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04)
104.
알렉사에게 팅커벨즈에 잠입(?)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며칠 뒤.
오랜만에 줄리아로부터 연락이 왔다.
[작가님, 잘 지내셨죠?]“그럼요. 줄리아.”
평소와 같은 의례적인 안부 인사부터 오갔다.
작가로서 살아가는 이상, 이런 식으로 함께 일하는 이들에게서 정기적으로 연락이 올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성공적인 경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비즈니스적으로 엮이는 업체도 많아지다 보니, 그 횟수가 잦아지는 편이었다.
전생의 경우, 많을 때는 하루 각기 다른 업체 여섯 군데에서 받아보기도 했다. 물론 횟수는 그보다 많았고. 분명 그보다 더한 작가도 있을 터였다.
‘지금은 그나마 낫지.’
현재 진행 중인 업무는 두 가지.
그중 ‘Double spy’ 쪽 업무는 사이먼이, ‘Princess quest’ 쪽 업무는 줄리아가 전담해서 처리해 주었다. 각각 일주일에 한두 번씩 전화를 걸어, 현재 관련 일정이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고 있는지, 내가 무얼 확인해 줘야 하는지를 전해 왔다.
말하자면, 나는 일종의 최종 결정권자 역할만 하면 되는 셈이었다.
며칠 전에는 사이먼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Double spy’ 종이책에 들어갈 삽화를 확인하고 배치까지 결정을 내렸듯이, 오늘도 그 비슷한 일로 줄리아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줄리아는 곧바로 일 이야기로 화제를 넘겼다.
[이번에 ‘Knight’s of the wisdom’ 사에서 로드 두푸스의 삽화를 그렸다고 해서요. 혹시 지금 팩스 받아보시고 어떤지 확인할 수 있으실까요?]그 말을 들으며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건은 내가 최종 결정권자가 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게 만약에 ‘Princess quest’ 종이책에 들어갈 삽화였다면 내가 마지막으로 보고서 결정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KOG’ 추가 룰북에 들어갈 삽화를 나보고 확인해 달라니?
“음, 네. 그렇게 하죠.”
[매번 보내던 번호로 보냈어요.]“바로 가서 확인해 볼게요.”
한순간 의문이 들었던 나였지만, 일단은 건너편 가게로 가서 팩스를 받았다.
그리고 그곳에 그러져 있던 그림은······.
‘미쳤군.’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뭐든 강렬하고 거대하게 묘사하는 80년대의 미국식 그림체가 내 마음을 찌르르 울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그림 속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웅장한 철퇴와 방패, 엄청난 덩치, 그리고 매끈한 대머리.
체인메일 위에 교단을 상징하는 천으로 된 옷을 차려 입은 로드 두푸스가 그곳에 있었다.
보자마자 곧바로 든 생각은 이거였다.
‘철퇴를 왜 쓰지?’
그냥 다 맨손으로 때려죽이면 될 것 같은 근육질인데.
물론 알고는 있다. 이런 게 이때의 맛이었다.
낄낄대며 웃고 있던 나는 이내 비즈니스 통화 중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는 재빨리 가게로 돌아가 수화기를 다시 들었다.
“확인했습니다. 아주 멋지네요.”
[다행이네요. 사실, 수정 부탁하기 좀 어렵잖아요?]“그렇죠. 우리 쪽 일도 아니고.”
나는 ‘KOG’의 추가 룰북에 들어갈 세계관 하나를 썼을 뿐이지, 그쪽의 메인 작가는 아니었다. 아마도 잭 댄포스가 매너 상 보내준 것 같은데, 일일이 감 놔라 배 놔라하기는 좀······.
[그래도 의미가 아예 없지는 않은 것 같네요.]“어떤 의미요?”
[그쪽에서 작가님과 계속해서 일하고 싶다는 제스처를 보내고 있는 거잖아요? 당신은 우리가 이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가다, 하는. 앞으로도 설정의 확장과 그에 따른 집필을 부탁할 작가로서 스카웃하려고 생각 중이지 않을까요?]“설마요. 잭 댄포스라는 걸출한 능력자가 있는데.”
“뭐, 그쪽하고 더 일할 게 있으면 재미있겠는데요.”
[그러니까요. 안 그래도 이번에 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들어서요.]“어떤 거죠?”
[‘느와르 퍼블리싱’에서 새로운 TRPG 규칙서를 낼 생각이라고 하더라고요. 지금 D&D와 KOG가 사실상 양분하고 있는 시장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겠지만, KOG 측으로서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좋은 작가를 많이 섭외해 두고 싶지 않겠어요?]“······이해했습니다.”
