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14)
114.
‘About T’의 연재가 후반부에 접어들 무렵, 봄 학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친구들과 함께 등교한 나는 이상한 광경을 목도했다.
아침의 고등학교 풍경은 항상 엇비슷했다.
학생들은 락커에서 오늘 수업에 필요한 물품을 챙기고 각자 무리끼리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가 아주 가끔 불리 친구가 너드 친구를 락커룸에 쾅! 하고 밀어붙이기도 했고, 미식축구 공을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특별 이벤트라도 생긴 기분이었다.
곳곳에 안경을 쓴 여학생이 모여 기둥 뒤나 락커 사이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알렉사와 지우가 조잘대며 두피가 둡둡거리는 가운데, 나는 그 광경을 슬쩍 의식했다. 다들 오랜만에 학교에서 만나서 생긴 반가움에 주변이 소란스러웠지만, 집중하자 조금씩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저기. 가져왔어?”
“응, 가져왔지이.”
“얼마야?”
“4달러.”
“비싸-!”
······뭐지. 뭘 사고파는 거지.
슬그머니 흘깃거리자, 두 여학생이 스프링 노트로 제본된 책을 ‘거래’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딘가 수상한 행동이었지만, 사실 저게 무엇일지 아예 짐작이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직접 확인을 못해서 조금 답답할 뿐이지.
아니나 다를까, 교실에 도착하자 또 다른 여학생 무리가 모여든 채 한창 제본된 책을 든 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와, 진짜 미쳤다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모아서 읽으니까 더 설레!”
“장난 아니야! 토니 진짜 귀여워······!”
‘귀엽다고?’
나는 그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리트리버(알렉사)가 귀를 쫑긋거리더니 다가가 자연스럽게 무리에 섞여들었다.
“그치이! 진짜 귀엽지!”
“응응! 짱이야!”
“앨리스랑 둘이 사귐? 벌써 감정 생김?”
발을 동동 구르는 여학생들.
나는 옆에 있던 두피에게 물었다.
“이해해?”
“Frrrrrrr······. 전혀.”
“나도.”
아니, 앞서 말했듯 아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나는 토니와 앨리스의 관계에 꽤나 공을 들여 묘사했다. 미식축구 클럽의 멋진 캡틴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여학생을 소중하게 여기고 구한다. 누구라도 좋아할 만한 이야기였고, 특히나 여학생들은 앨리스에게 감정을 몰입해서 더 좋아하겠지.
‘문제는, 저 정도로 좋아할 일인가 싶다는 거지.’
얼굴이 살짝 화끈거리는 걸 느꼈다.
“미쳤어-! 진짜 좋아!”
“둘이 미식축구 이야기할 때 들었어? 약간 눈치 없이 이야기하던 토니가 앨리스를 신경 쓰면서 조심스럽게 대하는 그 감정선 변화가 진짜 미치지 않았어?!”
······저건 내가 의도한 바가 아닌데. 그냥 그렇게 쓴 건데.
***
작가가 쓰는 작품들의 흐름을 지켜보는 건 꽤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이 성장하고 변화하듯, 작가의 작품도 계속해서 변화하기 마련이니까.
그 변화는 작가의 내면적인 성장에 따른 현상일 수도 있고, 단순히 글을 쓰는 기술이 늘어났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아서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줄리아는 가장 먼저 신 작가의 데뷔작에 관해서 생각했다.
‘Mother’.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소설은 작가의 울분이 담긴 글이었다.
줄리아는 문득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신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영세 출판사의 부탁을 받아, 스쳐 지나가듯 이루어졌던 만남. 막 하이스쿨에 입학했다는 소년은 지금보다도 훨씬 더 계산적이었고 냉정했다. 어떠한 규격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는 듯했고, 어떻게든 돈을 벌고자 했다.
그가 느낀 울분이 어떤 이유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작가의 인종이나 집안 상황을 생각해 보면 분명 납득할 만한 부분이 있었다. 동양인, 아버지의 부재, 모자 둘이서 감당해야 하는 막대한 대출금과 이자 등등.
하지만 살면서 우울과 분노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단지, 그것을 날카로운 문장으로 표현하기에는 작가의 나이가 무척이나 어렸다는 점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반면에 지금은 그의 글 안에 그런 부분이 많이 사라졌다고 느꼈다.
글로 원하던 성공을 거둬서인가?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돈은 행복의 척도가 되지 못한다. 안심의 척도가 될 뿐.
‘사이먼의 존재가 컸겠지.’
