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super-class hunter with 10 times the experience RAW novel - Chapter 23
23화 VIP(4)
백묵은 은은한 미소와 함께 말을 이었다.
“제가 은혜를 입었으면 무조건 갚자는 주의거든요. 빚지는 걸 싫어해서요.”
사람 좋아 보이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건 백묵의 진짜 모습이 아니다.
나는 미소 너머의 진짜 모습을 알고 있다. 내 기억 속 그는 한없이 가라앉은, 차가운 눈을 하고 있었다.
– 나는 인류의 편이에요. 하지만 모두를 도울 수는 없습니다. 나는 자선사업가가 아니니까요. 살고 싶다면 도움이 될만한 정보나 능력을 가지고 오세요.
그 모습은 일반적인 영웅과는 거리가 멀었다. 백묵은 철저한 계산하에 움직이는 사람이다.
내게 먼저 전화를 건 것도 다 본인에게 이득이 된다고 생각해서겠지.
어렵게 생각할 건 없었다.
각자 필요한 걸 교환하면 될 뿐이다.
“제 입으로 말하긴 그래도 제가 발이 참 넓거든요. 헌터와 관련한 일이라면 뭐든지 도와드리죠.”
백묵의 말을 사양할 건 없었다.
터억.
나는 옆에 내려두었던 가방을 테이블 위로 올렸다.
“이건?”
“윤정수가 몰래 소유하던 D급 던전을 공략하고 얻은 마정석입니다. 이걸 백묵, 당신을 통해서 거래하고 싶습니다. 그것도 이번 한 번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내 말에 백묵의 동공이 미세하게 커졌다. 잠시 침묵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하하, 조금 놀랐네요. 제가 하는 일이 전부 알려져 있지는 않거든요. 저에 대해 조사를 하신건가요?”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좋습니다. 한 입으로 두말할 수는 없는 법이죠. 제 입으로 뭐든지 도와드리겠다고 했으니까요.”
어디서 나온건지 모를 대량의 마정석. 이런 건 길드 단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거래가 아니면 하기 힘들다.
하지만 백묵은 돈 되는 일이라면 출처가 불분명한 아이템도 신경쓰지 않는다.
“가치를 확인하는 데로 돈은 보내드리겠습니다. 문제가 안되는 방식으로요. 아, 수수료가 좀 붙을 거에요. 괜찮죠?”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괜찮겠네요. 필요한 건 그게 전부인가요?”
“한가지 더 있습니다.”
나는 품 안에서 잘 접은 종이 한 장을 건네었다.
그것을 펼쳐 본 백묵이 고개를 기울였다.
“······사람들의 이름인가요? 장소도 있고. 아이템의 이름 같아 보이는 것도 있네요.”
거기에 쓰여 있는 건 내가 알고 있는 파편적인 과거 지식들의 나열이었다.
큼지막하게는 알고 있지만 세세한 것까지는 알지는 못하는 정보들.
‘백묵 정도 되는 능력자라면 찾아낼 수 있을 거다.’
나 혼자서 조사하거나 찾기에는 방대한 정보를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
마기의 원천이 존재하는 장소 혹은 내가 소문으로만 들었던 아이템이 있는 장소. 아니면 꼭 필요한 존재지만 이름만 아는 사람이라던지.
백묵을 통해 찾을 수 있을 터.
내가 가진 미래의 정보가 아니면 이득을 보기 힘든 것들로 추렸다. 백묵이 독자적으로 확인해 내더라도, 그 이유를 알아내긴 힘들 거다.
“찾아줬으면 합니다.”
종이에 적힌 글자를 읽던 백묵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당황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말을 꺼낸다.
“음, 저도 가능하면 그대로 찾아드리고 싶은데 말이에요. 생각보다 규모가 커질 것 같아서요. 그러니까 이지한씨도 절 조금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이렇게 나올 줄은 알고 있었다.
“이지한씨는 아직 길드가 없으셨죠.”
“예.”
“따로 길드에 들어갈 생각은 없으신거죠?”
“당장은 없습니다.”
백묵은 잘 됐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차라리 좋네요. 그런 신분이 활용하기에 따라 이득이 될 수도 있거든요. 이지한씨처럼 실력만 있다면요. 용병 헌터라고 들어보셨죠.”
용병 헌터.
길드에 소속되지 않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헌터를 의미한다. 소속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었다.
SSS급 용병으로 이름을 날리던 헌터도 있었다.
“등급은 아직 D급이시죠?”
“맞습니다.”
“좋아요. 감탄스러울 지경이에요.”
말한 적은 없다. 하지만 사무소에 있었을 때 F급이었으니, 아무리 급성장을 했어도 D급이라는 게 당연했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
‘레벨을 따지면 C급이나 마찬가지긴하지만.’
백묵은 옆에서 꺼낸 태블릿을 두드리더니, 내 쪽으로 화면을 내밀었다.
화면에는 어느 던전의 정보가 나와 있었다.
『 D등급 특수 던전 』
– 내부 마력 등급 C+
– 특수 제한 : D등급 이하의 헌터만 입장 가능
– 예상 보상 : 알드리아의 보석
“이건?”
