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02)
102.
결국 나는 알렉사의 집에서 밤새 이야기를 들어주며 시간을 보냈다.
전국 대회라는 환경에서 받는 중압감. 팀의 에이스이자 새로운 캡틴으로서 후배들을 키우고 우승을 노려야 하는데, 내적인 문제로 잡음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느끼는 부담감. 그리고 그 ‘잡음’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알 수 없다는 막막함까지.
그녀의 사정을 들으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거 완전 추리 소설 도입부인데.’
여기에서 좀 공포 쪽으로 가면 현재 알렉사가 파악하고 있는 ‘블랙 유니콘즈’ 내부의 사조직, ‘팅커벨즈’가 사실은 악마 숭배 집단이었다는 설정으로 가는 거고, 조금 귀엽게 가면 소녀들의 가벼운 치정극 정도로 이야기가 전개될 터였다.
단순히 건너들은 약간의 정보만으로도 여러 갈래의 스토리가 떠오르는 걸 보면, 분명히 지금 알렉사가 겪는 상황 자체는 무척 흥미로운 소재였다.
그리도 당연히, 나는 이걸 소설로 쓸 마음이 없었다.
‘너만 알고 있으라고 했으니까.’
알렉사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로 나를 택하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내가 그것을 대놓고 소재로 써먹는다면 그만한 쓰레기 짓이 또 없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알렉사의 이야기에 상당히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이 소재를 받아들여 쓰기로 마음먹었다.
바로 ‘틴에이저’라는 장르였다.
나는 일단 고등학생이다. 몸은.
하지만 두뇌는 아저씨였기에 몸이 작아진 명탐정 같은 상황이라 갖는 이점이 생긴다.
바로 생생한 ‘취재’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전생의 내 고등학교 시절은 ‘조용히 지냈다’로 요약이 가능했다.
초반에는 같은 동양인 무리와 섞여서 다니다가, 방송반에 들어간 이후로는 그쪽과 지냈다. 그리고 그 어디에서도 항상 눈치를 보면서 살았다.
그랬던 나를 부정하고 싶어 회귀한 이후에 복도에서 그들을 마주치거나 할 때도 적당히 무시하고 지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인생의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내가 몰랐던 진짜 고등학교 시절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마지막 기회.
내가 지우고 싶었던 과거와 다시 마주할 기회.
이른 새벽이 되어 해가 뜨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밖이 밝아서 괜찮을 것 같다는 알렉사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당연히 어머니는 새벽부터 어딜 운전하고 다녀왔냐며 추궁했고, 나는 알렉사를 생각해 하얀 거짓말을 했다. 그냥 신작 내용 좀 구상하고 싶어서 드라이브 좀 다녀왔다고.
당연히 어머니는 불 같이 화를 냈다.
도대체 정신머리가 있냐고. 이제 학교 가야 되는데 왜 잠을 안 자냐고. 위험한 일이라도 벌어졌으면 어쩔 뻔했냐고.
그 앞에서 나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내가 어머니한테 혼이 나다니!’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었다. 이러다 ‘외출 금지’라도 당하는 게 아닐까 약간 두근거리면서 어머니의 말을 계속 들었으나, 다행히 차 키를 빼앗기지도 않았고 외출 금지도 당하지 않았다.
“에휴, 그래. 너도 어련히 힘드니까 그랬겠지. 평소에 우리 아들이 얼마나 잘했는데.”
어머니는 짙은 한숨과 함께 그런 말을 남긴 채 아침 식사를 준비하러 갔다.
“······.”
왠지 좀 이상한 기분이었다.
사고 친 다음 날에 떨어지는 ‘Grounded(외출 금지)’.
안타깝게도(?) 나는 그 전형적인 미국 하이스쿨의 일상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전생의 내 모든 삶이 ‘외출 금지’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홀로 남게 된 어머니를 생각해 학교가 끝나면 곧장 가게로 왔고, 주말에도 집에서만 보냈다.
