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54)
154.
케이트 무어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의 가면을 썼다.
“아, 정말요? 다음에 꼭 가 볼게요! 추천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내 앞에서의 뚱한 태도는 어디로 갔는지, 녀석은 클럽 활동을 함께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싱글벙글 웃으면서 사랑받는 1학년 신입생의 역할을 완벽히 수행했다.
대학에 들어오면서 외모를 꾸미고 이미지 체인지를 한 덕분인지 남자 상급생은 항상 그 곁에서 웃기려 하거나 뭔가 도움을 주려고 했고, 여자 상급생은 마냥 귀엽게 여겼다.
그 모습을 틈틈이 지켜보고 있자니 어떤 상급생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안녕, 오늘 온다고 했던······.”
“아, 신 한입니다. 뭐든 시켜만 주세요.”
적당히 대답하고 맡겨진 짐을 옮기면서 나는 케이트를 몰래 계속 지켜보았다.
단어로만 표현한다면 어딘가 음흉한 속내가 있는 것 같은 행동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신작 집필을 위한 일에 불과했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사회봉사 클럽이 봉사 활동을 나간 곳은 근처의 보육원이었다.
“자자, 다들 열심히 일하고 쉬자고!”
“넵!”
“오늘도 힘내요!”
마치 캠퍼스물의 한 장면처럼 기합을 넣었고, 나를 포함한 열두 명의 클럽 멤버들이 각자 맡은 역할대로 흩어져 보육원 일을 돕기 시작했다.
세탁과 청소, 요리 보조와 애들과 놀아 주기에 이르기까지.
나는 세탁 담당으로 빠져서 적당히 할 일을 끝마쳤다.
‘뭔가, 대학답다는 느낌이 팍팍 드는군.’
단지 이력서에 한 줄 추가하기 위한 활동이다.
케이트는 그렇게 말했지만,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대단한 일이었다. 공부하기 바쁘고, 놀기도 바쁜 대학 시기에 누가 이렇게 나와서 보육원 봉사 활동이라는 좋은 일을 한단 말인가.
정작 케이트 본인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나는 빨래를 마치고 옷가지를 햇볕에 널어놓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우연히 보육원 안에서 애들과 놀아 주고 있던 케이트 무어를 발견했다.
정확히는, 배트맨에 나오는 조커처럼 기괴한 분장을 하고 있는 그녀를.
안경을 벗고 말 그대로 ‘새하얗게’ 칠한 피부.
새빨간 입술과 짙고 검은 눈 화장.
“······.”
“······.”
우리의 시선이 마주쳤다.
어후, 꿈에 나오겠네.
“언니! 언니! 화장 정말 예쁘다!”
“고, 고마워어~.”
그 앞에 있던 여자애가 크레파스를 든 채 명랑하게 웃자 케이트도 따라서 웃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웃으면안돼웃으면안돼웃으면안돼웃으면안돼웃으면안돼웃으면안돼웃으면안돼웃으면안돼.’
“······야.”
“푸훕!”
참지 못했다.
케이트 무어가 도끼눈을 뜬 채 나를 노려보았고, 여기서 나도 모르게 ‘Why so serious?’라는 말을 뱉어 버리면 정말 참을 수 없을 것 같았기에 부랴부랴 자리를 뜨고 말았다.
***
케이트 무어는 단언했다.
‘진짜, 너무너무 싫은 녀석이야!’
신을 말하는 것이었다.
‘원래 저런 녀석이야? 응? 원래 저런 녀석이었어?!’
고등학교 시절에는 잘 알지 못했던 녀석의 실체를 조금씩 알아가게 되면서 케이트의 마음속 은은한 분노가 점점 크게 타올랐다.
무엇보다 가장 열 받는 점은, 바로 그 능글맞은 태도였다.
뭐라고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와 대화를 나눌 때마다 ‘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케이트 무어가 무엇보다 싫어하는 것은, 지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는 상태에서의 완전한 패배.
신과 엮이면 엮일수록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났다.
오늘도, 그랬다.
“저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심리학 1 수업에서의 일이었다.
보통 청강생은 조용히 듣기만 하는 편이었으나, 신은 달랐다.
그는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며 자신의 의견을 냈고, 그럴 때마다 교수는 그것을 주의 깊게 받아들였다. 수업에 참석한 학생 중 몇 안 되는 동양인인 데다가 항상 날카로운 의견을 내는 학생을 어여삐(?) 여기는 눈치였다.
문제는, 하필이면 오늘따라 케이트가 냈던 의견에 반발했다는 사실이었다.
[타인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오늘 강의에서 교수가 제시한 화두에 대해 케이트는 여러 의견을 들었다.
누군가는 진정으로 위하고 있음을 알게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 누군가는 물질적인 대가를 쥐여 주면 된다고 말했다.
