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05)
105.
알렉사는 강물 밑으로 서서히 가라앉는 것 같은 기분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10대 때의 아이는 일반적으로 성인에 비해 판단 능력이나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며, 때때로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보인다.
그것이 심해지는 시기를 보통 사춘기라고 일컬었다.
그리고 알렉사 플레어는 이제 막 열여덟 살이 된 소녀에 불과했다.
코치인 미세스 하비와 팅커벨즈 사이에서 벌어지는 어른의 알력 다툼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기에, 그 결과 알렉사는 그 섬세한 마음에 지우기 힘든 상처를 입었다.
또한 인간의 정신은 일종의 유기체였다. 어떤 결여나 충격으로 인한 울분의 해소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반드시 다른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었다.
그로 인해 그녀는 평소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골든 리트리버가······ 시무룩해졌다.
그리고 평소 안 그러던 사람이 그렇게 달라지면 주변에서도 다들 그걸 느끼는 법이었다.
“알렉사! 알렉사!”
“응······?”
수업을 마치고 치어리더 클럽으로 가는 길.
신과 함께 가던 와중, 누군가 알렉사에게 말을 걸어왔다.
미식축구부 캡틴인 존이었다.
“이번 주말에 시간 어때?”
“왜?”
“같이 영화나 보러 가자고.”
멋들어진 청자켓에 청바지, 빨간 스니커즈.
존은 이곳 센트럴 시티 밸류 하이스쿨에서 제일 인기가 많은 훈남이었다. 포마드를 발라 우뚝 리젠트 컷은 여학생들의 마음을 마구잡이로 홀리고 다녔다. 그런 남학생의 자신만만한 데이트 신청에, 주변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던 여학생들이 ‘어머, 어머.’ 하며 모여들었다.
발걸음을 멈추고 존을 빤히 올려다보는 알렉사.
그녀는 존을 슬쩍 돌아본 채로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봤어.”
“응? 무슨 영환지 말 안 했는데.”
“아, 무슨 영화. 봤어.”
“······어?”
“갈게.”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서는 알렉사.
존의 사랑은 무참히 꺾이고 말았다. 자신만만하게 솟아 있던 리젠트가 추욱 늘어졌다.
그리고 그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신은 전생에 이맘때쯤 학교 전체를 뒤흔들었던 가십, ‘알렉사의 데이트’가 바로 이때 발생한 사건임을 깨달게 되었다.
전생에 그녀는 똑같은 일을 겪었을 테고, 그때는 자신이 도와주는 지금과 달리 미세스 하비의 진심이나 팅커벨즈의 상황도 모르는 채로 막연히 힘들어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고자 홧김에 데이트를 승낙한 게 아닐까?
지금은 그에 대한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지만, 자신으로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허우적대기만 할 뿐인 상태였으니 데이트 따위에 흥미를 느낄 리가 없었다.
‘안타깝군.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야.’
신은 씁쓸하게 웃으며 다시 추욱 늘어진 채 치어리더 클럽으로 향하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치어리더 팀의 연습은 평소처럼 격렬했지만, 알렉사는 앓는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미세스 하비도 오늘은 처음으로 그녀에게 아무 지적을 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완벽하게 동작을 수행해낸 그녀의 주변으로 연습을 끝마친 검은 유니콘들이 모여들었다.
“알렉사~! 진짜 멋지다! 잘했어!”
“어쩜 이렇게 합이 잘 맞았지?!”
“진짜 어려웠을 텐데!”
“응, 고마워.”
알렉사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평소의 알렉사 플레어였다면 환하게 웃으면서 너희 모두가 도와준 덕분이라며 팀원들을 역으로 칭찬했을 터였다. 하지만 항상 붕붕거리던 꼬리를 늘어뜨릴 수밖에 없게 하는 사건을 마주한 그녀로서는, 그런 걸 할 만한 여력조차 전부 소진된 상태였다.
