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42)
142.
우리가 자주 가는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에는 일반 서점이 하나 존재했다.
나는 이곳을 그다지 자주 드나드는 편은 아니었다. 내가 주로 사는 책은 대부분 코믹북 스토어에 포진해 있고, 그렇지 않은 일반도서는 고등학교 도서관에서 빌리면 됐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오늘은 오랜만에 서점에서 살 책이 생겨, 지우와 함께 외출했다.
평화롭게 ‘About T : Waitress’를 연재하면서 스탠퍼드 입학식을 기다리던 가을의 초입.
버스를 타고 다운타운에 내려서 10분 정도 걸은 끝에 서점에 도착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선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생각했다.
‘내 평생 이런 책을 살줄은 꿈에도 상상 못 했군.’
오늘 살 건 1980년대, 잘 나가는 틴에이저의 교본이라고 할 수 있는 잡지.
그 이름하야, ‘Dolly’였다.
“여기 있네요!”
나보다 더 흥분한 지우가 방방 뛰며 계산대 앞에 놓여 있던 잡지를 집어 들었다.
파란색과 보라색의 재킷을 입고 하드락 보컬처럼 머리를 풍성하게 부풀린 금발의 여성이 표지에서 웃고 있었다. 심지어 색조 화장도 진하게 해서, 배경만 받쳐주면 무슨 공포 영화의 살인마 캐릭터로 나오더라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것 같은 강렬한 모습이었다.
여성을 둘러싼, 잡지라면 으레 있는 표지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멋진 가을을 보낼 준비가 되셨나요?!] [청바지 하나로 멋 내는 법 대공개-!] [친구들 앞에서 재미난 농담으로 인기 끌기!]‘80년대스럽군.’
나는 어설프게 웃었다.
사실, 내가 80년대로 돌아와 무엇보다도 가장 괴리감을 느끼는 것이 바로 이 ‘패션’이었다.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 주로 무채색 옷만 즐겨 입는 내가 보기에는, 온갖 총천연색으로 물들인 채 ‘이것이 80년대다!’ 하고 외치는 듯한 비주얼이 상당히 좀 어색하게 느껴졌다.
‘뭐, 잡지에서나 이렇지, 실제로 이 정도로 심하게 입고 다니는 사람은 또 드물지만.’
알렉사나 지우, 두피도 막상 이 정도로 컬러감 있는 옷을 입진 않았다. 알렉사가 가끔 캐주얼 스타일로 옷을 입을 때 색이나 무늬를 강하게 쓰는 정도랄까? 그마저도 이처럼 과하지는 않았다.
내가 잡지 표지에 집중하고 있자 옆에 있던 지우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알렉사가 이 잡지에 나온다는 거였죠?”
“응, 맞아. 확실해.”
“후후, 세 권쯤 살까요?”
“아니.”
나는 고개를 내저은 뒤, 가판대에 있는 잡지를 모두 집어 들었다.
······알렉사가 잡지에 나왔다는데 여기저기 나눠주고 좀 그래야지.
그렇게 정확히 열 권.
깔끔하게 계산을 마치고 나온 다음 우리는 바로 앞에 있던 카페로 갔고, 각자 ‘Dolly’를 한 권씩 펼쳐 들고 알렉사가 나온 부분을 찾기 시작했다.
다양한 디자인과 색채의 옷을 입은 잡지 모델들이 캘리포니아 곳곳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던 중, 나는 익숙한 얼굴을 찾았다.
“오, 오빠! 여기! 여기 있어요!”
잡지 중간쯤이었다. 그리고 지우도 거의 같은 타이밍에 알렉사를 발견한 듯했다.
스케이트보드를 허리춤에 끼우고 햇볕 아래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알렉사.
볼 캡을 거꾸로 썼고, 짧은 청바지에 흰색 티셔츠, 거기에 빨간색 야구 점퍼를 허리춤에서 가볍게 묶어 포인트를 주었다. 빨간색 스니커즈하고도 색이 맞춰져서 보기 좋군.
“와, 완전 예뻐요!”
“그러게. 진짜 잘 나왔다.”
그 후로도 몇 장 더 있었다.