정서와 물질로 대립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고민을 마친 케이트는 슬슬 의견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소에는 비교적 조용히 수업을 듣는 편이었으나, 교수가 논제를 던지고 토론을 유도할 때 자신의 주장이 주류가 될 수 있겠다고 판단하면 그녀는 서슴없이 목소리를 내었다.
그래서 케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타인을 진정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변화는 본인의 의지에 달렸죠. 그것을 유도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토론의 쟁점을 꺾어 버리면서, 동시에 모두가 납득할 수밖에 없는 의견.
케이트는 순진한 척하면서도 날카로운 모습을 종종 드러내면서, 절대 자신이 허투루 대할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같은 학과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에 신이 손을 든 것이었다.
다른 의견이 있다고.
“오, 신. 뭐지?”
여느 때처럼 교수가 반색하며 돌아보았다. 이럴 때마다 신은 언제나 흥미로운 의견을 냈기 때문이었다.
케이트는 눈썹을 한 차례 꿈틀거렸고, 옆자리에 앉아 있던 동급생들이 신을 보며 숙덕거렸다.
“쟤가 소설가 ‘SEEN’이라면서?”
“아, 진짜? 정말 동양인이었구나.”
신기하다는 듯한 시선.
그리고 케이트의 증오(?) 어린 시선.
쏟아지는 온갖 시선 속에서 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세뇌라는 좋은 방법이 있잖아요?”
순간 강의실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푸하하하하!!”
“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다들 말도 안 되는 의견을 제시한 신을 보면서 배꼽 빠져라 웃어댔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케이트는 사회심리학 교수의 표정이 굳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불길함을 감지했다.
“Brainwash. 그렇다면, 어떻게?”
교수가 진중하게 던진 짧은 질문에 다들 침묵했다.
그가 이번에도 신의 의견을 흥미롭게 받아들였다는 의미였으니까.
“CIA에서 개발 중인 세뇌 도구 같은 게 있지 않을까요······라고 대답하면 안 되겠죠?”
신은 한 번 더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풀고 말을 이어 나갔다.
‘아, 진짜 싫어!’
케이트는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좌중을 휘어잡는 그를 혐오(?)했다. 자신은 엄청난 고심 끝에 어휘와 타이밍을 고르고 골라 겨우겨우 해내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어진 설명에는 그녀 역시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신은 이렇게 말했다.
대표적으로 종교가 있지 않느냐고.
그리고 거기에서 확장시켜 사회적인 세뇌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가령, 수십 명, 수백 명, 나아가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똑같은 말을 한다면, 그것을 옳다 여기고 그대로 믿고 따르지 않겠냐고.
그의 의견을 들은 교수는 만약에 집단의 통제가 누군가의 의도대로 가능하다면 정말 무서운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케이트는 납득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같은 의견을 한 사람에게 말한다고?’
도대체 무슨 소린가 싶었다.
대중 앞에서 비난을 받은 선거 후보인가? 하지만 그런 이들이 자신의 의견을 곧이곧대로 굽힌 적은 없지 않나?
짧은 시간 동안 반론을 떠올렸고, 그녀는 저도 모르게 손을 들고 말았다.
“아니, 그들은 ‘자기 자신’이 아닌 ‘정치 공약’이라는 대의를 명분으로 활동하고 있잖아. 그러니 올바른 반례라고 볼 수 없지. 나는 발의된 논제에 따라 개인의 자아를 변화시키는 방법론에 대해 말했으니까.”
하지만 선거 후보를 예시로 들자마자 신이 반격했다.
그리고 둘만 있을 때와는 달리, 무척이나 진지한 어조로 설명을 이어 갔다.
“한번 생각해 봐. 실제로 모든 사람에게 같은 말을 듣는 게 아니더라도, 그보다 작은 범주의 집단에서 흔히 겪는 일 아닐까? 예를 들어,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바라는 기대에 따르며 성장한 아이라던가. 자아가 완전히 형성되지 않은 시기에 벌어지는 일인 만큼 내 주장의 근거로 쓸 수는 없을 것 같지만, 대충 그것과 비슷한 거지.”
그렇게 말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신.
옆에 있던 친구들이 다시 말을 수군덕거렸다.
“와, 쟤 의견에 설득된다.”
“세뇌라. 단순하면서도 확실히 말이 돼. 왜 그걸 떠올리지 못했지?”
“쟤 이번에 학과 내에서도 1등 했다던데.”
“역시 작가는 다른가 봐~.”
“······후후.”
모든 상황을 지켜보면서 케이트는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차에 치였으면 좋겠다. 아, ‘About T’는 끝내고.’
고등학교 내내 성적 1등에, 압도적 지지를 받는 치어리더 캡틴 출신 프롬 퀸과 사귀고, 소설가로 잘 나가는데다가, 대학에 와서 청강까지 들으면서 설렁설렁하는 거 같은데 학과에서 1등을 놓치지 않는 주제에, 이제는 신작 집필에 들어간답시고 주변을 어슬렁대며 취재까지 다니고 있어?
