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08)
108.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팀의 캡틴으로서 알렉사는 침착함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대회가 종료되고 점수 집계가 끝나자 주최 측에서는 상위권 열 팀을 백스테이지에 모이도록 했다. 블랙 유니콘즈 역시 거기에 포함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사실 큰 영광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자리에 모인 상위권 열 팀에게는 피를 말리는 시간이 더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 5위부터 시작해서 우승인 1위까지 순위 발표가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오직 다섯 팀만이 수상의 영광을 누리는 데도 열 팀을 모은 건, 일종의 환호 요원으로 쓰면서 수상 유무를 알 수 없게 만들어 수상이 정해지는 순간 선수들이 더 극적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기 위함이었다.
자리에 모인 치어리더들은 다들 긴장했는지 자연스레 팀 멤버의 손을 붙잡은 채였다.
알렉사도 자신의 옆에 선 로라와 유리의 손을 꼬옥 움켜쥐었다.
그녀를 중심으로 손을 잡아 마음을 모은 열두 명의 블랙 유니콘즈 멤버는, 분명 오늘 전국 대회에서 최선을 다했다.
파티 이후로 알렉사는 진정한 팀 캡틴으로 인정받았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딱히 누군가와 문제를 겪지 않는 인물이라는 이유로 팀 캡틴에 선정되었던 그녀였지만, 이번 대회의 준비 과정 속에서 그 평가는 정반대로 바뀌었다.
이제는 다들 진심으로 알렉사를 따랐고, 그녀가 중심이 되어 모두를 이끌어 주었기에 ‘최고 지점’을 보여 줄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이제 블랙 유니콘즈는 평가만을 앞두고 있었다.
사실, 5위 안에만 들어도 충분히 대단했고, 학교의 위신과 개인의 영광 모두 드높이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모인 소녀들은 모두가 1년 동안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 온 이들이었다. 전국 대회 우승이라는 감격을 맛보고 싶다는 마음이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침내 순위 발표가 이루어졌다.
[5위는······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의 팀 레드 그라우스입니다!] [Waaaaaaaggghhhh-!!]박수와 환호 갈채 속에 경기장으로 나아가는 레드 그라우스 팀.
뒤이어 4위와 3위까지 발표가 된 상황에서 알렉사는 동료들의 손을 더 힘껏 움켜쥐었고, 그런 가운데 이어지는 멘트를 들었다.
[1위 후보를 두 팀 소개합니다. 첫 번째로 뉴욕 주 뉴욕의 화이트 피닉스, 두 번째로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의 블랙 유니콘즈입니다. 두 팀 모두 경기장 위로 나와 주세요!]“어, 어?”
“우, 우리?!”
“얘들아, 가자!”
팀원들이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지만, 알렉사는 기운차게 그들을 이끌고 나아갔다.
3, 4, 5위 팀이 경기장의 양끝에 서 있는 가운데, 블랙 유니콘즈는 화이트 피닉스와 나란히 섰다. 그러자 오늘의 사회를 맡은 두 사람이 다가와 각각의 팀 캡틴을 인터뷰했다.
“우승을 앞에 두고 있으신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우승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저희는 멋진 추억을 만들었으니까요. 여기까지 오도록 저희를 이끌어주신 코치님,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 그 밖에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뉴욕 팀의 키가 큰 캡틴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올바름의 표본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반대편의 알렉사는 순간 머리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어, 어쩌지?’
이런 건 준비한 적이 없었다. 다가오는 사회자 두 사람을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던 와중, 그녀는 머릿속에 신이 해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네 진심을 말해.’ 그녀는 주변의 팀원을 힐끗 돌아보았고, 이내 소리쳤다.
“저, 저는 소감을 준비해 오지 않았습니다!”
갑작스러운 정적.
그 직후 모두가 빵 터졌다.
앞으로 5년간 이 대회에서 이 시절의 ‘순수의 아이콘’으로 회자될 순간이 탄생했다.
로라가 이마를 짚고 팀원 모두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는 가운데, 두 사회자와 수많은 관객들은 10대 소녀로서 할 법한 실수를 저지른 알렉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알렉사는 그런 멘트를 내뱉은 이후로도 여전히 긴장한 듯 딱딱하게 굳은 채였고, 그 모습을 백스테이지에서 바라보던 미세스 하비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쟤는 어쩜.’
