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4)
14.
“어머나.”
방으로 돌아온 마사 피셔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노부부는 오후 아홉 시가 되면 곧바로 침대에 눕는 편이었다. 마사는 자기 전까지 숙면에 도움을 준다는 캐모마일 티를 즐기며 뜨개질을 했고, 펠릭스는 좋아하는 위스키를 한 잔 정도 마시고 야구를 보다가 자연스럽게 스포츠 뉴스가 끝날 때쯤 불을 끄고 잠이 들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렇기에 마사의 눈이 동그랗게 뜨인 것이었다.
“당신이 웬일이래요?”
“뭐가.”
“무슨 일로 신문을 다 본대? 이 늦은 밤에.”
“거 사람 참, 그럴 수도 있지.”
호기심이 다저스 경기를 보고 싶다는 욕망을 이겼다.
그럼에도 텔레비전을 켜둔 채로 펠릭스는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마사는 테이블에 그가 평소에 가장 즐겨 마시던 위스키 ‘메이커스 마크’를 한 잔 놔두고 그 옆에 앉아 뜨개질을 시작했다. 얼마 전에 손주가 태어나 그 머리를 감쌀 모자를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페드로 게레로, 타석에 들어섭니다.]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펠릭스는 위스키의 향과 맛을 음미하며 야구에 조금 더 집중했다. 그러다가 페드로가 삼진을 당하고 1회 초에 다저스가 삼자범퇴로 끝나자 혀를 끌끌 차며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마사는 그런 펠릭스의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 곁눈질로 보았다.
야구 경기는 계속되었고 모자는 조금씩 형태를 갖추었다.
펠릭스는 3회까지만 하더라도 다저스가 공격할 때나 해설자가 비명을 지를 때는 소설을 읽던 걸 멈추고 야구를 보았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그러지 않게 되었다. 미간을 찌푸린 채 신문에 집중하고 있는 펠릭스의 모습을 힐끔거리던 마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재밌어요?”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펠릭스는 위스키를 홀짝이고 신문을 곱게 접어 읽어나갔다. 그 모습을 신기하다고 여긴 마사는 뜨개질을 멈추고 옆에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신문을 다 읽는 건 아닌지 곱게 접은 한 페이지를 딱 읽고 내려놓은 뒤, 다음 신문을 손에 쥐고 정신을 집중하는 펠릭스.
“릭?”
“······.”
“릭.”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마사가 조심스레 손을 뻗은 순간이었다.
펠릭스가 어깨를 움찔 떨며 고개를 들었다.
“뭐, 뭐야?”
“왜 그리 놀래요?”
“놀라기는 무슨!”
“놀란 것 맞는데.”
본인은 부정했지만, 수십 년을 함께 해온 부부인 만큼 마사는 어렵지 않게 펠릭스의 반응을 알아차렸다.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뭐 읽고 있어요?”
“그, 그냥 소설이야!”
“소설? 릭, 당신이 소설을?”
“그래, 어떤 할망구가 치매에 좋다느니 뭐니.”
“······기억해주고 있었군요.”
무뚝뚝하지만, 그래도 속은 깊고 상냥한 사람.
그 앞에서 부드럽게 웃은 마사는 펠릭스가 과연 어떤 소설을 읽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도대체 무슨 소설이라서 당신이 그렇게 겁을 먹었어요?”
“에헤이, 안 보는 게 좋아. 무슨 소설이 이렇게 불쾌할 수가 있지?”
“그리 말하니 더 호기심이 생기는데요?”
펠릭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손을 뻗은 마사는 ‘Mother’의 1화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밤.
“······.”
“······.”
두 사람은 정말 오랜만에 서로의 손을 꼭 붙잡은 채로 잠이 들었다.
부부간의 정 때문은 아니었고, 그냥 무서워서 그랬다.
***
‘Mother’의 연재가 10화를 넘어가는 시점에서 사이먼 카버는 확신했다.
이 작품의 인기는 ‘진짜’였다.
연재 문의가 아닐 시 법적 조치를 할 수도 있다는 문구를 신문에 넣자 신문사로 걸려 오는 팬들의 전화는 그제야 멈췄다. 급격한 변화에 조금은 당황하면서도, 사이먼은 그만큼 이 작품에 열광하는 팬이 많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분명 ‘Mother’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사이먼은 이에 대해 담당하고 있는 작가인 덱스터 하워드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었다. 은퇴한 교사로 연금 받으며 취미 삼아 글을 쓰다가 미스터리 소설을 연재하게 된 그는, 현재 ‘마지막에 나간 자’를 토런스 뉴 미디어에 개재하고 있었다.
덱스터는 ‘Mother’에 대해 이런 평을 내렸다.
[아주 잘 쓴 소설이야. 쉽고, 강렬하지.]사이먼도 그 말에 동의했다.
