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51)
151.
나는 대학생과 고등학생의 가장 큰 차이는 ‘자율성’의 유무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은 정해진 수업 시간과 루틴을 3년간 따라야 했다. 학교 수업은 철저하게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이루어졌으며, 이후 오후 5시까지 클럽 활동, 오후 7시에는 모두 하교했다.
반면, 대학교는 학생이 원하는 대로 스케줄을 짜는 것이 가능했다.
1학년은 아직 대학교에 적응하는 시기라서 베이직한 틀을 제공해 주기는 하지만, 각 학생은 자신이 흥미 있는 학문 분야를 원하는 대로 공부할 수 있었다. 졸업 전까지 180학점을 이수하고 각 학과마다 존재하는 요건을 맞추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학생들 대부분은 최대한 빠르게 졸업하고 싶어 했다.
1년에 6,400달러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학교 등록금 때문이었다.
거기에 기숙사 비용, 캠퍼스 서비스 비용, 교재비, 생활비, 데이트 비용(?), 기타 등등 부가 비용을 생각하면 스탠퍼드를 다니는 내내 거의 1년에 10,000달러는 우습게 들어갔다.
‘엄청난 금액이지.’
미국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평균 벌이가 26,000달러 정도라고 하는데, 대학 등록금 때문에 가계가 휘청대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물론, 교육에 큰 비중을 두는 이 나라의 특성상 장학금으로 그 대부분을 메꿀 수 있기는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수혜를 많이 볼 수 있는 입장이었다.
‘법의 맹점이라고 해야 할까.’
대학교는 장학금을 타는 조건으로 부모님의 소득을 많이 봤는데, 이게 뭐랄까.
‘나한테는 굉장히 좋은 조건이지.’
우리 집안 소득의 대부분은 내가 벌어들였으니까.
작년 한 해, ‘Han’s store’에서 발생한 총수입은 대략 15,000달러 정도였다. 한인 사회의 도움과 열심히 영어를 배워 장사하고자 했던 어머니의 노력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작년 한 해에만 100,000달러를 넘게 벌어들였다.
‘About T’ 시리즈의 연재를 화 당 480달러로 총 65화.
그것만 해도 31,200달러였고, 이미 ‘About T : Coach’ 다음의 새 연재작을 집필 중이었다. 이번에는 아예 반대로 치어리더 걸과 너드 보이의 연애를 그릴 예정으로, 토니와 앨리스는 작품의 관찰자이자 조연으로 출연시킬 생각이었다.
거기다 ‘About T’의 드라마화 계약금으로 50,000달러. 여기에서 파일럿 에피소드가 호평을 받고 이후에 정규 시즌이 제작되면, 추가 계약을 통해 더 받을 예정이었다.
거기다 앞서 연재한 다른 작품의 단행본 판매 수익이나 저작권료 같은 것이 발생하면서 10만 달러가 넘는 최종적인 수익이 되었다.
집안 빚은 이미 다 갚았고, 이제 합리적인 은행 이자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집안에 돈 가져다주지 않아도 된다. 네가 번 돈이니 알아서 써라. 고민 있으면 말하고.’라는 어머니의 말에 따라, 내가 직접 번 돈은 알아서 잘 관리하는 중이었다.
짬짬이 주식 시장을 보면서 내 기억에 있는 괜찮은 회사를 물색해 투자하기도 했지만, 아직 상당수의 수익은 은행 예금으로 넣어 두었다. 이때 당시에 예금 이자가 나쁘지 않았고, 장기 투자에 앞서 좋은 위치에 좋은 매물이 나오면 부동산을 하나쯤 구매해 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사무실 정도는 하나 있으면 좋지.’
가령, 언제든 필요하면 미팅할 수 있는 번화가에 위치한 사무실이라거나.
작가라는 직업에는 출퇴근의 개념이 없다 보니 낮과 밤이 쉽게 바뀔 수 있었다. 그래서 사무실을 마련하고 출퇴근하는 버릇을 들여 두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그러는 김에 그 공간에 온갖 코믹북이나 장르 소설, 보드 게임, 영화관을 만들어 나만의 왕국을 세운다면, 그건 그것대로 제법 행복하지 않을까.
