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06)
106.
신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잠깐 실례 좀 해도 되겠습니까?”
“음, 무슨 일로······?”
“여기 계신 제 담당 기자님께 좀 무리한 부탁을 드렸습니다. 두 분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요.”
메간 루빅슨과 먼저 악수를 나누고, 그다음으로 자연스레 미세스 하비에게 넘어갔다.
일종의 신호인 셈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센트럴시티 밸류 하이스쿨의 학생, ‘신 한’은 없다.
신문 연재로 히트를 친 ‘Mother’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Double spy’, 그리고 일반인들에게까지는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너드 세력의 큰 지지를 받고 있는 ‘Princess quest’까지. 무려 3연 타석 히트를 친 작가, ‘SEEN’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 사실을 인지한 메간 루빅슨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렇게 어린애가?’
팀 멤버의 권유로 ‘Mother’의 라디오 드라마의 녹음본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확실히 취향을 떠나서 흥미로운 스토리였다. 한때 캘리포니아에 소란을 일으킬 만한 힘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작가가 지금 눈앞에 나타났다.
아직 고등학생 언저리 정도 되는 나이로 보였으나, 표정이라든가 제스처에서는 스포츠팀에 소속되어 한창 현역 치어리더로서 활동 중인 자신조차 그 흐름을 따라갈 수밖에 없을 정도의 압박이 느껴졌다.
당연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말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치열한 공방전.
신은 이미 전생에서부터 지긋지긋하게 해온 일이었다. 어떤 식으로 우위를 점하고 대화의 주도권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지 질릴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옆의 줄리아 챈들러도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럽지만, 실례되는 행동을 했습니다. 작가님이 두 분과 인터뷰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꼭 좀 함께 뵙고 싶다고 말씀을 주셔서요.”
그녀는 무척 영리하게 이번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신이 한자리에 모아달라고 말했던 두 사람은 서로가 인터뷰에 참석한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 도착한 순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주 잠깐, 각자 표정이 흐려지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은 채 줄리아는 담담히 ‘블랙 유니콘즈의 겨울 전국 대회 진출’과 관련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신을 소개하면서 그의 입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작가님.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시려는 것 같은데, 저는 잠깐 빠져드릴까요?”
“네. 줄리아. 부탁드려도 될까요?”
“자, 잠깐만.”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는 미세스 하비의 무표정에 순간 균열이 갔다.
그녀가 구분하는 공과 사는 각각 일과 감정의 영역으로 나뉜 것이었다. 학교에서의 그녀는 학생을 감정적으로 교류하면서 이끌어갈 대상이 아닌, 스턴트 치어리딩을 가르치고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 대상으로만 대했다.
실제로 조금 전 인터뷰에서도 그런 식으로 이야기했다.
말인즉슨, 그녀는 지금껏 어떤 악의를 가지고 행동을 했다는 뜻이 아니었다. 단지 어른으로서 그게 옳다고 생각해 그렇게 행동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수용 한계를 넘어선 상황에서는 그게 깨질 수밖에 없었다.
“신, 네가 작가라니? 그게 정말······.”
“당연히 거짓이 아닙니다. 미세스 하비. 여기 계신 줄리아 기자님이 증인이죠.”
“작가님, 그럼 저는 잠깐 저쪽에 가 있을게요. 대화 나누세요.”
“네. 끝나면 말씀드리죠.”
신은 미세스 하비의 의문을 가볍게 토스했고, 줄리아가 다시금 확인사살을 해주었다.
지금까지 온갖 편집부와의 미팅에서 명콤비를 이루었던 그들이 또 한 번 뭉친 것이었다.
‘만약에 사이먼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더더욱 나를 극찬해 주었겠지.’
그것도 분위기를 주도하기에 나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사이먼까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다.
신으로서는 얼른 끝내고 파티를 가야 했으니까.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신은 차갑게 내리깔듯 목소리를 냈다.
눈앞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은 같은 학교의 코치였고, 다른 한 명은 현직 프로 스포츠 팀 치어리더였다.
말하자면, 어른이었다.
그리고 나이는 달라도 ‘신’ 역시 같은 상황이었다.
학생이 아닌 작가.
그것도 필요하다면 신문사 측에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인기 작가.
일련의 흐름을 통해 그것을 그들에게 은연 중 인지시킨 상태에서 입을 열었다.
