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necromancer villain in a game novel RAW novel - Chapter (511)
511화
물가에서 기어 나온 건 늘씬한 몸체를 지닌 동물이었다.
미끈한 유선형 몸통에 젖은 갈기 같은 털이 착 가라앉아 있는 둥근 머리의 짐승. 그건 바로 해달이었다.
일행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아무리 귀여운 외견에 온순한 성정으로 유명한 해달이라 할지라도, 지금 호라이즌 내에서 인간들은 동물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현실이 아닌 게임 내에서는 동물들이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순진해 보이는 강아지가 도시를 불사르는 메테오를 쓸 수도 있는 곳이 호라이즌의 세계였다.
해달은 흰자위가 보이지 않는 검고 둥근 눈동자로 일행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총총걸음으로 걸어왔다.
“동물이 여긴 어쩐 일이지?”
파프닐이 경계하며 물었다.
해달은 촉촉한 눈망울로 파프닐을 빤히 바라보았다.
“한때는 동물들과 인간들이 교감을 나눌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서로 의심부터 해야 되는 상황이 오다니 슬프군요.”
“그건 동물들이 먼저 선을 넘었기 때문이지.”
동물 반란군은 마주치는 모든 인간을 죽였다.
마음을 나눈 친구로 지내던 테이머, 같이 자연의 소리를 듣던 드루이드, 동물들의 질병을 치료해 주던 수의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야말로 대학살극을 일으키는 동물들에게 인간이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용건을 밝히지 않으면 죽이겠다.”
파프닐은 말과 함께 궁드닐을 겨눴다.
날카로운 창날에 움찔한 해달이 대답했다.
“당신을 해하러 온 것은 아닙니다…….”
해달은 천천히 기어 나온 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옆구리에 끼고 있던 조개를 양손에 꽉 쥔 모습으로 말이다.
“사실 저는 당신을 도우러 왔습니다.”
“도우러?”
“동물 반란군의 간부들, 그리고 그들의 능력을 넘기고……. 저의 능력으로 당신들을 돕겠습니다.”
“우릴 돕는다고?”
“예. 이 전쟁은 시작부터 잘못되었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저는 이제라도 그것을 멈추고 싶습니다.”
“그래서 내게 접촉하는 건가.”
“저는 동물 반란군을 압니다. 그들은 절대로 멈추지 않을 테지요. 이 때문에 저는 인간들 중 믿을 수 있는 이를 찾아 왔습니다.”
파프닐을 바라보는 해달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그리고 저는 마침내 찾았습니다. 수많은 인간들 중 힘과 지혜와 자비를 모두 갖춘 인간……. 바로 당신입니다.”
“잠깐만, 이 친구가? 자비?”
홍길동이 끼어들었다.
“……예.”
“말도 안 되는……. 이 녀석은 몽골군 같은 녀석이라고.”
포자를 이용한 세균전, 금속 폭발, 해골병들을 이용한 무자비한 사냥.
파프닐의 행동에서 아무리 자비를 찾아보려 해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해달은 고개를 강하게 흔들었다.
“동물 신에게 세뇌되었을 뿐……. 본의 아니게 동물 반란군에 선 동물들을 구한 건 당신뿐이었으니까요.”
동물 신의 마력으로 세뇌되거나, 단순히 먹을 걸 얻기 위해 반란군에 들어갔던 일반 동물들.
구출된 인간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할 뻔한 그들을 구해 준 게 바로 파프닐이었다.
“저는 그것을 보고 확신했습니다. 당신이야말로 믿을 수 있다고……. 부탁드립니다. 동물들을 구해 주세요.”
해달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마쳤다.
그 순간이었다.
지켜보고 있던 홍길동에게서 푸풉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홍길동 님?”
“아, 미안하네. 웃으면 안 되는데……. 푸흐흡. 저 녀석 말이랑 얼굴이 매칭이 안 되어서…….”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다소곳이 허리 쪽에서 조개를 잡고 있는 양손.
홍길동은 애써 입을 막고 슬픈 생각을 했지만, 다음 순간 인터넷에서 본 슬픈 고양이나 강아지를 떠올리고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확실히 좀 웃기긴 하군.’
파프닐은 잡생각을 지우고 해달을 보았다.
똘망똘망한 눈을 한 채 반응을 기다리는 모습.
아마 적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이 해달 자체가 함정이고, 지금 하는 말은 전부 시간 끌기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당장 주변에 동물 반란군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지만, 미리 작전을 계획하고 멀리서부터 포위망을 만들어 올 수도 있다.