사실상, 바로 그것이 평범한 ‘외출 금지’의 규칙이었다. 친구들과 노는 등, 밖에서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지 못한 채 학교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와 안에서 얌전히 머무르는 것. 일반적인 아이들에게는 굉장히 강력한 처벌이었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일상이었다.
‘진짜 심심하게 살았었네, 나.’
새삼 그런 사실을 인지하며 몸을 씻었다.
이제 열여덟. 생일이 지나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되었다. 아직 10대에 머물러 있는 몸은 하루 정도 잠을 안 자도 버틸 만했고, 새삼 이 괴물 같은 체력에 감탄했다.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 취해 당당한 걸음으로 학교로 간 나는 나보다 훨씬 더한 괴물을 만나게 되었다.
교문 앞.
“지우~!”
“알렉사~!”
잠도 제대로 못 잤을 텐데 이 새벽에 학교를 와 치어리더 클럽 활동을 한 알렉사를.
“······역시 젊은 애들은 달라.”
“응? 뭐라고 했어. 신?”
“아, 아냐. 아무것도.”
잠시 후 두피까지 합류해 온전한 넷이 된 우리는 재잘거리며 학교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다 슬쩍 뒤로 빠진 알렉사가 내 옷깃을 잡아당겼고, 조용히 귓속말을 속삭였다.
“어제는 고마웠어. 아니, 오늘인가?”
배시시 웃는 게 좀 귀여웠다.
아마 이 학교에서 그 누구도 알지 못할, 오직 나만이 알고 있는 모습이겠지.
***
나는 학교를 언제나 ‘정글’이라고 표현해 왔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인 동시에 각자의 학생증에 돈이나 계급 같은 게 중요하게 명시되지 않은 만큼, 힘의 논리가 더 크게 작용되는 곳이었다. 거기다 문화적으로 미국에서는 나이와 학년마저 중요하지 않았다.
그 안에서 학생들은 약자로 포착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무리를 이루고 다녔지만, 그럼에도 인종이나 학교 내에서의 포지션으로 그 위아래가 나뉘는 편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일단 운동 잘하는 게 최고였다.
그중에도 남자는 미식축구 클럽, 여자는 치어리더 클럽을 최고 계급으로 쳤다. 이들은 학교 안에서 그 누구도 건들지 못했고, 파티나 행사에서도 무조건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인기도 많았다.
그 아래는 학교에 따라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지만, 애들 괴롭히면서 불량하게 노는 불리(Bully)들.
그 아래가 방송반이나 학생회처럼 학생 자치에 관여하는 이들.
그 아래가 일반적인 학생,
마지막이 로너나 너드처럼 혼자 지내거나 배척받는 이들이었다.
‘마치 KOG 같군.’
뭐, 이런 계급은 어디 기관에서 정한 것도 아니라 이래저래 섞이기도 했다. 불리가 혼자 다니는 로너의 속성을 함께 갖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나 역시 알렉사 앤 두피와 친해지기 전까지는 혼자 지내는 로너 타입이었으나, 거기에 한 가지 특이한 속성이 추가된 상태였다.
‘Model student’.
공부 잘하고 싹싹해 교사들이 좋아하는 타입의 학생.
이 경우에는 혼자 지내도 딱히 소동이나 괴롭힘에 휘말릴 염려는 없었다. 공부를 잘한다는 말은 좋은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고, 교사들의 신임과 기대, 관심까지 한 몸에 받고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래서 이 시대로 다시 돌아왔어도, 이대로면 틴에이지 스쿨 라이프를 제대로 알지는 못하겠지.’
그래, ‘나 혼자만’이었다면 말이다.
하지만 지금 내 옆에는 최고의 왓슨(?)이 존재했다. 누군가에게는 블랙 맘바, 누군가에게는 분리불안 고양이, 누군가에게는 모난 구석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리트리버인 동료가.
바로 알렉사 플레어였다.
‘알렉사의 수사를 도와주면서 자연스럽게 치어리더 클럽의 생태를 조사한다.’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실감나는 틴에이지 생활을 취재하고 신작에 반영한다.
