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15)
115.
‘About T’의 13화가 연재된 다음 날.
학교는 그야말로 ‘폭발’했다.
“야야야! 이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앨리스가 지도의 주인이었다고?! 이게 말이 돼?!”
“말도 안 되지! 뒷모습이라도 봤을 텐데······!!”
“Frrrrrrrrr, 그렇지 않다.”
“““두피?!”””
“작품에서는 확실히 누가 떨어뜨린 모습을 보았다고 묘사하지 않았어. 일종의 ‘서술 트릭’이라고 볼 수 있지.”
“두피가 뭔가 멋진 말을 했어!”
“근데 뭔지 모르겠어!”
교실은 완전히 왁자지껄했다.
1교시 시작 전, 대부분의 학생들이 모여서 신나게 ‘About T’에 관해서 떠들어댔다.
그것을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들으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도 3학년쯤 되니까 다들 적당히 친해져서 잘 지내는구나.’ 특히나 두피에 대한 반응을 보자니 그러했다.
1학년 때만 하더라도 늘 조용히 지냈고, 잠깐 말할 때도 굉장히 차분하게 할 말만 짧게 했는데, 이제는 조금 자신감이 생겼는지 두피는 오늘의 평론회(?)를 이끌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앨리스는 토니를 이용했어.”
“너, 너무해! 악당!”
“악당이라고 볼 수는 없지. 먼저 함께 보물을 찾자고 제안한 건 토니인데.”
“그래도 중간에 밝힐 수 있지 않았을까?!”
“앨리스 성격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 거지. 남은 건 그 카메라가 무엇인가인데.”
“언니의 물건인가?”
“유품?”
“아마도?”
“아직 죽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 않음?”
그런 식으로 오가는 이야기.
왠지 모르게 ‘Mother’나 ‘Double spy’의 연재 때가 생각났다.
턱을 괸 채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는 맞은편에서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발견했다. 눈도 크고 입도 크고, 전반적으로 시원시원한 인상의 알렉사 플레어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주변을 살피고는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그래서, 신. 이다음에는 어떻게 돼?”
“스포일러.”
나는 짧게 일축했다.
알렉사는 시무룩해졌다.
***
13화가 연재된 이후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말그대로 ‘지옥 같은’ 이틀을 견뎌야 했다.
클라이맥스에서 반전을 밝히고 그동안 숨겨졌던 진실을 드러내는 구성은 추리 소설의 기본적인 문법이었다. 하지만 연재라는 특성상 바로 진상을 설명하지 않고 충격만을 던져준 채 한 화가 마무리 되어, 사람들에게 강한 호기심과 고통을 안겨 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신’이 저지른 짓(?)이 있다 보니 다들 이런저런 심각한 상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센트럴시티 밸류 하이스쿨 학생들이 살인사건과 관련된 상상을 했듯이.
“갑자기 앨리스의 눈과 코와 입에서 식물이 자라나는 거야.”
“Plant Princess······!”
“지하 세계의 공주! 아니, 숙주인가!”
코믹북 스토어의 빌과 친구들은 주로 공포 쪽으로 그 방향을 잡았으며.
“하이고야. 이거 어찌된 일이래?”
“뭐야, 박씨. 왜 그래?”
“그 짝은 이거 읽었어? 아바우트 티이. 신이가 쓴 거.”
“어어, 읽었지. 우리 작가님 글인데. 우리 아들놈이랑 딸내미 보는 거 같아서 귀엽더만.”
“자네도 읽었는가? 허참. 내가 그래서 그려.”
“아, 이번 내용 때문에 그래?”
“그려, 맞어. 이게 당최 뭔 일인 건지······.”
“아, 그거잖아!”
“뭐가 그거여?”
“사실은 둘이 남매인 거겠지!”
“아······!!”
영어를 읽을 줄 아는 코리아타운의 사람들은 출생의 비밀에 그 무게를 실었다.
그런 식으로 저마다 상상을 거듭하는 사이 이틀이 지나 신문에 14화가 실렸고.
마침내 모든 것이 밝혀졌다.
앨리스는 한참을 울다가 카메라를 끌어안은 채 토니에게 모든 걸 털어놓았다.