나는 잠깐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느와르 퍼블리싱’은 향후 여러 출판사를 거느리며 미국의 장르 소설 시장을 80% 이상 장악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진출해 있으면서도 영 힘을 쓰지 못했던 분야가 존재했으니, 바로 DC와 마블을 필두로 하는 코믹북 시장과 TRPG나 미니어처 같은 아날로그 게임 시장이었다.
‘뭐, 어쨌든 나로서는 좋은 셈이군.’
가만히 있는데 알아서 주가가 상승하고 있으니까.
‘Princess quest’의 종이책 발매도 ‘KOG’의 추가 규칙서 발매와 맞춘다고 들었으니, 그때는 이 작품의 성과를 좀 명확히 수치화해서 받아볼 수가 있겠지.
‘두피와 지우, 알렉사도 무척 좋아해 줄 거고.’
그때가 기대되는 것을 느끼며 웃고 있자니, 줄리아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작가님.]“네.”
[신작 계획 쪽은 어떠신가요?]“자료 조사에 착수하고 있죠. 아직은 아이디어 단계인데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렇군요. 혹시 도움 필요하신 부분 있으면 언제라도 말씀해 주세요.]“뭔가 문제가 생긴다면 그렇게 하죠.”
그렇게 될 일은 없겠지 싶었지만, 나는 일단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믿을 만한 동업자 중 하나였으니까.
서로 인사를 마치고 전화를 끊은 직후,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 덕분에 알렉사 생각이 났다.
‘잘하고 있으려나.’
‘블랙 유니콘즈’ 내부의 비밀 결사 ‘팅커벨즈’.
졸업한 선배들을 따르고자 현직 코치인 미세스 하비를 인정할 수가 없다면서 의도적으로 분열을 조장하려는 그들의 조직에게 이중첩자로서 잠입한다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 중인 그녀.
뭐랄까. 소설이었다면 굉장히 엄청난 고난과 역경을 거쳐야 하는 장면이겠지만.
‘괜히 믿음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장 내일이라도 잠입했다며 이야기해 올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
“얘네 일주일에 한 번씩 모이더라.”
“······.”
“초대 받고 갔어. 내가 들어와 줘서 너무 기쁘다고 하던데?”
“······그렇구나.”
알렉사는 마치 ‘칼’과 ‘한’처럼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해냈다.
‘어쩌면 시간이 빠듯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12월 1일.
크리스마스 전에 개최되는 겨울 전국 대회까지 대략 2주 정도가 남은 시점이었다.
하지만 인간 골든 리트리버인 알렉사 클레어 형사가 빠르게 내부조사를 단행해 다행히 수사가 성큼 진전되었다.
미세스 하비가 알아서 치어리더들의 공분을 사준 덕분에 알렉사의 잠입은 수월했다. 대회에 레귤러로 출전하게 될 열두 명이 있는 자리에서 미세스 하비가 좀 너무한 것 같다고 이야기하자마자, 다음 날 자연히 그쪽에서 접촉해 왔단다.
새로운 캡틴이자 현재 팀의 에이스인 그녀는 ‘팅커벨즈’로서는 최우선으로 포섭해야 할 인재였다. 팀에서 가장 존경 받고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구심점 격의 인물인 알렉사를 포섭한 것만으로도 ‘팅커벨즈’의 파워는 막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문제는 일종의 정치 싸움이었으니까.
외부에서 온 코치를 밀어내고자 하는 졸업한 선배가 포섭한 팅커벨즈 세력과 현직 블랙 유니콘즈의 코치인 미세스 하비 간의 암투.
무슨 심정인지는 몰라도, 미세스 하비가 일부러 악역을 자처해 미움을 받으면서 팀원을 결집시킨 끝에 대회를 위한 연습은 대충 마무리가 된 것 같았지만······.
‘문제는 알렉사가 이대로 가면 맞이할 결말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지.’
알렉사는 지금까지의 발언을 종합해서 봤을 때, 미세스 하비의 편인 듯했다.
제대로 대화해 본 적도 없고, 잠깐 만났을 때도 ‘아직 부족하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 같은 두루뭉술한 소리나 하고 돌아갔던 선배들보다는 전국 대회까지 함께한 미세스 하비가 훨씬 더 낫다나 뭐라나.
그럼에도 팅커벨즈가 활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존재했다.