블랙 유니콘즈의 레귤러 멤버들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진 채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같은 버스를 타고 가던 와중, 알렉사가 돌연 신에게 아이스크림 하나만 먹고 가자며 다짜고짜 다운타운 스테이션에서 내렸다. 꿀꿀한 기분인 채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그 어리광을 이해했기에, 신은 군말 없이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서로 말없이 걷던 중에 코믹북 스토어의 레귤러 멤버들과 마주쳤다.
빌과 프레드, 기타와 등등까지.
“헤이! 신!”
“거기에 알렉사잖아!”
늦은 저녁 식사를 하려는지 누군가의 손에 들린 종이봉투에서 볶음국수 냄새가 풍겨왔다. 슬쩍 알렉사를 돌아본 뒤, 별로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에 신은 먼저 나서서 그들과 인사를 나눴다.
“빌, 프레드. 잘 지냈어요?”
“끄흡······! 비, 빌! 신이 내 이름을 불렀어!”
“내, 내 이름도 불러 줘!”
기타와 등등 중 하나가 관심을 구걸했다. 신은 그런 식의 뜨거운 호의가 고마우면서도 동시에 약간은 부담스럽다고 생각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빌 옆에 새끼 나무늘보처럼 붙어 있던 프레드가 잔뜩 의기양양한 채 입을 열었다.
“보기 좋은데! 어디 가는 거야?!”
“잠깐 아이스크림 하나 먹고 가려고요.”
“오호라, 저기 두 블럭 아래에 있는 아이스크림 트럭이군!”
“거기 아이스크림은 쫀득한 맛이 정말 일품이지!”
잔뜩 신이 나 계속 말을 걸어오는 코믹북 스토어의 너드 가이들.
그러자니 내내 침묵하던 알렉사가 고개를 들어 이렇게 이야기했다.
“응, 다음에 봐.”
“······.”
“······.”
“······.”
“······.”
그 말 한마디가 주는 파급력은 엄청났다.
학교 안에서는 골든 리트리버, 코믹북 스토어에서는 블랙 맘바.
최근 들어 꾸준히 코믹북 스토어를 다니며 자신의 무해함(?)을 입증해 왔던 블랙 맘바였으나, 오늘은 날이 좋지 못했다. 짧은 한마디는 코믹북 너드 가이들의 마음속에 있던 트라우마(?)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소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 이들이 저마다 한마디씩을 내뱉었다. 앞으로 학교에서 코믹북 안 볼게. 나 같이 비실비실한 게 그림의 모델이 되어서 미안해. 그 외 기타 등등. 도대체 그들에게 어떤 과거가 있는지 전혀 궁금하지는 않았지만, 신은 털레털레 멀어지는 그들을 안타까운 눈초리로 훑은 뒤 먼저 걸어 나가던 알렉사의 뒤를 쫓아갔다.
힝힝힝, 하고 추욱 늘어져 걷는 알렉사.
본인은 알지 못했지만, 꽤나 위험한 상태였다.
지우와는 다른 의미에서 성격이 변할지도 모르는, 어쩌면 그녀가 가진 네츄럴 슈퍼 파워마저 잃어버릴 수도 있는 중대한 상황.
신은 그녀가 의도치 않게 독니를 가진 골든 리트리버 같은 무언가가 되어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 녀석, 안 되겠어. 빨리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그리고 사실, 영혼이 ‘어른’인 소년이자, 사회에 먼저 진출한 ‘어른’으로서 이미 그 방법을 실행 중이었다.
***
몸은 어린아이, 마음은 어른.
그런 특수한 사정으로 인해, 나는 알렉사의 지금까지 이 ‘팅커벨즈 사건’을 한 발 떨어진 옆에서 지켜보고, 판단을 돕는 선에서 도움을 주었다. 열여덟 살의 소년인 나로서, 친구로 지내고 있는 알렉사의 옆에서, 이번 사건이나 치어리더 클럽과 관련된 그 모든 생각을 듣고 이해하며 조용히 지지해 준 것이다.
알렉사는 순수한 마음으로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원했다.
문제는 이 사건이 지극히 드라이한······ 말하자면 그놈의 ‘어른의 사정’에 의거해 진행되었다는 부분이었다.
