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31)
131.
이러한 말이 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하지만 그 왕관의 무게는 상상 이상으로 무거웠다. 승모근이 발달하겠다 싶을 정도로.
“신! 축하해!”
“멋지다! 멋져!”
“공부도 잘하고 잘생기고! 치어리더 캡틴하고 프롬도 가고!”
“못하는 게 뭐지?!”
곳곳에서 오버에 가까운 축하가 쏟아졌다.
나는 약간의 기시감을 느끼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학생들의 반응을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다들 술에 취한 것 같군.’
이해는 충분히 갔다.
지금 학교는 그야말로 축제 직전 같은 분위기였다.
특히나 졸업을 앞두고 프롬 파티까지 예정된 3학년은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수업을 제대로 듣는 사람은 손에 꼽았고, 짧은 쉬는 시간 동안 곳곳에서 프롬 파티 막차에 탑승하려는 승객들로 프롬포즈가 이루어졌다.
‘보통 이렇게 공개적으로 많이 했던가?’
수치심도 없는 틴에이저들이었다.
성사된 커플에 대한 소문은 널리 퍼져나갔다. 대부분은 빠르게 잊혔지만, 알렉사와 나처럼 오래 애들 기억에 남는 경우도 많았다.
수업이 끝나고 약간의 부담과 들뜨는 마음 사이에서 이 감정을 기억하며 걷던 중, 나는 복도 저편에서 누군가 카드를 들고 나오는 걸 봤다.
“케, 케케케, 케이트!”
“아, 미안.”
그리고 그 제안을 단박에 거절하는 케이트 무어.
뭔가 재밌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나는 김이 새는 걸 느끼며 원래 가던 길을 걸어갔다. 그러자 남학생의 프롬포즈를 거절하고 내 쪽으로 걸어오던 케이트 무어가 흠칫 놀라더니 이내 나뭇가지를 빼앗긴 비버처럼 눈을 부라리며 다가왔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공부벌레 스타일의 그녀.
긴 체크무늬 치마는 발목까지 이르렀고 머리는 질끈 땋았다. ‘About T’에 등장하는 앨리스를 현실적인 버전으로 재창조하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내 앞으로 다가와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그녀가 이내 한마디를 내뱉었다.
“나, 나는 아니니까.”
“음······?”
“그것만 기억해 둬. 내가 한 게 아니야.”
그리고 호다닥 사라진다.
‘뭐야.’
내가 모르는 사이에 학교 안에서 서로를 밀고하는 게임이라도 유행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상황을 넘겼지만, 다음 수업을 들을 교실로 이동하면서 케이트가 건넨 말이 무엇인지를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2부를 완결하고 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프롬 다음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대화거리 중 하나는 ‘About T’였다. 특히나 몇몇 너드 여학생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어 무려 학교 내에 비공식 팬클럽이 조직될 정도였다.
신문 연재본을 필사해서 책으로 만들고 그림을 그려서 일러스트를 넣어, 어설프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내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이들.
나는 그 인기를 이런 식으로 해석했다.
‘토니가 확실히 1980년대 초반에는 없던 유형의 캐릭터기는 하지.’
이 시대의 남자 캐릭터들은 아무리 여성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라고 하더라도 마초적인 측면이 강했다.
하지만 토니는 그렇지 않았다. 앨리스를 부드럽게 대했고, 어딘가 어리숙한 면모도 가졌다. 그런 특징들이 지금 시대에서는 신선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두 편의 소설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던 그들은 조금씩 소설 속에 나오는 학교 ‘해밀튼 아카데미’와 우리 학교 ‘샌트럴시티 밸류 하이스쿨’의 공통점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중에 언급된 학생들 사이에 떠도는 소문까지 분석하면서 이 학교에 ‘SEEN’이 다닌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를 찾기 위한 추론을 계속 이어 나가고 있었다.
소설의 3부가 나올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그것은 그들 나름의 너드질이었다.
“아무래도 3학년이겠지?”
“토니랑 앨리스가 3학년이라서? 너무 근거가 빈약하지 않아?”
“그래도 행사는 대부분 3학년이 주관해서 진행하잖아. 홈커밍 데이 때의 묘사를 보면, 신 작가도 직접 참여한 게 아닐까 싶은데?”
“그럼 학생회 쪽 사람인가?”
“내가 그쪽에는 물어봤어! 절대 아니라고 하던데?”
“숨기고 있을 가능성은?”
“아악! 찾고 싶어!”
“······.”
바로 옆에 있는데.
필명도 이름도 ‘신’인 사람이 있는데.
······아, 영어로 발음은 다르지만. 너무 한인스럽게 생각했군.
‘매번 전교 1등에 친한 애들하고 종종 놀러 다니기까지 하는 내가 글까지 쓴다는 상상을 못하는 걸까.’
아무튼 여학생들을 중심으로 어떤 소문이 조금씩 퍼져나가고 있는지 알 만했다.
‘신’은 이 학교에 다니는 3학년 학생이다.