‘……좋아.’
파프닐은 해달에게 다가갔다.
“일단 자리를 옮기지.”
“그럴까요?”
“그 전에 너를 구속하려고 하는데, 괜찮겠나?”
“물론입니다……. 파프닐 님께서도 저를 바로 믿을 수 없을 테니까요.”
파프닐은 해달의 몸을 금속으로 감싼 뒤, 해골병들에게 짊어지게 했다.
강을 건너는 동안 계속 주변을 경계했지만.
동물 반란군은커녕 멀쩡한 동물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레드불 철광산 근방.
바위산 사이에 도착한 파프닐은 해달을 내렸다.
“다친 덴 없나?”
“가, 감사합니다.”
“무얼, 그럼 이제 이야기를 해 볼까.”
이 해달이 누구고, 무슨 패를 가지고 있는지 들을 시간이었다.
“저는 보로리라고 합니다. 보시다시피 해달……이고, 나이는 대략 2019…….”
“보로리? 그보다 나이가 2000살이 넘는다고?”
“……그렇습니다.”
나이가 2000살이 넘는다면, 이것은 단순 해달이 아니라 신수에 가까웠다.
웅녀를 지키는 곰들과 비슷한 존재.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이렇게 숫기가 없는 해달인 것도 놀라웠다.
“그래서 보로리, 내게 바라는 게 뭐지?”
“그…….”
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보로리가 숨을 들이마시고 말했다.
“동물들을……! 동물들을 구해 주세요! 그리고 인간들의 복수에서도 보호해 주세요!”
“세이멍과 동물 반란군의 수뇌부를 잡고, 세뇌당했을 뿐인 일반 동물들은 구해 달라 그건가?”
“그렇습니다, 인간의 영웅이여.”
“대가는 뭐지?”
“대가……. 그것은 동물 반란군의 계획이랑 정보를……!”
“동물 반란군의 정보는 어디까지나 공략법일 뿐이지. 반란군을 모두 쓰러뜨렸을 때, 그리고 그 후 동물들을 보호해 주는 대가로는 수지가 안 맞는군.”
파프닐은 바닥에 굴러다니는 철광석 하나를 주워 손에 쥔 채 흔들었다.
“나도 그만한 대가를 받아야 다른 사람들을 납득시킬 수 있지. 그냥 무상으로 동물들을 보호해 주는 동물 인권론자는 아니라서. 하다못해 여기 오는 것도 이런 철광석을 놈들이 얻지 못하게 한다는 명분이라도 있단 말이야.”
“흠…….”
홍길동도 저 말엔 동의했다.
지금 플레이어들이 열심히 싸우는 이유가 뭔가.
동물 반란군을 잡으면 주는 경험치와 공헌도, 그리고 아이템 보상을 위해서다.
그런데 막상 힘을 다해 전쟁의 승기를 잡으니, 일반 동물들을 구해야 한다며 경험치와 공헌도를 얻지 못하게 한다?
아무리 파프닐이라 하더라도 수많은 반발을 감수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그렇지만…… 동물들은……!”
보로리의 몸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마치 여름철 바깥에 세워 둔 아이스크림 같은 모습이었다.
“뭐, 줄 게 없다면 이쯤 하도록 하지.”
파프닐이 손짓하자 해골병들이 창을 뽑아 들었다.
그 순간 보로리가 다급하게 옆구리에서 무언가를 빼냈다.
“보상은…… 이걸 드리겠습니다!”
“이건…….”
보로리가 내민 건 무지갯빛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조개껍질이었는데, 안에는 무언가가 가득 차 있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아이템과 비교해 봐도 뒤지지 않는 광채를 내는 모습.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물건이긴 했다.
“이게 뭐지?”
“……님께서 맡기신…….”
“님?”
“가이아님께서 제게 맡기신 보물입니다. 저도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분께서도 동물들을 구하기 위해 썼다 하면 이해해 주시겠지요.”
보로리가 조개를 내밀었다.
“받아 주세요. 대신 동물들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주시면 됩니다.”
“맡긴 물건이라는 건 네 게 아니라는 건가?”
“일단은 그렇습니다만……. 그분께서는 저를 믿는다고 하셨으니, 제 선택도 믿어 주실 겁니다.”
왠지 받았다가는 큰일 날 것 같긴 하다.
파프닐은 다시 한번 영롱한 빛을 내는 조개를 흘긋 보았다.
