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5)
15.
사이먼으로부터 연락을 기다리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가게 안. 한산한 가운데, 몇 병째인지 모를 소다를 따서 마시며 기다림을 견뎌냈다.
안 그래도 이 시대의 신문은 정기구독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꾸준히 구독자의 개인 정보를 수집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모은 구독자의 이름, 성별, 나이, 주거지 같은 정보는 토런스 뉴 미디어가 어떤 계층에 수요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용도로만 쓰일 터였다.
만약에 이 정보를 마케팅 컴퍼니 같은 곳에 몰래 팔아넘긴다거나 하면 토런스 뉴 미디어는 당장에 공중분해 되거나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사죄 문구를 박고 수많은 소송에 시달릴 것이다. 사장은 아마도 연방 교도소에 수감되어 비누를 줍는 신세로 전락하겠지.
아무리 1980년대라고 해도 미국의 ‘개인’에 대한 권리는 준엄하게 지켜졌다.
미국은 원래 그런 국가였다. ‘자유’를 꿈꾸며 넘어온 이민자들에 의해 ‘개척’되고, 그를 통해 얻은 자신의 소유물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이 모인 땅. 그러한 미국의 정신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터라 지금이라고 해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해지면 더 강해졌지.’
저 어디 시골 사유지에 함부로 들어갔다 샷건에 맞아 죽어도 총을 쏜 레드넥이 처벌받지 않는 게 미국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사람은 다른 이의 사유지를 함부로 침범했으니까.
문제는,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개인 정보는 굉장히 높은 가치가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동의를 받아야지.’
합법적으로 개인 정보를 사용하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도록 말이다.
다행히도 이쪽에는 명분이 존재했다. 우리가 상품을 준비하고 제공하니까 너희는 신문 구독 신청서 이상의 정보를 우리에게 알려달라. 그리고 그렇게 해서 모인 정보는 향후 또 이런 이벤트가 있을 때 사용하거나 알리기 위해 우리가 ‘일단은’ 보관하고 있겠다.
그리고 몇 개월쯤 있다가 다들 뇌리에서 지워질 때쯤, 모인 정보를 어딘가에 슬쩍 넘긴다.
사이먼은 악마적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미래에는 꽤나 보편적인 일이었다. 게임 같은 매체에서 데이터 쪼가리에 불과한 뭔가를 받기 위해 내 개인 정보를 넘기는 것쯤이야 사실 누구나 다 해본 일 아니겠는가.
‘나도 옛날에 게임 하나에 깊이 빠졌다가 말레이시아의 보이스 피싱범까지 내 얼굴과 전화번호를 아는 신세로 전락했었지.’
문득 그리운 추억을 떠올린 나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따라라라라-! 따라라라라-!!
강렬하게 울려 퍼지는 전화벨 소리.
“네, 전화 받았습니다.”
[자, 작가님? 사이먼입니다!]“아, 사이먼 씨. 회의는 잘 끝내셨나요?”
[그게, 좋은 소식이 하나, 그리고 나쁜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좋은 소식부터 들어볼까요?”
[기획 통과되었습니다.]“나쁜 소식은요?”
[사장님이 작가님을 직접 뵙고 싶다고 하셨습니다.]“······예? 사장님이 저를요?”
[이번 기획을 입안할 계기를 만들어줬을 정도로 히트작을 낸 작가라면 자신이 꼭 만나봐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식사 자리 좋은 곳으로 한번 마련해보라고 하시던데······ 혹시 괜찮으실까요? 토런스까지 오시는 비용은 회사에서 전부 부담하겠습니다.]그 말을 들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왜 그게 나쁜 소식이죠?”
사이먼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저희 사장님이 좀, 좋게 말하면 호탕하고 나쁘게 말하면 뒤가 없는 사람입니다.]“아.”
완벽히 그 말을 이해했다.
***
그런 부류의 사람이 있다.
기세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자신만의 의지와 목적을 가지고 세상을 헤쳐나가며, 그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운이 작용했건, 그 스스로 실력이 괜찮건 간에 끝끝내 성공하는 사람.
사이먼의 설명을 통해 토런스 뉴 미디어의 사장이 어떤 인물일지 머릿속에 그려내는 것은 썩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약간의 기대감과 불안감을 반반씩 안은 채 학교가 끝난 뒤, 토런스로 향했다.
토런스는 작은 도시였지만, 로스앤젤레스로부터 그다지 멀지는 않았다. 차로 한 시간이 조금 안 걸리는 정도. 하지만 나는 아직 면허를 따지 못했으므로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다.
80년대의 열악한 교통 시설로는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탄 끝에 대략 두 시간 정도가 걸려 토런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근처의 신문사를 찾아 걸어가면서 나는 토런스의 풍경을 둘러보았다. 로스앤젤레스에 비하면 어딘가 한산하지만, 그럼에도 최근에 개발이 진행되어 어느 정도 세련미를 갖추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도시였다.
토런스 뉴 미디어는 그런 곳의 중심부에 위치했다.
회전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서자 사이먼이 나를 반겨주었다.