“학교 끝나고 모이는 자리에서 팅커벨즈 애들이 말하더라고.”
‘블랙 유니콘즈’는 워낙 명문 팀이라서, 졸업한 이후로 소속 학생들이 어디 스포츠 팀 치어리더나 전문 스턴트 치어리더 팀에 들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내가 따로 조사했을 때도, 전문 치어리더가 되기 위해선 소개를 통하거나 오디션을 봐야 한다는 걸로 봐서 ‘인맥’이 정말로 중요한 듯했다. 즉, 졸업 후에 그쪽 진로를 생각하고 있는 학생들 입장에서도 ‘팅커벨즈’는 굉장히 중요한 커넥션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설명을 들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팅커벨즈는 절대 돌아설 수가 없겠네.’
자기들 향후 진로가 정해지는데, 선배들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여기에서, 다시 생각해 볼 문제가 하나 존재했다.
‘왜 졸업한 선배들은 미세스 하비를 자르고 싶어 하는가.’
당장은 코치가 누구든지 간에 우승해서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이 서로가 이기는 길 아닌가?
‘이것도 고민이군.’
악역을 자처하는 미세스 하비의 본심.
팅커벨즈의 진짜 목적.
하나의 퍼즐을 풀자 또 다른 퍼즐이 나왔다.
나는 이 상황이 추리물의 전개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조사한 바를 차근차근 정리해 짚어 준 뒤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알렉사에게 의견을 물었다.
“어떻게 하고 싶어?”
“미세스 하비가 겨울 대회 끝난 후로도 계속 코치를 맡아줬으면 좋겠어.”
“문제는, 이번의 폭언을 계기로 대회를 우승해도 팅커벨즈 애들이 미세스 하비를 신고해서 해고시키거나 전근을 보낼 것 같다는 점이지. 왜냐면 졸업한 선배들이 그렇게 시킬 테니까.”
“맞아······. 애들도 그렇게 할 거라고 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미세스 하비에게 폭언을 그만둬 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거, 나쁜 생각은 아니라고 보는데.”
“그, 그래?”
“네가 팅커벨즈에 합류한 이상 여론은 자연히 그쪽으로 기울 거야.”
지금까지는 팀 캡틴인 알렉사가 애매한 포지션을 잡았기에 팅커벨즈와 미세스 하비 측 모두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하비의 폭언과 알렉사의 합류로 인해 여론은 삽시간에 기울었다.
이제부터 팀워크를 만드는 여론의 중심은 분명 ‘팅커벨즈’가 될 터였다.
어차피 전국 대회에 나가서 선보일 무대는 미세스 하비의 폭언 아래에서 준비가 다 끝났다. 이제는 마지막까지 완성도를 다듬는 선에서 합을 맞추고만 있는 상황이었다.
그로 인해 코치의 필요성은 이전보다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는 의견을 무시해도 별 탈 없이 전국 대회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는 뜻이었다.
수도 없이 연습하고 수행해 온 동작이니만큼, 이제는 자신들이 더 잘 알 테니까.
“미세스 하비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 너희들에게 폭언을 한 걸 테지만,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진 상태야. 미세스 하비 본인에게 직접 이 이야기를 전달하고 전국 대회가 끝날 때까지 이 문제를 봉합하자고 하는 게 네가 바라지 않는 상황을 피할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될 테지. 물론, 이 경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존재해.”
“······내가 이후에 배신자로 낙인찍힐 거라는 거?”
“맞아.”
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순간 말이 없어지는 알렉사.
나는 그런 그녀의 심정을 이해했다.
‘여러모로 마음이 복잡할 테지.’
그녀에게 있어 최선은 미세스 하비와 같이 영광을 나누고 앞으로도 함께하는 것이다. 하지만 졸업 후 진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팅커벨즈와 화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럼에도 알렉사는 최악의 결과, 다시 말해서 전국 대회가 끝난 이후로 미세스 하비가 해고되는 상황을 바라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까지 자신들을 치열하게 이끌어 온 코치를 배신하는 결과로 마무리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알렉사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팅커벨즈로 여론이 기울도록 상황을 조성했지만, 결국은 미세스 하비의 편으로서 그녀를 돕기 위해 박쥐 짓을 했다는 오명을 동료들 사이에서 뒤집어써야 하니까.
이윽고 알렉사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할게.”
“괜찮겠어?”
“응. 내가 가장 원하는 결과로는 갈 수 없다고 해도, 적어도 방관자는 되고 싶지 않아. 애초부터 팀의 캡틴으로서 애들을 잘 이끌지 못해서 생긴 일이라고 생각해. 그러니 내가 책임을 지고 싶어.”
