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super-class hunter with 10 times the experience RAW novel - Chapter 271
271화 이지한(1)
【 끝을 결정하는 건 네가 아니다. 】
내 말에 마계왕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답했다.
콰과과과과—!
마계왕이 걸음을 옮기자 대지가 붕괴되었다. 막대한 에너지가 행성 전체로 퍼져나가며 지축을 부쉈다.
여기서부턴 기존의 상식을 아득히 초월한 전투가 된다.
검은 광휘의 번쩍임.
동시에 마계왕의 검이 쇄도해 왔다. 나는 그 검을 받아냈다.
“크윽.”
전신을 뒤흔드는 충격이 초월력을 뚫고서 전해졌다.
쿠과과과과—!
일격으로 나와 마계왕이 딛고 서 있던 지구가 파괴되었다. 나는 우주 공간으로 내던져졌다.
【 가소롭다. 】
정신을 차리니, 또다시 눈 앞에서 마계왕의 검날이 번뜩였다. 가까스로 검을 들어 올려 공격을 막아냈다.
“크흐윽······.”
울컥. 목구멍으로 피가 솟구쳤다.
충격을 전부 흘려내지 못했다.
콰아아아—!
초월력의 파동이 우주 공간 저편으로 퍼져나간다. 충격파는 근처의 위성과 행성을 산산조각내며 흩어졌다.
마계왕의 무감한 눈이 나를 향했다.
【 너는 어리석기에 주제를 모르는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모르기에 겁없이 덤벼드는 거다. 】
무수한 시간선에 얽혀 있는 초월력은 마계왕이 가진 힘의 근원.
마계왕의 몸짓 한 번, 한 번에 공간이 찢어지고 막대한 에너지가 세계를 뒤흔든다.
콰앙, 콰앙!
그는 가볍게 검을 휘둘렀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일자베기를 사용해 막아야했다.
그 충격에 별이 휩쓸리고 은하의 변두리가 떨어져나간다. 베여나간 신체에서 솟구쳐오른 피가 옷을 흠뻑 적셨다.
‘크윽······.’
이곳은 마계왕의 고유 세계.
바깥에서 내가 가져 온 초월력조차,
그가 가진 강대한 힘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했다.
‘어렵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곳으로 발을 디뎠다.
【 보았다. 무수한 시간선 속에서 유독 네가 무엇이 다른지. 너를 기다리며 확인했다. 】
우주를 가르는 검격이 나를 향해 몰아쳤다. 공간이 찢겨나가고, 별과 행성이 집어 삼켜지는 검격.
【 단언하지. 너는 운이 좋았을 뿐이다. 】
마계왕은 그리 말하고 있었다.
【 최하위 마족을 쓰러뜨렸을 때. 너는 운이 좋았다. 그 떨거지들이 아니었다면 너는 죽었을 거다. 】
동료가 있었으니까. 이길 수 있었다.
【 중위 전투의 마족을 상대할 때, 너는 이계 규율에 기댔다. 】
역전의 검의 특수효과 덕에 놈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 상위 나약의 마족을 상대할 때, 무재조정이 너를 도왔다. 】
모든 스킬을 초기화 시키는 마족을, 나는 무재조정의 힘으로 쓰러뜨렸다.
【 최상위 마족도, 사도를 처치한 것도, 전부! 】
콰아앙—!
검은 폭발이 우주 공간 너머로 치솟았다. 나는 그대로 튕겨져나가 행성에 부딪혔다.
부딪힌 행성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그러고도 한참을 밀려나, 청색의 별에 집어 삼켜졌다.
초고온의 열기가 나를 녹여내려하고 있었다. 현상계의 열기가 초월급의 신체를 녹여내진 못하지만······.
몸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파직, 파지직—.
나는 삐걱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운이었을지도 모르지······.”
『 스킬 ‘일자베기 Lv.20’을 발휘합니다. 』
내 검이 단번에 별을 갈랐다. 끝도 없이 퍼져나간 순백의 선이 청색의 별을 양단했다.
가공할 충격파가 우주로 퍼져나갔다.
“근데, 그게 뭐 어쨌는데.”
마계왕의 기억도 다를 바 없었다.
운이 좋아 마계왕이 된 것이었다.
【 네가 고작 그것 뿐이란 거다. 아무것도 특별할 건 없다는 거다. 】
마계왕의 증오심이 마기가 되어 나를 집어 삼킬듯 터져나오고 있었다.
“나보고 포기하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콰아아앙!
