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57)
157.
유전자에 관한 담론은 머나먼 미래의 인터넷 사회를 지배하는 주류 키워드였다.
신체의 발달과 생김새뿐만이 아니라, 공부를 잘하는 재능, 운동을 잘하는 재능 등, 모든 것이 유전자로 결정된다는 이야기.
그와 더불어 기후 변화와 경제 불황, 사회 문제, 개인의 실패 같은 이유가 더해져, 내가 기억하는 미래의 세상은 점점 더 강한 염세주의로 빠져들었다.
그것은 ‘Doomer’와 ‘Incel’ 같은 세대를 만들었다.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며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어 불행해지고 말았다 주장하는 나였지만, 그 모든 것이 아예 망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그렇기에 나는 ‘Country of losers’를 통해 그러한 고민으로부터 벗어난 세계를 제시했다.
세상의 모든 고민을 벗어던지고,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소설.
여기까지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같았다.
하지만 나는 거기다 교묘하게 인간의 불완전한 자유 의지를 끼워 넣으면서 이 소설이 얼핏 봤을 때 굉장히 그럴듯하게 만들었다.
‘사이먼이 그랬지. ‘더 북’은 신이 아니냐고.’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의견은 좀 달랐다.
존재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음을 기댄다는 점에서 종교에 가깝지 않을까. 신이 전지전능하다면, 더 북은 그렇지 않으니까.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신의 지혜를 설파하며 인간을 행복으로 이끄는 도구였다. 인간의 자유 의지만이 존재했던 과거와의 대비는, 더 북이라는 허구의 존재에 굉장히 큰 매력을 느끼도록 설계되었다.
하지만 말이다.
‘그게 과연 옳은가?’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인간은 너무 많은 정보를 접했기 때문에 불행해졌다.
나는 이 가설 자체는 그다지 문제 될 부분이 없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자신과 상대를 끝없이 비교하고 스스로를 과시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인간이 너무나도 똑똑해졌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봤다.
그렇다면 어떤 존재가 나와서 그것을 지워낸다면?
그렇게 해서 편향된 정보를 얻고, 그로 인해 불행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 세계는 디스토피아라고 볼 수 있나?’
나는 거기에 대해 나름의 결론을 내린 상태였으나, 판단은 독자의 몫이었다.
적어도 내 소설의 첫 독자라고 할 수 있는 사이먼은 이 소설을 굉장히 고평가했고, 내년에 있을 시상식에서 괜찮은 SF상을 타는 것을 기대하고 썼다는 내 생각도 긍정해 주었다.
[이 작품이라면 가능합니다.]신뢰가 가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그의 얼굴이 기억에 남았다.
‘기대대로 되면 좋겠는데.’
미소를 지은 채 나는 체스 기물을 천천히 앞으로 옮겼다.
“체크메이트.”
그리고 고개를 들어 반대편에 앉은 상대를 바라보았다.
“······Frrrrrrrr.”
특유의 입술 떨리는 소리도 오랜만이었다.
그렇다.
처리할 일을 모두 끝마친 뒤, 나는 친구들과 놀고 있었다.
거진 3개월 만에 보는 상황이었지만, 우리의 모습은 기존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랜만에 두피네 집에 모였고, 지금 나와 두피는 크루세이더 vs 툼 바이킹 체스를 두고 있는 상태였다. 내가 크루세이더를 맡고 두피가 툼 바이킹을 맡아 치열하게 전투가 진행되었다.
고민이 깊어 보이는 두피.
여유가 생긴 나는 옆에서 들려오는 지우와 알렉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거 옷 디자인 진짜 괜찮지 않아?”
“저, 저한테는 너무 화려한 것 같아요.”
“에이, 가끔은 이런 옷 입어도 좋지, 뭘! 나중에 같이 사러 가자! 진짜 예쁠 거야!”
도대체 무슨 옷일까.
호기심이 생겨 물어볼까 싶었으나 이내 두피가 수를 두었다.
‘응?’