“좀 너무하다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뭐······?”
“네?”
미세스 하비와 메간 루빅슨이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분 입장에서는 그냥 ‘일’일 뿐이겠죠. 하지만 그걸 위해 지금 한창 전국 대회를 준비하고 있을 애들한테 괜한 헛바람이나 불안을 조장하는 일은 자제하셨으면 합니다. 가감 없이 말하자면, 좀 꼴사납거든요.”
“신, 너······!”
“잠깐, 당신.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미스 루빅슨, 제가 이 정도까지 이야기했으면 대충 이해하시죠. 저는 모든 전말을 알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두 분이 어떤 관계인지, 서로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지, 모두 다 이해하고 있다는 말이죠. 괜히 시치미를 떼면서 제 지적에서 빠져나갈 생각은 접어두는 게 좋습니다.”
신은 담담한 목소리를 내면서도 일부러 강경한 태도로 나갔다.
치어리더 팀 코치에 스포츠 치어리더라고 해봤자, 결국은 자신의 세계 안에서 아둥바둥 살아가는 20대 중반, 20대 초반의 사회인일 뿐이다. 그런 이들이 외부의 시선에 의해 지금껏 해 온 일을 지적받으면서 추궁을 당해 본 일은 거의 없을 터. 그렇기에 이 순간 대화를 따라오는 감각 역시 분명히 조금 더 무뎌진 상태였다.
다소 위압적인 어조로 눌러 확실하게 의도를 파악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두 분이서 암묵적으로 서로 어떠한 합의를 보고 지금껏 일을 진행했고, 그 결과 이 상황에 대해 이대로 놔두면 되겠구나 하는 정도로 깊게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건 아니죠. 괜히 애들을 휘두르면서 학생들의 분열을 조장하고, 그에 대응한답시고 폭언이나 해대면서 누구보다 걱정하는 애한테 학교를 떠나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고. 그렇게 해서 우승한다고 한들, 다들 좋아하겠습니까?”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다 저쪽에서 먼저······!”
“저는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당신의 대응 방식에 대해 지적하고 있는 겁니다. 미세스 하비. 아무리 포장해도 당신의 행동으로 인해 상처 받은 치어리더 멤버가 있는 이상, 못할 짓을 한 겁니다. 틀렸습니까?”
차갑게 지적한 신은 메간을 돌아보았다.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의도를 가지고 그랬는지 이해합니다. 사실, 흔한 일이죠. 현대 사회에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도, 그러기 위한 인맥도 중요한 사안이니까요. 하지만 거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을 끌어들이고, 그들에게 굳이 ‘지금’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시키는 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팅커벨즈’라. 그 이름을 짓고 애들한테 헛바람 불면서, 당신네들이 뭔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으스댔을 게 눈에 선하네요.”
OB들은 대단한 거물이라도 된 듯한 기분에 취해, 어린 후배들이 하나둘 자신들 편으로 넘어올 때마다 상황이 순조롭다며 웃고 떠들었겠지. 그리고 거기에 영향을 받은 학생들은 졸업하면 진로 걱정 없이 바로 치어리더가 될 수 있다고 들뜬 채, 벌써부터 어른이라도 된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굴었을 테고.
하지만 신은 남들보다 빨리 어른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이런 비틀린 방식으로는 더더욱.
지나간 어린 시절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 섭리를 거스르고 운 좋게 돌아온 입장이면서도, 미래에 느꼈던 그 감정과 후회들로 인해 그 누구보다 그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으니까.
“뭐, 알고는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한들, 이미 일어난 일을 돌이킬 수 없겠죠.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대회가 끝날 때까지만 조용히 있어달라고 부탁드리는 겁니다.”
어조는 무척이나 평온했지만, 그 말에 담긴 내용에서 강한 권유가 느껴졌다.
아니, 그것은 흡사 협박에 가까울 정도였다.
일방적으로 신이 하는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있던 두 사람은 신의 제안에 대해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것 또한 예상하고 있던 신은 한마디를 덧붙임으로써 모든 상황을 이해시켰다.
“이제 다음 주쯤이면 신문에 오늘 했던 인터뷰의 기사가 실리겠죠. 저는 그때까지 이 상황이 조용히 끝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이 상태로 ‘블랙 유니콘즈’가 전국 대회 우승이라도 했다가는, 이 문제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여러분을 옭아맬 테니까요.”