마계왕의 검이 내 가슴을 관통했다. 나 또한 마계왕의 심장에 검을 박아넣었다.
초월력과 마기가 뒤엉키며, 그의 시선과 내 시선이 맞부딪혔다.
【 그래. 그거다. 너는 결코 날 이길 수 없다. 그것을 인정하고 죽어라. 】
증오로 타오르는 귀화.
한없이 공허한 눈동자.
그것은 명백한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
“아니, 그럴 순 없지.”
나는 입가를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
* * *
어째서 마계왕이 자신의 기억을 들여다보는 걸 불쾌하게 여겼는가.
왜 그 기억을 아카식 레코드에서 지웠는가.
그의 모든 기억을 들여다 본 나는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무재조정을 얻은 이지한의 방해를 피하기 위해서,
외차원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서.
둘 다 해답이었지만.
가장 정답이 되는 건, 정말로 어처구니 없는 이유였다.
단순했다.
‘놈은 과거를 잊고 싶어했던 거다.’
마계왕 그가 자신의 기억을 되돌아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떠올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이 세계에서 과거를 지웠다.
그것이 마계왕의 기억을 전부 확인한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마계왕의 영혼과 합쳐진 이지한.
– 여기는 마계······. 태초의 마계······.
그는 자신의 살던 시간보다 더욱 과거로 회귀했다.
이지한이 집어 삼킨 마계왕이 외차원에서 건너 온 특수한 생명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태초의 마족이 나타났을 시기.
무한회귀의 이지한은 계속해서 발버둥치며 역사를 바꿔나갔다.
– 마족이라면······. 마족의 제약을 사용한다면 뭔가가 바뀔지도 모른다······.
이지한 자체가 시스템에 의해 저주 받은 존재였다면, 마족은 시스템에게 축복받은 존재였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강한 힘을 지니고, 제약이란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살아간다.
마기는 그들을 위해 주어진 만능의 힘.
– 마(魔)가 되어야 한다.
이지한은 그것을 목표로 움직였다.
– 하지만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대로는······. 시간이 얼마가 지나더라도······. 무의미하다.
이지한은 오랜 시간에 걸쳐 답을 찾아냈다.
자신에겐 시간선에 간섭하는 고유능이 남아 있었다.
마계왕의 영혼을 먹어 치우고서 얻은 힘이었다.
시간 간섭.
그 능력을 자유롭게 다루기까지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이지한은 무수한 시간선 속에 펼쳐진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노력했다.
처절하고도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다른 시간선이라고해서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어떤 시간선도 원하는 이상에 도달하지 못했다.
자신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을 확인하는 일은 더없이 괴로운 일이었다.
억겁의 세월이 흘렀다.
– 마의 화신을 뵙습니다.
– 최상위 부패의 마족,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 전능하신 마계왕이시여.
선과 악의 개념이 사라지고,
삶의 의미마저 새하얗게 바래졌을 때.
이지한은 마계왕의 자리에 올라 있었다.
과거 마계왕이 그러했듯,
마계의 역사를 바꾸고.
마족들을 잘못된 역사 아래에서 통제 해나갔다.
– 이 세계는 근본부터 잘못 되었다.
마계를 장악한 그는 금제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 내 저주받은 재능을 바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재능과 힘에 대한 집착.
그야말로 광기였다.
그러나 금제는 다른 결과를 낳았다.
– 초월의 영역에 기거하며 현실에 영향을 끼치는 존재라······.
불사의 마족이 금제에 대해 연구하기 훨씬 이전부터, 마계왕 이지한은 금제에 대해 조사해왔던 것이다.
그때부터였다.
마계왕 이지한은 초월자이면서도 초월력의 소모 없이 모든 시간선을 주무를 수 있게 되었다.
아카식 레코드에 존재하는 자신의 기록도 지웠다. 외차원의 변수를 제거하고, 초월자들의 반항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
다시는 과거를 되돌아보지 않기 위해서.
멸망을 막는다는 목표는 잊혀진지 오래였다.
아니,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그가 품은 세계 대한 증오가,
자신을 무재(無材)한 존재로 만든 시스템에 대한 분노는 쉬이 잠재울 수 있는 게 아니었으므로.
단 한 가지 마계왕이 기억하는 것이 있다면.
이 세계는 시작부터 잘못되었다는 것.
그것 하나 뿐이었다.
세계가 잘못 되었다면, 다시 시작해야 한다.
초월신의 경지에 올라 이 세계를 다시 구성하는 수밖에 없었다.
– 초월신이 되어야 한다.