‘이 나쁜 놈!’
순간 머리끝까지 피가 치솟았지만, 케이트는 쫙 펼친 두 손바닥으로 무테 안경의 경첩 부근을 쓸어 올리며 침착하게 자신을 다스렸다.
그래, 자신에게 자신의 지옥이 있듯 그 역시 그럴 터였다. 분명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테지. 그게 아니고서는 절대 성립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성과였다.
그리고 수업이 끝난 후의 만남에서 ‘그렇지?’ 하고 묻자 신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 나 되게 잘 자는데······.”
케이트는 학업에 열중하겠다며 또래보다 조금 늦게 땄던 운전면허증을 떠올렸다.
직접 치어 버리고 싶었다.
***
케이트 무어는 그야말로 ‘인생 열심히 사는 대학생’의 표본과도 같은 녀석이었다.
4년 안에 학교를 졸업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안에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굳이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헤르미온느 같다고 해야 할까.
그녀는 입학도 어려우나 졸업은 더 힘든 스탠퍼드의 대학생으로서 학업과 대외 활동, 각종 스터디, 대회 프로그램과 클럽 활동까지 병행했다.
그리고 사실, 그것은 스탠퍼드에 재학 중인 학생이라면 대부분 하는 일이었다.
심지어 바쁜 와중에도 파티가 꽤나 자주 열렸으며, 거기에 참석한 대부분은 적당히 마시다가 방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실제로도, 파티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돌아온 존 스미스가 다음 주까지 제출할 과제의 초안을 짜기 위해 쉬지도 못하고 책상에 앉는 광경을 몇 번이고 보았다.
왜 그런지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이 돌아왔다.
“열심히, 히끅, 해야지. 기껏 좋은 대학, 히끽! 들어왔는데.”
딸꾹질을 하면서도 열심히 레포트를 작성하던 녀석.
그 정도까지 대학 생활에 최선을 다하지는 않는 나로서는 그런 학생들의 모습에 왠지 모를 기시감이 들었다.
내가 생각했을 때, 모두가 과도할 정도로 쫓기듯이 생활하고 있는 듯했다.
문제는, 그 누구도 그것을 강요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졸업을 위해 180학점을 이수하고, 괜찮은 성적을 얻고 폭넓은 활동을 펼쳐야 좋은 곳에 취직할 수 있다는 생각이 모두를 지배하기 때문이었다.
케이트 같은 경우에는 그것을 보다 또렷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뿐이지, 사실 다들 그랬다.
똑똑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재들인데, 학문을 배우고 더 나은 자신으로 거듭난다는 목적은 아무래도 뒷전이 된 것처럼.
나는 케이트를 시작으로 여러 대학생들의 행적을 지켜보면서 느낀 기시감을 머릿속에서 언어로 변환했다.
‘다들 불안한 모양이로군. 미래에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앞으로도 나는 잘할 수 있을까.
끝없는 경쟁으로 내몰려서 자신만의 행복을 찾지 못하고, 그런 세뇌에 가까운 생각이 머릿속이 가득 차 과업만을 반복하는 이들.
‘이제 보니 미국의 대학교란 충분히 디스토피아의 자질이 있군.’
아이가 어른이 되듯, 이 무형의 압박감은 미래가 되면서 더욱 심각해진다.
‘비교 대상이 더욱 넓고 높게 확장되니까.’
사람들은 인터넷이라는 무규칙적 대규모 담론의 장을 통해 서로를 비교하고, 그에 따른 우월감이나 열등감으로 상대를 헐뜯으며, 그로 인한 불신과 좌절에 잠식되면 점차 마음의 문을 닫고 만다.
그 결과 미숙해진 자의식은 우상이나 허상을 향한 의탁을 통해 겨우 이어질 뿐이었다.
‘그렇게 의탁할 대상이라도 없었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살했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궁지에 몰린 그들은 의탁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의 화살에 맞아서 죽는다.
과거나 미래나 정도만 다를 뿐, 사회는 계속해서 사람을 극단으로 치닫게 했다.
마치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는 것처럼. 인간이란 원래 그래야 하는 존재라는 것처럼.
그 깨달음을 갈무리하면서, 나는 머릿속에 흩트려 놓았던 퍼즐 조각이 맞아떨어지는 감각을 느꼈다.
서로를 끝없이 비교하게 만드는 경쟁 사회.
인생이라는 큰 레일에서 어떤 시기에 어떤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자는 도태된다.
그렇게 도태된 이들은 사회가 행복하게 돌아가야 한다는 거대한 담론에 의해 생각을 거세당하고 톱니바퀴의 부속품으로 살아간다.