헤실헤실 웃으며 남의 의견에 잘 맞춰 줘서, 토런스 뉴 미디어에서는 그를 아무렇게나 대해도 괜찮을 인력 정도로 취급했지만, 줄리아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훌륭한, 아니, 그 이상으로 특별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편집자였다. 그리고 줄리아는 그 이유에 대해 그가 직관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작가의 생각이나 기분, 글의 의도를 읽고 함께 대화해 주는 능력.
사실 그것만으로 편집자로서 요구되는 재능을 전부 갖춘 셈이었다. 줄리아는 그것이 사이먼이 가진 소설에 대한 애정과 그에 따르는 깊은 몰입에서 온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본인이 자신의 강점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지만.’
하지만 줄리아는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확신했다. 사이먼의 재능은 특별했으며, 누군가가 쉽게 흉내 내기도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그는 한때 그렇게나 날카로웠던 신 작가를 ‘좋은 무드’로 밀어 넣었다.
이전에 생각했던 바와 똑같은 표현을 떠올리며 줄리아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하여 탄생한 소설이 ‘Double spy’.
다음으로 좋은 친구들과 함께하며 쓴 ‘Princess quest’.
그리고 하이스쿨 졸업을 앞두고 한창 집필하고 있는 ‘About T’까지.
작품들을 차례차례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줄리아는 한 가지 흐름을 발견했다.
신의 소설은 읽기 쉽고 신선해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기를 끌었으나, 작가 본인은 집필에 앞서 노리는 독자층을 확고하게 설정하고 쓰는 편이었다.
‘Mother’는 토런스 뉴 미디어의 신규 구독자, 다시 말해 성인층을.
‘Double spy’는 아이들과 남성층을.
‘Princess quest’ 같은 경우에는 소드 앤 소서리 너드층을.
그렇다면, 이 ‘About T’는 어떤가.
‘참 신기한 소설이야.’
작가 스스로가 틴에이지 성장물을 표방하고 있는 만큼,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아이들부터 성인까지, 남성부터 여성까지, 일반인부터 너드까지.
이전까지 신의 소설을 봐왔던 독자를 모두 다 끌어와 한자리에 모이게 한 듯했다.
모험이 있고, 로맨스가 있다. 현재의 사회상이 있고, 과거의 자화상이 있다.
애초부터 읽기 편했던 문장이 더 가벼워지고 술술 읽혔다. 그럼에도 파고들면 그 아래에는 섬세한 감정선이 물씬 스며들어 있다.
그 안에 담긴 주제의식은, 살아가며 겪을 수밖에 없는 온갖 ‘편견’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했다.
줄리아는 이 일련의 흐름이 작가 자체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만약에 ‘Mother’를 쓰던 때의 신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아니겠지.’
이 작품 자체가 ‘신’이라는 작가의 변화, 혹은 심리적 안정을 증명하고 있는 게 아닐까?
어찌 되었든 이처럼 다채롭게 여러 장르의 소설을 쓰는 장르 작가는 몇 되지 않았다. 인간은 결국, 자신이라고 하는 좁은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은 굉장히 다채로운 장르에서 저마다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모든 작품에서 보여 준 그만의 색깔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작품 초반부로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려 독자를 충격에 빠뜨리는 형태의 전개.
물론, 이번 ‘About T’에서도 나올 예정이었다.
‘진짜 너무하단 말이지.’
지금까지 달달한 틴에이지 성장물의 전개를 취해놓고 마지막에 이르러서 독자들의 뒤통수를 거나하게 후려치다니.
내일 자 신문에 실릴 예정인 11화를 다시 읽으면서 줄리아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번 화에서 드러나는 토니의 감정 묘사가 또 굉장히 섬세해, 후반부의 전개에 힘을 보태주는 느낌이었다.
앨리스를 구해낸 토니는 그 손을 잡고 학교 뒤뜰의 수돗가로 향한다. 주변의 학생들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고 앨리스도 창피해했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여기에 모여서 여자애 하나 괴롭히고 있는 놈들 따위보다, 앨리스가 자신에게 더 중요했다.
그녀와 보낸 시간은 정말 즐거웠으니까.
보물 상자가 그려진 지도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냥 함께 여기저기 다니면서 평소와는 다른 경험을 하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도 즐거웠다. 그리고 자신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앨리스는 ‘그렇구나.’ 하고 재미있게 들어 주었다. 단지 자신을 긍정해 주었다. 그것이야말로 토니가 너무나도 갈구하던 것이었다.
그리고 수돗가에서 토니는 앨리스에게 사과했다.