······왠지 생각하면 할수록 어딘가 일 관련에서 조금 벗어났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지만 말이다.
‘아니, 어쩌다 생각이 여기까지 흘러 왔지?’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돈이나 투자와 관련된 생각을 하면 아무래도 생각이 다른 쪽으로 빠지게 된다. 글과 창작과는 채널이 다른 느낌이랄까.
어쨌든, 돈 관리를 시작하자 이제 성인이 되어 보다 자유로워졌다는 실감이 들었다.
그리고 대학 생활 역시 그것을 권장하는 느낌이었다.
정규 수업 시간 이외에 클럽 활동이나 사교 활동 따위가 자주 개최되었고, 나는 같은 기숙사에 있는 존 스미스에게 정보를 얻어 가끔 그러한 곳에 나가고는 했다.
그러면서 느낀 사실은······.
‘어딘가 익숙한 녀석이야.’
존 스미스는 알렉사와 두피를 합쳐서 반으로 가른 것 같은 놈이었다. 너드였으나 소위 말하는 인싸였고,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그리고 초반에 생긴 ‘SEEN’ 후광 효과(?)가 희석되자, 나에게도 그 특유의 살가운 태도로 부담스럽지 않게 이런저런 제안을 해오고는 했다.
어디서 파티 열린다는데 같이 가 보자.
어디서 교류회 연다는데 같이 가 보자.
어떤 클럽에서 행사한다는데 같이 가 보자.
그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호오, 이런 식이구나!”
눈을 빛내는 존 스미스와 함께 행사 현장에 도착한 후 나는 미소를 지었다.
문리과 대학 교류회 현장.
학교 안의 작은 공원에서 펼쳐지는 교류회는, 각자 원하는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앉아서 다과와 음료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벌써부터 몇몇 학생이 테이블에 앉아 논알콜 하와이안 펀치를 마시면서 깔깔 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신, 어디로 갈 생각이야?”
“글쎄, 너는?”
“나는 저기. 저기 저 떡대들 모여 있는 곳.”
“그러면 이따 만날까?”
“좋아! 좋아! 다녀올게!”
잔뜩 신난 기린처럼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존.
그 뒷모습을 나도 모르게 바닥의 풀을 뜯지는 않을까 우려 섞인 무례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학문에 대한 열기로 넘쳐나는 학생들은 이런 식으로 정규 수업 외에도 교류회의 형태로 서로 다른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했다.
······뭐, 그러다가 눈 맞아서 서로 만나게 되는 경우도 아예 없지는 않고, 사실 그쪽이 주류 같지만, 어쨌든 대충 그런 식이었다.
‘그 녀석도 여기 왔을 거 같긴 한데.’
그렇게 생각할 때쯤, 타이밍 좋게 찾아냈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케이트 무어를.
오늘도 말끔한 셔츠 차림에, 지극히 사회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
‘내가 아는 모습과는 영 다르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가까이 다가가 케이트의 바로 맞은편에 앉았다.
“아, 안녕!”
“처음 보네!”
“······.”
다들 살갑게 맞아주는데 케이트만 웃는 얼굴 그대로 굳어졌다.
나는 그들처럼 싱긋 웃어 주면서 인사를 건넸다.
“반가워. 문창과 신입생 신 한이야.”
스탠퍼드 내에서 ‘Creative writing’은 다른 인기 학과처럼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예술 계통 안에서 ‘글’로서는 대표적인 학과인 만큼 다들 이래저래 흥미를 보내 주었다.
거기에 서로 분위기가 익숙하게 퍼진 자리에 새로운 물결이 들어와서 그런 것도 있을 테고.
“아, 문창과! 잘 부탁해.”
“학교생활은 좀 어때?”
“거기는 수업마다 소설 쓴다면서? 진짜 대단한 거 같아.”