그제야 나는 제목을 지을 수 있었다.
***
1984년 12월 17일.
토런스 뉴 미디어의 기자, 사이먼 카버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미소가 감돌았다.
학업으로 로스앤젤레스를 떠났던 신 작가를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사이먼은 이 일을 시작한 이래, 자신이 소설을 정말 좋아하고 작가라는 존재들과 교감하기를 누구보다 즐긴다는 것을 매일 같이 깨닫고 있었다.
그렇기에 비즈니스 문제로 신을 만나지 못하는 날이 길어지자 내심 서글픈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가 더 나은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었으나, 그와 별개로 개인적인 애착이 있기 때문이었다.
신은 자신이 발굴해낸 작가 중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그러면서도 취향에 딱 들어맞는 글을 쓰는 작가였다. 사실 사이먼이 좋아하지 않는 소설은 없다시피 했으나, 그중에서도 신의 작품에 가장 큰 재미를 느낀다는 점은 몇 년간의 작업을 통해 확실히 검증된 부분이었다.
가끔 따로 연락해 볼까 싶다가도, 일 관련 문제가 아니면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학생에게 폐가 될지 몰라 그 마음을 꾹꾹 눌러 담는 나날이 수개월이나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대학의 첫 가을 학기가 종료되고, 약속했던 미팅 날이 찾아온 것이다.
줄리아에게 부탁받아 작업을 진행했던 ‘About T’의 단행본 관련 이야기를 하기 위한 자리였으나, 사이먼은 메인요리보다 샐러드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최근에 작품을 쓰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혹시나 신작은 집필하고 있는지, 그렇다면 어떤 내용인지, 무척 많은 것들이 궁금했다.
사이먼으로서는 참으로 오랜만에 찾아온 코리아타운의 카페.
두 사람은 그간의 회포를 풀듯 밝게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작가님~!”
“사이먼, 오래간만이네요.”
“잘 지내셨죠! 으아! 이게 대체 얼마만입니까!”
“저야 항상 잘 지내죠. 하지만 대학 가서 공부하니 확실히 차원이 다르네요. 그쪽은 어때요? 레미나 휴고는 여전한가요? 아직도 나 때문에 욕먹는 건 아니죠?”
“흐하하! 방법을 깨달았죠!”
“방법?”
“가끔 사장님이 찾아와서 툴툴거릴 때마다 작가님 소설을 상상하면 괜찮습니다!”
“······미안합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사죄하는 신이었다.
대학생다운 큼직한 백팩을 옆에 내려놓은 신은 일단 사이먼과 그동안의 이야기부터 나눈 뒤에야, 얼마 전에 확정된 단행본의 출간일자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드라마화가 거의 끝난 ‘About T’의 파일럿 에피소드 방영 시점에 정확히 맞춰서 캘리포니아 전역에 깔리기로 결정됐다고 했다. 며칠 뒤 방송국에서 진행될 내부 시사회에 참석할 예정이었기에, 신은 납득되는 스케줄이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알렉사가 엑스트라 중에서는 제법 비중 있는 역할로 참여한다고 들어서 더 기대가 됐다.
“초판 부수를 뽑아낼 인쇄소도 넉넉하게 확보해 뒀습니다! 얼마나 팔릴지 기대가 크네요!”
“항상 저희 기대 이상이었죠. 독자 분들이 이렇게 사랑해 주셔서 얼떨떨할 따름입니다.”
“그만큼 작가님께서 좋은 작품을 써 주시니까요.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스럽고 즐겁죠. 아, 얼마 전에 연재가 시작된 치어리더 걸과 너드 보이의 이야기도 즐겁게 봤습니다. ‘About T : Reversal’. 전작을 뒤집은 관계성과 두 캐릭터의 입장을 절묘하게 대변한 좋은 제목이었어요. 어떻게 학교 공부하면서 그런 글까지 다 쓰셨어요?”
“그래도 남들에 비해선 꽤 여유롭게 지내는 편이긴 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다년간의 경험으로 사이먼과 대화할 때 연이은 칭찬을 빨리 끊어내야 할 필요성을 잘 알고 있는 신이었기에, 적당히 운을 떼며 백팩 안에서 두툼한 서류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사이먼의 눈이 먹음직스러운 꿀단지를 발견한 곰처럼 동그랗게 뜨였다.
“자, 작가님, 이건······?”
“사이먼, 혹시 단행본 하나 작업할 여유가 있으실까요. 출판사도 알아봐 주시고요.”
신은 입을 헤 벌린 사이먼에게 자신이 학업과 함께 집필을 병행해 온 소설에 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
SF, 디스토피아물.
3만 단어 분량.
시장에 내놓고 반응을 본 뒤, 공모전용 단편을 추가 집필할 예정.
그 제목은 이러했다.
“Country of losers.”
패배자들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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