나는 그 수에 반격했다. 나의 비숍 크루세이더가 두피의 워리어 툼 바이킹을 잡았다. 오호라. 저 녀석 때문에 골치를 앓았는데 잘 풀렸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두피가 다음 수를 두었고, 나는 나의 킹 크루세이더가 포위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중지와 약지를 엮어 안경의 브릿지를 스윽- 밀어 올리는 두피.
“CHECKMATE.”
“제, 젠장!”
순간 당황해 최선의 수를 떠올리려고 하는 나.
하지만 째깍째깍 시간이 흐르는 동안 갖은 수를 동원해도 이 상황을 타파할 수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고, 나는 결국에 패배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졌다.”
“후, 툼 바이킹의 승리로군.”
‘이 녀석은 어째 못 이기겠단 말이야.’
대학에서도 짬짬이 동기들과 체스를 뒀고 그때마다 이겼던 나였으나, 이상하게도 두피는 이길 수가 없었다. 역시 이 작은 방 안에서 혼자만의 체스를 계속 뒀던 녀석다운 솜씨였다.
“좋은 승부였다. 신.”
“한 수 배웠어.”
“제법 실력이 늘었군.”
“내가 한 발 다가서면 네가 두 발 멀어지는 느낌이야.”
“그럴 리가. 다 실력이다.”
“······보통은 운이라고 하지 않음?”
“뭐야, 뭐야. 신이 졌어?”
바로 그때, 머리 위에 뭔가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것이 알렉사의 턱이라는 것을 느꼈지만, 나는 침울한 기분을 견딜 수 없어 어깨를 툭 떨어뜨렸다.
“그래. 대학 가서 공부만 하더니 약해졌군.”
고개를 끄덕인 두피가 다시 거만하게 안경을 스윽- 밀어 올렸다. 오늘만큼은 툼 바이킹 킹 두피였다.
“젠장! 또 붙어!”
“신 오빠, 정말 공부만 했어요?”
“아니, 뭐. 그렇지는 않았는데. 이런저런 행사도 참가하고 적당히 지냈어.”
“대학은 공부 많이 한다던데. 진짜에요?”
“그건 그런데, 나쁘지는 않아. 내가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은 공부를 배우는 곳이니까.”
“흐음.”
내 말을 듣고 생각에 잠긴 귀여운 우리 지우.
아무래도 올해 3학년이라 진로 고민이 많은 것 같았다. 나는 여기서는 다른 어른(?)의 말도 충분히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하며 두피를 바라보았다.
“두피, 넌 요즘 어떻게 지내? 일하는 건 괜찮아?”
“아직 배우는 중이지. 내가 생각했던 바와 현실의 괴리가 있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떤 부분에서 괴리를 느꼈어?”
“아무래도 비용 문제가 있겠지. 공산품인 장난감은 최대한 비용을 아끼면서 퀄리티를 유지해야 하니까. 그래서 디자인 진행 중에 난항을 겪기도 한다. 불편할 때도 있고. 후우, 어째서 아버지는 합성수지만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신단 말인가······!”
흥분한 두피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뭐, 따로 작업도 하면서 여러 모로 커리어를 쌓아 가려고 노력 중이다. 아이들 용으로 판매되는 장난감뿐만이 아니라 이쪽 계통에는 여러 가지 상품이 존재하니까.”
그래서 만들고 있는 것이 제작비용을 극도로 끌어 올린 대신, 판매가도 높게 책정해 어른들의 지갑을 노리는 ‘피규어’라는 모양이었다. 거기다 보드게임 기획도 하면서 토이 분야 안에서 나름대로 어느 쪽으로 뻗어 나가더라도 문제가 없도록 노력 중이라고.
그 말을 들은 알렉사가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모델 일하면서 배우 일도 배우고 있고, 요즘에는 발성이나 노래도 배우고 있어. 언젠가 기회가 왔을 때 잡기 위해서는 비슷한 분야를 같이 파는 게 나쁘지 않은 것 같아.”
“······난 소설만 쓰고 있는데.”
“저기, 신? 넌 이미 성공했잖아.”
“아아, 한 사람의 작가로서 완전히 자리를 잡았지. 하지만 우리도 나이를 먹고 커리어를 좀 더 쌓다 보면 너처럼 어떤 한 분야에 완전히 정착하는 날이 올 거다.”