“신 작가님!”
“사이먼, 잘 지내셨어요?”
“오늘은 정말, 먼 걸음 하게 해드려서 송구스럽습니다.”
‘허리를 깎듯이 숙여’ 인사하는 예의 바른 Racist 사이먼 카버.
나는 그 앞에서 웃어야 좋을지 울어야 좋을지 모를 기분을 느꼈다.
“······아닙니다아.”
“일단 올라가시죠. 저희 신문사부터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단정하게 셔츠를 갖춰 입은 나는 사이먼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토런스 뉴 미디어에 대한 내 감상은 이러했다.
‘환기 좀 하지.’
완전히 너구리굴이었다.
곳곳에서 담배 연기가 치솟았고, 전화기를 붙잡은 기자들이 누군가와 통화를 주고받거나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게 보였다. 여기에 타자기 소리까지 더해지니 환장할 지경이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환경 속에 전화를 할 수가 있는 거지.
“작가님?”
익숙하다는 듯 앞장서던 사이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날 돌아보았다.
“아, 네.”
“이쪽입니다. 여기가 제 자리고······ 이건 제 타자기입니다. 저쪽에는 미스 브라운이 있고요.”
“설마, 출판사에 오는 작가가 제가 처음인가요?”
“어, 어떻게 아셨죠?”
“설명이 뭔가 그렇게 느껴져서요.”
“그러시군요. 미스 브라운하고 인사해볼까요. Hi, Mrs Brown.”
“Hi.”
“This is SEEN.”
씬, 하우 알 유.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지리멸렬한 대화가 오갔다.
미스 브라운하고 인사를 나누고 난 뒤에는 다른 기자들을 소개받았다.
방금보다 조금 더 큰 문제는 바로 그 자리에서 발생했다.
“아, 이분이 신 작가님?”
“안녕하세요!”
“신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로버트 해리슨입니다. 이쪽은 조지 키본이고요.”
“안녕하세요. 작가님.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사인 한 장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어, 넵. 물론입니다.”
나는 그 두 사람에게 사인을 해주었다.
그걸 시작으로 내 존재를 알아차린 기자들이 주변에 모여들었다. 그러자니 너구리굴 현상은 더더욱 가속화되어 말보로와 럭키 스트라이크가 뒤섞인 최악의 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어머니가 잘 다녀오라고 손도 흔들어주셨는데.’
이대로 집에 돌아가면 너 담배 피우냐는 얘기나 들을 판이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들.
“동양인이었어?”
“생각보다 귀여운데.”
날 얕잡아보는 말들. 그 가운데에서 나는 사인을 멈추고 사이먼을 돌아보았다.
“사이먼.”
“아, 넵. 작가님.”
“사장님은 어디 계신가요?”
“어, 지금 잠깐 편집장님하고 커피 한잔하러 가셔서 말이죠. 곧 돌아오실 겁니다.”
“음······.”
나는 가볍게 눈썹을 찡그렸다.
그런 내 모습에 뭔가 눈치를 챘는지 사이먼이 가까이 다가왔다.
“이, 이쪽으로 오시죠.”
다른 기자들도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내 표정을 보고는 슬쩍 눈치를 보며 물러섰다. 거기에서 나는 왠지 모를 씁쓸함과 통쾌함을 동시에 느꼈다.
‘전생에 같은 상황이었다면 아무도 내 감정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겠지.’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나는 ‘Mother’라고 하는 성공한 작품을 쓴 작가였다.
입장이나 상황에 따라 태도가 바뀌는 경우는 왕왕 봐왔지만, 그 힘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역시 이래서 사람은 성공하고 봐야 한다는 것인가.
이내 나는 회의실로 안내되었다.
“조금만 기다리시죠.”
“여기는 좀 살 것 같네요.”
“아, 혹시 담배 냄새 싫어하시나요?”
“그런 건 아닌데, 아무리 그래도 럭키, 말보로, 카멜, 윈스턴이 섞인 냄새는 고역이네요.”
“확실히 그러실 수 있겠네요.”
나를 배려해 회의실의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는 사이먼.
우리는 회의실에서 소설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고, 토런스 뉴 미디어의 사장은 약속했던 시간으로부터 한 시간쯤 지난 후에야 회의실에 도착했다.
“아, 미안. 미안. 일이 좀 생겨서 말이야.”
옆에 키 큰 남자와 함께 함께 회의실로 들어온 그는 딱 보기에도 어디서 담배 좀 피우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다 온 모습이었다.
콧수염을 기르고, 넉살 좋은 미소를 짓지만 눈빛 하나만큼은 강렬한 사장.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레미 마틴이오.”
“신입니다.”
나는 싱긋 웃으며 그와 악수했다.
자,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정치의 영역이었다.
본인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사이먼에게는 딱히 말하지 않았지만, 사장이 나를 부른 이유는 분명 설명한 대로만은 아닐 터였다. 옆에 꼭 붙어 다니는 저 깡마른 체격에다 키가 큰······ 아마도 편집장인 휴고 어빙이 뭔가 바람을 불어 넣었겠지.