팅커벨즈는 졸업한 선배들로부터 오더를 받아 현직 코치를 쫓아내려고 들었으며, 미세스 하비는 거기에 귀찮게 연관되고 싶지 않아 이직을 준비 중이었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는 있었다.
팅커벨즈는 연습을 하면서 잡음을 계속 일으켰다. 아마도, 그 일로 인해 공사를 구분해 대회만을 생각하는 미세스 하비가 팅커벨즈를 이끌고 있는 이들과 접촉했을 터였다. 그리고 미세스 하비는 상대의 입장을 납득하고 이번 대회를 끝으로 물러서기로 한 것이리라. 어차피 자신은 이번에 높은 성과를 내서 다른 팀으로 가면 그만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하이스쿨 전국 대회 우승’이라는 경력은 치어리딩 업계 전반에서 굉장한 이점으로 작용했다. 이 업계의 파이 자체가 작고, 프로 경기보다는 학생 리그가 발달했다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이쪽 업계인 대부분은 스포츠 팀을 응원하는 스포츠 치어리딩 쪽으로 빠진다. 그에 비해 스턴트 치어리딩 쪽에 주어지는 관심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블랙 유니콘즈’와 같은 명문 팀에서 활동했다는 경력과, 그곳이 계속 명문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사안은 졸업생들에게 있어 굉장히 중요하겠지.’
나는 그것이 미디어에서 조장한 ‘틴에이저’라는 특수성으로 해석했다.
활기차게 몸을 움직이고 추억을 만들어 나가는 10대 치어리더의 모습이 미국인이 느끼기에는 가장 이상적인 미국 학생의 모습일 테지.
그러므로 미세스 하비의 결정과 팅커벨즈의 암약에 대해 ‘이해’는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솔직히, 화가 났다.
‘왜 애들끼리 열심히 하는데, 이런 식으로 끼어들지?’
나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틴에이저가 얼마나 연약하고 상처 받기 쉬운 존재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아이이기에 보호 받았지만, 아이이기에 의견이 묵살되기도 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인간 골든 리트리버로서 활약하는 알렉사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어린애니까.’
하지만 그런 어린아이이기에 할 수 있는 일도 존재했다.
나는 나의 방식으로, 알렉사는 알렉사의 방식으로.
그렇게 가장 올바른 방식으로 문제를 봉합하고 싶었고, 나는 미세스 하비를 만나고 돌아와 기운이 빠진 알렉사에게 예상하고 있던 이야기를 듣자마자 빠르게 움직였다.
‘처음은, ‘어른’으로서의 방식으로.’
미리 알렉사를 통해 얻어둔 정보를 가지고, 팅커벨즈를 실질적으로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치어리더의 이름과 소속을 알아냈다.
알렉사도 좋아하는, 캘리포니아 애인절스 소속의 메간 루빅슨.
아무래도 그녀와 미세스 하비를 한 장소에 모아서 좀 이야기를 나눠야겠지 싶었다.
그리고 두 사람을 한데 모아줄 사람으로······ ‘그 사람’을 선정했다.
[그 두 사람한테 인터뷰만 따면 되는 거죠? 그것도 같은 날짜, 같은 시간으로?]“네. 블랙 유니콘즈 전국 대회 진출 기념이라고 하면 적당하지 않을까요? 한 명은 코치에, 한 명은 제법 잘 나가는 OB라니까.”
[흐음, 문화 섹션보다는 스포츠 섹션에 들어가야 할 기사 같긴 하지만, 재미있겠네요. 기사거리가 나오면 그쪽으로 돌려도 될 것 같고. 작가님께서 모처럼 하신 부탁인데, 제가 거절할 수는 없죠.]일전에 말했던 것처럼, 신작 취재와 관련되어 있다고 하니 흔쾌히 내 부탁에 응해주는 줄리아.
그리고 며칠 뒤, ‘로스엔젤레스 타임즈’라는 명판 때문인지 인터뷰 제안에 두 사람이 흔쾌히 오케이 했다는 줄리아의 연락이 날아왔다.
그렇게 그녀가 일을 진행해주는 사이, 나는 ‘어른’이 아닌 ‘아이’로서도 움직였다.
