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22)
122.
홈커밍 데이를 즐겁게 보내고 난 바로 다음 날.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가게를 보던 중, 타이밍 좋게 줄리아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제 또 ‘일’을 시작할 때라는 의미였다.
[홈커밍 데이는 어떠셨어요?]“아주 즐거웠습니다. 작품에 도움도 많이 될 것 같았고요.”
나는 솔직한 감상을 말했다.
고등학교 시절의 마지막 홈커밍 데이는, 내 내면에 찌꺼기처럼 남아 있던 열등감 내지는 공포로 표현할 수 있는 일말의 감정을 완전히 흘려보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 시기였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학창시절이 끝나기 전에 늦지 않게 그것을 이룰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번 일을 겪으며 나는 굉장히 여러 가지 생각을 했고, 그것을 내면에서 잘 갈무리하면서 다음 소설을 쓸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어떤 점에서 도움이 될 것 같으셨던가요?]“설명하자면 좀 복잡하네요. 소설로 보시죠. 곧 보낼 테니까요.”
줄리아에게는 그런 식으로 말했으나, 머릿속으로는 이미 정리가 다 끝난 상태였다.
‘홈커밍 데이에서 얻은 바라.’
개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케이트 무어와의 관계가 있을 수 있겠다.
막상 시간이 지나 다시 마주한 그녀는 내가 멋대로 상상하고 피하려 했던 대상이 아니었다. 그녀 역시 그저 평범한 고등학생에 불과했다. 전생에도 내가 조금 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케이트를 대할 수 있었더라면, 우리의 관계는 나의 일방적인 회피로 끝나지 않았을 터였다.
그녀가 왜 그렇게 학생으로서 자신의 올바른 모습에 집착하는지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정확히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중요한 것은 결국 내 마음이었다.
나는 전생에 내 마음을 꿰뚫었던 그녀가 쏜 화살을 떠올리며 지금까지 줄곧 방송반과 엮이는 일을 피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깨달았다. 누군가 화살을 쏠 경우 어째서 쏘았는지 분석하고 그대로 돌려주면 그만이었다.
그 무엇보다, 어떤 순간에도 내가 원하는 선택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강해지는 것이 중요했다. 그것을 이번 홈커밍 데이로 확실히 느꼈다.
사실 이번 학교 행사에서의 나는 구경꾼이나 조연에 불과했다.
캘리포니아로 나가면 널리 이름이 알려진 유명 작가였으나, 학교에서는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클럽 활동도 딱히 하지 않고 공부만 열심히 하던 놈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 그 입장을 원했고, 지금도 그러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있다.
어차피 내 꿈은 학교에 있는 것이 아니니까.
‘더 바깥에 있지.’
그래서 흘려보낼 수 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친구들을 보면서 난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나 고민하지 않을 수 있던 게 아닐까.
자재나 나르면서, 공연하는 이들과 무대 위 하이라이트 아래에서 사회를 보는 케이트를 부러워하던 방송반 소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이번 삶에서는 처음부터 그런 상태였으나, 새삼 이 상황을 정확한 언어로 만들어 되새김질하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더더욱 편해졌고, 그 감정을 소설에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글을 쓰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니까.’
무엇보다 이렇게 된 자신이 마음에 들었다.
[가끔 보면 굉장히 신기하단 말이죠.]“어떤 게요?”
[작가님이요.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그저 평범한 학교 행사 중 하나일 뿐일 텐데, 그것이 마주한 작가님은 이런저런 생각과 고민을 통해 작품을 만들어 내겠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요. 당장 저만 하더라도 홈커밍 데이 때 그냥 생각 없이 친구들하고 행사 즐겼던 것 같은데 말이죠.]“그 옛날에도 홈커밍 데이가 있었어요?”
[······작가님?]“시, 실례했습니다.”
나는 무언의 압박을 느끼고 곧바로 사과했다.
[호오, 그렇게 개인사로 들어가시겠다 그거죠?]“네? 아니, 그런 건 아니었는데요.”
[작가님 이번 작품 앨리스가 본인 모델인 거 맞죠?]“아닌데요?”
나는 다소 뻔뻔하게 말했다.
[정말요? 너드에 패션 감각 떨어지고······.]“······.”
이때 기준에서 보면 조금 구려 보일 수 있지만, 미래의 트렌드를 기준으로 보면 내 패션 감각은 무척 훌륭한 편이었다.
[공부 잘하고, 그 나이 대에 맞지 않는 통찰력을 지녔는데?]“흔히 있는 사람 아닙니까?”