대충 이런 내용이 아니었을까.
‘이번에 ‘Mother’ 작가 나이가 열여섯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저한테도 좀 애처럼 굴던데, 큰일 진행하시기 전에 한번 불러서 업계 생태를 이해시키는 편이 어떠십니까?‘
확실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간 사이먼에게 들은 대로라면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이쪽은 휴고 어빙. 인사들 나누게.”
“직접 뵙는 건 처음이군요. 작가님.”
“안녕하세요. 휴고 씨.”
나는 그런 추측을 의식 아래에 남겨둔 채 휴고와도 인사를 나눴다.
사이먼과 내가 나란히 앉고 반대편에는 휴고와 레미가 앉았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사장이 저녁을 사주겠다고 불러놓고선 휴고가 먼저 나서서 이야기를 진행했다.
“결과적으로, ‘Mother’가 흥행하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팬레터가 아주 쏟아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 토런스 뉴 미디어의 덕이죠.”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영광이죠. 여기 계신 사장님과 직원 일동이 노력한 결과가 이제야 빛을 발하고 있으니까요.”
“크하하하! 지미 카터의 구멍을 보지 못한 게 아쉽긴 하지만 말이야!”
“············예?”
“아, 음. 작가님. 일단 별 의미는 아니실 겁니다.”
“아니, 사이먼! 나는 진심이야! 저널리즘이란 그래야 하는 법이지! 진실을 남김없이 파헤치고 드러내서 대중 앞에 갈기갈기 찢어 드러내야 하는 것 아니겠나!”
“사장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그래서, 이번 아이디어는 꽤나 좋기는 했어.”
레미 마틴은 그렇게 말하면서 내 눈치를 잠깐 살폈다.
“문화 섹션에서 그런 아이디어를 내오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군. 그렇지 않나. 신 작가.”
“······.”
나는 대답하지 않고 침묵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이먼이 대신 대답했다.
“자, 작가님 그 일에 대해서는 아직······.”
“아, 그래? 나는 분명히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이먼 자네가 회의할 때 재미있는 이야기를 내놓기 시작한 시점이 ‘Mother’의 계약을 따낸 직후 아니었나?”
“그, 그랬던가요.”
“인쇄소 늘리자는 아이디어는 아주 좋았어. 여기 있는 휴고도 잊은 부분이었는데.”
“······소 뒷걸음질에 쥐가 잡힌 격이었죠.”
슬쩍 표정이 굳어지는 휴고.
대화를 차근차근 듣고 있던 나는 들은 바와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이먼 카버는 토런스 뉴 미디어의 사장인 레미 마틴이 기분파에 과격한 성향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방금 그 대화에서 의외로 핵심인 지점을 찌르고 있었다. 확실히 사이먼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지점은, 나와 계약을 하면서부터였다.
‘설마 이 양반, 의심하고 있나?’
내가 사이먼을 뒤에서 부추기고 있으리라고?
머릿속이 핑핑 돌아갔다.
휴고의 표정이 굳어진 걸로 미루어 보면, 옆에서 계속 딸랑이 짓을 하는 것치고는 최근 들어 사장에게서 그만한 관심이 돌아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히려 사장의 관심은 사이먼에게로 넘어갔고, 그로 인해 편집장 쪽은 계속해서 굴욕을 맛보고 있는 상황.
자본주의에 미친 야수의 영리함이 느껴졌다.
‘어쩌면······.’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겠다.
나는 씨익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사장과 눈이 마주쳤다.
‘좋아. 이번 기회에 아예 까버리자.’
열여섯의 천재 소년, 거기다 사탄의 자식. 그 정도로 나를 포지셔닝 해보자.
그렇게 결심을 마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장님.”
“아, 신 작가. 무슨 일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죠? 개인 정보 ‘이용’ 동의서에 사인하라니요.”
“······하하하! 그래, 그렇지! 말도 안 되는 짓이. 누가 그런 것에 사인하겠나?”
“하지만 그걸 할 사람이 있습니다. 일례로, 제 팬 중 하나가 보낸 편지 중에는 집에서 살고 싶지 않으니 작가님 주소 가르쳐주시면 와서 밥하고 빨래하고 하겠다는 내용도 있더군요.”
“중학생 여자애였나?”
“아마도요?”
“그러면 그럴 수 있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소설에는 그만한 힘이 있다는 겁니다.”
나는 씨익 웃으며 사장을 바라보았다.
내 경험상, 이런 부류의 인간 앞에서는 괜히 속내를 숨기는 것보다 오히려 화끈하게 털어놓는 편이 확실히 먹혔다. 80년대에 유행했던 ‘남자의 세계’라고 해야 할까.
“제 사인을 가지고 싶은 팬이 있다면 무조건 동의하고 보내겠죠. 거기다, 이벤트를 어떻게 기획하느냐에 따라서 좀 더 딥한 부분까지도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소설은 비즈니스고,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다.
나는 그 명제를 증명하며 내 소설의 인기를 증명할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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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비즈니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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