다른 모델과 함께 촬영한 사진 속에서도 ‘우리’ 알렉사의 존재감은 확연히 뛰어났다. 정말로 저 현장에서 살아 숨 쉬고 있을 것 같은 모습이라고 해야 할까. 스케이트보드를 쥐고 있는 저 모습도 무척이나······ 어? 뭐야. 봐도 봐도 예쁘잖아. 누가 봐도 반하겠어. 주머니 속에 쏙 넣고 싶어.
“······오빠. 잡지 뚫리겠어요.”
“괜찮아. 이러려고 많이 샀으니까.”
한 달쯤 전, 할리우드에서 받은 명함을 토대로 ‘K.H Agency’에 연락을 취한 알렉사는 그곳의 전속 모델로 활동하게 되었다. 일단은 지금처럼 패션 잡지에 나오는 상업 모델부터 시작해서 점차 경력을 쌓으며 그 밖의 다른 영역으로도 뻗어 나갈 예정이라는 모양이었다.
그것을 위해 알렉사는 여러 종류의 트레이닝을 시작했고, 그 비용은 전부 에이전시 측에서 부담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모델 페이도 업계 관행에 잘 맞춰줬다는 모양이었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와 줄리아에게서 들은 정보를 종합하고서, 나는 ‘K.H’가 상당히 괜찮은 에이전시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당연한가.’
‘K.H Agency’는 설립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신생 회사였다.
모델 한 명 한 명이 아쉬운 상황에서, 그들은 치어리딩 전국 대회에서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물론이고 전미의 많은 이들을 웃게 만들었던 알렉사 플레어에게 투자를 결정한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나쁘지 않은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전생에 만났던 연예 기획사 관계자가 해준 말이 문득 떠올랐다.
[사람들이 미디어에 등장하는 인물에게 원하는 건, 결국 드라마다.]그런 의미에서 고등학교 때 치어리더로 이미 큰 임팩트를 남긴 바 있는 알렉사는 분명히 보기 드문 인재였다.
만약 인터뷰 같은 곳에서 ‘사실 그때 티비에서 소감 준비 안 한 게 저임.’이라고 하면 인터뷰어 측으로서도 흥미로운 소재가 생기는 셈이었고, 대중도 다른 일반적인 모델과 비교했을 때 알렉사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할 만한 여지가 더욱 생기는 셈이었다.
‘앞으로 잘해 나갔으면 좋겠네.’
나는 잡지 속에 담긴 알렉사를 계속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
알렉사는 모델 일을 시작했고, 두피는 장난감 회사에 디자이너로 취직했다. 그리고 지우는 3학년이 되어 본격적으로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졸업하고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아쉽지는 않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까.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About T : Waitress’의 연재를 시작하면서 캘리포니아 픽처스의 요구에 맞춰 주었다.
토니와 앨리스의 성장과 사랑은 일단락되었지만, 그 이후에 두 사람이 겪는 이야기를 계속 보여 주면서 사람들이 느끼는 이 이야기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드라마가 나오기 전까지 관심을 놓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유연하게 풀어 나가기 위해, 나는 이번 ‘About T : Waitress’를 집필하면서 ‘외전’의 색채를 강하게 심었다.
작가마다 여러 가지 정의가 있겠으나, 나는 ‘외전’이란 작품의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넣기 어려웠던 이야기를 후에 푸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가령, 성장을 겪은 앨리스가 자신을 괴롭혔던 치어리더들과 어떤 식으로 또 갈등을 겪고, 그 문제를 봉합해 나갈 것인가.
‘앞선 3부작이 연재되는 동안에 이 이야기를 끼워 넣었다면 뭔가 이상했겠지.’
하지만 그 이후에 외전의 형식으로 나온 스토리는 독자들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것도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조금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Mother’, ‘Double spy’, ‘Princess quest’ 모두 제각각의 매력으로 두터운 팬층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었으나, 특히나 ‘About T’ 같은 경우는 내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팬들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나는 ‘캐릭터’에서 온다고 판단했다.
토니와 앨리스, 주인공 두 사람부터 시작해서 많은 캐릭터를 조형할 때, 내가 겪은 고등학교 시절의 만남으로부터 모티브를 따왔다. 그래서인지 독자들은 그들을 살아 있는 사람처럼, 자신과 가까운 친구처럼 느꼈다.
당장에 끊임없이 보내져 오는 팬레터만 살펴보더라도, 내가 딱히 의식하지 않은 캐릭터한테 주목하는 독자들이 상당히 많았다.
예를 들면, 토니의 프롬포즈를 도와주고 그와 친구를 먹은 너드 캐릭터, 루카스라든지.
