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53)
153.
스탠퍼드 대학교는 졸업을 위해 180학점을 이수해야 했다.
학점의 이수 방식은 굉장히 다양했고, 학교에서는 그걸 학생들에게 ‘스탠퍼드는 다양한 학문적 경험을 제공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문제는, 그 경험의 초점이 순전히 대학의 높으신 분들의 눈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학생이 잠자는 시간만 빼고 모두 공부만 하기를 원하는 듯했다.
그것이 대학의 평균이었다.
스탠퍼드, 아니, 대학에서 정규 시즌(?)인 4년 안에 졸업하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그런 녀석이 있다면 범생이들만이 모인 장소라고 할 수 있는 이 대학에서도 범생이라고 불렸다. 말하자면 범생이의 왕 정도라고 해야 할까.
180학점을 4년 내로 이수하기 위해서는 학기마다 수업을 15개씩 들어야 했다. 대학 생활 내내 거의 공부에 파묻혀 지내야 한다는 의미였고,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 맹점을 보충하기 위해 스탠퍼드는 계절 학기나 외부 학점 같은 시스템을 마련해 놓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시스템이 있어도 4년 졸업은 정말 어려운 것이 바로 이곳 스탠퍼드였다.
나도 일단 4년 만에 졸업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공부도 좋지만, 지금의 삶을 마음껏 즐기고 싶으니까.’
그렇게 해서 얻은 경험과 감정을 내가 쓰게 될 소설에 녹여내고 싶으니까.
회귀 후, 계속해서 소설가로 살아 오면서 나는 조금씩 내가 누구이고 어떤 소설을 쓰는 사람인지를 파악해 나갔다.
나는 인종차별의 벽에 가로막혀 상처 입은 소년이었고, 그와 동시에 작가로서의 기술을 가지고 삶의 여러 부분을 파악하고 상황에 맞게 행동할 줄 아는 어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과거와 미래, 두 곳 모두를 체험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런 내가 쓰는 글은 지금 시대에서는 굉장히 세련되었거나, 반대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시대를 앞서 나간 작품이 될 가능성이 존재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껏 시장성과 내 작가로서의 의식 사이에서 계속해서 줄타기를 하며 최대한 좋은 작품을 써내려고 노력했다.
한국계로서의 색채를 담은 ‘Mother’나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Princess quest’가 내 작가로서의 에고에 집중했다면, ‘Double spy’나 ‘About T’는 시장성에 좀 더 주안점을 두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쓰게 될 SF 소설은, 조금 더 작가로서의 의식에 치중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누구나 읽기 편한 소설보다는 소위 말하는 ‘발칙한 상상력’으로 대중을 경악하게 만드는 형태의 글.
나는 선명히 유리된 과거와 미래 사이의 공통점으로부터 상상을 시작했다.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었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이상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문제는 ‘사회적인 무언가’가, 결국 허상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기인했다. 사회가 정한 어떤 허상이나 다름없는 기준에 맞추지 않으면 인간은 패배자가 되고 스스로도 불행함을 느꼈다.
‘이건 미래가 훨씬 더 심한 편이지.’
나는 그것이 인간이 너무 많은 ‘네트워크’와 연결이 되어서라고 생각했다.
발상에 앞서 SNS를 대표 주자로 꼽기는 했으나, 그것에 별 가치를 두지 않는 이들조차 각자의 커뮤니티에서 어떤 허상과 같은 개념에 목을 매고, 그것을 이해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을 편협하다면서 배척했다. 물론 그 ‘편협한 인간’에는 자신도 포함되지만, 진실을 아는 자신은 그나마 낫다고 자위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인간은 스스로 생각할 의지를 잃어버린다.
SNS를 통해 유명한 인물이 제시하는 어떤 인물상이나 사상에 심취해 그 기준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고 그러지 못하면 열등감을 느끼고 불안해한다.
인간은 점점 스스로 생각하기보다도 인터넷을 통한 정보에 길들여져, 의식의 틀을 끼워 맞추면서 살게 된다.
나는 과거로 돌아오고서야 그것들이 모두 허상임을 알게 되었다.