줄리아는 살짝 흥분한 채 그 부분의 문장을 다시 읽어보았다.
『“미안, 괜히 나 때문에.”
“너 때문이라니······?”
“나하고 같이 다녀서 그런 거니까.”
“음, 아냐.”
앨리스는 쓸쓸하게 웃었다.
“원래도 이랬어. 이유는, 항상 달랐고. 교정기를 껴서. 펑퍼짐한, 촌스러운 스웨터를 입어서. 도수 높은 안경을 써서. 그냥 이름이 앨리스라서. 다양했어. 그러니 너 때문은 아니야. 오히려, 고마워.”
“······.”
“지금까지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았거든.”
“젠장. 내가 좀 더 빨리 너하고 친해졌다면 좋았을 텐데.”
“우리, 친해?”
“아니야? 나는 친하다고 생각하는데. 너와 있을 때가 제일 편해.”
토니는 입술을 비죽 내밀며 이야기했다. 그 모습을 본 앨리스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하지만 토니는 진지했다.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야. 앨리.”
“그, 그래?”
“이유는 모르겠어. ······그리고 아마도 이 말을 해야 할 거 같아. 나, 애들한테서 들었어. 너희 부모님에 관한 거. 그리고 나도 그래. 우리 엄마 아빠도, 젠장, 너는 머리도 나쁘니 미식축구나 해서 대학 들어가라고 난리거든. 너무 싫어. 진짜 최악이야.”
토니의 말은 어순이 뒤죽박죽 섞인 채였다. 혼란스러운 감정을 필터링 없이 내뱉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호소력이 느껴졌다. 잠깐 어안이 벙벙해져 있던 앨리스는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나도 그래······.”
“꼭 보물 찾자. 그리고 여기 떠나서 우리 다른 곳으로 갈까?”
“으, 응?”
“푸하하! 농담이야, 농담. 보물 하나 찾는다고 해서 어린애 둘이 갑자기 살던 곳을 뜰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음, 그래도 너한테 말하니까 조금 마음이 편하다. 너는 어때? 너희 부모님도 진짜 학교에서 멍청한 애들이 말하는 대로 극성이야?”
토니의 솔직한 물음에, 잠깐 입을 다물고 있던 앨리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수돗가 앞에서 두 사람은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의 사정을 말한다.
상대에게 털어놓자 마음이 조금은 더 편해졌다. 앨리스에게 깊은 동질감을 느꼈고, 대화를 마쳐갈 즈음에는 눈앞의 존재에게서 그 누구에게서도 느껴본 적이 없는 감정을 느꼈다.
사실 너무도 신기한 일이었다. 자신과 완전히 정반대인 사람에게서 이토록 편안한 감정을 맛보다니.
“크으, 좋네. 좋아.”
고등학교 시절 자신‘을’ 짝사랑했던 소년을 떠올리면서 줄리아는 미소를 지었다.
***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학교에 다니던 시절.
오크나무 밑에서 자신이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던 남자애가 있었다. 그 애는 가방을 휙 낚아채고는 들고 있던 낚싯대에 건 뒤, 묵묵히 자신을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녀는 그 옆에서 함께 걸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항상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첫사랑이었다.
‘About T’를 읽으며, 그때 느꼈던 감정을 더듬어 냈다.
소년은 소녀를 사랑했다. 하지만 소녀는 거기에 제대로 반응하지 않는다.
부끄러워서인가? 당황했을 뿐인가? 그건 아직 모른다. 읽는 독자들은 단지 소녀가 수동적이라 그렇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녀가 보는 소녀는 전혀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소년을 이끌어주는 요정과도 같은 역할을 해냈다.
전형적인 탐색의 서사를 가지고 있는 소설.
이 작품에 사람들이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추억을 떠올리게 해서인가? 현재 시점의 틴에이저를 그럴듯한 방식으로 묘사하기 때문인가?
그것이 궁금했고, 계속해서 손이 갔다.
그녀는 낡은 손으로 신문을 넘기며 계속 ‘About T’를 읽어 나갔다.
지도를 통한 탐색은 단계가 거듭될수록 점점 더 복잡해졌다.
하지만 앨리스는 수수께끼를 마주할 때마다 조금 생각하더니 그것을 척척 풀어버렸다. 토니 역시 물리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는 두 팔을 걷고 나섰다.
맥아더 공원을 지나 박물관을 갔고, 이동식 놀이공원이라고 할 수 있는 카니발을 찾아갔다. 그곳 곳곳에서 다음 지역에 대한 단서를 찾아낸 두 사람은 네 번째 지역, 천문대며 동물원에 온갖 명소로 유명한 그리피스 공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토니는 이 탐색이 끝나지 않았으면 했다.