지도의 원래 주인은 자신이고, 보물 따위는 없다.
그 말에 순간 황당하고 놀라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토니에게, 그녀는 눈물을 머금고 지금까지의 ‘보물찾기’에 대해 설명했다.
자신보다 다섯 살이 많았던 언니는 그림으로 그린 듯한 모범생이었다.
학교 공부에도 열심이었고, 부모님의 말을 항상 잘 들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앨리스는 막내로서 귀여움을 독차지했고, 가정은 일견 평화로운 듯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언니는 편지 하나만 남기고 모습을 감췄다.
[자유를 찾아 떠납니다. 찾지 마시길.]단순하지만, 그동안의 고통을 담아낸 내용.
그리고 언니를 억눌렀던 집안의 모든 기대는 고스란히 앨리스에게 이어졌다.
부모님은 집을 나간 언니를 루저 취급했지만, 그들도 내심 많이 힘들어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동안 언니에게 걸었던 기대 안에는 분명 애정이 수반되었으니까. 단지 그것이 언니가 원하던 방향이 아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비틀림을 수정할 수 있는 기회는 단절되었다.
그렇기에 앨리스는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은 가정의 붕괴를 막고 부모님을 위로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두 분의 방식은 틀리지 않았다. 자신이 있으니까. 올바른 딸이 될 테니까.
그러니 더는 괴로워하지 말아 달라.
······그러면서도 앨리스는 계속 언니를 그리워했다.
자신을 두고 집을 떠난 언니. 자신을 끔찍이도 아껴주었던 언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행복했던 어린 시절은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괴로운 감정을 꾹꾹 누른 채로 지내던 와중, 어렸을 때부터 맡은 일과대로 아침 일찍 편지함을 정리하다가 모르는 주소에서 보낸 편지봉투를 하나 발견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지도 조각과 언니의 글씨체로 쓰인 짧은 편지가 담겨 있었다.
[나를 찾아 줘.]편지를 읽은 앨리스는 어떻게 해야 할지 하염없이 고민했다.
분명 언니를 만나고 싶었다. 이 지도 조각은 말하자면 언니가 내건 시험이었고, 그걸 따라가면 분명히 언니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녀가 학교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랐기에, 해석한 지도 조각이 가리키는 곳을 찾아가려 해도 시간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럴 용기도 없었다. 맥아더 공원 같은 먼 곳에 혼자 가 볼 엄두가 나지 않았고, 그 뒤에 찾아올 부모님의 추궁 역시 무서웠다.
『“결정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어. 지도 조각을 항상 소중하게 품고 다니면서도 나는 그것을 찾아 나설 결심을 하지 못했지. 그러던 어느 날,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 펑 터져버렸을 때였나. 잃어버렸어. 아니, 어쩌면······ 더는 고민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버린 걸 수도 있지.”
앨리스는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무력하게 집과 학교만을 오가는 삶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때, 네가 나타난 거야.”
“······.”
도서관에 처음 왔다면서, 잃어버린 지도 조각을 보여준 소년.
그리고 그는 도움을 청해 왔다. 여기에 있을 보물을 찾으려 한다고.
그 말에, 왠지 마음이 편해졌다.
스스로는 용기를 내지 못했지만, 혼자가 아닌 둘이라면.
언제나 고민만 하고 움직이지 못하던 소녀는, 폭풍처럼 찾아온 소년에게 이끌려 마침내 언니를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그날부터 지도가 이끄는 대로 토니와 함께 로스앤젤레스 곳곳을 다니며 언니를 계속해서 찾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이 탐험 자체가 언니가 보내는 편지라는 사실을.
“우리끼리 언젠가 가 보자고 말했어. 박물관, 카니발, 그리피스 공원 등등. 그렇게 항상, 항상 말만 했어. 우리에게는 시간이란 게 없었으니까. 그게 변명이라는 건 알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 그리고 언니는 내내 그게 마음에 걸렸던 거야.”
죄책감에 고개를 푹 떨어뜨리며 사죄하는 앨리스.
“······미안해. 너에게 너무 고마웠지만, 사실은 너를 지금까지 속여 왔어.”