‘‘Princess quest’도 완결이 나서 시간이 좀 비었는데, 나쁘지 않겠어.’
적당히 계산을 끝마친 나는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알렉사에게 이 완벽한 계획의 일부만을 말했다.
“뭐? 진짜 도와주겠다고?”
학교 복도. 다들 삼삼오오 모여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
지우는 클럽 활동, 두피는 코믹북 스토어 모임이 있다며 먼저 가서, 나는 알렉사와 쉽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래, 친구가 곤란한 상황에 처했는데 내가 나서지 않을 수가 없지.”
“어, 어떻게?”
“일단 수사의 기본부터 되짚어보자고.”
나는 중지와 약지를 엮어 안경의 브릿지를 스윽 밀어 올렸다.
허전했다. 나 안경 없지. 참.
“수사의 기본이 뭔데?”
“수사의 기본은 ‘탐문’이다.”
“······두피 같아서 이상해.”
“이해해라. 소녀여. 이것이 나의 ‘진짜 정체’인 고로.”
나는 약간의 고양감을 느끼며 콧등을 매만졌다.
사실, 이 일에 직접 얽혀 있는 알렉사에게는 굉장히 스트레스 받는 상황일지 몰라도, 어쨌든 한발 떨어진 입장인 나로서는 상당히 순도가 높은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분열된 치어리더 클럽, 그 안에 존재하는 비밀 결사 ‘팅커벨즈’의 존재.
소설가로서 『추리』하고 싶은 본능이 샘솟았다.
두피의 집 앞에서 ‘R2-D2’를 직접 봤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나를 보고 순간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짓는 알렉사.
얘, 얼굴이 너무 진심인데.
“그,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데······?”
그래도 결국은 나를 믿어주었다.
“별거 없어. 그냥 평소 너처럼 행동하면 돼.”
나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
센트럴 시티 밸류 하이스쿨 치어리더 클럽, ‘블랙 유니콘즈’.
이곳의 연습은 무척이나 지독하고 혹독했다. 특히나 전국 대회 출장이 결정되고 나서 더욱 하드코어해졌다.
그들은 매일 지쳐 쓰러지기 직전까지 연습에 매진했으며,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근간에는 그들을 정신적으로 이끌어주고 있는 새로운 코치, 미세스 하비의 존재가 결정적이었다.
과거, 자신 역시 고등학교에서 치어리더 클럽 활동을 했으나 십자인대 부상을 당한 뒤로 꿈을 접고 교사가 된 그녀.
미세스 하비는 당시에 에이스였던 기량을 살려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알렉사를 중심으로 한 팀 리빌딩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이번 기수의 블랙 유니콘즈는 기나긴 암흑기를 끝내고 전국 제패를 위해 큰 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다.
“Go-! Unicorn’s Let’s~ go~! Unicorn’s-!”
크게 구령을 넣으며 몸을 움직이는 클럽원들.
그 뜨거운 광경을 관객석에 앉아 지켜보면서 나는 순수한 의문을 하나 느꼈다.
‘그런데 말이야.’
······도대체 치어리딩이 뭐지?
스포츠에서 응원하는 거랑, 애들이 노래 틀고 춤추는 거랑 차이는 뭐지?
대체 뭘 심사하는 거지? 어떻게 해서 ‘경기’가 이루어지는 거지?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이해도 가지 않았다.
한 차례 연습이 끝나고 알렉사와 친구들이 까르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게 들려왔다.
“더블 스핀 파이어 유니콘에 성공했어!”
도대체 뭐냐고! 그게!!
KOG 마법이냐?! 자기들끼리 이름 붙인 거야?!
어떻게 하면 사람이 뛰어 올라서 공중에서 일곱 번 회전하며 교차하지?! 기예단이냐?!
‘아, 아니. 침착하자.’