그는 다른 이에게 자신의 속내를 제대로 털어놓지 못했다. 미식축구 클럽의 캡틴으로서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무리에 속했지만, 그의 마음은 언제나 답답하고 찝찝했다.
아무리 잘 나간다고 해 봤자 자신은 집안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을 뿐이니까.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 속에서 똑같이 지루하게 살아가고 있을 뿐이니까.
항상 패션과 뷰티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치어리더 여자애들. 그런 여자애들을 보면서 시시덕거리는 미식축구 클럽 친구들. 앨리스와 만난 다음부터는 다들 멍청하게만 느껴졌다. 그들이 앨리스를 괴롭혀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 마음은 더더욱 강해졌다.
그들과 척을 졌지만, 속은 후련했다.
그리피스 공원에서의 탐색은 조금 길게 이어졌다.
지도는 마치 무언가를 안내하듯이 공원을 한 바퀴 돌게 했다. 동물원을 갔다가 캠핑장을 지나는 두 사람. 바이크를 몰고 숲을 달리면서 토니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야말로 여름이었다.
12화의 내용을 읽은 그녀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자신도 어렸을 적에 낚싯대를 든 소년과 둘만의 모험을 떠나고는 했다. 그가 기다리던 장소부터 집까지가 바로 그랬다. 그 순간이 머릿속에서 오버랩 되며, 자연히 토니와 앨리스의 이야기에 겹쳐졌다.
‘어쩜 이런 생생한 묘사를 할 수가 있지?’
그로부터 이틀 뒤에 나온 13화.
이미 해는 졌고, 천문대에 도착한 두 사람은 지도의 안내를 따라 관람객 입장이 허가되지 않은 구역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천문대를 빙 둘러싸고 있는 테라스로 나오게 되었다.
수없이 반짝이는 하늘의 별,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아름다운 지상의 별.
로스앤젤레스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광경 앞에서 토니는 감탄했다. 그리고 그와 똑같이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며 서 있던 앨리스는, 이내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러더니 난간을 휙 넘어갔다.
『“앨리?!”
토니는 깜짝 놀라 뒤따라 달려갔다.
치마를 입은 앨리스는 언덕을 제대로 타고 내려가지 못하고 반쯤 굴렀다. 돌에 긁혔는지 무릎에서는 피가 났지만, 신경 쓰지 않고 한 방향으로 내달렸다. 그녀의 시선이 올곧게 향하는 곳으로 따라 가자, 붉은 끈이 묶여 있는 나무가 보였다. 어둠 속에서도 왠지 모르게 그것은 훤히 눈에 들어왔다.
토니는 눈을 동그랗게 떴고, 앨리스는 그 아래에 무릎을 꿇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앨리!!”
가만히 놔둘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크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던 그녀의 변화. 보물을 찾았다는 기쁨 때문일까. 아니, 그건 분명 아닐 터였다. 한 가지 떠오르는 작은 가능성. 하지만 급한 마음에 토니는 그것을 깊이 헤아리지 못하고 앨리스의 뒤를 따라 언덕을 내려갔다.
“지금 뭐하는 거야?!”
“언니, 언니······.”
미친 듯이 땅을 파내며 중얼거리는 앨리스.
그 손톱 끝이 흙과 피로 빨갛게 물들었다. 토니는 앨리스를 들어 올리듯 반쯤 억지로 떼어내고는 자신이 직접 땅을 파기 시작했다. 흥분한 앨리스는 좀처럼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토니는 윽박까지 질러가면서 그녀가 자신을 상처 입히는 것을 막았다.
“미안, 미안해. 토니. 정말 미안해······.”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사과였다.
일단은 의문을 묻어 둔 채 묵묵히 지면을 파내려 간 토니는 그 안에서 상자를 하나 발견했다. 옆에서 다가온 앨리스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무척이나 낡은 카메라였다.
“언니이······!!”
오열하며 카메라를 작은 품에 안는 그녀.
아무리 눈치가 없는 토니라고 해도 알 수밖에 없었다.
지도의 원래 주인은 바로 앨리스였다.』
“휴우.”
13화의 내용을 다 읽은 그녀, 글렌다 호프먼은 크나큰 충격에 휩싸였다.
같은 작가로서, 신보다 수십 년은 앞선 선배로서, 엄청난 욕망 하나가 들끓었다.
그를 만나 어떻게 이런 소설을 썼는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 『About T : Viewfinder』 (2) > 끝(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