“지금 공략을 준비 중인 특수 던전인데 제한이 걸려 있어서 이지한씨 같은 실력자가 필요한 상황이거든요.”
그는 손가락으로 태블릿의 화면 한구석을 가리켰다.
“보이시죠,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곳의 보상은 ‘알드리아의 보석’인데요. 이걸 가지고 와주시면 됩니다. 제가 이게 꼭 필요해서요.”
드디어 나왔다.
이게 백묵이 나를 부른 진짜 목적이었다. 그 근간에는 나에 대한 좋은 평가가 깔려있기는 하다지만.
“당연히 보수도 드릴거고요. 어떤가요.”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특수 던전의 정보가 범상치 않아서였다. 그걸 읽는 내 눈이 점점 가늘어졌다.
“여기 참여하는 건 저 혼자입니까?”
“아뇨, 그건 아닙니다. D등급 중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친구들이 있거든요. 그 친구들하고 함께 파티로 공략해주시면 돼요.”
백묵이 공략을 제시하는 던전은, 내가 알고 있는 곳이었다.
‘이럴 수가 있나?’
딱 이 던전이었다.
‘마기의 원천’이 숨겨져 있는 장소. 우연인지 몰라도 백묵은 내게 이곳을 공략할 것을 제시했다.
마기의 원천은 마족들의 야욕을 저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물건이다. 헌터 등급 상승을 위해서라도 꼭 찾아야 했다.
감탄하던 나는 속으로 쓴 웃음을 지었다.
‘우연일 리가 없지. 이건 우연이 아니다.’
재물 획득의 물약은 분명히 백묵의 명함을 가리켰었다. 여기까지가 재물 획득의 물약의 효과인거다.
굉장하다.
살짝 소름이 돋는다.
팔을 쓸어내린 나는 고개를 슬쩍 들어 백묵을 바라봤다.
‘D등급 헌터들로 구성된 파티라.’
그의 표정엔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은 실력자들로 파티를 구성해 놓았을 거다.
‘으음, 어쩐다.’
백묵이 어떻게 그 던전을 소유하게 된 건지는 몰라도, 원래대로라면 그건 어느 빌런 조직의 소유였을 거다.
잠시 인류의 배신자였던 김상욱의 이야기를 떠올려 봤다.
– 마기의 원천, 그 중 하나는 내가 관리하는 던전에 숨겨져 있었거든. 원천에서 내뿜는 마기가 던전을 특수한 성질로 바꾸는데, 그러면 신기하게도 던전 브레이크가 안 일어난단 말이지.
– 즉, 내부의 마수가 바깥으로 나오는 일이 없다는 거야. 그래서 프로젝트 마기가 시작될 때까지 마기의 원천을 오랜 기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었던 거야.
– 그걸 어떻게 아냐고? 내가 그 빌런 조직 대빵이었거든. 아, 미안, 미안하다고. 으악! 아니, 아무리 그래도 돌은······.
김상욱의 이야기를 듣다가 분노한 사람들이 돌을 던지기 시작해서 기억은 여기까지였다.
백묵은 모르고 있겠지만, 파티가 던전을 공략하려고 하면 당연히 김상욱의 끄나풀들이 막으러 올 거다.
‘근데 그냥 하자.’
여길 공략했을 때 나한테 이득 되는 게 너무 많다. 백묵과의 거래를 계속해서 이어가려면 이번 일은 필수기도 했고.
‘백묵의 목적은 던전 공략 보상인 알드리아의 보석. 내 목적은 마기의 원천.’
서로가 윈윈하는 공략이었다. 물론 백묵은 그 사실을 알 리 없고.
‘게다가 김상욱의 부하들도 간단하게 막을 방법이 생각났다.’
마기의 원천, 포인트, 돈.
거절하기엔 너무 달콤한 제안이었다.
“하실건가요?”
“좋습니다. 하죠.”
나는 백묵이 내민 손을 마주 잡았다.
* * *
다음날.
경기도 외곽의 산 중턱.
D등급 헌터들 중에서도 유망주라고 불리는 이들이 모여들었다.
백묵이 엄선한 4명의 헌터.
일반적으로 D급 던전을 공략할 때 필요한 헌터의 수는 D급 5명이다.
하나가 모자르지만, 백묵은 서류상에 인원을 하나 추가하는 걸로 때웠다.
네 명의 헌터가 서로를 어색하게 마주했다.
나를 포함해 남자 셋과 여자 하나다.
“안녕하십니까!”
“예······.”
“안녕하세요.”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걸로 인사를 대신했다. 자리에 서서 그들의 얼굴을 살폈다.
놀랍게도 셋 다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역시 백묵인가. 보는 눈이 굉장하네. 정말로 미래에 유명한 사람들만 모아놨네.’
이들은 모두 훗날 이름을 날리게 된다.
가장 먼저 큰 덩치의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스포츠 머리를 한 그는 커다란 방패를 등에 매고 있었다.
“저희끼리 가볍게 자기소개부터 하고 들어가죠. 저는 박인성입니다. 올해로 27이고요, 방패를 사용하는 탱커 역할을 주로 맡았습니다. 딜러분들은 절 믿고 공격해주시면 됩니다.”
