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35)
135.
‘About T : Prom’의 연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네 개의 대학에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합격 통지서가 도착했다.
스탠퍼드, 아이오와, 라이스, 마지막으로 하버드까지.
지원한 모든 대학에 합격한 것이다.
어머니는 당연히 뛸 듯이 기뻐했다. 우리 아들이 글도 쓰며 공부까지 열심히 해서 이렇게 좋은 대학에 합격했다고. 그러다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도 꺼내며 눈물까지 보였다.
한국인 1세대 이민자로서 머나먼 타국으로 건너와 가장 의지하며 지냈던 배우자의 상실. 크나큰 슬픔에도 하나 남은 아들을 위해 슬픔을 딛고 일어설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에게 있어 아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었다.
1980년대 동양인 이민자에게 좋은 대학이란 성공의 척도였으니까.
그리고 이번 생에는 전보다 더 더 나은 결과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서로 아버지 이야기도 나누고 저녁도 맛있게 차려서 먹은 끝에 좀 진정이 된 뒤, 어머니는 근처 한인 교회 사람들에게 연락해 내 자랑(?)을 또 실컷 했다.
약간은 낯간지러운 일이었으나, 나를 대신해서 순수하게 기뻐해 주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감사한 마음을 느꼈다.
왜냐면 나는 지금 순간에도 기뻐하기보다, 마지막까지 ‘고민’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대학을 갈까.’
어머니도 궁금했는지 슬쩍 물어봤으나, 나는 아직 생각 중이라는 답만 내놓았다.
어머니는 내 선택을 존중하겠다고 말했지만, 내심 하버드에 가기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사실 하버드는 내가 지원한 네 개의 대학 중에서 네임 밸류만큼은 가장 높은 학교였다.
‘아이비리그 소속이니까.’
하지만 나는 이름값에 가치를 크게 두지는 않았다. 대학은 그 이름을 얻기 위해서 들어가는 장소가 아니라, 더 깊은 지식을 얻고 통찰하기 위해서 가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작가로서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특별한 지식의 힘이 필요했고, 내가 고민 끝에 대학 진학을 결심한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지금 시대는 정보가 너무 제한적이야.’
정말 가치 있는 필요한 정보를 찾는 것은 어렵기는 해도, 구글에 검색만 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정보 대부분을 순식간에 얻어낼 수 있는 미래와는 달랐다. 원하는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대학에 진학해 수업을 듣거나 도서관을 이용해 전문 서적을 탐독하는 것이 이 시대에서는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리하고 심사숙고한 끝에, 나는 스탠퍼드 대학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그 말을 전해 들은 알렉사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스탠퍼드 대학이 가장 좋은 곳이야?!”
얼굴이 상기되어 내 옆에서 반쯤 뛰듯이 걷고 있는 그녀. 귀엽다.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않지.”
“그래? 그러면 왜 스탠퍼드 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정했어?!”
“저기, 알렉사······? 우리 조금만 조용히 대화할까?”
“싫은데!”
“왜?”
“너 대학 합격했잖아! 나 너무 신나!”
“······와우.”
어째 나는 어머니나 알렉사처럼 뭔가를 기뻐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새삼스럽다고 느껴서인가?’
아니, 아예 그렇지는 않았다.
아무리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멋진 서류를 만들었어도 대학 합격은 마지막까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라 생각했고, 합격하기 전까지는 분명 조금은 긴장했었다. 단지 내가 감정을 크게 겉으로 드러내는 성격이 아니고, 알렉사나 어머니하고는 정반대의 타입이라 그런 거겠지.
특히 어머니는 나와 성격이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아들이 잘 되는 것에는 누구보다 기뻐하시니까.
사실, 다들 했던 말이었다.
알렉사를 찾기 전에 교사들을 찾아가 대학 합격 소식과 스탠퍼드 진학 결심을 알렸을 때, 미세스 베너웨이와 주변의 교사들도 비슷한 말을 했다.