[작가님 같은 사람이 흔하다고요? 전 세계를 뒤져도 한 명 나오기 힘들 텐데?]“······아니, 앨리스 같은 사람이죠. 당연히. 왜 몰아가신담?”
[앨리스가 가장 좋아하는 맨은?]“스파이더맨. ······아, 그만해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나도 같은 맨을 좋아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연의 일치일 따름이었다.
게다가 스파이디는 과거부터 미래까지 얼마나 인기가 많은 히어로인데.
[그러면 이건 어때요. 금발에다 학교에서 제일 잘 나가고 잘생긴 남자친구를 두게 될 텐데? 설마 두 사람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하시면서 빠져나가지는 않겠죠? 작가님?]“······그게 무슨 상관이죠.”
[작가님 여자친구도 학교에서 제일 예쁘고 제일 잘 나가는 여자애잖아요.]“농담도. 알렉사는 제 여자친구가 아닙니다.”
[후후, 그렇군요.]“줄리아. 뭔가 제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친데요.”
[아니, 그냥.]피식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줄리아는 이렇게 말했다.
[여자의 감이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요.]그 말을 들고서 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
반쯤 잡담을 곁들여 진행된 줄리아와의 전화 미팅을 끝으로, 나는 본격적으로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뭐, 잡담을 많이 나눴다는 사실 자체가 기획에 별문제가 없다는 뜻이었다.
가장 먼저 이 시리즈물을 구상하기 시작했을 때의 감정을 일단 머릿속에서 되새겼다.
전작에서 이어지는 시리즈물인 만큼, 필수적인 절차였다.
‘About T : Homecoming’.
나는 두 번째 시리즈의 주요 화자를 토니가 아닌 앨리스로 잡았다.
줄리아의 앞에서 부정하기도 했고, 실제로도 그랬지만, 확실히 앨리스는 나를 닮은 구석이 있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모티브는 일부 따 왔을지언정, 절대로 나 자신을 본 따서 만들지는 않았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가져와 만들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순간, 그 캐릭터의 한계는 명확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회귀를 겪은 나와 앨리스를 결코 동일선상에 둘 수는 없지.’
나는 이 세상의 그 어떤 누구도 얻지 못한 기회를 얻었다.
그 비현실적인 일로 인해 많은 이득을 얻었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 스스로 껍질에서 깨고 나올 수 있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 기적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지금 소설 속에서 묘사할 앨리스처럼 내 안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과연 흘려보낼 수 있었을까 싶었다.
‘절대 아니겠지.’
전생의 나는 혼자만의 세계에 갇힌 채로 오랜 시간을 보내, 크게 상처 입고 세상에 대한 증오를 가졌었으니까.
앞선 경험이 증명해 주듯, 원래의 나로서는 그렇게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내가 회귀라는 일을 겪지 않았다면?
하지만 그럼에도, 어떤 우연한 계기로 알렉사 플레어와 친구가 되었다면?
녀석은 정말 좋은 성격이니까, 친구가 되었다면 내가 작가가 아니어도 마음을 나누고 지내면서 나를 훨씬 밝은 세계로 이끌어 줬겠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각도 못 한 일이 벌어질 터였다.
‘내가 두피나 지우가 아닌, 알렉사의 다른 친구들과도 어울릴 수 있었을까?’
문득 홈커밍 데이 때 만났던 알렉사의 친구, 티미 앤 마이크를 떠올렸다.
‘잠깐 스치듯 지나갔지만.’
그 둘과 회귀를 겪지 않은 내가 함께 다녔다면······ 아마 무지하게 어색했을 테지.
그 상황을 나 자신을 기준으로 잡고 생각했을 때는 결코 웃음이 나오지 않았지만, 앨리스라는 소설 속 캐릭터로 그 장면을 상상하자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그래, 이거 분명 괜찮은 소재다.
‘엄마가 사준 스웨터만 입고 다니는 너드 여자애가, 잘 나가는 무리와 섞이면서 생기는 이질감.’
그런 고민 끝에, 나는 앞서 짜 놓았던 기존의 설정에 홈커밍 데이 때 여러 일들을 겪으며 떠올린 발상을 접목시킨 상태였다.
그 결과, 방송반의 리더 ‘케이트 무어’라는 모티브가 앨리스에게 일부 섞이게 되었다.
