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super-class hunter with 10 times the experience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여제의 뜻(5)
검은 가면을 쓰고 있는 남자.
미래의 인류를 이끄는 최후의 리더이자.
언젠가 내가 도달하게 될 미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가면 너머의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상관 없었다. 어쩐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표정한 얼굴이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가 부활한지 약 일주일.
‘직접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었지.’
공백의 시간이 컸던만큼 그가 해야할 일은 많았다. 그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항상 몰려 있었기도 했고.
때문에 세이비어 내부에서 1대1로 마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밖에서 보아온 그는 훨씬 과묵하고 조용했다. 말수는 더욱 줄어 있었고, 필요한 말 이외에는 거의 하지 않을 정도다.
뭐라고 해야 하나.
나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래도 미래의 나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아니, 영영 없을지도 모르겠지.
가라앉은 침묵.
나와 내가 마주한 기이한 상황.
그 어색함을 메꾸기 위해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거냐?”
내 말에 가면의 남자는 품 안에서 검을 꺼내들었다.
“없다.”
검으로 나를 가볍게 가리켰다.
“너는 이미 보았을 테니.”
그건 그렇다.
미래의 나를 구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가 행해온 일들을 경험했다. 그것들은 모두 기억이라는 형태로 남아 있다.
내 불완전하던 미래에 대한 지식이 완전해진 셈이었다.
“그저······.”
남자는 반대편을 향해 검을 뻗었다.
“감사 인사를 하고 싶었다.”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느끼기엔 그러했다.
내가 눈치채도 못할 찰나의 순간.
스으으······.
트레이닝 센터의 한 귀퉁이에 올곧은 선 하나가 떠올라 있었다.
선은 옅은 빛과 함께 틈을 만들어냈다.
파아앗!
그 틈은 순식간에 내가 있는 공간 전체를 집어 삼켰다.
이전 검성이 보여줬던 공간검과 비슷한 기술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한 발자국 앞서 있다.
‘이건······.’
그도 그럴게 공간이 아닌 차원을 뛰어 넘고 있으니까.
정제되지 않은 총천연색의 세계가 일렁인다. 푸르른 초목의 세계가, 녹슨 고철 덩이로 가득한 세계와 증기를 뿜어내는 세계가 동시에 스쳐지나간다.
눈이 핑핑 돌아가는 느낌이다.
그야말로 일자베기의 정점.
내 일자베기를 본 신태양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나아갈 방향을 미리 느끼게 된다.
미래의 내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알려줄 수 없는 미래의 경지.
그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닫혀 있던 눈이 트이는 느낌이다.
‘굉장하다.’
주변을 둘러싼 풍경은 천천히 원래대로 돌아왔다. 나와 남자는 어느새 원래 있던 트레이닝 룸에 서 있었다.
“근데 이걸 보여주는 이유가 뭐지?”
솔직히 말하자면 보여준다고 따라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미래의 나의 경험은 이미 알고 있다.
남자는 아랑곳않고 인벤토리에서 알약 하나를 던져줬다.
“먹어라.”
알약은 아이템이었다.
『 절대 스킬 재현의 명약(제작자:이지한) 』
– 등급 : 유일
– [ 제한 없음 ] 눈으로 확인한 스킬을 한가지 습득합니다.
– [ 일회용 ] 습득한 기술은 1회 사용시 사라집니다. 경험치를 획득할 수 없습니다.
단순한 알약의 외형과 다르게 그 효과는 어마무시했다.
어떠한 기술이던 하나 습득할 수 있는 알약이었다.
“쓸모가 있을 거다.”
설명은 그걸로 충분했다.
‘오······.’
잠시 알약을 멍하니 바라보던 내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감사 인사라는 게 이런 거였나.
이런 선물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다.
아이템은 본래의 시간대로 가져갈 수 없지만, 스킬은 이야기가 다르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도 그대로 남는다.
꿀꺽.
나는 곧바로 알약을 삼켰다.
그 효과는 바로 발휘 되었다.
원리를 몰라도, 방법을 몰라도 스킬을 익히게 해주는 사기적인 효과다.