“뭐, 그렇게 볼 수 있겠군.”
알렉사 앤 두피의 칭찬에 한껏 의기양양해하면서 나는 지우를 바라보았다.
“나도 학교에서 소설과 더불어 시나 희곡, 각본 같은 분야도 배우고 있어. 게다가 다른 언어도 충분히 배우면서 여러모로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지.”
“다들 굉장하네요. 오오, 어른······.”
“지우는 어떤 일이 하고 싶은데?”
알렉사의 물음에 지우가 눈을 빛냈다.
“저는, 뮤지션이 되고 싶어요!”
“그럼 전문적으로 음악 공부를 하거나, 밴드나 앨범을 만들어서 시장에 뛰어들어야겠네.”
“부모님은 뭐라고 하셔?”
“아, 그 부분도 중요하지.”
“부, 부모님은 물론 대학에 가서 제대로 음악과 관련된 전공 공부를 하기를 원하세요. 하지만 저는 메탈 밴드를 하고 싶어서 대학에 가는 게 맞나 싶거든요.”
“괜찮지 않아? 여러 가능성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후웅, 그것도 그런데······ 대부분의 락커들은 대학 출신이 아니란 말이죠.”
“아, 그런 이미지 있지.”
“······오히려 대학을 나오면 놀림 받는 분위기가 존재하지. 인텔리라면서.”
두피의 지적은 정확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한참 듣던 중, 나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응? 왜 그래. 신?”
“아니······. 새삼 너희하고 대화하다 보니 다들 즐겁게 산다 싶어서.”
“요즘 고민이라도 있어?”
“아니, 나는 괜찮은데.”
지금의 대학 생활 자체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와 같은 신입생들이 말이다.
‘상급생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문학을 탐구하고 배우기 위해 이곳에 왔다.
하지만 이수할 학점이나 졸업 후의 진로를 고민하느라 다들 학문보다는 과제를 제때 내기 위한 발버둥과 영혼 없는 대외 활동을 거듭하면서 어떻게든 대학이 제시하는 기준에 맞추느라 고통 받는 듯했다.
그리고 그 모습의 일부를 ‘Country of losers’에 담아내기도 했지.
하지만 그런 식으로 남은 대학 생활을 보내게 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내 주변이 계속 그랬다가는 나도 거기에 영향을 받게 될 수도 있을 테니까.
‘걔네들을 좀 풀어 줄 계기가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대학? 그거 별거 없다. 아니, 나름대로 별거 있으나, 존 스미스 같은 친구가 술 마시고 들어와서도 과제를 하듯이 엄청난 압박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케이트 무어가 드문드문 느끼는 공허감도 그렇게 열심히 달린 끝에 돌아오는 어떤 번아웃에 가깝지 않을까.
‘뭔가 좀 해 볼까?’
마침 대학에 딱 걸맞은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대학 하면 역시 파티지.’
저번 같은 환영회 개념의 파티가 아니라 진짜 미친 듯이 놀 수 있는 그런 ‘파티’.
***
이 소설은 분명 먹힌다.
뛰어난 작품성과 그것을 받쳐주는 탄탄한 설정과 문장력.
먹힐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수많은 SF 소설을 탐닉해온 사이먼이었지만, 정말 신선한 소설이었다. 디스토피아물 같지가 않을 정도였다.
일반적으로 디스토피아물은 시대상을 담아내면서 어떤 식으로든 ‘그래, 이래선 안 되지.’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어떤 방향으로 생각하더라도 1막의 세계가 워낙 막장이었던지라 엔딩의 모습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디스토피아 이후의 또 다른 디스토피아라고 할 수 있겠네.”
사이먼의 선배 기자인 줄리아의 감상은 그러했다.
그녀 역시 신 작가에게서 ‘Country of losers’를 받아서 읽은 상태였다.
하지만 사이먼처럼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다. 이 기분 나쁜 세계에 깊이 몰입했고, 그녀 나름대로 논리적인 결론을 내린 상태였지만, 그것에 대해 구구절절하게 말하지는 않은 것이다. 이 좋은 작품을 퍼블리싱해야 할 사이먼이 스스로의 철학으로 작품을 대했으면 해서였다.