“짧은 소설을 거의 매주 쓰고 있지. 너희는 다들 어디 학과야?”
내 오른쪽 옆자리에 있던 잘생긴 백인 청년 하나가 연극학과라고 말했고, 내 왼쪽 옆자리에 있던 여학생이 수학, 그녀 옆의 여학생이 도시 연구학, 마지막으로 케이트가 사회학이었다.
차근차근 이어지는 학생들의 자기소개를 들은 후에도, 나는 사회적인 미소를 지은 채 평범하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아, 그쪽 학과 생활은 되게 어렵겠네. 매일 새벽마다 러닝을 뛰어야 한다고?”
“배우 일은 체력이 필수적이니까. 그래도 익숙해지면 아침 공기가 맑아서 기분이 좋아. 아, 학교 정문 쪽으로 가면 아침마다 수프 끓여서 파는 트럭 있는 거 알아? 그거 진짜 맛있어.”
“아, 진짜?! 다음에 꼭 가봐야겠다······!”
나를 앞에 두어서인지 약간 말투가 어색해진 케이트.
허, 딱히 신경 쓸 필요 없는데. 내가 무슨 이상한 말을 한 것도 아니고 말이다.
아무래도 본인이 지금 모습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색하다 느끼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한참 동안 이야기가 오가던 와중, 내가 자연스럽게 대화의 중심에 서는 일이 벌어졌다.
“하아, 학교 공부 진짜 힘들다. 벌써부터 이러면 어떻게 하지.”
“맞아. 맞아. 입시 때가 너무 끔찍해서 대학 들어오면 그래도 조금은 편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배울 게 갑자기 늘어나서 정신이 없어. 소문 그 이상이야.”
“그러니까. 아, 문창과는 좀 어때? 글 쓰는 걸 배운다는 느낌이란 게 어떤지 궁금하네.”
“흠, 너희들하고 엇비슷하다 싶은데. 결국, 대학의 모든 학문은 창조를 위한 기초잖아.”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는 글 쓰는 방법론을 익히고 그걸 토대로 실습을 수행하고 있거든. 방대한 방법론과 아직 그만한 수준에 미치지 못한 실습은 분명히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지만, 결국 그걸 이겨내고 난 뒤의 보상과 보람은······ 이 대학교, 스탠퍼드에 왔기에 느낄 수 있는 멋진 감정이 아닐까.”
별생각 없이 대답했는데, 순간 좌중이 조용해졌다.
“······.”
“······.”
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바라보자 수학과 여학생이 의지를 표명했다.
“맞아! 나는 미래에 필즈상을 수상하고 말겠어!”
“나도! 나도!”
“우리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배우기 위해 여기 왔으니까!”
논알콜 하와이안 펀치를 이용한 건배가 신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때까지 대부분 침묵하면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케이트 무어가 날 보면서 짓궂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현직 작가다운 멋진 연설이었어. 신.”
“응? 현직 작가?”
“그게 무슨 말이야, 신?”
분명 일부러 노리고 꺼낸 말이었다.
하지만 이제 내 정체를 숨길 이유가 더는 없었기에 나는 당당하게 인정했다.
“아, 얼마 전까지도 작품 연재 중이었거든. ‘About T’라고.”
다시 좌중이 조용해졌다.
이 테이블뿐만이 아니라 주변까지도.
‘설마.’
나는 약간의 불안감을 느꼈고, 그 직후 내 옆자리에 느긋하게 앉아 있던 수학과 여학생이 내 쪽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네가 ‘SEEN’이야?! 우리 학교에 왔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미쳤어! 나 ‘About T’ 완전 재밌게 봤어!”
“내 남동생이 네 광팬이야!”
“사인 좀 해 주라!”
엄청난 소란이 벌어졌다.
다들 웅성거리며 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SEEN’이 스탠퍼드에 입학했고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까지는 소문으로 알음알음 퍼졌으나, 그 당사자가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발생한 나의 신밍아웃(?)이 이 자리에서 잔뜩 들뜬 기분이던 학생들에게 기름을 끼얹었다.