“으음······.”
“······.”
보다 명확한 경고에 신음만 흘리는 미세스 하비와 떨리는 눈빛을 한 채 침묵하는 메간.
“그리고 미세스 하비.”
“으, 응.”
“제가 이 일에 어째서 관여하게 되었는지, 당신이라면 충분히 예상하시겠죠. 오늘 이 커피숍에서 있었던 일은 그 사람이나 그 사람과 관계된 다른 이들이 알 수 없도록 해 주시겠습니까? 모두를 위해서라도.”
“······그러지.”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로 부탁드립니다. 메간. 저에 대한 이야기는 언급하지 말아 주시길. 그리고 기왕이면 팅커벨즈 애들한테 지금은 대회에만 집중하라고 전해 주시면 좋겠군요.”
“······전혀 부탁처럼 안 들리는데요오.”
한숨과 함께 시선을 피하는 미세스 하비와 치어리더 메간.
신은 두 사람의 앞에서 전혀 그 나이답지 않은 미소를 지었다.
***
일은 잘 마무리가 되었다.
‘이쯤 해뒀으면 둘 다 적당히 알아들었겠지.’
사실, 마음이 마냥 좋지는 않았다.
남에게 쓴 소리를 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는 요즘이었다. 이 시대로 돌아와 여러 일을 거치며 마음가짐이 변한 뒤, 그만큼 타인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들 역시 무지했거나,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실제로 두 사람에게 충분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어른’으로서 납득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나는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위해 칼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아이’인 내가 실행할 수 없는 실제적인 해결책을 그들에게 맡겨 두었다.
‘남은 건 두 사람이 잘 마무리 지어 주리라 믿어야지.’
대화를 끝내고 나자 시간은 오후 아홉 시 반 정도.
파티가 시작되고 충분히 시간이 흘렀을 시점이었다.
‘대충 지금쯤 분위기가 무르익어, 슬슬 알렉사가 자신의 진심을 말하고 있으려나.’
사실, 나는 그것을 듣고 싶었다.
앞서 지나가듯이 장난처럼, 고등학교 생활에 있어 ‘추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던 알렉사가 동고동락한 치어리더 팀 멤버들 사이에서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할까.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내가 쓰게 될 소설에서 어떤 소재로 작용할 수 있을까.
나는 여러 방면에서 생겨나는 흥미를 가라앉히며 차를 몰았다.
머지않아 도착한 파티 룸.
다운타운 중심부에 위치한 파티 룸은······ 그냥 좋은 호텔이었다. 개중에서도 열두 명쯤은 너끈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스위트룸을 예약했고, 추가 비용까지 결제해 가며 침대와 이불, 베개를 넉넉히 준비해 두었으며, 케이터링 서비스까지 결제했다.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최상층에 올랐다.
그리고 그 자동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건 ‘바운서’였다. 또한 그 옆에는 어디를 봐도 수상해 보이는 검은 후드에 마스크, 베이스를 멘 소녀까지도 함께였다.
바운서 두푸스와 베이시스트 지우였다.
“아, 안녕하세요. 아직 공연 전이에요.”
“HQ, 응답하라.”
“······아니, 그건 군대 용어잖아.”
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복장이 꽤나 그럴 듯했다. 지우는 그렇다 쳐도, 두피는 평소의 보타이 차림이 아니라 선글라스에 제대로 정장을 입었다. 그 덩치 때문에 상당한 위압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녀석의 진지한 자세가 웃기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거기에 맞춰주고 싶었다.
왜냐면 나는 ‘틴에이저’니까.
슬쩍 지우의 곁으로 다가간 나는 능청스럽게 물었다.
“베이시스트. 공연은 아직 멀었나?”
“네에! 손님 중 한 분이 모두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해서요.”
“다행이군. 이봐, 나도 손님인데 들어갈 수 있겠어?”
“······후우. 수상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군.”
선글라스를 스윽- 밀어 올린 두피가 천천히 문고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 틈으로 청량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는, 지금 상황이 싫어.]알렉사 플레어였다.
나는 문을 활짝 열려던 두피의 손을 잡고 속삭였다.
“딱 이 정도면 괜찮아. 바운서.”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말이다.