그리고 그 바람대로 사이먼은 신의 신작을 읽은 이래 열심히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디스토피아를 부수기 위한 또 다른 디스토피아. 굉장히 신선한 설정 같아요.”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아까 네가 그랬잖아? ‘이게 정말 디스토피아일까요?’라고. 말인즉슨, 너는 더 북에 의해 최적화되는 이 세계가 마음에 든다는 거잖아?”
“줄리아는 아니에요?”
“나는 아니야. 내가 어떻게 이런 세계를 긍정하겠어?”
“······사, 살짝 힌트 좀.”
“개인사에 연관된 문제라서. 사이먼 너는 알고 있잖아?”
“아, 그거요.”
사이먼은 어설프게 웃었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 자주 어울렸던 두 사람이었기에 사이먼과 줄리아는 서로의 개인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이먼은 줄리아의 ‘사정’을 떠올리고 왜 그런 말을 했는지를 이해했다.
사이먼은 다시 포커스를 신의 신작으로 돌린 후, 곰곰이 생각하다 말을 이어 나갔다.
“인간 스스로가 선택한 길을 방해하기 때문일까요.”
“글쎄.”
“아, 하긴 아니죠. 더 북이 선택을 막지는 않으니까. 그러면······ 정보의 통제?”
“너무 많은 정보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잊었어?”
“‘인터넷’에서 서로를 헐뜯고 섹스에 심취했죠. 진짜, 상상하기도 싫은 미래에요.”
“하지만 꽤 그럴듯해. 지금은 주로 공공기관에서 사용하는 인터넷이 대중에 상용화된다면 이런 식의 미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 들더라.”
줄리아는 깊은 통찰력에 의거해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우리 둘 다 이 작품에 신 작가님만큼이나 많은 기대를 걸고 있으니, 그 기대에 응해줄 만한 좋은 퍼블리셔를 찾는 게 우선이겠네.”
“음, 그렇죠. 어디 좋은 퍼블리셔 아는 곳 있으실까요······?”
“어머, 얘는. 저번에 알려준 곳은 다 까먹었니?”
“다, 다 좋은 퍼블리셔긴 했는데요. 저는 뭐랄까.”
사이먼 카버는 기자로서 출판 시장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현재의 출판 시장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장르 쪽과 순수 쪽.
그리고 각 분야의 퍼블리셔에게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바는 ‘얼마나 좋은 작품을 많이 보유했느냐.’와 ‘얼마나 많은 곳에 책을 팔 수 있느냐.’였다.
미국 각 주의 법안과 규격이 다른 경우가 알음알음 존재했고, 출판이라는 사업이 조금 폐쇄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웬만큼 이름이 알려진 퍼블리셔나 작가가 움직이지 않는 이상에야 쉽게 다른 주에 진입하기 힘들었다.
“그게 아니면 각 주에 커넥션이 있던가요.”
“······그런 곳도 다 전해 줬던 거 같은데.”
“다 장르 퍼블리셔잖아요. 저는 이 작품이 가진 문학적 가치가 정말 크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되도록 ‘편견’이 없는 곳을 통해 책을 내고 싶어요.”
“그렇게 말하는 네가 먼저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건······ 할 말이 없네요.”
“하지만 맞는 말이야. 장르는······ 싸구려 잡지 소설 취급이지.”
냉정한 현실에 피식 웃던 줄리아는 문득 좋은 생각 하나를 떠올렸다.
사실 각 주의 퍼블리셔에서 외부 퍼블리셔의 진입을 막으려는 이유는 무척 간단했다. 이미 각각의 세력에 따라 형성된 시장에 괜히 자신들 이외의 퍼블리셔가 들어와 영향력을 행사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그 문제는 한 가지 방법을 통해 해결될 수 있었다.
“사이먼.”
“네. 줄리아.”
“너 슬슬 퇴사하고 퍼블리셔 차릴 마음 없니?”
“네. 없는데요.”
월급을 사랑하는 남자의 칼 같은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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