‘Mother’는 소드 앤 소서리처럼 사전 지식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하드보일드 계통의 소설처럼 독자의 연령대가 한정되지도 않았다. 신문을 읽는 사람이라면 우연히 읽게 되었을 때 분명히 흥미를 지닐 만한 이야기였다. 그러니 이렇게 많은 팬의 지지를 얻는 거겠지.
‘그리고 하나 더.’
‘Mother’는 어린 수지를 사랑스럽게 묘사하면서도, 동시에 괴롭히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2화에서는 이런 내용이 나왔다.
집으로 돌아온 수지는 어머니와 식사하기 위해 자리에 앉는다. 하지만 키우던 개 토미의 죽음으로 인해 제정신이 아니었던 수지는 기도를 하는 것을 깜박 잊는다. 그러자 어머니는 수지를 상자에 가두는 벌을 내린다.
이 벌이 정말 끔찍한 이유는, 바로 수지가 들어갈 상자에 담긴 내용물 때문이었다.
상자 내부에는 온갖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한 ‘눈’이 가득했다. 어머니가 내벽에 직접 하나하나 그려서 넣은 성모의 눈이었다. 그 안에 수지가 무릎을 꿇고 앉자 어머니는 촛불 하나를 안에 두고 뚜껑을 덮었다. 수지는 눈을 질끈 감았고 자신을 바라보는 무수한 눈 속에서 초가 전부 녹을 때까지 시간을 견뎠다.
그때부터 수지는 환청을 듣기 시작했다.
사이먼은 물론이고 작품을 읽는 독자들 모두가 그런 수지에게 몰입했다. 담백하면서도 쉽게 상상되는 묘사 때문이었다.
그렇게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는 조용한 소녀는 집에만 오면 그런 불합리한 이유로 계속 혼나고 기도를 드리며 잘못을 고백해야 했다. 죄책감과 공포 속에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또한 그 일거수일투족은 어머니에 의해 감시 당했다.
수지는 밤마다 토미의 무덤에 다녀온다는 사실을 들킨 이후, 한 번 더 상자에 갇혔다.
그리고 환청은 더욱 심해졌다. 환각마저 생겼다.
문제는 작품에서 서술 트릭을 사용해 그 환각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했다는 점이었다.
6화, 수지는 문득 도주를 시도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그 뒤를 쫓아온다. 이름을 부르며.
[SUZYSUZYSUZYSUZYSUZYSUZYSUZYSUZYSUZYSUZYSUZYSUZY.]어머니가 수지를 부르는 말은 띄어쓰기도 하지 않아 기괴한 단어의 나열처럼 보였다.
결국 붙잡힌 수지.
눈을 뜨자 그것이 환각임을 알게 된다.
간신히 학교에 가서도 환각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 묘사가 또 일품이었다.
수지는 누군가가 끝없이 죽으라고 속삭이는 소리와, 어서 누군가를 죽이라고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학생들이 말할 때마다 전신에 벌레가 들끓고 어디선가 오물이 쏟아졌다. 그러다가 결국, 비명을 지르며 혼절한다.
수지는 겉돌기식으로 속해 있던 무리에서도 떨어져 나온다. 깊은 무력감에 휩싸인 수지는 공포와 의지의 대상인 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냉혹했다.
수지는 다시 상자에 가둬졌다.
거기까지가 9화. 그리고 오늘이 10화.
지금껏 수지의 시점으로 진행된 작품은 어머니의 시점으로 넘어간다.
사이먼은 이때를 기점으로 이 ‘Mother’가 본격적인 공포 소설로서의 재미를 추구하기 시작한다고 생각했다.
짧은 글 안에서도 어머니는 그 누구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선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향후 수지······ 정확히는 그에 이입해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 혼란을 줄 터였다. 어머니가 아무리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이 감히 현실인지 허구인지 구분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었다.
사이먼은 이런 결론을 내렸다.
‘누구라도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쉽게 떨쳐낼 수 없는 소설.’
이 소설을 조금 더 알리고 싶다.
이 소설이 가진 파급력을 사람들이 알게 하고 싶다.
그런 욕망이 들끓었다.
사이먼은 문득 신이 해주었던 말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더 좋은 작가, 더 좋은 소설을 만나기 위해서는 더 좋은 페이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Mother’가 응당한 인정을 받아야 했다.
독자는 물론, 사내에서도 ‘Mother’에 대한 반응은 좋았다. 문제는 그것이 신문사의 이익과 연결됐을 때의 명확한 수치화가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동료 기자들은 신 작가의 팬이 되었고 소설이 나올 때마다 읽으려고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화 섹션이 더 좋은 페이지가 되는 건 결코 아니었다.
‘대가를 받아내야지.’
그만한 돈, 명예, 사업.
‘하지만 어떻게?’
‘Mother’는 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소설 중 하나일 따름이었다. 말인즉슨, 구체적으로 이 소설이 판매량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지표가 필요했다.
고민에 빠진 사이먼은 불현듯 지금은 퇴사한 선배 기자 줄리아가 해주었던 말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사이먼, 결국 이것도 팬 비즈니스야. 스타를 만드는 작업이라고.’