어딘가 서글픈 마음을 날리려는 듯, 알렉사는 평소보다 더 환하게, 그리고 더 당당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절대로 내가 예상한 결말대로 가게 해서는 안 되겠군.’
추리물의 규칙에 따라, 나는 현재까지 모인 모든 정보를 통해 내가 낼 수 있는 최선의 수를 내놓았다.
하지만 알렉사에게는 언급하지 않은, 틴에이저의 세계에서는 이해할 수도, 접근할 수도 없는 ‘어른의 사정’에 대한 가능성 역시 내심 염두에 두고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내가 나의 새로운 삶에서 해 왔던 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알렉사를 도와줄 것이다.
누구보다 순수하게 나를 위해 준 소중한 친구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
‘블랙 유니콘즈’는 캘리포니아 내에서 손에 꼽히는 명문 팀인 만큼, 센트럴 시티 밸류 하이스쿨 측에서도 그 처우에 상당한 힘을 실어 주고 있었다.
전용 샤워실에, 멤버가 되었을 때 치어리더 복장도 따로 제공해 주고. 대회 직전이면 수업을 어느 정도 빠지더라도 용인해 주는 분위기까지.
그렇기에 존재할 수 있는, 치어리더 클럽만을 위한 코치룸.
“실례합니다아······.”
약간 경직된 채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선 알렉사.
“알렉사? 집에 안 돌아갔니?”
그녀는 비밀스러운 회담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연습이 끝난 이후에 한 시간 정도 학교에 남았다. 그동안 신도 그녀의 곁에 함께해 주었고, 근처에서 기다리겠다는 그를 남겨 둔 채 마침내 알렉사는 미세스 하비와 독대할 수 있게 되었다.
“흐음, 피곤하다는 이유로 내일 연습 때 소홀히 해도 봐줄 생각은 없어.”
미세스 하비는 한숨을 쉬며 방금까지 확인하고 있던 포메이션 시트에서 겨우 눈을 떼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알렉사는 자신의 결정이 옳다는 결심을 다시금 굳건히 다지고 입을 열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요.”
“네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나는 이번 대회가 끝나면 그만둘 생각이야.”
“······네?”
“왜, 그거 때문에 온 거 아니야? ‘팅커벨즈’.”
갑작스럽게 정곡을 찔린 바람에, 신과 대화하며 머릿속에 가득 담아 두었던 말들이 목구멍 속으로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까지 미세스 하비를 이 학교에 남게 하고자 분투해 왔던 알렉사.
하지만 당사자의 입에서 서슴없이 코치직을 그만두겠다는 말이 나왔다. 알렉사로서는 갑자기 목표가 사라져 버리고 만 상황이었다. 순간 망연한 얼굴이 되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반응에서 대강 진상을 파악한 미세스 하비는 피식 웃었다.
“너, 설마 지금껏 나를 위해서 움직여 준 건 아니지? 그것보다는 더욱 대회에 집중해 줬으면 하는데.”
“······그, 그래도 걔네들이 자꾸 코치님을 음해하려고 하니까요. 이대로면 대회의 결과를 떠나서 코치님을 해임시키려고······.”
“근데 난 어차피 그만둘 생각인데?”
“대체······ 왜죠?”
“더 좋은 조건으로 오퍼가 들어왔으니까.”
미세스 하비는 딱 잘라 말했다.
그리고 서랍에서 담배를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불씨를 피워낸 뒤, 어린 학생으로서는 알 수 없었던 진실을 차근차근 이야기해 주었다.
“이번에 이 팀을 다시 전국 대회에 올려놔서 그런지 몇몇 대학 클럽과 실업팀에서 스카웃 제의를 주더구나. ‘팅커벨즈’ 걔네, 여기 코치직으로 졸업한 애들 중 하나 앉히고 싶어서 이러는 거거든. 후우. 내가 언제까지고 이런 애들 장난에 놀아줄 수도 없는 노릇이잖니.”
평소처럼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분해, 쓸데없는 생각 없이 알렉사가 대회에만 집중하게 만들고자 하는 미세스 하비.
그것이 그녀가 바라는 전부였다.
“이제 질문에 대한 답이 됐을까?”
그 앞에서 알렉사는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인 상태였다.
미세스 하비의 말이 어째서 그토록 자신의 가슴을 후벼 파는 듯했는지, 그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