그 앞에서 토니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적막이 감돌았다. 나무에 걸린 잎사귀가 달빛을 가로막으며 점점이 그림자 졌고, 그 너머로 보이는 아스라한 별빛은 마치 은하수처럼 느껴졌다.
‘보물이 없다고?’
문득 허탈한 감정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했다. 소년은 이 자리에서 생애 가장 큰 해방감을 느꼈다. 세상의 거대함과 자신의 작음을 동시에 느꼈다.
그렇게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모든 것이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괜찮아. 앨리.”
마치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마음에서 말이 흘러 나왔다.
“보물보다 더 멋진 경험을 하게 해 줘서 고마워.”
그리고 씨익 웃었다.』
소년은 소녀를 이해했고, 그로써 자기 자신의 마음도 이해하게 되었다.
자신이 왜 이 여자애에게 이끌렸는지.
드넓은 세상을 함께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원망하는 감정은 전혀 들지 않았다. 자신과는 다른 시선을 알게 되었고, 그 과정 자체가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앨리스 역시 자신의 모든 아픔과 슬픔을 털어놓고, 상대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준 것에서 크나큰 해방감을 느꼈다.
그 밤하늘 아래서 두 사람을 옭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동이 트는 새벽,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갔고 엄청나게 혼이 났다.
하지만 괜찮았다.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얻은 값진 추억을 얻었으니까.
그렇게 ‘About T’는 14화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다소 충격적인 방식으로 전개를 보여주었지만, 10대 소년 소녀가 겪을 법할 고민과 애환이 담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틴에이지 성장물다운 이야기였다.
이제 일종의 에필로그로서, 토니와 앨리스의 변화와 앞으로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보여주는 대단원이 진행될 마지막 15화만이 남았다.
그리고 14화가 연재된 그날, 나는 줄리아 챈들러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작가님, 혹시 다른 작가님 만나보실 생각 있으세요?]현재까지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서 계속 신문 연재를 이어나가고 있는 작가, 글렌다 호프먼이 직접 나를 만나고 싶다고 요청해 왔다고 했다.
줄리아의 말에 따르면, 평소에는 그런 요구를 한 번도 안 하던 분인데 작가님 작품이 마음에 든 모양이라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글렌다 호프먼이 나를?’
그녀는 현재에도 정말 잘 나가는 작가 중 하나였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같은 대형 신문사에서 계속 연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증거였다.
작품 자체가 문학적인 색깔이 짙어 나처럼 막 엄청난 화제성을 몰고 오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오래 활동해 온 작가로서 오래전부터 쌓은 상당수의 고정 팬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캘리포니아는 물론이고, 미국 문학계 쪽으로 넓은 인맥이 있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한번 얼굴을 비춰둬서 나쁠 건 없겠군.’
오히려 내 쪽이 더 바라는 상황이었다.
***
방문일은 이틀 뒤, ‘About T : Viewfinder’의 마지막 화가 연재되는 날로 잡혔다.
마침 주말이었고, 나는 혼자서 그녀의 집에 방문하기로 했다.
작가로서 나보다 훨씬 이름을 알린 그녀가 먼저 만남을 요청한 이상, 줄리아가 자리에 있는 것이 그녀 입장에서 방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점심을 먹은 뒤, 미리 안내받은 주소로 차를 몰아 그곳으로 향했다.
글렌다의 집은 로스앤젤레스 외곽의 부촌에 위치해 있었다. 근처에 차를 세우고 현관문을 두드리자,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탈색된 회색 머리가 굉장히 매력적인, 중년보다는 노년에 가까운 푸근한 인상의 여성이 나를 반겨 주었다.
전생에는 흑백 사진에서나 볼 수 있었던 글렌다 호프먼이었다.
“어머나아. 이렇게 젊고 멋진 청년이 올 줄은 몰랐네.”
“······아, 안녕하세요. 글렌다 호프먼 작가님 맞으시죠?”
나는 그녀의 환대에 약간은 당황했다. 다른 이들처럼 아직 어린 내 겉모습을 보고 놀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편하게 글렌다라고 부르라고 한 뒤 웃으면서 나를 집안으로 이끌었고, 느릿한 발걸음으로 어딘가 그리운 느낌이 드는 응접실로 안내했다.