『 명약을 사용하여 스킬을 습득합니다. 』
『 일자베기(Lv.?) – 명명 ‘차원베기’를 습득합니다. 』
습득을 알리는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나는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미래의 내가 전해주는 기술.
제대로 전해 받았다.
단 한 번이지만.
사용하기에 따라 다른 미래가 그려질 것이다.
남자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더 나은 미래를 손에 넣어라.”
그 말과 함께 남자는 트레이닝 룸을 빠져나갔다.
강함을 대가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모양.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겠다.
그래도······.
충분히 의미 있는 만남이었다. 그의 의도는 내게 전해졌다.
『 인공지능 네이아가 훈련을 보조하겠습니다. 』
“그래, 시작하자.”
이제 다시 일자베기를 단련할 시간이다.
* * *
세이비어에서의 일주일 동안.
불사의 마족에게서 이계 규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녀석은 진심으로 인류에게 협력하고 싶어했다.
노예 생활을 자처하면서도 마계왕을 쓰러뜨리고 싶어했다.
물론 그를 100% 신뢰하는 사람은 없었다만.
– 아아, 나를 찾았나? 그래 내가 아는 건 전부 말해주지.
어쨌든 가장 중요한 이계 규율.
그는 흔쾌히 설명을 시작했다.
– 마족들은 많은 수의 차원을 지배하고 정복해왔다. 그러나 이계 규율에 대해서는 극히 미미한 정보만이 존재할 뿐이지.
마계의 기술 담당이었던 발전의 마족이 소유하던 문헌에도 고작 한 문장 적혀 있었을 뿐이다.
전지의 능력을 가졌던 엘프 세레네의 말을 떠올랐다.
‘그 힘은 결코 부정되지 않는 모든 것의 규칙이자 초월자의 자격이다.’
이어서 불사의 마족의 입에서 나온 말은 흥미로웠다.
–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유. 그 이유가 뭘까? 답은 간단했다. 이계 규율은 외차원(外次元)에서 존재하는 법칙이기 때문이다. 오랜 조사 끝에 알아냈지. 5만년에 달하는 내 수명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외차원.
차원을 넘나드는 기술을 가진 마족들도 확인할 수 없는 바깥의 차원.
– 그곳에서는 완전히 다른 법칙이 존재하는 거다. 완전히 색다른 시스템이 존재하는 셈이지.
정리하자면 이계 규율은 차원 바깥의 장소(외차원)에서 왔단다.
– 외차원은 우리가 존재하는 세계와는 철저히 단절되어 있지만 간혹 영향을 주는 일이 있다. 그렇게 나타난 것이 바로 네가 사용했던 ‘마기의 원천 : 이계 규율’이었다.
불사의 마족이 5만년 동안 찾아 헤매던 걸 내가 도중에 가로챘다는 말이 되는데.
의외로 녀석은 담담했다.
– 처음에는 분개했지. 다만, 네 놈을 죽인다고 이계 규율이 돌아오는 건 아니니. 차라리 관찰하기로 결정한 것 뿐이다. 그러다보니 손을 쓸 수 없게 된 것 뿐이고.
근데 그 설명이면······.
– 결국 너도 딱히 아는 게 없다는 거 아니냐.
– 아무렇지 않게 정곡을 찌르는군. 그래도 소기의 성과는 있었다. 이계 규율을 찾으면서 그것을 소유한 자들에 대한 잊혀진 기록을 복원할 수 있었으니.
기록 복원.
마지막으로 나온 말이 진짜였다.
– 이계 규율을 소유한 존재는 모두 초월자가 되었다. 그러니 이계 규율의 목적은 소유자를 초월자로 만드는 게 아닐까. 그런 결론이 나왔다.
마계왕과 같은 초월자라······.
나는 팔목의 검은 팔찌를 들여다 보았다.
이계 규율에 의해 습득한 이것의 이름 또한 초월의 팔찌다.
명백하게 초월의 길로 나를 인도하고 있다는 증거다.
– 결국, 이계 규율을 소유한 그대가 밝혀내야 할 문제다. 개인적으로 궁금하니, 과거의 나에게 꼭 답을 알려주게.