······그에 대한 왜곡된 사랑이 느껴지는 팬레터가 문득 떠올랐다.
어쨌든, 팬레터를 통해 독자들의 니즈를 파악해, 나는 이번 시리즈를 쓰면서 최대한 캐릭터를 살리는 것에 중점을 두고 연재를 진행했다.
토니와 앨리스의 알콩달콩한 연애도 보여주고, 여러 친구들과 노는 장면도 나오고, 앨리스가 자신을 무시하는 카멜라의 앞에서 당당하게 제 할 말을 하는 장면도 넣고, 그러다가 갑자기 사장이 아파서 출근을 하지 못하게 되자 두 사람이 서로 힘을 합쳐 몰려드는 손님을 막아내면서 끝나는 이야기.
앨리스는 카멜라를 여전히 용서하지 않았지만, 담아 두지도 않았다.
그 일을 자신의 마음속에 묶어둘수록 그 일을 인정하는 결과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딱 읽기 편하고 즐거운 이야기지. 드라마로 나와도 쉬어 가듯 볼 수 있는 내용이고.’
그렇게 총 10화로 구성된 ‘About T : Waitress’의 연재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후속작인 ‘About T : Coach’ 역시 완결까지 빠르게 집필했다.
토니가 화자로 나와, 대학 입학 전까지 초등학교 미식축구 코치를 맡으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작품.
‘About T : Waitress’와 같은 시간대를 배경으로 하며, 아이들을 돌보는 데 익숙하지 않은 토니가 고난을 겪으면서 전혀 모르던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자신을 알아간다는 스토리였다.
앞선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외전의 색채를 부여하고 캐릭터를 살리는 것에 신경을 쓰면서, 동시에 할리우드의 가족 영화처럼 최대한 가볍고 공감이 쉬우며 보편적인 감동을 주고자 노력했다.
그렇게 집필된 소설을 줄리아 챈들러에게 보냈고 곧 연락이 돌아왔다.
[작품 잘 읽었어요.]“감사합니다. 어땠나요?”
[길게 말할 것도 없죠. 여기에 나온 초등학생 캐릭터들이 정말 귀여운데요? 나중에 이 친구들 소재로 해서 ‘About T : Elementary’ 써보시는 건 어떤가요?]“그렇게 확장했다가 언젠가 분명 역반응이 오겠군요. 싫습니다.”
[후후, 농담이에요. 농담.]왠지 농담처럼 안 느껴졌다.
하지만 줄리아는 내 단호한 대답에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About T’ 시리즈는 결국, ‘틴에이지물’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토니와 앨리스가 대학에 가서 그 장소에 적응하는 이야기까지는 아슬아슬하게 그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있으나, 애들을 배경으로 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최근에 캘리포니아 픽처스하고 미팅 한 번 진행했는데, 그쪽에서도 ‘Waitress’를 꽤 좋게 본 모양이더라고요. 치어리더 애들이 악당으로만 나오지 않아서 좋다고 하던데요.]“······? 악당이 맞긴 하죠?”
[그거야 그렇죠. 하지만 소설에서 묘사된 카멜라를 앨리스가 속 시원하게 물을 먹이여서 그런가, 왠지 모르게 미워할 수만은 없는 캐릭터 같네요.]“아, 그 말에는 저도 동감합니다.”
나는 치어리더 세 사람이 확실한 불링 가해자이며, 그렇기에 절대 옹호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그런 부분이 다소 축소되어 묘사됐으며, 거기다 성장한 앨리스 본인이 그들과 당당하게 맞서 혼쭐을 내줬기에 그런 감정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드라마에서 그 세 사람은 어떻게 묘사되려나.’
문득 실사화에 대한 생각을 하자, 어쩐지 좀 즐거워졌다.
***
마침내 찾아온 대망의 스탠퍼드 대학교 입학식.
천여 명 정도의 학생이 ‘Frost Amphitheatre(프로스트 원형극장)’에 모였다.
다들 자유롭게 옷을 입은 상태에서 무대 앞의 객석에 앉았고, 그 위로 스탠퍼드 대학교의 교직원들이 나와 행사를 진행했다.
