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2)
12.
타자기는 생각보다 무거운 물건이었다.
‘하드보일드 나인 싸우전드’.
15kg의 괴물. 검은색의 유광. 게다가 제품 아래에 타자기 용지가 한가득했다.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차근차근 그것들을 방으로 옮긴 뒤, 나는 책상 위를 정리하고 그 위에 놓아두었다.
절로 감탄이 나왔다.
“크으, 이거지.”
이제야 좀 작가의 방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왜 사이먼이 이 타자기를 내게 보냈을까.
그 의문은 용지를 정리하다 나온 쪽지에서 해소가 되었다.
[신문사에 남는 타자기가 있어서 보냅니다. 존경하던 선배 기자가 남기고 간 물건이니 부담 갖지 말고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그런 거였군.’
나는 매끈하게 빠진 타자기의 외형을 보면서 생각했다.
하드보일드 나인 싸우전드는 내 기억에 의하면 이때 기준으로도 발매되고 10년 정도 지난 올드한 제품이었다. 그 당시의 작가, 기자는 모두가 탐을 내던 물건이었다고······ 잡지에서 봤다.
그 쌔끈한 몸체를 둘러보던 나는 왼쪽 귀퉁이에서 한 서명을 발견했다.
R. T. Chandler.
“뭐야?”
그 이름을 모르는 펄프 픽션 팬이 있을까.
레이먼드 손턴 챈들러.
하드보일드의 아버지와 같은 소설가로, ‘필립 말로’라는 전설적인 캐릭터를 창조한 인물이었다.
그 서명이 여기에서 발견되다니. 이것이 챈들러가 쓰던 타자기였다는 말인가······는 개뿔. 챈들러는 1959년에 죽었으므로 이 타자기를 절대 쓸 수 없는 남자였다.
‘어이가 없군.’
잘 모르는 부르주아에게 팔기 위해 제작된 가짜 타자기일까.
어쨌든 외양도 멋졌고, 시험 삼아 눌렀을 때의 그 묵직한 타건감도 마음에 들었다.
‘한번 써볼까.’
일찍 일어난 만큼 아직 시간이 꽤 남았던 터라, 나는 자리에 앉아 함께 동봉된 잉크 리본을 새로 끼워 넣고 타자기를 쓸 준비를 시작했다.
타자기는 자판이라고 할 수 있는 글쇠를 누르면 거기에 연결된 활자대가 움직여서 종이에 글자를 찍는 아날로그한 물건이었다. 마치 피아노의 내부처럼 세밀하게 조형된 길쭉한 활자대는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매력이 존재했다.
종이를 끼우고 수평을 맞춰 고정한 뒤, 마침내 그것을 두들겼다.
타닥, 타다다닥.
글쇠를 누를 때마다 활자대가 반원을 그리며 솟아올라 종이에 글씨를 새겼다. 처음에는 약간 어색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타자를 치는 속도가 빨라졌고, 마치 거미가 다리를 써서 뽑아낸 실로 먹잇감을 휘감을 때 같은 모양새가 나왔다.
그렇게 한 줄을 다 쓰자 소리가 들려왔다.
띵-!
리턴 레버를 밀어 다시 왼쪽으로 타자기를 당겼다.
드르륵······! 철컥-!
“Holy mother.”
이거지.
리볼버를 장전하는 듯한 멋진 사운드.
거기에 중독된 나는 아무 의미도 없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을 차근차근 써나갔다.
주제는 간단했다.
만약에 이게 진짜 레이먼드 챈들러의 타자기였다면 어땠을까.
***
[WIN!]길거리 신문 가판대에 놓인 토런스 뉴 미디어의 큼직한 타이틀은 출근을 위해 버스를 기다리던 이들의 눈에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패기롭게 레이건의 승리를 축하하는 그 헤드라인은 리퍼블리칸 측에 투표한 이들이 신문을 집어 들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쿼터 동전 하나씩을 내고 신문을 산 이들은 이른 아침의 서늘한 공기 냄새를 맡으며 토런스 뉴 미디어를 읽기 시작했다.
레이건이 어떤 식으로 승리했는지, 그리고 향후 행보는 어떨지. 타이틀은 자극적이었지만 기사는 생각보다 중립적이었고, 글을 읽는 이에게 만족감을 주었다.
사이먼의 예상대로 인쇄소를 확충한 보람이 있었다.
곳곳의 신문 판매원과 가판대, 그리고 가게 주인들은 토런스 뉴 미디어의 높은 판매고에 놀랐다. 늦은 밤이 되어 신문 회수원이 와 남은 신문을 가져갈 때, 토런스 뉴 미디어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만큼이나 재고 부수가 적을 정도였다.
“뭐야. 오늘 토런스 엄청 많이 뽑았던데 왜 이렇게 적게 남았어요?”
“타이틀을 봐라. ‘WIN’ 심플하지? 다들 여기에 혹했잖아.”
“허어, 신문이란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신문 회수원과 가판대 주인이 대화를 나누는 걸 듣던 한 남자가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신문 하나 주쇼.”
후안 베가.