하지만 500여 명이 넘는 사람들 중에서 누가 신인지까지는 누구도 도달하지 못하고 빙빙 겉돌기만을 반복하고 있겠지. 그것은 마치 하나의 추리 콘텐츠처럼 제법 많은 학생들 사이에서 흥미로운 화젯거리로 올라선 듯했다.
‘이래서 케이트가 그렇게 말한 거였군.’
졸업하기 직전쯤에 슬쩍 밝혀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속감, 혹은 유대감은 작가에게 있어서 때로 큰 힘이 되어주었다. 같은 학교나 같은 지역 출신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흥미를 갖고 책을 구매하는 독자가 있을 정도였으니까.
졸업 전에 확실하게 정체를 밝혀두고 학교를 떠난다면, 이름과 얼굴이 밝혀졌을 때 발생하는 리스크는 최대한 줄이면서 소속감과 유대감이라고 하는 이득은 어느 정도 챙겨갈 수 있을 테지.
‘그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지만.’
이 소설, ‘About T’의 미디어 프랜차이즈 문제를 어떻게 하느냐였다.
***
사실 입시 시험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와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줄리아에게 연락하는 것이었다. ‘About T’의 텔레비전 드라마화 계약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곧장 다음 날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고, 나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로 향했다. 아무래도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라 회사 내에서 보기로 한 것이었다.
‘목소리가 들떠있던 걸로 봐선 나쁜 일은 벌어지지 않은 모양인데.’
약간은 흥미가 생기면서도 사실, 걱정도 됐다.
2차 입시 시험을 치르기 위해 이동하면서 남는 시간에 여러모로 고민해 봤으나 나는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번 거래 상대인 LBS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라서 그런가.’
지역 라디오를 제작했던 스튜디오나 채널도 나름대로 큰 규모이기는 했으나, 여기에 비교할 대상이 아니었다.
문제는 들어가는 자본의 차이로부터 발생했다.
라디오 드라마, 코믹스, 완구, 설정집까지, 앞선 모든 미디어 프랜차이즈와 ‘텔레비전 드라마’는 제작비의 규모 자체가 달랐다.
말인즉슨, 자본을 대는 쪽의 입김이 세진다는 의미였다.
글이라고 하는 매체의 영향력이 크게 발휘될 수 없는 텔레비전 스크린에 내가 쓴 이야기가 전시된다.
분명 작가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물이 원작을 무시하고 대중에게 더 인상 깊게 각인된다면 어떻게 될까?
‘나에게는 이미 그 경험이 있지.’
‘데드맨즈 헤븐’.
전생의 내 최고 히트작이었던 그 작품은 거대 자본의 힘과 논리 아래 철저히 변형되었다.
그로 인해 나는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였으나 부끄러움을 느꼈다. 사람들이 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에 열광하고 나를 추켜세울 때마다 자아는 무너지고 절망만이 남았더랬다.
‘왜냐면 그건 내 작품이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원작부터가 내가 나 자신을 담아서 세상과 맞서기 위해 쓴 소설조차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상업성을 생각하지 않고 쓴 글이 정답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썼던 ‘데드맨즈 헤븐’에는 나라는 존재의 색깔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상태였다.
심지어 그 작품을 거대 자본이 입맛대로 주물러 바꿔버렸고······ 대중은 거기에 열광했다.
처음에는 큰돈에 만족하려 했지만, 점차 자신감을 잃고 축 처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지금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나’와 ‘돈’ 사이의 균형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작가주의와 상업주의의 밸런스라고 해야 할까.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언제나 작가에게 있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나름 잘해왔다고 생각했다. ‘Mother’부터 시작해 ‘About T’에 이르기까지, 최대한 가벼운 소설을 지향하면서도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노력은 절대 가볍게 가져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생의 기억이 머릿속에 드리워져, 혹시나 나의 작품이 잘 되더라도 거대 자본의 횡포에 짓밟힐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아직 떨쳐내지 못한 과거가, 눈앞에 놓인 새로운 길에 나아가지 못하도록 막연히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약간은 조심스러운 마음을 품은 채 로탐의 사옥에서 줄리아와 만났다.
그리고 나는 시작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되었다.
“금요일 오후 일곱 시, 황금 시간대에 방영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우려되는 부분들에 대해서 말하자, 배우 선발과 각본 집필에 작가님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고 했고요. 그쪽에서 굉장히 적극적으로 계약을 진행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네요.”
“······거기 가서 대체 뭐라고 말했어요?”
나는 어이가 없어지는 걸 느끼며 물었다.
도대체 무슨 줄리아 매직을 부렸으면 저쪽에서 엄청난 저자세로 나왔을까.
그러자니 줄리아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상황 보니까 작가님 작품에 홀딱 빠진 것 같아서 살살 긁어줬죠.”
“아니, 그냥 평범한 틴에이지 로맨스물인데?”
거기에 추리물적인 테이스트를 한 티스푼 정도 첨가한.
황당해 고개를 갸웃거리자 줄리아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 그쪽에서도 조건을 하나 걸더라고요.”
“무슨 조건이요?”
내 물음에 줄리아는 설명을 이어갔다.