문학은 아이오와고, 전반적인 레벨은 하버드고, 현재 떠오르고 있는 대학은 라이스인데, 왜 하필 가장 어정쩡한 스탠퍼드냐고.
하지만 말했듯, 내가 대학에 진학하는 이유는 소설 때문이었다. 그것을 제외한 채로 절대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나는 알렉사와 함께 교문 쪽으로 이동하면서,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론을 설명했다.
“내가 스탠퍼드를 고른 것은, 소설가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캘리포니아에 남는 편이 가장 낫다고 판단했거든.”
현재 ‘SEEN’이라는 작가는 캘리포니아라고 하는 주 내에서만 이름이 크게 알려진 상태였다.
‘KOG’의 새로운 규칙서인 ‘Other worlds’에 설정 하나를 게재하여서 다른 지역에서 나를 알게 된 이들이 존재할 수 있을 테고, ‘Double spy’가 선 벨트 지역에서 잘 나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미국 전체로 보면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내가 계속해서 좋은 조건을 받고 일하기 위해서는, 나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곳의 출판사와 일해야 했다.
“건즈 앤 소드 매거진 같은 곳 말이지. 거기에 줄리아처럼 계속 함께 일했던 사람도 있고.”
“음~. 책을 내는 건 다른 곳에 가서도 할 수 있지 않아? 팩스 같은 게 있으니까.”
“그건 그렇지. 하지만 작품을 낸 다음에 반응을 단기간 내에 알 수 없으면, 뭔가 일할 때 위험 부담을 안고 가는 것 같아서 말이야.”
장르 문학 작가는 유행과 독자 반응에 민감해야 했다.
나는 거대 자본이 아무리 투자금을 준다고 해도, 그 제안이 합리적이지 않다면 내가 정한 이 기준과 틀에서 절대 벗어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내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존재가 딱 하나 존재했다.
“바로 독자야.”
내가 쓴 허구의 이야기를, 어찌 보면 망상에 불과한 글을 읽고 호응해 주는 이들.
“우리 학교에 있는 ‘About T’ 팬클럽 같은 애들?”
히히, 하고 약간 장난치듯 웃는 알렉사.
하지만 나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걔네들도 포함. 아무튼 이곳에 있으면 내 독자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으니까.”
비즈니스 적으로 생각해도, 캘리포니아 안에 있으면 아무래도 더욱 편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작품으로 인한 문제가 터지거나 대면 미팅이 필요할 때, 얼마든지 로스앤젤레스로 훌쩍 넘어가서 줄리아나 사이먼을 만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결국, 어느 쪽도 포기할 마음은 없는 거네.”
알렉사의 말이 맞았다.
나는 ‘Shin’과 ‘SEEN’, 어느 쪽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빙긋 웃은 나는 알렉사를 돌아보았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이제 슬슬, 두 번째 이유를 설명해야 할 때다 싶었다.
“아무튼 방금 그건 작가 ‘SEEN’으로서의 이유고. 학생 ‘Shin’으로서의 이유도 있지.”
“오, 뭔데?”
아무것도 모르고 싱글벙글 웃고 있는 알렉사.
나는 슬며시 그 손을 잡았다.
“너하고 멀리 떨어지고 싶지 않으니까.”
“······네?”
“알렉사, 네가 로스앤젤레스에 계속 있을 때의 이야기겠지만.”
“저요?”
“응, 너.”
“왜요?”
“좋아하니까.”
“저를요? 왜요?”
“······아니.”
프롬포즈 한 시점에서 이미 반쯤 검증되지 않았나.
하지만 그럼에도 그 모습이 귀여웠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눈동자가 핑글핑글 돌다가, 몸까지 삐거덕거리기 시작한 그녀는, 내가 쥔 손을 똑같이 세게 쥐었다가 풀었다가를 반복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나, 나 때문에 다른 대학에 안 가는 건 아니지?!”
“어느 정도는 맞지?”
“그, 그러지 않아도 돼······!”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래.”