멕시코 이민자 출신으로, 가족과 함께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며 공장 야간 경비원으로 입에 근근이 풀칠하며 살아가고 있는 남자.
그는 평소에 읽던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 토런스 뉴 미디어 사이에서 잠깐 고민하다가 이내 토런스 쪽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버스 막차를 타고 공장으로 출근했다.
시외에 있는 유리 공장. 야간 교대를 끝마치고 좁은 경비실에 앉은 후안은 커피를 끓이면서 가져온 트윙키를 먹기 시작했다. 달다 못해 쓰기까지 한 과자는 정신을 일깨우는 데 도움을 주었다. 순찰을 다녀온 뒤 그는 적당히 식은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로널드 레이건의 승리.
공화당이 백악관에 깃발을 꽂았다. 그로 인한 변화 예측과 반대 진영인 카터 측의 반응 등을 실은 기사 본문은, 의외로 타이틀과는 달리 온건한 편이었다. 그것은 지미 카터의 애널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사장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소속 기자들이 저널리즘 정신을 지키고자 노력한 결과였지만, 일개 유리 공장 야간 경비원인 후안이 그 사실을 알 리는 없었다.
밤에 일하는 사람은 지독한 고요를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하는 법이었다.
후안이 택한 방법은 글과 라디오였다.
옆에 심야 라디오를 틀어둔 채로 천천히 느긋하게 토런스 뉴 미디어를 읽어나가는 후안. 그러다 커피를 홀짝이고, 시간이 되면 순찰을 돌고.
수 시간에 걸쳐서 느긋하게 신문을 읽던 그는 새벽 세 시를 넘어갈 무렵, 문화 섹션 페이지에 도달했다.
마침 오늘 자로 연재를 시작한 소설이 보였다.
‘Mother’.
별생각 없이 그것을 읽기 시작한 후안은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개였다고?’
소설의 화자가 사람이 아닌 개였다니.
그것을 염두에 두고 다시 읽자 몇 가지 복선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다 1화에서 개와 함께 등장한 여성의 기이한 행동은 다음 화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후안은 그럭저럭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을 마치고 이른 새벽 퇴근했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
똑같은 가판대 앞에서 저도 모르게 걸음이 멈췄다.
“토런스 뉴 미디어 한 부 주슈.”
쿼터 동전을 내고 신문을 산 그는 ‘Mother’의 2화를 찾았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소설이 연재되고 있었다.
‘격일 연재인가.’
그러고 보면 경비실에 두고 온 11월 6일 신문에 그렇게 쓰여 있던 것 같기도 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후안은 그날부터 뇌내의 한켠에 ‘Mother’라는 소설을 넣어두었다.
잠을 자고 일어나, 늦은 밤.
출근하는 길에 7일 신문을 가져가서 읽고, 퇴근하는 길에는 참았다. 그리고 다음 날 출근하는 길에 8일 신문을 사서 ‘Mother’의 2화를 읽었다.
그렇게 토런스 뉴 미디어는 후안의 일상이 되어갔다.
3화, 4화, 그리고 5화.
소설을 읽을수록 후안의 일에 작은 문제가 생겼다.
새벽 네 시, 순찰 시간이 찾아왔다.
‘Mother’의 5화를 다 읽고 평소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랜턴을 챙겨 밖으로 나가려던 후안은 등줄기를 서늘하게 찌르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순간 놀라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았고, 창문 밖으로 펼쳐진 어두컴컴한 광경에 압도되어 몸이 굳어졌다.
‘뭐야?’
후안은 할 말을 잃었다.
그동안 일해온 유리 공장은 그곳에 없었다.
그 대신 ‘Mother’에 대한 상상이 그 광경을 덧칠했다.
『수지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무력한 존재였다.
그녀는 비좁은 새장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다른 아이들이 부모님의 보호 아래 세상 밖으로 나가 열심히 날갯짓을 배우는 동안, 수지는 윙 컷을 당한 앵무새처럼 골방 안에 갇혀서 기도를 드려야 했다.
어머니는 ‘Han-ja’가 새겨진 성모상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
“Seongmonim-! Maria-nim-! boodi uri-reul guwon-hasoseo!!”
수지는 어머니가 살아온 나라에서 썼을 그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마리아’라는 단어만 겨우 알아들었을 뿐이었다.
“Nae ddal-i bam-e jip-bbak-eu-ro······!”』
읽을 수도, 그 의미도 알 수 없는 알파벳의 연속.
수지의 어머니는 누가 보더라도 미친 사람이었다.
잘 씻지도 않고 타인과의 교류 역시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근처 세탁소에서 일했지만 제대로 된 소통이 가능한 인물이 아니었다.
일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계속 성모상 앞에서 알 수 없는 말로 기도를 드렸다. 향을 피우고 온갖 기괴한 색깔이 나는 천을 방에 두른 채 울부짖었다.
그 안에서 수지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가 잠든 시간에 벌이는 약간의 일탈뿐이었다.
『수지는 죽은 강아지, 토미를 매일 그리워했다.