“편히 있어요. 집에 나 혼자니까.”
“아, 넵.”
“혹시 파이 좋아해요?”
“어, 환장합니다.”
“호호, 정어리 파이도?”
“······넵.”
나는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대답했고, 그녀는 여전히 푸근한 미소를 지은 채 부엌으로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글렌다 호프먼은 영국계였지.
순간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지나갔지만, 다행히 일종의 아이스 브레이킹이었는지 그녀가 가지고 온 것은 바삭한 식감이 눈으로도 느껴지는 애플파이였다.
“호호, 정어리 파이가 아니라서 실망했을까?”
“다음이 있다면 그쪽도 기대하죠.”
“솜씨를 발휘할 보람이 있겠는데? 많이 먹어요. 세 판 더 있으니까.”
······세 판이나?
하지만 다행히도 내 10대의 위장은 활발했고, 글렌다의 애플파이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점심을 든든히 먹고 왔음에도, 노작가의 앞에서 긴장의 끈을 놓게 만들 정도의 맛이라고 해야 할까.
포크를 거침없이 움직이며 우걱우걱 먹고 있자니, 그녀가 홍차를 마시며 입을 열었다.
“이번 작품,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우리 손주들도 너무 좋아하더라고.”
“감사합니다. 저도 글렌다의 작품을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래요? 어떤 작품?”
“이런 말씀, 어떻게 들으실까 모르겠지만.”
나는 곧바로 데뷔작인 ‘타이런트’를 언급했다.
그러자 글렌다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그걸 읽었어?”
“네. 도서관에서.”
나는 어느 비평가가 글렌다의 데뷔작을 이렇게 평론했던 것을 기억한다.
[여자의 푸념에 불과하다.]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글렌다는 80년대에도 ‘무척 오랜 옛날’이라고 할 수 있는 시대의 가정주부이자 아내, 아이들의 어머니로서 살았던 자신이 겪은 경험과 감정을 글로 써내는 작가였다.
그리고 그녀가 데뷔한 시기는 사회 전반적으로 80년대보다 더 마초성이 강했던지라, 그 스타일이 비평단 측에 안 좋은 평가를 받았더랬지.
그러나 그녀가 작가로서 원숙해지고 아이들도 자라면서, 개인적으로 그녀의 작품 안에 맺힌 ‘푸념’이 조금씩 옅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대신 점점 깊고 복잡한, 세대를 아우르는 감정을 섬세하게 다루게 되었고, 꾸준한 작품 활동 끝에 지금의 유명 작가가 되었다.
그럼에도 내게 무엇보다 깊게 와 닿았던 작품은 바로 그 데뷔작, ‘타이런트’였다.
폭군투성이인 집안에서 자신을 노예처럼 느끼던 한 젊은 주부가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는 내용.
나는 그 글을 좋아했다. ‘젊은 주부’가 자신의 삶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감정이 여과 없이 절절히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 감상을 들은 글렌다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폭소했다.
“그거 남편이 첫 독자였는데~. 다 읽더니만 떨리는 목소리로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오?’라고 묻지 뭐예요! 하여간, 글은 글일 뿐인데.”
“저도 ‘Mother’ 때 비슷한 소리를 듣기는 했죠. 뭐, 정작 모델이 된 저희 어머니나 한인 교회 분들은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면서 신경도 안 쓰셨지만 말이에요.”
“아~ ‘Mother’. 그 작품도 유명했죠. 미안해요. 내가 무서운 건 잘 못 봐서 찾아 읽지는 못했네요.”
“아닙니다. 저도 글렌다의 작품을 다 읽지는 못했는걸요.”
“그렇다면 이걸로 서로 미워하기 없기예요? 내 친구들 중에는 만날 때마다 자기 작품 읽었냐고 성화인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서. 그래도 이번 작품은 꼼꼼히 정독했어요. ‘About T’. 톡톡 튀는 감성이 정말 잘 느껴져서, 주책 맞는 짓이라는 걸 알지만 어떤 작가가 이런 글을 썼는지 한 번쯤 만나고 싶었죠. 보는 김에 손주들 줄 사인도 받고. 아, 특히 오늘 연재분 마지막 부분, T로 이어지는 문장이 정말 좋았어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신문을 펼치면서 주름진 손가락으로 문장을 훑는 글렌다.