“……원래 이런 위험한 걸 보상으로 받진 않지만, 성의가 있으니 일단은 받아 두도록 하지.”
-가이아의 조개(???)를 획득했습니다.
조개를 받아 가자 보로리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약간 부족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은 거니까,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다는 건 알아 두도록.”
“물론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재차 감사를 표하는 보로리의 눈이 반짝였다.
홍길동이 다시 한번 배를 부여잡고 끅끅거리는 사이, 파프닐은 조개를 흘긋 보았다.
‘이건 보통 물건이 아니다.’
감정은 되지 않았지만, 최소한 하이퍼급 이상.
무려 대지모신 가이아가 맡긴 보물인 만큼, 갓급 아이템일 확률도 있었다.
파프닐이 이 정도 아이템을 가진 건 이번이 두 번째.
첫 번째는 운영진과 깊이 연관된 원숭이 콩에게 받은 ????의 창이다.
‘둘 다 절대 놓칠 수 없지.’
갓급 정도의 아이템은 최소 착용 레벨이 900 이상이다.
당연히 효과와 수치는 상상을 초월할 터.
그뿐만이 아니다.
플러시의 운빨을 완벽히 무력화시키는.
100% 확정 옵션이 있을 확률도 높았다.
‘가이아가 적으로 나타나면……. 뭐, 그때는 대지모신도 공략 대상에 넣는 것도 괜찮겠군.’
생각을 마친 파프닐이 말했다.
“좋아, 그럼 일단 네 능력부터 들어 두지.”
레드불 철광산의 동물 반란군을 상대하면서 시험해 볼 계획.
그때였다.
막 보로리가 대답하려던 순간.
파프닐의 눈이 보로리 뒤에 있던 낙타 한 마리를 발견했다.
‘낙타?’
평범한 쌍봉낙타 한 마리가 한가로이 길가의 마른 풀을 뜯고 있었다.
‘흠, 별것 아니군.’
그대로 고개를 돌리던 순간.
현실에서 김강한을 최고로 만들어 주었던 감각이 온 힘을 다해 경고했다.
‘잠깐만, 여기에 낙타?’
분명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걸 확인했을 텐데.
궁드닐을 드는 순간, 낙타의 입에서 붉은 주머니가 부풀어 오르며 수많은 암기들이 이쪽으로 쏘아져 왔다.
“딱!”
“따딱!”
해골병들이 몸을 던지고, 금속의 벽이 스스로 일어나 파프닐을 보호했다.
바로 다음 순간 암기가 쏟아져 내렸다.
“따닥…….”
가장 먼저 해골병들이 녹아 바스러졌다. 엘리트는 아니지만 미스릴 합금 코팅에 각종 오라로 강화된 해골병들이 허무하게 사라졌다.
그다음은 금속 벽.
두꺼운 강철에 숭숭 구멍이 뚫리고, 주변은 타들어 가는 유독성 가스를 뿜으며 녹아 갔다.
그렇게 두 개의 벽을 뚫은 칼날과 바늘 들은 마지막으로 미스릴 합금에 부딪혔다.
티티팅! 팅!
해골병과 강철 벽을 뚫은 암기지만, 미스릴 합금은 여지없이 받아 냈다.
힘을 잃은 바늘들이 땅에 떨어졌다. 심장, 둘라를 입에 넣은 낙타가 혀를 찼다.
“분명 지금이 맞다고 생각했는데……. 편하게 갈 기회를 버렸군.”
“당신은……!”
낙타가 보로리를 보고 눈매를 찌푸렸다.
“보로리……. 같은 동물이면서 인간을 돕다니, 동물의 규율을 배신하는 거요?”
“이건 미친 짓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용당하고 있는 겁니다!”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중요한 건 내 암살을 당신이 방해하고 있다는 것뿐.”
선대 하샤신, 카멜은 이렇게도 말했다.
최고의 암살은 상대방이 눈치채기 전에 죽이는 것.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목격자를 모두 죽이는 것도 암살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끼리리릭!”
히트멜이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자 수많은 바늘이 쏟아져 나왔다.
그 순간이었다.
쏘아지던 바늘들이 갑자기 모두 정지하더니, 그대로 땅바닥에 떨어졌다.
아무리 히트멜이 평정심을 유지하는 훈련을 마친 최고의 암살 낙타라지만, 이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바늘들.”
그 모습을 보던 파프닐이 말했다.
“좋은 미스릴을 썼군.”
말이 끝나자마자 떨어져 있던 바늘들이 모두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게임 소설 속 네크로맨서 빌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