사람들 사이에 끼고 싶지 않았던지라, 나는 일부러 조금 늦게 가서 맨 뒷자리에 앉았다. 9월경 스탠퍼드의 날씨는 더운 편이었고,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숨이 막힐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선스크린을 아무리 듬뿍 발라도 결국 막아주는 건 자외선뿐, 더위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전략(?)으로 인해 입학식에 함께 와 준 어머니와 가까운 곳에 앉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어지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입학식 진행을······ 지루하게 지켜보았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대학교 안에 교회가 있고 그곳의 목사님이 나와 신입생을 위한 기도를 해줬다는 부분이었다.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대학교 내에서 영적 생활을 돕는 담당자들이 나와 축복을 걸어 주었다.
더위 저항력이 5 정도 상승한 기분이로군.
[이것으로 입학식을 마치겠습니다. 각 학생은 안내에 따라 각 학부 건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싱그럽고 살짝 더운 오후에 한 시간 정도 이어진 입학식이 끝났다.
자리에 모인 학생들은 자신이 명문 중의 명문인 스탠퍼드의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에 깊이 감명 받은 눈치였다. 나 역시 상황은 비슷했으나 대학 입학이야 전생에도 겪어 보았고, 그래서 그들만큼 감동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었다.
나는 들어오며 받은 안내 책자로 이후 일정을 확인했다.
“학과 건물로 가서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라네요.”
“음, 엄마도 가야 하나?”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근처에 계시다가 같이 사진이라도 좀 찍고 가실래요?”
“아냐. 아냐. 우리 신이 대학교 입학했으니 친구도 사귀고 그래야지. 괜찮지? 여기에서도 친구들 잘 사귀고 밥 맛있게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공부도 열심히 할 수 있지?”
“그럼요. 어머니. 누구 아들인데요.”
나는 어머니다운 걱정을 하는 어머니에게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어머니는 다 자란 아들이 대학에, 그것도 이렇게 좋은 곳에 입학했다는 사실이 기뻤는지 살짝 눈물을 보였고, 나는 그 앞에서 멋쩍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후 가볍게 담화를 나누면서 어머니를 근처 버스 정류장까지 차로 모셔다드렸다. 애써 감정을 억누르던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웃는 얼굴로 버스 안에서 손을 흔들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로써 이 더럽게 넓은 스탠퍼드에 혼자 남은 상황.
“후우.”
한차례 주변을 둘러본 다음, 나는 각자의 대학으로 이동 중인 수많은 차량을 보며 웃었다.
역시 스탠퍼드는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그렇기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골드러시의 초입에 놓인 카우보이처럼.
나는 당당하게 새로 산 마이카 ‘르노 얼라이언스’에 타고 문리과대학 건물로 향했다. 중간중간 보이는 표지판을 따라 이동하면서 푹신한 시트의 감촉과 새 차 냄새에 미소를 지었다.
이 시대에 르노 얼라이언스는 적당히 ‘무난한’ 차량에 속했다. 1983년형으로 발매된 준중형 세단으로, 좀 사는 집 자식이 첫차로 구매했고 사회 초년생들도 많이 타고 다녔다.
사실 더 좋은 차를 살 수도 있었겠으나, 지금은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이 녀석의 4도어 버전을 택했다. 색깔은 내 타자기인 하드보일드 나인 싸우전드와 같은 검정색이었다.
문리과대학에 도착해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나는 신입생을 위해 임시로 세워둔 표지판을 따라 이동했고, 문리과 대학 문학부 문예창작과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장 안으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원형으로 된 거대한 강의실이 일단 마음에 든다는 것이었다.
신입생은 나를 포함해 스무 명 정도였다.
백인이 거의 대다수, 다섯 명이 흑인, 히스패닉 하나에 동양인은 나뿐.
‘괜히 쫄리네.’
애써 괜찮은 척 슬그머니 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았고, 잠시 후 주변시로 거대한 풍채를 가진 누군가가 나 다음으로 강의실 안에 들어오는 것을 눈치챘다.
뭔가 싶어 슬쩍 돌아보니 안경을 쓴, 깡마르고 큰 키의 백인 남학생이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가 말했다.
“이곳인가. 나의 대학 생활을 시작할 곳이.”
“······.”
“······.”
다들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던 와중에 당당하게 입을 연 그.
그의 당당하고도 과감한 발언에 상당히 놀라고 있자니, ‘중지’를 세워 안경의 브릿지를 스윽- 밀어 올린 그가 말했다.
“오늘 자 ‘About T’ 본 사람,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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