“팬······.”
문득,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사이먼은 윗선에 보고할 이벤트 기획서를 하나 작성했다. 그러고는 편집장인 휴고 어빙에게 보고하기 전, 상의해보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대는 그보다 어린 소년이었는데도 그랬다. 어느새 머릿속에 박힌 인식 때문이었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아, 작가님. 안녕하세요. 사이먼입니다.”
[사이먼, 잘 지내셨어요? 오늘은 무슨 일 때문에 전화를 주셨죠?]“‘Mother’에 관해서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좋은 소식이었으면 좋겠네요.]“좋은 소식일 겁니다. 문화 섹션 페이지 이벤트를 개최해보면 어떨까 싶어서 말이죠.”
[경품 이벤트요?]“네네, 작가님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까지도요. 작품의 감상을 적은 팬레터를 받아서 지면에 소개하고 당첨자에게는 사인과 함께 저희 신문사의 정기구독권을 제공하는 거죠.”
[나쁘지 않은 생각인 것 같군요. 잡지사에서 종종 하기도 하고요.]“하하, 거기에서 모티브를 따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팬레터가 많이 오면 만약에 다음 작품 계약하실 때 작가님께 저희가 더 좋은 조건을 쳐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런 생각이셨군요. ······한 가지가 걸리기는 하지만요.]“뭐, 뭔가요?”
사이먼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꽤 괜찮은 생각이라고 느꼈는데, 대체 뭘까.
[어, 그걸 휴고 편집장이 허가해줄 이유가 있을까요?]“······예?”
[얼마 전에 밉보이고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나요.]“사, 사장님은 절 좋아하셔서요?”
[한 가지만 확실히 해주시죠. 사이먼 씨를 좋아하는 건가요, 아니면 문화 섹션 페이지를 좋아하는 건가요?]“······사장님은 돈을 좋아하죠.”
[캐피탈리즘 몬스터군요. 음. 그러면 더더욱 힘들지 않을까요.]사이먼은 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했다.
여기가 장르 소설 출판사라면 팬레터는 그 자체로 가치이자 목적이 되었을 것이다. 팬들이 어떤 작품을 좋아하는지, 어떤 경향을 가지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는 자료가 되니까.
하지만 신문사는 그런 활동을 딱히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문화 섹션은 다른 수많은 페이지 중 하나일 뿐이었으니까.
사이먼은 고민에 빠졌고, 이내 반대편에서 목소리를 들었다.
[제게 아이디어가 하나 있기는 합니다.]“뭐, 뭔가요?”
어린 소년이 말해준 아이디어는, 마치 악마의 속삭임 같았다.
***
예상한 대로 되었다.
“굳이?”
하지만 그 장소가 회의실이라고는 감히 예상하지 못했다.
기껏 용기 내서 제출한 기획서를 가져간 휴고 어빙은 읽어보고 알려준다더니, 이것을 사장 앞에서 자기 명예를 회복하고 사이먼을 엿 먹일 찬스로 사용하려는 모양이었다. 토런스 뉴 미디어의 직원이 대부분 모인 자리에서 사이먼은 완전히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이봐, 사이먼. 그쪽 신작이 나쁘지 않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건 알겠어. 그렇다면 너 좋아하는 잡지사에 꽂아주고 너도 함께 갔어야 하지 않나? 여기는 토런스 뉴 미디어, 신문사라고. 우리가 왜 굳이 그 일을 해야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는데.”
“······어, 넵.”
“그렇지 않습니까? 사장님.”
“맞는 말이야. 사이먼.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을 이벤트라면 차라리 경비를 아껴서 그 돈으로 순이익을 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은데.”
“맞는 말씀입니다.”
“하하, 재무지표는 최대한 깨끗하고 깔끔하게. 나의 신조지.”
그 말을 회의실 밖에서 엿듣고 만 경리, 미스 브라운은 ‘지랄.’ 하고 혀를 찼다. 얼마 전에 회삿돈으로 새 차를 뽑았으면서 저런 소리를 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었다. 칼자루를 쥔 것은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쪽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해야 했다.
“그럼, 이건 어떨까요.”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이먼이 입을 열었다.
휴고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또 그 입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밑에 아주 작게 문구를 하나 추가하는 거죠. ‘팬레터를 보내신 분은 개인 정보 수집 및 제공에 동의하시는 것으로 간주합니다.’라고요.”
“······.”
“······.”
이야기를 들은 사장과 휴고 및 회의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표정이 굳어졌다.
사이먼 역시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들과 같은 반응이었다.
이 복잡한 사회에서는 이름, 나이, 직업, 집 주소, 전화번호 정도만 수집해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었다. 단적인 예시로 어디 마케팅 회사에만 이 정보를 넘기더라도······.
‘돈이 되겠지.’
하지만 이게 정녕 사람이 할 생각이 맞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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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비즈니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