모범생에 평소 도서관에서 조용히 지내는 앨리스가, 홈커밍 데이 행사를 주관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앨리스는 자신이 이전까지 겪지 못했던 수많은 사건을 통해 성장하고, 그로써 최종적으로 어떤 감정을 ‘흘려보낼’ 수 있을 테지.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너무 무겁지는 않게.’
어디까지나 가볍고, 약간은 로맨틱하며, 틴에이저 특유의 공감 가는 심리를 바탕으로.
그리고 거기에 마지막으로 나라는 작가의 테이스트를 한 스푼 첨가.
‘전작이 그랬듯이, 추리물적인 요소를 작품의 테마를 강화하기 위해 연결한다.’
그리하여 하나의 소설이 완성되었다.
***
1984년 4월 2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문화 섹션에 ‘About T : Homecoming’의 연재 예고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날부터 센트럴시티 밸류 하이스쿨의 학생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 우리 학교도 얼마 전에 홈커밍 데이 했잖아.”
“신 작가가 설마 우리 학교 행사에 참가했나?”
“전에 보니까 배경이 되게 비슷했는데, 어쩌면 학교 관계자일 수도?”
“푸하하하! 그러면 재밌겠다!”
이전 작에서 나왔던, ‘혹시 이 학교를 모티브로 삼은 게 아닐까?’ 하는 소문에 신빙성이 생겼다.
그리고 덩달아, ‘신’이 센트럴시티 밸류 하이스쿨의 관계자라는 소문까지.
사실,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굉장히 합당한 추측이었다.
‘About T’의 배경이 되는 학교 ‘해밀튼 아카데미’의 묘사는, 물리적으로 봤을 때 센트럴시티 밸류 하이스쿨과 무척 닮았다. 공립이라는 점부터 시작해서, 체육관과 본관이 구분된 구조, 학교 뒤편에 수돗가가 있다는 점까지.
그럼에도 이들이 ‘SEEN’과 ‘Shin’의 연관성은커녕, 학교 내부의 인물이라는 점마저 지금껏 쉽게 떠올리지 못한 이유는, 일종의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하이스쿨을 다니는 학생이 현재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작가라고는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나마 눈치 빠른 몇몇이 ‘교직원이 아닐까.’ 하고 추측하는 정도.
하지만 그것조차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는 것이, ‘About T’에서는 이곳의 학생이 아니면 쉽게 접하기 힘든, 현재까지도 틴에이저 사이에서만 오가는 비밀스러운 소문이 작중이 종종 언급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디에서 놀면 교사들 눈길을 피할 수 있다더라.’
‘어떤 교실에서 무슨 행동을 하면 고스트가 나온다더라.’
‘옛날에 이 학교에서 누가 미식축구를 하다 공에 잘못 맞아 죽었다더라.’
그런 뜬구름 잡기에 가까운 학교 전설에 대해 많은 이들은 ‘소설에 생동감을 더하는 장치’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센트럴시티 밸류 하이스쿨 학생 중 몇몇은 학교에서만 통용되는 소문까지 소설에 디테일하게 녹여낸 신 작가의 정체를 궁금해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누구지?’
그리고 케이트 무어가 바로 그 ‘몇몇’에 속하는 좋은 예시였다.
평소 안경을 쓰고 엄마가 사준 니트를 자주 입는 그녀는, 사실 ‘Mother’ 때부터 신 작가에게 팬심을 품고 지금까지 그가 낸 소설을 전부 읽어 온 숨은 팬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지금 한창 앨리스에 과몰입하는 수많은 소녀 중 하나이기도 했다.
······아무리 방송반의 리더로 활약하는 여걸이어도, 케이트 역시 잘생긴 미식축구 쿼터백에게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사람 사는 것도, 취향도, 어디든 대부분 똑같은 법이니까.
결과적으로 취향을 완전히 직격한 ‘About T’가 그녀에게 있어 소위 말하는 ‘최애작’이었고, 그로 인해 ‘신’이라는 작가에 대한 관심이 더더욱 증폭되었으며, 수십 번을 넘게 읽으면서 그녀 나름대로 이 소설의 작가가 누구일지를 추리하는 중이었다.
마치 소설 속의 앨리스가 그렇게 하듯이.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허구의 명탐정, ‘셜록 홈즈’는 이렇게 말했다. ‘불가능한 모든 것을 제거했을 때, 최후에 남은 것은 아무리 이상한 것이라도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케이트는 크게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이 학교의 학생이거나, 아니면 학생과 정말 친한 교사거나.’