‘전생의 나 역시 그랬지.’
동양인이 비겁한 악당으로 나오는 과거의 소설로 인해 상처를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니즈에 맞추기 위해 내가 도저히 이입할 수 없었던 카우보이 스타일의 백인 남자가 나오는 좀비 아포칼립스물로 떼돈을 벌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도 결국, 내 문제였다.
‘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나는 어디 하드코어한 종교 서적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를 생각했다.
그것이 싫었으면 안 쓰면 그만인데.
하지만 그때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시대의 흐름에서 비롯된 허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거기에 맞춘 글을 써서 성공하려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성공으로 또 고통스러워했다.
그랬던 자신이 어딘가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대체 무슨 글을 쓰고 싶은 걸까?’
나와 같은 동양인 주인공을 내세운 글?
아니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글?
그것도 아니면 그냥 돈만 벌면 장땡인가?
거기에 더해 인기와 인정, 다시 말해 명예와 권위도 원하나?
‘SEEN’이라는 필명대로, 나는 그만한 욕심을 부리고 또 부려야 성이 차는 인간인가?
그리스 신화의 에리시톤처럼 계속해서 채워지지 않는 허기에 욕심을 부리고 자기 자신까지 먹어치워야 이 고통은 끝이 날까.
‘아니야. 그렇지 않아.’
하지만 나는 이 감정을 부정하지 않았다.
더 많은 돈이 벌고 싶었고, 그걸 가지고 원하는 바를 이뤄내고 싶었다.
그럼에도 거기에 목매달지는 않고자 노력했다.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와서 후회되는 일을 바로 잡고,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 지금에 만족하려 들었다.
그리고 사실 그건, 내가 미래에 벌어질 일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도 있겠지.
‘불안한 감정이 조금은 덜 하니까.’
성공에 목맸던 전생의 나와 그러지 않으려 하는 지금의 내가 어떻게 다른지를 생각하니, 그제야 미래를 살아가는 이들이 왜 사회적 허상에 얽매이는지가 느껴졌다.
불안하니까.
개인이 파악하면서 인간들이 얽히는 네트워크는 기하급수적으로 넓어지고, 제각각의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을 그 네트워크에 전시하려 든다. 그러면서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누군가를 은연중에 패배자로 낙인찍는다.
심지어 문화권에 따라 어떤 경우에는 그만한 성공에 도달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대놓고 드러냈다고, 그 과정이 미심쩍다고, 배경이 좋거나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뭇매를 맞기도 한다.
‘참, 어쩌라는 건지.’
생각하면 할수록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수십만, 수백만 명으로부터 비난을 받은 스타는 자살하고, 그조차 대중과 미디어에 의해 유희로 사용된다. 패배자가 되지 않기 위해 그를 추모하거나, 반대로 남들과는 다른 자신에게 취하고자 거친 언어로 그를 모욕하는 것이다.
나는 결국 이 모든 뒤틀림이, 어떠한 사회적 통념과 인간이 맞서는 행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투쟁이 깊어지고 복잡해질수록 그 과정을 극복하기 어려워졌고, 그 구조 안에서 사람은 서서히 자아를 점점 잃고 불행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고민 끝에, 나는 ‘디스토피아물’이란 시대적 흐름을 극단적으로 묘사해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장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극단적 제국주의나 전체주의가 만연한 세계, 더 나아가 모든 시스템이 뒤엉켜 ‘사회적으로 가장 암울한 세계’를 그려야 하는 만큼, 작가는 세상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함께 그것에서 비롯된 상상력을 흥미로운 형태로 벼려내어 던질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내가 쓰려는 디스토피아의 발상은 미래에서 가져 왔지.’
현재는 ‘인터넷’이라는 개념이 딱히 발달하지 않은 만큼, 사람들에게 내가 쓸 디스토피아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라도 지금 세상에서 통용되고 있는 어떤 편린을 이해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렇다면 ‘사회적’이라고 불리는 허상의 편린이 지금 이 시대에는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
‘그걸 위해서 케이트의 경우를 예시로 삼으려는 거고. 사실 내가 파악한 것조차 내 오판일 가능성이 클 테니까 현장 취재는 반드시 필요해.’