남자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철벽의 박인성.
이름과 반비례하는 인성으로 유명했다.
헌터계 갑질 끝판왕, 저 세상 인성 쓰레기, 후배 살인자······. 참 별명이 많다.
각종 갑질 논란이 끊이질 않았으며, 길드를 창설해 A랭크까지 끌어 올리지만 후배 길드원에게 지속적인 괴롭힘을 자행했다.
결국엔 자기 후배를 게이트 내부에서 후드려 패서 죽였다.
‘감옥에 갔던 것까진 기억하는데, 그 뒤는 모르겠네. 마족이 쳐들어 올 때 죽었나?’
아마 그럴 거다.
다음으로 초췌한 인상의 남자가 자신을 소개했다.
“그······. 저는 이예준이에요.”
“무기는 뭘 쓰십니까?”
“아, 전기 마법을 써요······.”
자신감 없는 목소리와 축 처진 어깨. 별 실력이 없어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전기 싸이코패스 이예준.’
이 녀석은 나중에 빌런이 되서 사람을 참 많이 죽인다. 빌런이란 범죄를 저지르는 헌터를 의미하는데, 조직적이거나 전문화 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반 범죄자와 차별된다.
이예준은 국내에서 가장 큰 빌런 조직 ‘환령’의 간부까지 올라가는 진짜 미친 놈이다.
진짜 유명한 놈들만 모였다. 나는 속으로 박수를 짝짝쳤다.
기가 찬다.
‘와, 백묵 이 미친놈······. 진짜 실력만 보고 사람을 뽑았네. 최소한의 인성검사는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기야 백묵이 초능력자도 아니고 개개인의 인성이나 미래의 일을 알 리가 없다만.
마지막으로 한 사람은 고등학생이었다. 학교 끝나고 바로 왔는지 교복 차림 그대로였다. 팀의 유일한 여자다.
“진세아입니다. 주무기는 단검이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진세아는 은근히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그럴만 해.’
그래, 이런 미친 놈들 사이에 있으면 경계심이 드는 게 당연하다.
근데 날 보더니 그 눈빛이 한층 진해진다.
이런, 내가 제일 정상인데. 사람 보는 눈이 이렇게 없어서야.
‘근데.’
나는 그 눈빛을 그대로 돌려줬다.
‘니도 정상은 아니야······.’
진세아는 최후의 11인이었다.
훗날 SSS급의 경지에 오르는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그녀의 별명은 ‘환세의 도둑’이다.
멸망한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각자의 슬픔과 고통을 하나씩은 품고 있다. 잃어버린 가족이나, 지키지 못한 약속, 끔찍한 트라우마 속에서 사람은 미치기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특출나게 미친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기인’이라고 불렀다.
‘진세아는 그런 기인들 중 하나였지.’
그녀는 모든 생활을 도둑질을 통해서만 영위했다.
일하지 않으며, 거래하지 않고, 협상하지 않는다.
오로지 도둑질만으로 살아가는 미친 인간.
그 대상은 마족, 마수, 인간 가릴 것 없었다. 물론 불쌍한 피난민이어도 예외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피해자였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자식 같던 영훈이와 함께 피난민 생활을 하던 어느날.
그 날은 영훈이의 생일이었다.
– 영훈아, 생일축하한다. 보여 줄 게 있다.
– 또 뭐에요, 아저씨.
– 조용히 따라와. 다른 사람들 모르게.
나는 영훈이를 데리고 한적한 숲 근처로 향했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지 확인한 다음, 조심스레 땅을 파냈다.
묻혀 있는 것들을 확인한 영훈이의 얼굴이 그라데이션으로 밝아졌다.
– 이, 이거 다 먹을 거잖아요! 과자랑 음료수? 이걸 대체 어디서 구했어요?
– 몰래 몰래. 진짜 열심히 모았다. 너 주려고.
– 혀엉······. 사랑해요.
– 야, 징그러. 남자끼리 사랑하고 그러는 거 아냐.
녀석이 기뻐하니 나도 기뻤다.
그렇게 땅 속에 묻어 넣었던 과자와 음료수를 꺼내는 순간이었다.
뻐억!
– 여, 영훈아?
어디선가 나타난 그림자가 영훈이의 머리를 가격했다.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영훈이가 쓰러졌다.
– 너, 너는······!
말을 미처 끝 마치지도 못했는데, 나도 별안간 눈 앞에 별이 보이더니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잠시 뒤.
– 으으윽······.
– 아야야, 아저씨 괜찮으세요? 대체 뭐였죠?
우린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다행히 둘 다 멀쩡했다. 그런데 멀쩡하지 않은 게 하나 있었다.
– ······없어졌어.
– 네? 뭐가요?
– 간식······. 간식이 없어졌어. 이런 개같은!
나는 차가운 눈빛으로 내 머리를 후려치던 그 얼굴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내가 영훈이와 함께 파티를 벌이려고 열심히 모아두었던 간식들을······.
멸망한 세계에서는 금은보화나 다름 없던 그것들을······.
진세아 이 녀석은 그냥 훔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