LBS 산하의 제작사인 캘리포니아 픽처스는 내가 작품을 계속 연재하기를 바라는 모양이었다. 지금 같은 휴재기를 가져도 상관은 없지만, 적어도 드라마판이 나올 때까지는 계속 연재를 진행하며 최대한 많은 캐릭터를 등장시켜 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요. ······음.”
나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일종의 개인 사업자라고 할 수 있는 작가로서 거대 자본과 대적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이름값이나 작품 자체의 파워가 강해야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요소는 결국 상대적인지라, 일반적으로는 계약을 진행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마인드 게임이 오가기 마련이었다.
‘레미 마틴을 만났을 때처럼 말이야.’
하지만 지금 캘리포니아 픽처스는 아예 그럴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철저하게 저자세로 나오면서 어떻게든 작품의 드라마화 판권을 따내고 싶어 했다.
“그쪽에서 작품에 관해 정확히 뭐라고 하던가요?”
“토니와 앨리스, 둘 모두가 사랑스럽다. 특히 잘생긴 쿼터백 남학생이 특유의 모습을 가진 채로 어떻게 그리도 섬세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느냐면서, 토니를 거의 유니콘에 비유를 하더라고요. 그리고 너드 여학생인 앨리스도, 지금까지의 매체에서 많이 묘사되던 타입의 여성 캐릭터는 아니어서 신선하다고 했죠.”
그 말을 들은 나는 비로소 납득했다.
‘확실히 둘 다 현재 시점에서 흔한 유형의 캐릭터가 아니기는 하지.’
그리고 그 조합도.
학교에서 제일 잘 나간다고 할 수 있는 미식축구 클럽 쿼터백과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는 너드 여학생.
······아니, 뭐. 성별만 바꾸면 나에게는 굉장히 익숙한 조합이지만, 이 시대의 독자나 방송국 관계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학교는 미국이라는 사회의 축소판이었고, 자연스럽게 기존 관념에 따른 철저한 분리가 이루어졌다.
뭔가 큰일이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뭉치는 것은 미국인답기는 하나, 어쨌든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클리크와 함께 도생했고, 그러다가 괴롭힘이 일어나기도 하고 서로 협력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그런 부분과 상관없이 서로 어울렸다.
그 작가인 내가 자라온 환경이나 접한 상황이 그렇지 않았기 때문일까.
‘어라?’
그러자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하나.
이 소설을, 더 쓰고 싶어졌다.
***
내가 가장 고민했던 지점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내가 ‘About T’로 3부작 이후에 더 보여 줄 부분이 남아 있나?’
사실 LBS와 캘리포니아 픽처스의 제안은 썩 마음에 들었다.
그들이 내 소설을 존중해 준다는 것이 느껴졌으며, 왜 그러는지도 알았다. 그들은 ‘About T’가 가지는 틴에이저 특유의 감성과 더불어, 이 시대의 일반적인 드라마에서는 찾을 수 없는 요소를 높게 평가했다. 서로 클리크가 다른 두 사람이 한데 어울리는 모습을 말이다.
줄리아에게 계속 이야기를 진행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방에 틀어박혀 회의에서 떠올렸던 생각을 붙잡고 계속 고민했다.
그리고 끝내 어느 정도 답을 내는 데 성공했다.
‘굳이 쓸 게 없다면 쓰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나는 이 소설을 더 쓰고 싶어졌다.
토니와 앨리스. 미식축구 클럽 쿼터백과 도서관 사서인 너드 여학생, 그리고 그 둘과 함께 학교에 다니고 있는 수많은 학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기본적으로는 토니와 앨리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그들과 엮이는 다른 인물의 이야기를 보여 주면서 이 틴에이저의 이야기를 점점 확장해 나가면 어떨까?
지금 완전히 축제 분위기인 센트럴시티 밸류 하이스쿨의 분위기를 반영해, 그들이 각자 졸업을 앞두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어떨까?
‘나와 친구들, 더 나아가 많은 이들의 관계가 졸업을 앞두고 변화했듯이.’
앨리스를 괴롭히는 역할로만 등장했던 치어리더 여학생들에게도 기회와 벌을 동시에 주고 싶었다. 그들이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면서 동시에 용서를 받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고등학교 시절에 대한 회한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마치 지금 내가 그렇듯이.’
솔직히 말해, 내 두 번째 하이스쿨 시절은 상당히 만족스럽게 보낸 나날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심 아쉬운 것은, 어떤 기적의 도움이 없고서는 이 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나야 그 기적 덕분에 정말 보람찬 나날을 보냈다고 자부하지만, 이 시절은 아무리 잘 보냈다 생각해도 아직도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로 눈부셨다.
‘그러니 후회가 남지 않도록 남은 시간 동안도 최선을 다해야지.’
시리즈의 3부, ‘About T : Prom’ 이후로도 연재가 이어질 이 작품의 주요 테마를 생각하며, 나는 문득 거울 옆에 걸어 둔 옷을 바라보았다.
매끄럽게 라인이 떨어지는 턱시도.
그리고 그 옆의 장식장 위에는 프롬 파티 티켓과 파트너에게 건넬 흰색 코사지가 준비된 상태였다.
[ Prom party (2) > 끝(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