그 길이 옳은 길이냐 아니냐는 두고봐야 할 문제지만.
– 그러면 이제 과거의 이 몸. 최상위 불사의 마족을 인간의 편으로 삼는 법을 말해주마.
– 필요 없는데.
– ······. 한 번 들어나 보는 건 어떤가?
이계 규율에 대한 정보 수집은 이렇게 끝이 났다.
외차원에서 왔으며 소유자를 초월자로 만든다.
지금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은 이 정도였다.
미래의 나조차도 이계 규율에 대한 건 전부 밝혀내지 못했으니.
때문에 그 존재 이유나 진짜 목적은 알 수 없다.
‘무언가 의문만 더 생긴듯한 기분이네.’
그러나 차차 밝혀질 거다.
그것만은 확실해보였다.
* * *
함선의 바깥, 황량한 대지.
“더 있다가 갔으면 좋았을텐데······.”
미래의 진세아가 아쉬운 듯 말했다.
“그래도 붙잡을 순 없겠지.”
과거에서 온 우리를 배웅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미래의 진세아와 엘리스, 여제와 미래의 동료들 마지막으로 미래의 나까지.
함장모를 쓴 진세아가 망토를 펄럭이며 앞으로 나섰다.
“다시 한 번 모두를 대표해서 말할게. 진심으로 고마워. 오빠 덕분에······. 우리의 세계는 희망을 얻었어. 봐봐, 우리 오빠도 기뻐하잖아.”
“······.”
가면을 쓴 남자의 옆구리를 툭툭치는 진세아(미래).
그렇게 막 건들여도 되는 건가 싶다.
“과거의 지한씨에게 하나 더 줄 게 있어요.”
미래의 나는 여제와 함께 내게로 다가왔다. 미래의 나는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렸다.
파직, 파지지직······!
허공에서 붉은 스파크가 튀어오른다.
『 이계 규율 두번째 : 예외 규칙 』
『 이제 해당 시공에서 아이템을 한 가지 가져올 수 있습니다. 』
간섭에 의해 이계 규율이 메시지창을 띄워 올렸다.
미래의 내가 만들어낸 틈새.
‘적지 않은 자원을 소모할텐데.’
이렇게까지 해줄 줄이야.
여제는 자그마한 금빛의 큐브를 내게 내밀었다. 엄지만한 크기로 상당히 작다.
“차원 압축 입방체에요. 언젠가······.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만큼 강해진다면 사용할 수 있을 거에요.”
“감사합니다.”
나는 큐브를 받아 인벤토리에 넣었다. 확실히 챙겼다.
뭐가 들어 있는지는 일부러 말해주지 않은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가벼운 작별 인사가 이어졌다.
“사부, 과거의 저에겐 가능한 한 정보를 전달해 놓을게요.”
엘리스는 그리 말했다. 그러고보니 그녀는 다른 시간축의 자신들과 어느정도 소통할 수 있었다.
꿈이라는 형태로 전달되던가?
현재의 엘리스의 힘이 약해서 그런지 그리 완벽한 전달은 안되는 것 같지만.
“정말 죄송했습니다.”
“정말로 미안합니다.”
다시 고개 숙여 사과하는 신태양과 천성호. 나는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렸다. 어차피 지난 일 탓해서 뭐하겠는가.
여기 있는 동안 영약을 포함한 선물을 잔뜩 받았으니, 봐준다.
미래의 진세아는 헤드락을 걸고서 과거의 자신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고 있었다.
“훈련 알려준 거 절대로 빼먹지 말고 꼭 해. 알았지? 자, 따라해. 나는 천재다”
“나는 천재다······. 으윽, 드디어 끝났다······.”
“정신차려! 내가 알려준대로하면 미래가 바뀐다니까. 잘만하면 여제의 자리도 니가 꿰찰 수 있을지도 몰라.”
“그거는 뭐 꽤 좋은 정보기는 한데······. 생각은 해볼게.”
“그러다 너 후회한다니까.”
도대체 뭘 알려준 건지.
어쨌든 두 사람의 사이도 꽤 좋아진 모양이다.