“저, 저기. 잠깐······.”
“사인해 줘! 사인! 어서!”
“잠깐! 네 책 가져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잔뜩 흥분한 학생들 사이에 파묻혀 숨이 막혀가던 나는 그 건너편에서 비릿하게 웃고 있는 케이트 무어를 발견했다.
이 자식, 노렸구나.
완전히 한 방 제대로 먹고 말았다.
***
교류회는 완전히 팬 사인회로 변질되었다.
이 자리에 모인 머리 좋은 대학생들 중 상당수가 대부분이 내 팬이었던 것이다.
곳곳에서 들어오는 사인 요청에 나는 수도 없이 종이에 대고 펜으로 꼬부랑 그림을 그려야 했고, 테이블에 앉아서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해도 정신 사나울 정도로 사람이 모여 들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편하게 교류회를 즐기던 우리 테이블 사람들은 내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면서, 오히려 이렇게 변질된 형태의 교류회를 즐기는 듯했다.
얼마 지나면 존 스미스가 그랬듯 지워질 관심인데.
‘진짜 적응 안 되네.’
그동안 정체를 숨기고 지내왔던 것이 어쩌면 독이 되었을까.
“아, 악수 한 번만 부탁드려요!”
“와, 진짜 ‘Mother’ 재미있게 읽었어! 나 레이건 당선된 그날에 처음 토런스 뉴 미디어 사서 봤는데, 우연히 네 소설을 발견했거든! 이건 운명이라고 생각했지······!”
나는 잠시 할리우드 슈퍼스타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 눈앞에서 잔뜩 흥분한, 이름도 모르는 상급생은 알까. 내가 레이건의 대통령 당선 사실을 알고서 계획한 대로 자신이 휘말렸다는 것을.
어쨌든 그렇게 한 명 한 명 인사를 나누고 교류회가 끝날 때쯤이었다.
“후우.”
겨우 사람들의 관심도 멀어져서 혼자 좀 쉬고 있던 와중, 나는 조금 떨어진 채 싱글벙글 웃고 있는 케이트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여봐란 듯이 나에게 한 방 먹인 게 정말 좋았는지 평소의 얌전하던 표정을 지우고 사악하게 웃고 있었다.
‘두고 봐.’
내가 그런 식으로 입 모양과 제스처를 취하자 케이트가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뭘?’
뭐, 대충 그런 의미리라.
서로 악연 중의 악연.
내가 살짝 미간을 찡그리며 적개심을 드러내자 케이트는 깔깔거리면서 웃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내가 오늘 본 그녀의 모습 중에 가장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이봐, 친구야.”
누군가 어깨에 우악스럽게 손을 올렸다.
뭔가 하며 돌아보니, 아까 옆자리의 연극과를 발견했다. 녀석은 자신의 전공답게 웃는 표정 그대로 자신의 음험한 감정이 담긴 말을 건네 왔다.
“슈퍼스타 놀이는 오늘까지만 하자. 응? 여기 와서 여자 좀 꼬셔 보려고 했더니만, 덕분에 완전 초쳤네. 그래도 모인 애들 다 호박이라서 신경 안 쓰지만······ ‘Chink’ 놈이 괜히 주목 받는 게 좀 꼴같잖단 말이지.”
아하.
흔하디흔한 인종차별 시추에이션이었다.
전생의 대학에서도 자주 벌어졌던 일이었다.
무리를 짓지 않으면 대놓고 배척 받았던 야생적인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대학에서는 모두가 케이트 무어라도 된 것처럼 가면을 쓰고 지내는 까닭에 인종과 관련된 차별 행위도 이런 식으로 음습하게, 물밑에서 개인적으로 이루어졌다.
인종차별이 나쁘다는 인식 때문이 아니라, 나름 지성인으로서 그런 짓을 대놓고 하는 것이 ‘무식하다’고 여겨져서 이런 형태로 변화한 것이었다.