물론, 두피와 지우, 어머니도 여기에 남아 있으니 그들과도 계속 교류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들의 존재만으로는 이 선택에 아주 유의미한 영향까지는 주지는 못했다. 그것은, 비즈니스 파트너들도 그랬다.
오직 알렉사뿐이었다.
모든 걸 다 떠나, 내가 이곳에 계속 남고 싶은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될 만한 인물은.
“어때. 알렉사. 로스앤젤레스에 계속 남을 생각이야?”
“······응, 일단은. 그리고 나도. 진지하게 고민해 볼게.”
“뭘?”
“미래에 대해서. 그냥 너하고 있고 싶으니까 로스앤젤레스에 남는 게 아니라, 나도 너처럼 뭔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그것과 함께 너의 옆에 계속 함께하고 싶어. 왜냐면, 그으······ 너를, 좋아, 하니까, 요.”
슬그머니 내 옷깃을 잡으며 바짝 다가온 그녀는 차마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은, 너무도 특별했다.
버스 몇 대가 지나가는 동안, 계속해서 정류장 앞에 서서 입을 다물고 있는 우리 둘.
아무래도 속이 어른인 내가 뭔가 말이라도 먼저 꺼내야 하나 싶던 찰나, 알렉사가 소리쳤다.
“그, 그러면 나! ‘About T’처럼 너하고 가고 싶은 곳 있어!”
“어디든 좋지.”
“같이 야구 보러 갈래?”
“와아. 정말 재미가 있겠다.”
“············.”
“장난이야. 장난.”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오히려 나와는 전혀 다른 알렉사와 함께하기에, 여러 가지 배울 수 있는 점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곳,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와 나, 단둘이서.
***
LBS는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는 방송국이었다.
미국 내의 수많은 영상 제작자와 관련 업무 종사자들이 할리우드로 모여 들었는데, 개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지 못한 경력자들이 그대로 이 지역에 정착해 LBS로 흘러들어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TV 방송 제작과 영화 제작에는 큰 차이가 존재했으나, 어쨌든 결은 비슷했다.
LBS에 입사한 이들은 신입이라고 해도 금방 TV 제작 환경에 적응했고, 그렇게 해서 모인 이들이 좋은 영상미와 좋은 기획을 가진 프로그램을 다수 뽑아냈다.
LBS에서 15년간 근무하며 이곳에서 결혼해 애까지 가지게 된 드라마 PD, 제레미 톰슨도 정확히 그 루트를 따라왔다.
영화 제작의 꿈을 품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캘리포니아로 왔다가 현실과 이상의 차이에 좌절했고, 그즈음에 만났던 여성과 결혼해 지금에 이른 것이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픽처스에 입사해 열심히 일한 끝에, 빠른 속도로 드라마 PD라는 위치까지 올라섰다.
그는 드라마 제작자로서 지금껏 주로 ‘누구나 쉽고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를 추구해 왔다.
시청률 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항상 꾸준히 수요층이 존재하는 작품.
회사에서도 그의 실적을 높게 평가해, 이번 작품의 제작을 맡겼다.
프로젝트의 가제는 ‘About T : TV series’.
미국 텔레비전 방송국의 일반적인 일정대로, 겨울에서 봄 사이에 파일럿 에피소드를 제작해 내부 시사회를 거쳐 반응을 본 뒤, 본격적인 시리즈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얼마 전, 신 작가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기자, 줄리아 챈들러를 직접 만나 계약을 마쳤고, 제레미는 다시금 연재를 시작한 ‘About T : Prom’을 읽으며 안에서 이미지를 잡아가고 있었다.
원래 예상보다 계약에 좀 더 시간이 걸려 일정이 촉박해졌지만, 괜찮았다.
‘이런 글이라면 딱히 문제될 건 없지.’
확고한 캐릭터와 테마가 있고, 좋은 이야기였으니까.
로케이션에도 큰 힘이 들지 않는 것까지 합쳐져, 전반적으로 제작이 수월할 듯했다.
‘촬영 기획서도 차근차근 정리되고 있고.’