여제와 윤서현도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눈다. 일주일이란 짧은 시간이지만, 역시 동일 인물이라 통하는 게 있는 걸까.
여제가 윤서현의 두 손을 꼭 잡은 채 이야기하고 있었다.
“포기 하지 말고. 힘내.”
“이러다 괜히 나만 김칫국을······.”
“아니라니까. 너도 봤잖아.”
그 사이 내 앞으로 검은 가면을 쓴 남자가 다가왔다.
미래의 나.
그는 말 없이 나를 바라볼 뿐이다.
이제 슬슬 돌아갈 때라는 거겠지.
“그러면 돌아갈까.”
붉은 하늘 위로 보이는 암운(暗雲).
마기의 재액은 여전히 지상을 향해 떨어져내리고 있다.
이제 이들의 상대는 마계왕이다.
승리인가 패배인가.
그것은 모두 여기 남은 사람들의 손에 달려 있다.
『 안녕히가십시오. 함장님. 』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세계로 돌아갈 때다.
나는 검을 들어 올렸다.
마력을 담아 검을 휘두른다.
『 스킬 ‘일자베기 Lv.13’을 발휘합니다. 』
푸른 선이 근처의 허공을 가르며 부족한 경험치를 채웠다.
드디어 완성했다.
『 충분한 양의 스킬 경험치를 습득하셨습니다. 』
지금의 내가 도달할 수 있는 최대 스킬 레벨.
『 레전더리 스킬 ‘일자베기 Lv.14’를 획득합니다. 』
『 추가효과 : 스킬의 등급이 두 단계 상승합니다. 』
14레벨의 일자베기가 완성되었다.
레어였던 스킬이 단번에 레전더리의 반열에 올랐다.
검을 쥔 손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이 연기처럼 흩어져나간다.
흐읍.
나는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모두의 이목이 내게로 집중 된다. 시끌벅적했던 사람들 사이로 침묵이 내려 앉았다.
나는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일자베기의 무한한 가능성을 머릿속에 그리며, 칼날이 시원하게 뻗어나갔다.
『 레전더리 스킬 ‘일자베기 Lv.14’를 발휘합니다. 』
스으으······.
한없이 고요한 황량한 대지에 자그마한 실선이 그어진다.
변화한 건 아무것도 없다.
탈력감도 무엇도 없다.
원근을 무시한 채 만들어진 실선.
가늘지만 공간은 분명히 베어졌다.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저 멀리 이름 모를 산이 무너져 내린다. 산사태와 함께 막대한 연기가 자욱하게 솟아난다.
쿠구구구······.
진동과 소음이 한참 뒤에야 이곳에 전해진다.
산은 내가 그어낸 선 그대로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칭호의 도움을 받았다곤 하나 압도적인 위력과 사거리다.
“헐······. 진짜?”
진세아(현재)가 얼빠진 듯한 표정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그런 녀석의 반응을 보고 주위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럼 진짜지.”
미래의 진세아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사람들의 마지막 배웅이 이어졌다.
“잘 가!”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고마웠습니다!”
“그쪽 세계에서도 화이팅입니다!”
그들에게 화답하며 진세아가 소리친다.
“마계왕 죽여버려요!”
모두의 목소리가 점차 희미해지는 것과 동시에.
세계가 변화해나가기 시작했다.
『 귀환 조건 ‘일자베기 14레벨( 1/1 )’을 달성하셨습니다. 』
『 재능 획득 물약(에픽)의 효과가 사라집니다. 』
『 본래의 시간축으로 귀환합니다. 』
나와 진세아, 윤서현을 제외한 세계가 완전히 일변한다.
먹물이 번지듯 새하얗게 물든 공간을 거쳐.
우리는 본래의 세계로 돌아왔다.
부유감이 사라지고, 단단한 땅이 발 아래 자리잡는다.
꽤 길었다. 그래도 많은 것을 얻었다.
“돌아 온 건가.”
크르르르······.
뭐,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근데 여기는 어디에요? ”
“제대로 온 거 맞아요······?”
“글쎄요.”
마수들이 득실 거리는 자리에 떨어졌다는 것 정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