가장 중요한 순간에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만약 이게 프로 경기였다면 팀 캡틴으로서 욕을 먹어도 마땅한 일이었겠지. 하지만 지금만큼은 그런 냉정한 평가는 적용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대회에서 사람들이 10대들에게 바라는 것은, 다소 미흡하더라도 경기에 진정성 있게 임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두드리며 최선을 다하는 열정이었다.
그리고 오늘 블랙 유니콘즈는 그 어느 팀보다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실수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스턴트 치어리딩은 그만큼 기술적으로 어려운 경기였다. 하지만 블랙 유니콘즈는 진심으로 무대를 즐겼고, 오늘 펼친 공연은 지금까지 미세스 하비가 보았던 그녀들의 공연 중에서 단연 최고였다.
그렇기에, 블랙 유니콘즈는 왕좌를 되찾았다.
[1982 아메리카 치어리딩 내셔널 콘테스트-!! 우승은 블랙 유니콘즈입니다-!!] [Waaaaaaaaaaaaaaaaaaaaaaaaaaaaaaaaggggghhhhh-!!]박수갈채와 함께 폭죽이 터져 나왔다.
순간 어안이 벙벙한 채로 서 있던 블랙 유니콘즈 멤버들이 알렉사에게 달려들었다. 그동안의 노력에 우승이라는 결과로 보답 받은 이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다들 엉겨 붙어서 트로피를 건네줄 사람이 없자 트로피를 가지고 나온 시상자가 당황했을 정도였다.
다들 그동안의 고생을 생각하거나 감격에 겨워서, 혹은 양쪽 모두가 뒤섞여 복받치는 마음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가운데,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알렉사 플레어는 마이크에 대고 또다시 정제되지 않은 말을 외치고 말았다.
“아빠! 엄마! 신! 나 1등 먹었어-!”
겨울 전국 대회는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
“우승 소감 인터뷰에서 그거, 작가님이죠?”
“······.”
줄리아 챈들러의 물음에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슬그머니 창 너머로 시선을 피했다.
무척이나 좋은 날씨였다.
평소처럼 코리아타운의 커피숍.
오랜만에 내가 먼저 그녀를 불러냈다. 그런데, 자리에 앉고 인사를 나누자마자 다짜고짜 추궁이라니. 나는 묵비권을 행사했고, 줄리아는 가볍게 웃으며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완전히 상상으로 비롯된 말이었지만, 분명 그럴 듯했다.
하나만 빼고.
“어쩌다 부모님 다음으로 우리 작가님 이름을 불렀을까~? 와, 우리 작가님. 글 쓰고 돈 벌고 너드 짓 이외에는 아무 관심도 없으신 줄 알았는데 언제 또 이렇게 예쁜 여자친구를······.”
“여자친구 아닙니다.”
“앗, 그럼 설마 소녀의 짝사랑?”
“그냥 친구인데요. 제가 이번 일로 많이 도와줬으니까 그런 거겠죠.”
“일은 잘 해결되셨어요? 앗, 우리 작가님. 귀 빨개졌다.”
“예예, 도와주신 덕분에 잘 해결됐습니다.”
나는 귀를 탁탁 털어내고 줄리아를 살짝 노려보았다.
“그래서 제가 한 가지 큰 결심을 했는데, 재고해야겠군요.”
“어떤 결심이죠?”
“로탐에서 신작 연재요.”
“······작가님.”
“네?”
“무릎 꿇을까요?”
“아, 아니. ······오늘 대체 왜 그래요?”
“뭐랄까, 얼마 전 일 때문에 치어리딩 대회가 좀 신경 쓰였단 말이죠? 그러다 어린 애기들이 경기에 우승해서 눈물 콧물 질질 짜면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니 제가 다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서로’ 편한 작가님 앞에서 장난 한번 쳐봤네요. 이제 저는 편하게 대할 친구도 없으니까요.”
“친구가······ 없어요?”
“그렇죠? 다 결혼했지. 애들 키우느라 바쁜 거 같고.”
“아.”
나는 그 말을 이해했다.
현재 줄리아(미혼)의 나이는 서른. 스물여섯인 미세스 하비(기혼)보다 나이가 많다.
내가 알기로도 이 시절의 평균적인 결혼 연령대는 20대 초반대로 형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줄리아는 일과 결혼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평범하게 살아가는 같은 세대의 친구들과는 딱히 가깝게 지내지 않는 듯했다.
‘결국에는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끼리끼리 어울리게 되니까.’