그렇게 가만히 문 옆에 기대 선 채로, 이어지는 알렉사의 목소리를 들었다.
자신의 솔직한 진심을 담은 좋은 이야기였다.
***
나는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블랙 유니콘즈’ 멤버들이 그 연설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날 이후, 알렉사는 막바지 대회 준비로 인해 더욱 바빠졌고, 우리에게는 모든 일이 끝나고 돌아온 뒤 실컷 놀자고 이야기하고는 클럽 활동에 집중하게 되었다.
어쩐지 그 녀석, 요즘 자꾸 창작물에서 이야기하면 안 좋은 대사만 하고 있다.
‘몇 번 인사 정도는 나눴지만, 그게 전부였지.’
어쨌든 그녀의 진심이 받아 들여졌는지 아닌지는 전국 대회 공연에서 판가름이 나겠지.
그로부터 약 일주일 뒤.
‘블랙 유니콘즈’의 레귤러 멤버 열두 명과 전국 대회 공연을 도와줄 몇몇 후배, 미세스 하비가 뉴욕으로 떠났다.
그리고 남은 멤버인 우리 셋은 전국으로 송출되는 방송을 함께 모여서 보기로 약속해둔 상태였다.
그에 대한 기대감을 남긴 채, 나는 오랜만에 나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번 일로 충분히 인풋이 쌓인 만큼, ‘나’라를 필터를 거쳐 그 아웃풋을 꺼낼 때였다.
‘오랜만에 저녁에 일찍 집에 돌아온 것 같군.’
나는 책상에 앉아 이번 일을 겪으며 내가 느낀 점들을 차근차근 정리했다.
‘틴에이저’란 서툴고 무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 안에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일으킬 수 있는 에너지가 잠재되어 있었다.
그들의 세계는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추억이었으며, 누군가에게는 트라우마가 될 정도로 강렬한 경험이기도 했다.
‘빌이나 프레드한테는 말이지.’
나는 그들이 다크 알렉사를 보고서 반응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물론, 반쯤은 농담 같은 생각이었다. 그때의 그들에게도 분명 좋은 추억은 있었을 테지.
그리고 만약······ 그게 아니라면.
‘내가 만들어 주면 되는 거고.’
그들이 좋은 추억을 떠올릴 만한 이야기를.
그렇게 백지 위에 만년필을 춤추듯 휘두르고 있던 그때, 어떤 아이디어 하나가 글씨로 가득 찬 머릿속에 번뜩이며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완전히 대비되는 두 명의 소년 소녀 캐릭터.
그들이 남 몰래 친구가 된다면?
‘완전히 내 이야기잖아.’
흥미가 마구 솟구쳤다.
마치 작은 씨앗 하나가 마음속에 심겨진 것 같았다. 그 씨앗은 이내 여러 갈래로 줄기가 뻗어 나오며 힘차게 자라나기 시작했으며, 새하얀 종이 위에서 수많은 소재와 단상이 잎사귀가 솟아나고 꽃과 열매가 맺히듯 차곡차곡 정리되어 갔다.
뭔가에 홀린 듯한 집중의 시간 끝에, 나는 최종적으로 불필요해 보이는 것들을 가지치기해 나가면서 정갈한 형태를 가진 하나의 이야기를 피워냈다.
운동과 친구 사귀는 일밖에 모르는 미식축구부 캡틴 소년.
너드질과 공부밖에 모르고, 친구라고는 한 명뿐인 너드 소녀.
‘어쩐지 두 화자를 중심으로 한다는 게 내 전매특허가 된 것 같지만, 이번에는 작품의 분위기도 가볍게 가져갈 거고 서로 성별도 다르니까.’
모든 면에서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어떤 일을 계기로 뭉쳐서 함께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해결해 나간다.
전반적인 골자는 틴에이지물인 동시에, 그 안에 나만의 색깔을 담기 위해 추리와 스릴러의 테이스트를 첨가시킨다.
‘미국식 시트콤 같은 느낌으로.’
틴에이저기에 할 수 있는 무모한 행동.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여러 10대들 사이의 오해.
조금씩 풀려가는 서로에 대한 이해.
그리고, 성장.
‘재미있겠어.’
알렉사와 처음 만났던 순간을 떠올리며 나는 천천히 소설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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