마계왕은 진심으로 그리 생각하며 목표를 정했다.
그의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 새로운 불길을 피워 올렸다.
그렇기에 무재조정의 이지한을 찾아냈을 때.
– 시간선에······. 새로운 줄기가 생겨났다.
마계왕은 납득할 수 없었다.
이지한의 부족한 재능을 무재조정이 채워주고 있었다.
한계돌파는 이지한의 잠재력을 깨워주었고,
시스템은 그가 일정수준의 재능을 만들 수 있게 도왔다.
– 왜냐, 어째서냐.
무한에 가까운 회귀를 했음에도 얻을 수 없던 재능을
무재조정의 이지한은 너무나 간단하게 손에 넣었다.
경험치 10만 배라는 불가해한 특성을 시스템은 인정했다.
– 그래, 이 세계는······. 뒤틀려 있는 거다.
마계왕 자신은 이미 다른 시간을 나아가고 있었다.
외차원의 생명체와 합쳐진 지금의 마계왕 자신은,
회귀의 시작 지점을 바꾸었기에.
단칸방이 아니라 태초의 마계로부터 시작했다.
이지한이지만 이지한이 아니게 된 것이다.
– 달라질 건 없다.
자신의 재능이 10만배가 된다고 해도.
달라지는 일은 없어야 했다. 실패해야 마땅했다.
아니, 그래야만했다.
마계왕 이지한.
그는 인간의 길을 버렸다.
수많은 차원들을 멸했다.
그 과정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이 사라졌다.
어쩔 수 없었다.
재능 없는 자신이 나아갈 길은 하나였으니까.
그런데, 만약이라도 무재조정의 이지한이 성공한다면······.
그건 초월신의 길을 나아가는 자신에 대한 궁극적인 부정.
때로는 무재조정을 소유한 이지한을 직접 찾아가 죽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마계왕이 된 자신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재능을 손에 넣은 이지한이 실패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으므로.
재능이 있어도 실패하는 세계라면, 세계가 잘못 된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것을 파괴하고 초월신으로 나아가려는 자신의 행위는 잘못 되지 않았다.
이미 바래진 그의 정신에는 선도 악도 없다지만,
스스로의 존재 자체에 대한 긍정만큼은 존재해야 했다.
무재조정을 소유한 이지한을 중심으로 시간선은 새로운 가지를 뻗어나갔다.
시간이 지나며 점점 확실해지기 시작했다.
– 나는 틀리지 않았다.
가능성으로 피어 올랐던 새로운 시간선들이 빛을 잃고 시들었다.
무재조정을 소유한 이지한은 계속해서 실패했다.
– 아, 당연하고 말고.
마계의 침략 앞에 마족의 아래에 이지한은 쓰러져갔다.
재능을 가진 이지한조차 ‘벽’을 넘진 못한 것이다.
– 너는 실패했다. 이지한. 그게 네 한계다.
그 마무리는 마계왕 자신의 손에 의해 이뤄졌다.
뻗어나갔던 무수히 많은 가지들이 사라졌다. 미래의 가능성이 닫혔다. 그 수가 줄어들수록 마계왕은 확신할 수 있었다.
– 나는 틀리지 않았다.
이지한의 발버둥은 의미없는 몸짓이었다.
그저 우연에 지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야만했고 그것이 맞을 것이다.
마계왕은 그리 생각하고자 했다.
* * *
그런데.
“내가 포기하길 바라는가?”
나는 살아남았다.
마지막 시간선에서 꾸역꾸역 살아남아서 결국엔 마계왕의 본신이 존재하는 이곳까지 왔다.
【 ······. 】
마계왕이 부정했던 운명을 끝까지 깨부수며 여기에 왔다.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거다.”
그게 마계왕이 내게 증오감을 쏟아내는 이유였다.
“나는 너와 다르므로.”
그 말은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무표정하던 마계왕의 본신의 얼굴 위로 미세한 금이 새겨졌다.
【 아니, 네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너는 포기하게 될 것이다. 】
촤아악—!
마계왕의 검이 나를 가르고 빠져나갔다. 허나 초월의 좌에 도달한 자들의 싸움은 신체의 훼손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콰아아아—!
마계왕의 검과 더불어, 증오 어린 마기가 나를 향해 쇄도해왔다.
【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
이에 맞서 내가 펼칠 기술은 오직 하나 뿐.
나는 검을 들어 올렸다.
‘검 끝은 하늘과 이어지고.’
무한하게 펼쳐진 암흑의 공간.
그곳에는 위도 아래도 없다.