어쩔 수 없는 현실에 공감하며 씁쓸하게 웃고 있자니, 줄리아가 능청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래도 행복해요. 좋아하는 일 하고, 돈 잘 벌면 됐지.”
“그럼요. 결혼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뭔가, 결혼해 보신 듯한 말투네요.”
“못했죠. 여건 때문에.”
“여건?”
아차차.
“아, 아직 학생이라는 여건!”
“호오. 그렇다면 이제 곧? 하긴 돈도 잘 버시니까.”
“······일 이야기로 넘어갈까요.”
나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시리즈물입니다.”
“장르는요?”
눈매가 금방 진지해지는 줄리아.
그녀는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알렉사나 지우와는 다르게 성숙한 여성미가 물씬 풍긴다고 해야 할까. 내 앞에서는 항상 바지 정장 차림을 고수했고, 진지할 때는 살짝 말 걸기 어려운 포스를 풍길 정도였다. 아마도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워 페인트겠지.
그리고 그건 나에게 굉장히 큰 믿음을 주었다.
“시트콤, 틴에이지, 성장물입니다.”
“계약하실까요?”
“······제목도 안 들었는데요?”
“계약하고 나서 듣죠, 뭐. 어디 보자, 제 가방에 표준 계약서가 있을 텐데.”
나는 부산떠는 그녀를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제목은 ‘About T’입니다.”
“T에 관하여?”
“Teenager, Time, 그리고 주인공의 이름인 Tony까지, 다방면으로 해석할 수 있게 해 뒀죠.”
오랜 고심 끝에 바로 어제 나온 제목이었다.
나는 가방 안에서 작성해온 기획서를 꺼내서 내밀고 본격적인 설명을 이어 나갔다.
‘About T’는 남자 주인공 ‘토니’가 우연히 보물 상자의 위치가 적힌 든 지도 조각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혼자서는 지도를 해석할 수 없었던 그는 도서관에 방문했다가 대부분 그곳에서 머무는 너드 소녀 ‘앨리스’를 만나게 되고, 별 생각 없이 그녀에게 지도 조각을 보여준다.
그렇게 토니와 앨리스가 보물 상자를 찾아 캘리포니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발생하는 사건을 다룬 것이 ‘About T’의 첫 번째 ‘시리즈’였다.
거기까지 설명을 들은 줄리아가 미소를 지었다.
“시리즈물이라. 흥미롭네요.”
“네. 가능할까요?”
“당연하죠. 10대 독자층을 겨냥한 가볍게 읽기 좋은 틴에이지물인 것도 좋네요. 재미있겠는데요. 이런 작품은 심리를 잘만 묘사하면 학교에 독후감용으로도 잘 선택되는 편이죠. 작가님이 10대 소년 소녀의 이야기를 잘만 써주신다면······ 아.”
“······? 왜 그러시죠?”
“아니, 생각해 보니 작가님 아직 10대시니까 어련히 잘 하시겠지 싶었거든요.”
“제가 아직 학생이라고는 해도 학교에 있는 애들 습성까지 완전히 다 파악하고 있는 건 아닌지라. 그래서 자료 조사 기간이 필요하더라고요. 야구공 던지는 법도 애들한테 물어서 듣고 왔습니다.”
“······그건 좀 심한 게.”
“걔들도 TRPG 주사위 던지는 법을 모를 테니 쌤쌤이죠.”
당당하게 말하는 내 앞에서 줄리아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기획대로 한번 진행해 보시죠. 분량은 똑같이 500 단어에······ 이걸 시리즈로 내신다면 작품은 몇 화 정도로 구상 중이신가요?”
“일단 첫 작품은 15화 내외로 구상 중입니다.”
“멋지네요. 한 달 연재하고, 쉬면서 다음 시리즈 구상하고.”
“저도 그렇게 생각 중이었습니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About T’는 내가 학생들을 살피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디테일한 글을 써나갈 예정이었다.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쓰는 것이 내 성향에 잘 맞았다.
지금밖에 쓸 수 없는 글을, 바로 지금 이 순간 생생하게 적어낸다.
가령, 치어리더 클럽 애들과 사건을 겪으며 느낀 10대와 어른의 차이, 그로 비롯되는 분위기의 차이 같은 것들 말이다.
전생의 경험으로 인해 얼마 전까지 학교생활에 잘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 나에게 주어진 두 번째 틴에이지 시절을 최고의 순간으로 보낼 수 있을 듯했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가방 안에서 소설을 꺼내 줄리아에게 내밀었다.