내가 본 케이트 무어는 사회에서 제시하는 ‘허상’에 몰두하는 사람이었다.
아, 그렇다고 해서 나는 그러한 허상이 완전히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인간은 사회적 통념을 제시 받고, 그것에 대립하면서 점점 성장하는 존재였으니까.
그럼에도 내가 그것을 ‘허상’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올바른 형태로 나아간 인간 개개인의 의지는 그보다 더 위대하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About T’를 좋아하는 지점이나 ‘대학에 오면 바뀔 줄 알았다.’고 말하는 태도에서, 나는 허상에 몰두하는 그녀가 어딘가 공허함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읽어냈다.
‘그럴 수밖에.’
나 역시 겪은 일이었고, 그것을 지워내기 위해 정말로 오랜 시간을 헤맸으니까.
그래,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한 번의 삶을 돌아와야 가능했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현 시대에 그러한 상황에 놓인 케이트를 옆에서 관찰하면서 내가 앞으로 쓸 소설의 가닥을 잡아갈 마음을 품었다.
8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허상에 사로잡혀 있는가. 그것이 미래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것을 실제 두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이 소설의 완성도를 높여 줄 테니까.
‘재밌겠군.’
***
1학년 가을 학기.
나는 청강하고 있는 과목을 제외한 열 개 과목의 시험을 치렀다.
그중 주요 전공 수업들은 글쓰기와 그 이론에 관련된 것이었고, 전자에 속한 과목은 과제로 대체, 후자는 암기 테스트를 치렀다.
그 외의 수업은 극작 개론이나 독일어, 문화사였다. 어쨌든 ‘글을 쓰는’ 행위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었기에 나는 각각 필요한 만큼 공부를 수행했고, 그 결과 모든 과제 작성과 시험에서 딱히 막히는 부분을 느끼지 못했다.
‘굳이 완벽하게 할 마음까지는 없었는데.’
전생 내내 학생과 교사로 지내며 공부하고 가르치고, 그마저도 모자라 과거로 돌아와 고등학교 3년 내내 공부에 매진하면서 ‘공부’하는 행위에 길들여진 탓일까.
내 몸은 아무리 적당히 한다고 해도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서 공부하는 방법을 체득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기술은 레포트도, 테스트도 피해 가지 못했다.
그렇게 중간고사가 끝난 바로 다음 주, 각 수업에서 시험 점수가 공개되었다.
나는 거의 대부분의 과목에서 만점에 가까운 +A를 받았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동기들은 불편하다는 듯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면서 뭐라 뭐라 수군거렸다.
“뭐야, 글만 잘 쓰는 줄 알았더니 공부까지 잘해?”
“신도 불공평하지······.”
“나한테 분명 공부 안 했다고 하더니 다 거짓말이었어!”
마지막에 말한 것은 존 스미스였다.
나는 왠지 모르게 ‘Princess quest’를 플레이하던 때 친구들로부터 따돌림 받았던 악몽(?)이 떠오르는 것을 느끼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기, 얘들아?”
“으, 응?”
“무슨 일이야?!”
“다 들려.”
“······.”
“······.”
“와, 신! 진짜 최고!”
“멋져! 정말 잘생겼어!”
잘생긴 것과는 상관없지 않나.
그래도 다들 학교생활을 함께하면서 나름대로 친해졌다.
내가 최고 점수를 여럿 마크한 걸 안 뒤에 들리게 대놓고 투덜댄 것도, 결국은 서로 초반의 어색했던 기류가 사라지면서 나올 수 있는 가벼운 장난이었고 말이다.
하지만 개중에서 좀 진지한 부류도 존재했다.
바로 레베카 웡이었다.
“신.”
“아, 응. 레베카.”
“너는 대체 어떻게 공부를 해서 이렇게 시험을 잘 본 거야?”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묻는 그녀.
거기에 이렇게 대답해줄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수업 잘 듣고, 복습하면서 개념을 잘 파악하면 돼.”
당연히 엄청난 반발이 돌아왔다.
“우우! 너무하다!”