오직 내가 정한 방향이 하늘이 되며 땅이 된다.
‘떨어지는 칼날은 대지로 뻗어나간다.’
곧게 그어진 선이 공간을 갈랐다.
『 스킬 ‘일자베기 Lv.20’을 발휘합니다. 』
일자베기.
극한의 상황 속에서 만들어진 순백의 직선은, 막대한 경험치가 되어 내게로 스며들었다.
『 스킬 ‘일자베기 Lv.21’를 습득합니다. 』
베고, 휘두르고, 자르고······.
『 스킬 ‘일자베기 Lv.22’를 습득합니다. 』
다시 베고, 휘두르고, 자르고.
마계왕의 공격을 막고, 튕겨내고, 상쇄 시킨다.
그것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분명하게 효과가 있다.
촤르르르륵!
『 스킬 ‘일자베기 Lv.23’를 습득합니다. 』
『 스킬 ‘일자베기 Lv.24’를 습득합니다. 』
···
『 스킬 ‘일자베기 Lv.35’를 습득합니다. 』
레벨 제한이 없는 일자베기는 계속해서 경험치를 획득한다.
그에 따라 메시지창은 끝도 없이 솟아올랐다.
『 스킬 ‘일자베기 Lv.36’를 습득합니다. 』
『 스킬 ‘일자베기 Lv.37’를 습득합니다. 』
···
『 스킬 ‘일자베기 Lv.68’를 습득합니다. 』
방대한 우주 공간 메우고 있던 마기가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내가 그어낸 백색의 선이 계속해서 공간 위에 쌓여 간다.
『 스킬 ‘일자베기 Lv.69’를 습득합니다. 』
『 스킬 ‘일자베기 Lv.70’를 습득합니다. 』
···
『 스킬 ‘일자베기 Lv.104’를 습득합니다. 』
【 이지한!! 】
콰지지지직—!
마계왕의 등 뒤로 돋아난 검은 날개가 끝도 없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배후로 솟아오른 흑색의 헤일로가 크기를 키워간다.
【 너는 나를 막을 수 없다! 아니, 막아서는 안 된다. 그것이 순리이고 이 그릇된 세계를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방도다. 보아라, 이미 이 세계는 나의 것이다! 】
초월신의 경지.
무수한 시간선을 집어 삼킨 마계왕은 새로운 경지를 눈 앞에 두고 있었다.
가볍게 손가락을 움직였을 뿐인데, 그의 손끝으로 우주의 별들이 모여들었다.
한 점에 모인 막대한 에너지는 마기가 되어 나를 향해 쇄도했다.
콰아아아아앙!
『 스킬 ‘일자베기 Lv.104’를 발휘합니다. 』
일자베기로 미처 막아내지 못한 흑색의 에너지가 은하를 휩쓸었다. 모든 것이 일시에 쓸려나갔다.
은하를 구성하던 행성들은 먼지가 되어 흩날렸으며, 몇 억년을 타올랐던 별은 빛을 잃고 허무의 공간으로 흩어졌다.
【 이지한, 너도 알고 있었을 거다. 】
저벅, 저벅······.
걸음을 옮기는 마계왕의 주변으로 무(無)의 공간이 번져나간다.
우주의 공간에 덧씌워지는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공간.
‘······.’
무수한 시간선들이 마계왕의 소유에 놓였다.
나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 가닥의 시간선에 존재할 뿐.
끌고 온 초월력도 마계왕의 본신(本身)이 소유한 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
망망대해에 떨어진 기름 한 방울.
상식적으로 생각해선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카앙!
다시 한 번 내 일자베기와 마계왕의 검이 맞닿았다. 그의 검이 쉴틈없이 몰아치고 나는 그것을 혼신의 힘을 다해 막아냈다.
【 알면서도 너는 내게 달려들었을 거다. 】
별을 증발시키던 에너지도, 은하를 휩쓸던 충격도 더 이상 없다. 이 허무의 공간은 마계왕이 만들어낸 것이므로.
【 그게 지긋지긋하다는 거다. 】
마계왕의 평범한 휘두르기를 나는 일자베기로 막아왔다. 소모되는 초월력의 크기가 달랐다.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콰아앙!
마계왕의 발차기가 내 복부에 적중했다. 거센 충격과 함께 나는 뒤로 튕겨져 나갔다. 새하얀 바닥을 끝없이 구르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새하얀 땅 위에 붉은 핏자국이 선처럼 길게 늘어졌다.
온몸이 만신창이다.