일단 1박에 1,200달러 정도 되는 다운타운의 파티 룸을 예약했고, 500달러 정도 되는 케이터링 서비스도 예약했다.
‘아이’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이걸 전부 지불해낸 시점에서 아이가 아닌가.’
대충 조금 상속세를 많이 내야 하는 아이 정도로 치자.
그 뒤 학교에 가서 전국 대회에 출전하는 치어리더 팀 멤버들을 초대했다. 전국 대회 나가기 전의 파티를 여는데, 거대한 파티 룸에 고급 진 케이터링 서비스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그 말에 다들 신이 나서 초대에 응했지만, 개중에서 한 사람만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꽤 비쌀 거 같은데, 누가 예약했어?”
블랙 유니콘즈의 유일한 안경 캐릭터, 로라.
이지적이고, 모든 치어리더 동작을 수학적으로 계산해 수행하는 그녀는 팀의 세컨드 에이스였다. 과거에는 알렉사에게 열등감을 느꼈다지만, 지금은 ‘알렉사. 네가 넘버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나.
······실제로 알렉사로부터 들은 이야기였다.
“어, 전화 응모해서 당첨됐어.”
“그래? 음, 일단 알겠어.”
순발력 넘치는 변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안경을 쓸어 올리는 로라.
그렇게 열한 명의 멤버를 전원 초대한 뒤, 마지막으로 가장 믿을 수 있는 친구인 지우와 두피에게 파티의 진행을 부탁해 두었다.
바로 그 열광의 시간, 나는 인터뷰를 하는 미세스 하비와 메간 루빅슨을 찾아가서 담판을 짓고 합류할 예정이었다.
‘이제 직접 움직일 일만 남았군.’
그 시점부터 심장이 쿵쿵 뛰는 걸 느꼈다.
뭔가, 거대한 계획을 준비하는 기분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할 수 없는, 어린아이이기에(상속세를 많이 내야 하는) 할 수 있는 준비.
틴에이지 미디어에서 나오던 엉망진창인 밤.
어른들은 모르는 ‘우리’만의 시간.
뒤에서 모든 준비를 끝마친 뒤, 나는 알렉사를 찾아가 파티 룸의 운영자로부터 받은 열쇠와 파티 룸의 주소가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응?”
여전히 꼬리가 축 처진 채 있던 알렉사가 내가 건넨 종이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12월 6일 오후 8시. 주소는 여기.”
“이게, 뭐야?”
“내가 전국 대회 레귤러 멤버들 불러뒀으니까 가서 할 말 제대로 하고 오라고.”
“··················어?”
“밤새 놀면서 트위스터 게임도 하고, 카라오케 머신도 있으니까 노래도 부르고, 케이터링 음식 나눠 먹으며 팀 캡틴으로서 진솔하게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하고.”
“자, 잠깐.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전에 우리 리플레이 소설 계약했다고 했을 때 말했지. ‘크리스마스 선물’ 하나 제대로 해 주겠다고.”
“그랬, 었나?”
“······마음속으로만 말했나. 어쨌든.”
나는 순간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알렉사에게 열쇠를 쥐어주었다.
그걸 쥔 그녀의 눈이 글썽거렸다.
“알렉사. 너는 지금까지 계속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줬잖아.”
“······웅.”
“한 번쯤은 네가 하고 싶은 말을 해봐. 남 눈치 보지 말고. 그냥 속 시원하게. 그게 뭐가 나빠? 애들이 취업 때문에 팅커벨즈에 들어가거나 말거나, 그거 상대하기 싫어서 미세스 하비가 나가거나 말거나, 그런 게 대체 무슨 상관이야.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네 마음이잖아.”
나는 지금까지 생각했던 바를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결국, 이 사건에서 알렉사는 지금까지 ‘조사’만 진행했지, 뭔가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나는 아직 ‘아이’인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해결 방식’은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스스로 당당해지는 것.
그녀는 지금까지 그렇게 해 본 적이 없으니까.
남들이 그녀의 생각을 받아주건 말건, 그것은 아무 상관도 없었다.