“그래! 그런 말은 나도 하겠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시험을 잘 볼 수 있는 건지 말해!”
“너 대학 두 번 다닌 거지?!”
헉, 어떻게 알았지?
의외의 부분에서 정곡이 찔린 나는 어색하게 너스레를 떨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중간고사라고 하는 하나의 벽을 무사히 넘겼다.
그것이 충분히 마무리됐다고 생각한 직후에 나는 지난번에 케이트에게 이야기했던 대로, 사회봉사 클럽 활동에 참석하고자 클럽 하우스 건물로 향했다.
학생이 직접 신청해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는 교내 클럽은 크게 실외 활동 클럽과 실내 활동 클럽으로 분류가 되었다. 그중에서 사회봉사 클럽은 실외 활동 쪽에 속했다.
이 클럽에 가입한 학생들은 주마다 한 번씩 대외 봉사를 나가서 사회 취약 계층을 도왔다. 그리고 나는 이번 클럽 활동에 견학생으로 먼저 참여해 보기로 얘기가 된 상태였다.
클럽 하우스 바깥의 카페에서 먼저 기다리고 있던 케이트는 사회봉사 클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취업할 때 이력서에 한 줄 추가하는 거지.”
“······Holy moly.”
“왜?”
“아니, 사회 취약 계층을 돕는다면서요.”
“맞아. 그렇게 해서 이력서에 한 줄 추가한다고.”
“아니, 보통은 돕는다는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말하지 않아?”
“······.”
“······.”
“소, 소설에 쓴다면서?”
이 자식, 요즘 들어 내 앞에서 점점 자기감정을 안 감추고 있다.
너무 ‘사회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속내를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모습 또한 보기 좋다고만 할 수는 없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균형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색한 얼굴로 케이트에게 물었다.
“그러면 너는 순전히 대외 활동 기록 때문에 이 클럽에 가입한 거야?”
“아니, 사람들을 돕는 게 즐거워서.”
“······인터뷰, 인터뷰.”
“혹시 이거 소설에 그대로 쓸 건 아니지?”
“물론이지. 작가가 인터뷰한 내용을 그대로 싣는다면 그건 수필이지 소설이 아니잖아.”
내 말에 조금 안심한 듯한 기색을 보이고는 케이트는 스스럼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
“뭐,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거나, 아니면 만남을 목적으로 온 거지 싶은데.”
“호오.”
미래나 과거나 이런 부분은 변화하지 않았군.
방식이 바뀌었을 뿐이었다. 미래에는 SNS나 틴더 같은 데이팅 어플리케이션에 자신을 노출시키면서 연애 상대를 찾았다면, 지금은 이런 식으로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러운 일이랄까.
‘결국, 인간의 욕망은 비슷하다는 말인가.’
그리고 미디어와 네트워크는 그것을 더욱 자극하는 방식으로 발전했지.
조금씩 생각이 정리되어져 가는 느낌에 미소를 짓자 케이트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웃지 마. 기분 나빠.”
“알렉사는 잘생겼다고 하던데.”
“후우, 알렉사가 너 같은 거하고 사귄다니. 이해할 수가 없네.”
한숨을 내쉰 후, 케이트는 마지막으로 주의 사항을 전했다.
“너하고 나하고 이런 대화 나누는 건 거기 가서는 비밀이야. 나 따라다니면서 취재하는 건 좋은데, 절대로 내 소셜 활동에 방해되지 않도록 하고.”
“명심합죠. 선생님.”
“좋아. 가자.”
자리에서 일어선 케이트는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심호흡한 뒤 클럽 하우스로 향했다.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 일렬로 늘어선 방 중 ‘사회봉사 클럽’이라는 팻말이 적힌 방 안으로 들어섰다.
“오, 케이트.”
“어서 와.”
자리에 모여 있던 열 명 남짓한 남녀가 인사했고······.
“안녕하세요. 다들 잘 지내셨죠?”
거기에 화답하듯, 케이트 무어는 그야말로 ‘완벽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미래에 ‘인스타그램’에서 완벽한 자기 모습만 보여 주던 사람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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