일단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저들을 조사하는 거였다. 더블 스핀 파이어 유니콘에 대해서는 나중에 알렉사에게 물어보자. ‘블랙’이라고 하는 이름을 쓰면서 ‘파이어’라고 하는 속성을 붙이는 건 뭔가 어색하니, ‘더블 스핀 다크 매터 유니콘’으로 이름을 바꾸는 게 어떻냐고 제안도 하고.
그런 식으로 연습을 지켜보던 중, 나는 그녀들에게 미세스 하비가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다.
“Okay, Ladies!”
틴에이저 영화에서 으레 나오는 선생이 할 법한 대사와 함께 애들을 불러 모으는 그녀.
그 가운데에서 나는 발견했다.
‘응?’
입술을 샐쭉 내민, 미세스 하비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진 흑인 여학생을.
‘수상한데.’
나는 그녀의 움직임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연습 때는 포메이션에 맞춰서 잘해 주었으나 문제는 피드백 시간에 이루어졌다. 미세스 하비가 뭐라 뭐라 이야기할 때도 뒤에 서서 건성건성 이야기를 들었고, ‘치, 치.’ 하고 소리를 내기도 했다.
나는 탐정으로서 나방의 가루 냄새를 맡았다. 그래, 팅커벨즈였다.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겠군.’
연습과 피드백이 끝나고 쉬는 시간.
다들 삼삼오오 흩어져 쉬는 가운데, 흑인 여학생은 혼자 바깥으로 나갔다. 지금이 이야기하기 좋은 때라고 생각했던 나는 조심스럽게 그 뒤를 따라갔고, 뒤뜰에 있는 벤치에 앉아 한숨을 푸욱 내쉬고 있는 여학생에게 말을 건넸다.
“안녕.”
“응? 아, 안녕······. 연습 보고 있던 애구나. 알렉사 친구 맞지?”
“신이야. 그쪽은?”
“제릴린. 제리라고 불러.”
“그래, 제리.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아냐, 괜찮아.”
“표정은 전혀 안 그래 보이는데. 옆에 앉아도 돼?”
“마음대로 해.”
말은 툴툴대듯 해도 거부하지는 않는 제리.
자연스럽게 그 옆에 앉은 나는 생각보다 이 일이 쉽게 풀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 보통 이런 법이겠지.’
알렉사는 많이 고민하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나는 기억은 왜곡되고 과장되는 법이라고 생각했다. 팅커벨즈와 미세스 하비의 갈등도, 사실 듣고 보면 쉽게 봉합할 수 있지 않을까.
“미세스 하비하고 문제라도 있어?”
“아니 그게에-.”
······그런 식으로 안일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속에 있던 말을 전혀 관계없는 사람인 나에게 쏟아내기 시작하는 제리.
아니, 오히려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에 더 손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일까.
“미세스하비가어제오전에나한테와서는학교수업을제대로통과하지않으면이번에전국대회에서너를쓰는걸재고하겠다고말하는거야거참너무하지않니나도나름대로수업도열심히듣고하면서최선을다해서준비해온대회인데그런내감정은싸그리무시하고자기맘대로그럴수가있지싶어그렇지않아진짜나만공부안하는것도아니고게다가학교복도에서애들하고같이있는데그런식으로이야기하면내입장이뭐가되냐구솔직히말해서애들이날공부안하는바보취급할거아니야안그래근데나는솔직히치어리더클럽안에서는그래도공부그럭저럭하는편이거든진짜로나그거때문에너무마음이상했어.”
“············네?”
내가지금도대체무슨말을들은건지모르겠다띄어쓰기도안되네.
순간 당황해 식은땀만 뻘뻘 흘리고 있자니, 누군가가 나타났다.
치어리더 클럽의 골든 리트리버, 알렉사 플레어였다.
이야기를 들었는지 아닌지는 몰라도 나를 스윽 밀어내고 제리의 옆에 앉은 알렉사는 그대로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 정말 힘들었겠구나.”
“으앙! 알렉사아!”
“······잉?”
방금 도대체 어떤 감정적 교류가 오간 거지?
이 시대의 틴에이저는 도대체 어떤 존재들이었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