하지만 집에서는 마음대로 감정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그것은 어머니가 가장 혐오하는 행위였다. 그렇기에 수지는 매일 밤, 어머니가 잠든 시간에 몰래 집 밖으로 나가 토미를 묻어둔 곳에서 한참을 울다 돌아왔다. 기도와 학교, 애도의 반복. 어머니의 기도는 점차 격렬해졌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연신 내리찍었으며 그 과정에서 피가 나기도 했다.
“수지! 너도 하렴! 어서!”
그리고 그것을 수지에게 똑같이 강요했다.
수지는 똑같이 바닥에 머리를 찍었다. 눈물과 고통 속에서 수지는 죽은 토미에게 미안하다며 사죄했다. 격렬한 기도가 끝이 나고,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기도는 끝났다. 모두 다 잘될 거야.”
“네, 어머니.”
“수지, 내가 어떤 기도를 드렸는지 알겠니?”
“모르겠어요.”
“나는 성모님께 이렇게 빌었단다. ‘Nae ddali bbakeuro nagaji malguireul.’ 이 기도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겠니?”
“죄송해요. 잘 모르겠어요.”
수지는 몇 번이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 앞에서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말하였다.
“네가 밤마다 밖에 나가지 말게 해달라고 했단다.”』
거기까지가 5화의 내용이었다.
‘수지의 행동을 다 알고 있었어.’
2화, 3화, 그리고 4화까지 수지의 어머니가 내뱉었던 알 수 없는 말의 의미. 그것도 모른 채 옆에서 함께 기도드렸을 수지를 생각하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하지만 일은 일이었으므로 감정을 추스르며 경비실 밖으로 발을 옮겼고, 후안은 천천히 공장 안을 거닐며 순찰을 시작했다.
공장 안의 유리에 반사되어 비친 자신의 모습이 수지처럼 느껴졌다.
‘이런 기분이었나.’
그리고 집 안에서 지켜봤을 어머니의 모습 같기도 했다.
다시금 소름이 돋았던 후안의 걸음이 조금씩 빨라졌다.
***
11월 6일만 넘기자.
그렇게 생각했던 토런스 뉴 미디어의 직원들은 그 후 일주일이 넘도록 강도 높은 업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들 스스로 몰래 말하길 ‘사-the-shithole-장’은 이번 일만 잘 넘기면 상여금을 지급했다고 약속했으나 그 말을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레이건의 당선 이후로, 갑작스레 신문의 구독자 수와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반대편의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구독자 수가 떨어졌다는 사실로 미루어 짐작해 보았을 때, 분명 그동안 쌓인 반 좌파적 성향이 반발을 일으킨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단지 그것만으로 토런스 뉴 미디어의 구독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건 결코 아니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필력을 지닌 구성원들의 능력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당연한 이유만으로는 설명이 어려울 정도로 확연히 구독자 수가 늘어났다.
다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골똘히 생각했지만, 워낙 일정이 바쁜 덕분에 제대로 된 답은 내놓지 못하고 업무에만 몰두해야 했다.
다들 제대로 씻지도 못해 꾀죄죄한 상태.
아침 회의에 들어온 사장은 사이먼부터 찾았다.
“사이머언-!”
“네, 네! 사장님!”
“인쇄소를 늘려라?! 어떻게 그 지점을 짚었나! 정말 대단하군! 오늘도 예뻐!”
“가, 감사합니다?!”
휴고 어빙의 눈초리가 사나워진 걸 느낀 사이먼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움츠렸다.
신 작가의 부탁대로 사장의 마음에 들기 위해 뭔가를 더 해볼까 싶기도 했지만, 제 주제를 잘 알았던지라 그는 한동안은 상황을 지켜볼 생각이었다.
게다가 문화 섹션 역시 다른 페이지와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강도 높은 업무에 시달려 어쩔 수가 없었다. 전체적인 업무는 이전과 다름없었지만, 거기에 일 하나가 추가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이머언~.”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또 같은 일이 벌어졌다.
자리에 앉은 사이먼은 미스 브라운이 돌려주는 전화를 받았다.
“네, 토런스 뉴 미디어의 사이먼······.”
[안녕하세요!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어서 전화드렸는데요!]“네, 듣고 있습니다.”
[‘Mother’ 말입니다! 그 빌어먹을 작가 놈에게 전해주십쇼! 당신 소설 때문에 요즘 내 마누라가 잠을 통 못······!]“감사합니다. 의견 전달드리겠습니다.”
사이먼은 짧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푸후우.”
이건 그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마른세수를 하는 사이먼을 보고 싱긋 웃은 미스 브라운이 담배를 든 채 가까이 다가왔다.
“오늘도 ‘Mother-lover’에요?”
“예. 그동안은 이런 일이 전혀 없었는데 말이죠.”
설마 소설 모집 공고 번호로 전화를 걸어오는 팬이 있을 줄이야.
11월 6일, 예정대로 시작된 ‘Mother’는 예상보다 훨씬 더 큰 파급력을 낳고 있었다.
그리고 더 두려운 사실은, 아직 ‘팬레터’는 도착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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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her』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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