나 역시 그녀의 손짓을 따라 마지막 화를 다시 살펴보았다.
보물찾기가 끝나고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토니는 마치 네버랜드를 다녀온 웬디와 같은 기분에 휩싸인 상태였다.
문제는, 더 이상 자신을 데리러 올 피터 팬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보물을 발견하며 모험은 완전히 끝났고, 네버랜드는 사라지고 말았으니까. 별과 그림자, 그리고 두 사람만이 있던 그날의 순간은, 한여름 밤의 추억으로만 남는 듯했다.
물론, 좋은 경험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앨리스와 함께 로스앤젤레스는 물론이고, 더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두려움이 샘솟았다. ‘지도’라는 구심점이 없는데, 과연 앨리스와 잘 지낼 수 있을까. 그 전까지 전혀 접점이 없던 사이였는데.
그렇기에 그날 이후 자기도 모르게 조금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토, 토니······!”
환청이 아니었다. 등 뒤에서 그동안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천천히 뒤돌아서자, 잔뜩 겁에 질린 듯한 얼굴을 한 앨리스가 토니의 두 눈에 담겼다.
“미, 미안.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어, 음.”
“혹시······ 나중에 생각했을 때 그날 일이 기분 나빴나 싶어서. 그 후로 찾아오지 않으니까······.”
“······절대 아니야. 앨리. 그런 게 전혀 아니라고.”』
며칠간 했던 고민을 앨리스의 앞에서 숨김없이 털어놓는 토니.
이번 여행이 끝나고 이 멋진 기억이 빛바래가는 것이 어딘가 허무하게 느껴졌다. 단지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 시간은 흘러가고 다시 지긋지긋한 일상이 찾아왔다. 그날 밤 내 마음은 그렇게나 벅차올랐는데, 이제는 진정으로 무엇을 얻었는지조차 모르겠다.
그의 말을 들은 앨리스는 가방 안에서 조심스럽게 사진 다섯 장을 꺼낸다.
카메라 안에 들어있던 필름을 인화하여 나온 결과물.
그것은 앨리스가 그대로 성숙하게 자란 것 같은, 하지만 더욱 밝고 명랑한 표정을 지은 여자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토니는 그녀가 앨리스의 언니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맥아더 공원, 박물관, 카니발, 그리피스 공원, 그리고 붉은 끈이 달린 나무.
그녀가 사진 속에서 들고 있는 종이에 쓰인 글자를 두 사람이 방문한 순서에 따라 재조립한 뒤, 토니는 문장을 완성했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나의 동생. 곧 보자.]『“······전부 네 덕분에 언니의 전언을 받을 수 있었어.”
“정말로 널 끔찍하게 생각하는구나.”
“후후, 그렇지? 이 사진을 보면서 언니가 집을 나가기 전에 나한테 했던 말이 떠올랐어.”
“무슨 말?”
“일상은 우리를 지치게 만들지만,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멋진 여정이 곁에 있을 거라고. 어쩌면 그 끝에는 보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언젠가는 너와 같이 시도하고 싶다고 생각한다고. ······언니는 자기가 말했던 대로 직접 해 본 뒤에, 나에게 그걸 가르쳐주고 싶었던 거야.”』
Tired, Turn, Travel, Treasure, Think, Try, and Teach.
T로 시작되는 단어로 운율을 이루며 만들어진 문장.
그리고 Tony는 요 며칠간 줄곧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바를 이야기했다.
서로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두 사람이서, 함께 세상을 알아갈 용기를 내보기로.
『“앨리. 그 사진기에 우리의 여정을 담아, 언젠가 만날 너의 언니에게 보여 주자.”』
“어쩜, 이리도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썼는지.”
“가, 감사합니다.”
푸근한 미소 앞에서 나는 살짝 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래도 이분은, 그저 귀여운 손주 대하듯이 내 소설을 칭찬하고 싶어 부른 모양이었다.
[ 『About T : Viewfinder』 (3) > 끝(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