손상된 신체를 초월력으로 기워내고서 다시 일어서 검을 잡는다.
“······.”
콰앙, 콰아앙—!
마왕의 검이 만들어낸 검기가 내게 직격했다. 다시금 아까와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쿨럭······.”
입에서 붉은 피가 쏟아져 내렸다.
그의 마기는 나의 본질을 파훼하고 찢어놓는다. 초월체와 연결된 육신과 영혼을 갈라놓는다.
더 이상의 공격을 허용해선 안된다.
“마계왕. 너는 오해하고 있다.”
나는 비틀거리면서도 검의 손잡이를 그러쥐었다.
“포기했냐, 포기하지 않았냐. 그런 건 이미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네가 어떤 길을 걸었는지는······. 스스로 보면 알잖냐.”
【 한계에 몰리니, 어줍잖은 궤변을 늘어놓는구나. 】
“시작은 같았지만······. 결국 너는 나와 다르다.”
【 그래, 그걸 이제야 알았느냐? 이제야······. 】
그런 뜻이 아니다.
마계왕, 너는 포기했다.
오랜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을 포기했고,
결국엔 스스로가 마계왕이 되어 세계를 멸망으로 몰아넣으며, 인간의 길을 포기했다.
그것이 무한한 회귀 속에서 찾아낸 답이라고 할지라도.
결국에는 포기한 것이다.
너는 무한한 가능성으로 뻗어나가야 할 시간선을 스스로 닫았다. 모든 시간선을 포기했다.
“하지만 시작은 같았다. 나는 너였고, 너는 나였다. 하지만 너는 네 기억을 돌아보지 않았다.”
스르륵······.
이 공간은,
마계왕의 힘은,
닫힌 시간선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니, 어째서 내게만 무재조정이 존재하는지.”
이 고유 세계는 수많은 인과의 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푸쉬이이—!
내 몸에서 증기처럼 흘러나오는 초월력이 별빛처럼 반짝였다. 초월력의 증기는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만들었다.
덥썩.
허공을 향해 손을 움켜쥐자 금색의 실이 한움큼 손에 들어 온다.
“생각해 본 적도 없겠지. 알 수 있을리도 없다. 되돌아보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연기처럼 뿜어나온 초월력이 내게 얽혀있는 인과의 선을 드러냈다. 셀 수 없이 많은 황금빛의 실이 내 몸과 연결되어 있다.
엘리스는 인과의 사슬이라고 불렀던 것이,
내 몸을 구속하듯 팽팽히 늘어서 있었다.
나는 처음부터 이 끈이 이어진 장소를 찾고 있었다.
“내 무재조정은 본래라면 존재할 수 없었다.”
경험치 10만배.
초월급 헌터에 오르고서 줄곧 떠오른 의문이었다.
‘그게 어째서 가능한가.’
아무리 많은 초월력이 있어도 감당이 불가능하다.
그런 특성은 인과의 불균형을 시스템을 무너뜨린다.
“운이 좋아서? 아니, 그럴 리가.”
그러나 시스템은 그것을 허용했다.
“내게 있는 무재조정은······.”
나는 마계왕을 응시했다.
답은 뻔했다.
“네 무한회귀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가 쌓아 올린 막대한 인과가.
마계왕이 만들어낸 재능을 향한 맹목적인 의지가 조금씩 조금씩 시스템의 인과를 부수어 나간 것이다.
【 대체 무슨 말을······. 】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무한회귀의 이지한.
그는 이 세계의 규칙을 바꿨다.
그러나 그 기적은 본인에겐 닿지 않았다.
인간 이지한으로서의 길을 포기했기에,
뒤틀린 인과는 또다른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었다.
콰아악!
나는 수 천 가닥의 황금의 실을 쥐어 뜯었다.
이곳에 발을 들이고나서부터 줄곧. 나는 인과의 실을 찾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것들을 찾아냈다.
“네가 버렸던 셀 수 없이 많은 시간선들.”
무수한 시간선이 내 손아귀에 뜯겨나갔다. 닫힌 미래를 향하던 황금의 실이 뜯겨나가며, 막대한 인과를 쏟아냈다.
치직, 치지직—!
내게 모여 있던 인과의 선들을 끊어내자, 시스템이 노이즈와 함께 새로운 메시지 창을 띄워 올렸다.
『 한계 돌파 퀘스트 』
– 목표 : 인과 해방 ( 0 / 1 )
– 클리어 보상 : 레벨 제한 해제(Limit Break)
“전부 내가 가져가마.”
네가 버린 그 시간은,
내가 움켜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