‘왜냐면, 내가 받아줄 테니까.’
그리고 그녀가 할 수 없는 방식으로 해결해 줄 테니까.
잠깐 고개를 푹 숙인 채 있던 알렉사가 손을 뻗어 내 옷 소매를 잡았다.
“······시인.”
“그래, 그래.”
“고마워어······.”
그녀의 목소리는 살짝 젖은 채였다.
***
대망의 12월 5일.
주말이라 느긋하게 일어난 나는 두피와 지우, 알렉사에게 각각 연락해 개인적인 용무 하나 끝마치고 합류한다고 말을 전해두었다.
세 사람 모두 제각각 반응이 달라서 인상적이었다.
[······오늘은 로드 두푸스가 아니라 바운서 두푸스가 되겠군.]오늘만큼은 아무도 치어리더 팀의 파자마 파티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경비원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겠다는 두푸스.
[으, 음악이 필요할 수도 있겠죠······?!]똑같이 바운서 역할을 부탁했음에도 얼마 전 들어간 밴드 클럽 친구들을 불러서 공연을 펼칠 생각을 하고 있는 지우.
[신, 이 모든 일이 끝나면 네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왠지 이번 일이 끝나기 전에 죽을 것 같은 알렉사까지.
그들 사이에서 낄낄거리며 전화를 마친 뒤, 나는 마음의 정돈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줄리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부러 작가님 자주 가시는 그곳으로 잡아놨어요.]코리아타운 안의 커피숍이었다.
시간은 오후 여덟 시. 인터뷰는 대략 한 시간 정도 진행.
다운타운에 있는 파티 룸까지 차로 가면 금방이었다.
일정 확인을 끝내고, 미세스 하비와 메간 루빅슨에게 할 말을 정리하면서 가게를 봤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오후 여덟 시.
가게 문을 닫고 어머니를 집까지 차로 모셔다 드린 뒤, 다시 코리아타운으로 돌아와 차를 세워두고 커피숍으로 슬렁슬렁 걸어갔다.
알렉사는 미세스 하비가 하는 말을 듣고 느낀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럴 법도 했다.
알렉사는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그것을 용인 받는 경험을 많이 해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미세스 하비가 한 말을 듣고 팅커벨즈와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서 나온 자신의 마음을 순간적으로 억눌러 버린 걸 테지.
바로 ‘엿 같네.’라는 마음을.
그래, 그럴 수 있다.
전국 대회를 우승하고 다른 곳으로 가든, 모교의 치어리더 클럽에 졸업생을 심든, 그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반발도 각오해둬야 하는 법 아니겠는가?
나는 이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학생들이 피와 땀을 흘려가며 최선을 다해 이룬 결과에 자신들의 욕심을 들이미는 꼴사나운 어른들의 행보가 싫었다.
그러니 같은 ‘어른’으로서······ 온건한 ‘경고’를 해두고 싶었다.
너희가 무슨 짓을 하는 건지는 이해하겠는데, 그걸 애들 앞에서 티내는 건 역겹지 않냐고.
그런 생각을 마치고 도착한 커피숍.
안쪽에 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줄리아 챈들러, 미세스 하비,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메간 루빅슨이겠지.
인터뷰는 막 끝난 듯, 줄리아가 손에 들고 있던 녹음기와 종이 노트를 정리해서 넣는 게 보였다.
나는 성큼성큼 걸어 세 사람의 곁으로 다가갔고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미세스 하비였다.
“신 한?”
“안녕하세요. 미세스 하비.”
“여긴 어쩐 일로······. 아, 코리아타운이니 당연한가?”
지금부터 벌어질 일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미세스 하비, 그리고 그 옆의 메간 루빅슨.
나는 슬쩍 줄리아에게 신호를 보내며 당연하다는 듯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녀가 나를 소개했다.
“이쪽은 저희와 같이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신 신 작가님이십니다.”
‘학생’인 신 한이 아니라 ‘작가’인 ‘SEEN’으로서, 나는 눈이 휘둥그레 뜨여지는 두 사람을 보며 빙긋 웃었다.
이제 어른의 대화를 나눌 시간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