하지만 후자의 가능성은 ‘About T : Homecoming’의 연재가 시작되면서 점점 더 줄어들었다.
4월 4일, 마침내 신문에 실린 대망의 1화.
『“앨리. 너와 함께하고 싶어.”
토니의 말을 들은 앨리스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후.”
단지 첫 문장을 읽었을 뿐이었으나, 케이트 무어는 신문을 책상 위에 턱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자극이 너무 강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로 인한 감정을 자기 방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침대를 굴러다니는 알렉사처럼 고스란히 표현하지 않으려 했고, 양손을 들어 손바닥을 쫙 펼친 뒤 지문이 묻지 않게 안경테의 양 끝을 스윽- 밀어 올리는 동작으로 그것을 대신했다.
안경알에 빛에 반사되며 순간 그 눈빛이 가려졌다. 어쩌면 김이 서렸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이런 글을 교사가 쓴다고?’
조금 전까지 고민하던 것을 침착하게 머릿속으로 떠올리면서, 이성으로 감정을 수습했다.
그리고 다시 리딩.
『“뭐, 뭐?”
“아무리 생각해도 너밖에 없어. 너야말로, 내가 함께하고 싶은 하나뿐인 사람이야.”
거의 고백에 가까운 말.
하지만 앨리스는 열정적으로 말을 잇는 토니의 정직한 눈빛을 직시하면서 그의 속내를 대강 파악한 상태였다.
“혹시 나한테 부탁할 거 있니?”
“응! 나와 함께 홈커밍 데이를 준비하자! 네 도움이 필요해!”
앨리스가 흘린 한숨에 토니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호들갑을 떨었다.
“시, 싫어?”
“아니, 싫은 건 아닌데······.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응! 뭐든지!”
다시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토니.
앨리스는 굉장히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남자애가 거의 코앞에서 이렇게나 스스럼없이 환하게 웃고 있다니. 종종 시선이 따라가, 다른 사람과 있는 것을 봤을 때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래서, 어떤 걸 물어보려고?”
문득 자기도 모르게 떠올린 생각을 자각하자 얼굴이 뜨거워지려 했다. 머뭇거리던 앨리스는 어색해지기 전에 자신에게 주어진 질문의 기회를 합당히 사용했다.
“왜 네가 그걸 준비해? 학생회는?”
“아, 걔들이 도와 달라고 해서. 아무래도 내가 여러 클럽 애들하고 친하니까, 이런저런 조율이라든가 행사 준비에서 생기는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대.”
“······우리 다음 주에 같이 미술관 가기로 한 건 안 잊었지?”
“어? 그야 당연하지. 그건 갑자기 왜?”
네가 나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니까, 내 약속을 잊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 말까지는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앨리스.
오늘따라 평소보다 더 우물쭈물하는 앨리스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토니는 이내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이 너무 무리한 부탁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 것이다.
“너무 갑작스러웠나? 부담된다면 거절해도 괜찮아. 마음 편히 결정해도 돼.”
“토니, 하나만 더 물을게. 왜 하필 나야?”
“왜냐니? 당연히 네가 제일 좋으니까 그렇지.”
“······.”』
‘아. 미치겠네. 갑자기 훅 들어오고 난리야.’
케이트 무어가 신문을 내려놓고 다시 두 손바닥으로 안경을 밀어 올렸다.
자신의 이성을 유지하기 위한 경건한 의식 같은 행동이었다. 만약 이 행위가 아니었다면 이 순간 방송반 리더이자 학교의 모범생으로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너는 독서 클럽의 회장이자, 우리 학교 도서관의 학생 사서잖아. 내가 잘 모르는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을지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아, 맨입으로 도와 달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 홈커밍 데이가 끝나기 전까지 우리 놀러갈 때마다 후식은 내가 살 테니까. 앨리, 네가 가장 좋아하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으로.”
“······내가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는데?”
“그럴 리가 없어! 앨리, 넌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똑똑해!”
“네,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진짜?! 도와 줄 거야?!”
“응. 그렇게 할게.”
앨리스는 들뜬 마음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무척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토니는 오늘 그녀 앞에서 지은 것 중 가장 행복한 미소를 보여 주었다.』
남들이, 아니, 자기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스스로의 장점을 알아주는 잘생긴 미식축구부 쿼터백. 거기다 소년다운 순수함까지 갖추고 있는.
그날, 캘리포니아 전역의 여성들이 신문을 붙잡고 환호했다.
[ 『About T : Homecoming』 > 끝(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