가끔 혼자 있을 때 툭툭 치고 가거나, 옆에서 ‘칭칭’거리는 정도. 그러다 빈틈이 보이면 물어뜯기도 하고.
그럼에도 전생에는 문제가 생길까 봐 적당히 무시하면서 넘겼는데, 이제 그때와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알았어. 조심할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제발 어깨 좀 치워 주라. 너 겨드랑이에서 똥내 나.”
“······?”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날 바라보는 연극과 청년.
어때. 이게 바로 동양인의 인종 차별 무술이다.
백인은 생활습관이 안 좋거나 조금 살집이 있는 경우에는, 특유의 암내가 상당히 나는 편이었다. 특히 남성이라면 더 심하고.
솔직히 말해서 백인인 친구도 많고 내 여자친구도 백인인지라 대놓고 이런 말을 하면서 죄책감이 아예 안 든다면 거짓이겠지.
하지만 나는 이 녀석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고 싶었다.
동양인이 인종차별에 반격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혼자 있을 때 조용히 험한 말을 지껄인 연극과 백인 청년.
하지만 그는 꿈에도 몰랐을 터였다. 자신도 똑같은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좀 씻어라. 응? 취선 분비 장난 아니네. 입 냄새도 쩔고.”
“이, 이······!”
“때리려고? 때려 봐. 경찰 부르지, 뭐. 나야 아무리 문제 생기더라도 필명 갈면 그만이다만, 우리 친구는 인종 차별 문제로 얼굴 팔리면 연기하는 데 문제될 텐데, 괜찮겠어? 아, 냄새도 문제되겠네. 어디를 가더라도 사람들이 네 그 역겨운 냄새는 다 알아볼 테니까.”
“······조심해라. 너 내가 지켜본다.”
“싫은데? 네가 지켜보면 뭘 어쩔 수 있지? 어차피 조용히 다가와서 ‘칭칭’거리는 게 다 아니야?”
“이 새끼가······.”
“아니면 쟤네들한테 물어볼까? 네가 나한테 무슨 말을 했고, 너한테서 얼마나 좋은 냄새가 나는지. 공평하겠네. 그치?”
뭐라 반격하려던 연극과는 내가 말을 마치고 가만히 노려보자 순간 한숨을 푸욱 내쉬고 얌전히 물러갔다.
사실 내가 말하고도 뒷맛이 씁쓸한 언행이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가만히 좌시만 했다가는 전생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굳게 결심하고 이야기했다.
내가 다시 돌아온 이후에 차별로 인한 트라우마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어도, 이런 일은 내 주변에서 알음알음 존재했다.
동양인, 그것도 동양인 남성이 미국 사회에서 주목 받고 중심이 된다는 사실을 꼴같잖게 여기고 그런 역할이 주어져서는 안 된다는 편견.
동양인은 조용하고 순종적이라서 이런 말을 들어도 반격하지 못하고 입을 다문다는 편견.
그로 인해 발생하는 더 공격적인 차별들까지.
‘그 기류에 어울려 줄 이유는 없지.’
어차피 자기도 똑같이 인종 차별한 터라 딱히 할 말은 없을 테고.
그나저나, 신 한. 너도 참 많이 바뀌었구나.
미래를 겪고 돌아왔기 때문일까. 대학 신입생 주제에 인종 차별에 대응하는 방법을 능숙하게 쓸 줄 알았고, 그 방법을 쓰더라도 별다른 문제가 벌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잘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차별로 비롯된 분노와 열등감부터가 많이 희석되었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차별이 아예 없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더 이상 거기에 아파하지도 않았다.
그러는 인간이 있다면 나의 방식대로 돌려주면 그만일 뿐이었다.
“어.”
그리고 다시 떠오르는 생각.
대학이라는 새로운 ‘사회’와 그곳에서 다른 모습을 보이는 ‘나’.
다시 말해, 배경과 주인공.
‘디스토피아······?’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을 확실히 잡아내고자, 나는 한동안 자리에 선 채로 고민했다.
[ Empire strikes back (2) > 끝(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