5화 분량의 원고.
“어떤지 확인해 주시죠.”
“오, 벌써 5화 분량이 확보되다니······. 역시 작가님이셔. 바로 계약하고 연재 날짜 잡아 봐요. 우리.”
“아까부터 은근슬쩍 넘어가시려는데, 계약은 원고료 얘기 마무리 짓고 하시죠.”
“어머, 들켰네.”
장난스럽게 피식 웃은 뒤, 보물이라도 받은 듯 희희낙락해하며 가방 안에 원고를 집어넣는 줄리아.
그걸로 이야기는 끝이었다.
지금까지 제법 오랫동안 함께 일해 왔던 만큼, 나는 자잘한 디테일까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계약 역시, 알아서 잘 해주리라고 믿었으니까.
그렇기에 남은 건 친목을 위한 짧은 잡담이었다. 그리고 우리 둘 사이에서 그 화제가 무엇인지는 무척이나 뻔했다.
“사이먼이 굉장히 서운해 하겠는데요.”
“어쩔 수 없죠. 이번에 제가 진 빚이 있으니 줄리아한테 원고라도 하나 드려야지.”
“후후, 이래서 사람은 착한 일을 해야 하는 건가? 그쪽에다 전달은 했어요?”
“아직요. 더블 스파이 소설판 발간되면 만나서 밥 한 번 먹기로 했는데.”
“그때 말하면 딱이겠네요. 이제 얼마 안 남았잖아요. 더블 스파이에, KOG의 추가 규칙서도. 이제 새해가 시작되면 본격적으로 넘쳐나는 작가님의 작품 때문에 독자들이 행복의 비명을 내지르겠군요.”
“뭐······. 나와 봐야 아는 거죠.”
“기쁘지 않으세요?”
“그렇긴 한데, 지금은 신작에 집중하고 싶어서요.”
“역시 작가님, 부지런하시다니까.”
줄리아가 만족스러운 듯 웃었고, 나 역시 똑같은 미소를 지었다.
***
크리스마스이브부터 1월 1일까지 이어지는 연말 휴가.
이때부터가 딱 짧은 방학이 겹치는 시기였다.
도시 곳곳에 크리스마스트리와 온갖 장식물이 설치됐고, 그로써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기 캘리포니아는 한겨울에도 날씨가 그다지 춥지 않아서 어딘가 좀 이상적인 크리스마스와는 달랐지만.
그래도 나는 즐거웠다.
이틀 전에 이곳으로 돌아온 알렉사, 그리고 함께 기다리던 두피, 지우와 함께 서로 조촐한 크리스마스이브 파티를 즐기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다들 25일 당일에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로 일정이 잡혔지만, 오늘은 다행히 시간을 비워 주었다.
그 덕에 나 역시 고심 끝에 준비한 선물을 줄 수 있게 되었다.
모임 장소는 두피의 집이었다.
그쪽에는 두피가 어린 시절에 만들어 두고, 요즘도 가끔 쓰는 트리하우스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이전에 서로의 추억에 대해 지나가듯 말하던 와중 지우가 흥미를 보여서, 다들 그곳에서 조촐한 크리스마스이브 파티를 진행하자고 약속했다.
‘얘네 집이 진짜 잘 산단 말이야.’
하긴,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장난감 회사 사장님 집이었으니까.
커다란 저택 앞의 주차장에 차를 대고 지우와 함께 내린 뒤, 집 안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나는 R2-D2의 상태를 확인하고자 슬쩍 정원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앞에서 금발을 묶어 올린 그녀를 발견했다.
바로 알렉사 플레어였다.
오후 다섯 시. 짧아진 해가 중천에서 제법 기울어진 시점.
크리스마스 에디션으로 꾸며진 R2-D2 앞에 서 있던 그녀가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거의 2주 만의 만남이었다.
지우가 반색하며 그녀의 곁으로 우다다 달려갔다. 알렉사 역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지우에게 팔을 벌리고 와락 마주 안아 주었다.
“알렉사-!”
“지우~!”
“우승 축하해요!”
“고마워!”
서로 끌어안은 채 꺅꺅 웃는 두 사람.
나도 그 곁으로 다가가 말을 건넸다.
“고생 많았어.”
“············응, 신.”
근데, 왠지 이 녀석 나를 안 본다.
자세히 보니 귀가 빨개진 게 보였다.
······춥나?
[ After the show (2) > 끝(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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