드라마 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작가가 ‘글’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쓴 세계를 ‘영상’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About T’ 시리즈를 여러 번 탐독해 왔던 제레미는, 마음속에서 어느 정도 구상을 끝내고 스태프들과 매일같이 논의하며 아이디어를 갈무리하고 있던 나날이었다.
그리고 현재진행형으로 연재되는 ‘About T : Prom’를 읽는 것은, 자신 안의 이미지를 재확인하는 과정으로서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소설 자체도 무척 흥미로웠고 말이다.
소년과 소녀의 성장과 화합을 그려낸 이야기는, 어딘가 시대에 물음을 던지는 것 같기도 했다. 쿼터백과 너드 소녀는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으나,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그저 서로를 ‘인정’했다. 그것만으로도 이야기는 어딘가 감동을 주었다.
토니와 앨리스뿐이랴.
메이와 한나라는 캐릭터도 분명히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각자 그토록 바라던 ‘인정’을 서로에게 받는 부분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앨리스······!”
책을 정리하던 도중, 앨리스는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어깨를 움찔 떨었다.
뒤를 돌아보자 메이가 서 있었다. 한국계 미국인 메이 조. 그녀는 요새 들어 가끔 도서관을 찾아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 말하고는 했다. 그것이 싫지는 않았으나 앨리스는 주변의 눈치가 보여서 잠깐 머뭇거리다 어색하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조, 조금만 기다려 줄래? 아직 책 정리가 다 안 끝나서.”
“응. 앉아 있을까?”
“너 편한 대로. 책 하나 읽고 있을래?”
“락에 관한 책이 있을까.”
“으음, 이거?”
제목은 ‘돌의 역사’였다.
“푸하······!”
“메, 메이!”
“아, 도서관 안에서는 조용히 하라고 했지. 미안.”
언제나 ‘락 스피릿’ 운운하며 세간이 세운 기준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모습을 드러냈던 메이 조. 하지만 그런 그녀도 자신이 ‘인정한’ 앨리스의 의견은 존중했다.
메이가 심심해하면서 자리에 앉아 있는 걸 힐끔힐끔 보면서, 앨리스는 재빨리 책 정리를 끝마치고 가방을 들었다.
“가자.”
“오, 좋아.”
씨익 웃는 메이.
그렇게 바깥으로 나온 두 사람은 사람이 거의 없는 복도를 걸었다. 오늘은 또 뭘 했니, 어떤 음악이 끝내준다느니. 주로 떠드는 것은 메이였고, 앨리스는 옆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 주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은 이내 복도 끝에서 한나와 마주쳤다.
“한나 앤더슨!”
“······뭐니? 메이 조.”
“아직 집에 안 갔어?”
“그래, 프롬 파티 준비 때문에 바빠서.”
“오호라, 그러고 보니 이제 곧 프롬이군.”
“학교를 다니기는 하니? 요즘에 프롬포즈 하는 애들 많아졌잖아?”
“그런 건 락 스피릿하고는 아무 관련도 없어. 무슨 프롬이야. 그 시간에 기타 연주나 한 번 더 해야지.”
“너는 참 별로지만, 그 말에는 동의해. 대체 무슨 프롬인지······. 앨리스, 너는 어때?”
“나, 나? 글쎄.”
“앨리스는 파트너가 있지 않아?”
“······.”
“아~. 걔.”
한나의 눈이 순간 가늘어졌다. 앨리스는 등 뒤로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변명했다.
“그, 그럴 리가 없잖아! 걔가 나 같은 걸 왜!”
“누구라고 말한 적 없는데.”
“아.”
“농담이야. 농담. 우리 둘 다, 아니 셋 다 누군지 대충 짐작하고 있잖아.”
싱긋 웃은 한나는 앨리스를 바라보며 짓궂은 농담을 건넸다.
“빨리 안 하면 내가 채간다? 그 녀석.”』
“오호라.”
오늘 연재된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읽고서 제레미는 미소를 지었다.
여기까지 와서, ‘삼각관계’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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