흑마법사 연합을 일소할 수 있는 전력이었는데…….”
주제는 루 교단이 보낸 원정군과, 흑마법사 연합 토벌 계획에 대한 것이었다.
세트 학파 내부에 스파이를 만들고, 두 패로 나뉘어 싸운 흑마법사 세력을 완전히 소탕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
워낙 엄청난 전력이 나섰으니만큼 실패에 대한 생각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솔직히 벨 아르크 추기경님께서 전사하신 건 타격이 크군요…….”
루 교단의 추기경이 한숨을 내쉬었다.
성자라 불린 벨 아르크 추기경은 루 교단 내에서도 손꼽히는 강력한 성직자.
그런 그가 패배할 정도의 전력이 흑마법사들에게 있다는 건 굉장한 문제였다.
“게다가 시체마저도 찾지 못했으니 더욱 일이 심각해졌습니다…….”
흑마법사들의 주특기가 무언가.
죽은 적의 시체를 부하로 만드는 게 아닌가.
강력한 적을 죽일수록, 흑마법사의 힘은 더욱 강해진다.
이 때문에 스킬로 한정된 플레이어가 아닌, 오래 살아온 NPC 네크로맨서들은 각별한 경계 대상이었다.
“설마…….”
“다음번 원정군은 벨 아르크 추기경님의 언데드를 상대해야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단순히 언데드가 되는 것뿐만이 아니다.
생전에 쓰던 루의 태양, 신성한 기둥, 성역 선포 등의 최고위 신성 마법들이 어둠의 마나를 머금고 쏟아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
“흥……. 웃기는 일이로군.”
그때였다.
자리에 있던 한 대머리 중년인이 상체를 일으켰다.
근육질 몸에는 수많은 상처가 가득했는데, 눈동자에서는 형형한 금빛 오라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차피 루 교단은 헤스티아 교단에 이어서 최약체. 흑마법사 놈들에게 당할 정도라면 고작 그 정도라는 뜻이겠지.”
“말이 조금 심하십니다, 펄시온 경.”
“그렇다고 틀린 말은 아니잖소?”
펄시온이라 불린 대머리 중년인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이렇게 봐도 다들 겁먹는 모습이 우스워 죽겠는데 말이야.”
“…….”
“…….”
“뭐, 책상 앞에 있던 사람들은 계속 그렇게 있으시오. 이 일은 내가 책임지도록 할 테니.”
“그 말씀은?”
다른 추기경들의 질문에 펄시온은 주먹을 쥔 채 대답했다.
“루 교단의 실추된 명예, 이 몸과 토르 교단이 되찾아 주겠다는 말이오.”
***
한편 그 시각.
어둠 속에서 두 개의 형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제 때가 되었어.”
그렇게 말하는 형체는 인간의 형체 같기도 했고, 사족 보행 동물의 형체 같기도 했다.
“오랜 세월 동안 준비해 왔던 계획을 실행할 때지…….”
“그 계획을 말하는 건가.”
대답하는 다른 형체는 상체가 약간 앞으로 굽혀진 인간의 형체에, 얇은 꼬리가 달려 있었다.
다른 형체의 물음에 처음의 형체는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
“그래, 인간들을 쓰러뜨리고 동물이 지구의 주인이 될 시간이다.”
“인간을 쓰러뜨린다라……. 정말 할 생각이구나, 너는.”
“그야 물론이지. 이제 거의 모든 준비가 끝났어. 그러니 너도 준비하고 있으라고.”
“나도 해야 하나……?”
“선택의 시간이 온 거지. 동참하지 않으면 너도 적이다.”
말을 마친 처음의 검은 형체가 사라졌다.
꼬리가 달린 두 번째 형체는 잠시 그 자리를 지켜보다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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