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6)
16.
“푸하하하하하하-!”
레미 마틴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옆에 있던 사이먼과 휴고는 우리의 대화를 따라오지 못하고 어안이 벙벙한 눈치였다.
‘그럴 수밖에 없지.’
저 두 사람은 저널리스트지 비즈니스맨이 아니었다. 그것도, 1980년의 저널리스트.
이 시대는 내가 살아가던 미래보다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훨씬 더 적었고, 그로 인해 몇몇 부류의 사람을 제외하면 대다수는 여러 면에서 굉장히 순수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 정보를 수집해 동의를 얻고 이용한다.
‘유출’이 아니라 ‘이용’이었다. 합법의 영역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보고 듣는 게 많은 직업인 기자이므로 그런 발상이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자리의 나머지 둘은 그와 전혀 반대되는 입장이었다.
한 명은 철저한 비즈니스맨.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미래에서 돌아온 나였다.
나는 분명 눈앞의 사장 같은 비즈니스맨은 결코 아니었다. 일평생을 교사이자 작가로서 살았지, 이런 쪽의 경험은 미천했다. 그럼에도 나는 전생부터 보고 들은 지식의 도움을 받아 지금 사장이 흥미롭게 느낄 만한 제안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미소를 지은 사장이 입을 열었다.
“소설에는 그만한 힘이 있다고?”
“네, 그렇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겠나. 어린 소설가 양반.”
“신문의 다른 기사와는 달리 소설에는 팬이 따라붙기 마련이죠. 이걸 활용할 수 있다면 분명 토런스 뉴 미디어에 큰 이득이 될 겁니다.”
“그럼 왜 지금까지는 하지 않았나. 사이먼. 여기에는 자네가 대답해보게.”
“어, 음······.”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나는 사이먼에게 물었네. 작가 양반.”
레미 마틴의 눈빛에 사자가 깃들었다.
하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쪽이 사자가 되어준다면 나는 감히 이해 못 할 악마가 되어주마.
그런 마음으로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로널드 레이건의 대통령 당선으로 인해 사회 현상으로 여겨질 정도로 이례적인 판매량 상승을 일으킨 시점과, 그때 새롭게 연재를 시작한 인기작의 탄생이 맞물렸죠.”
“호오.”
순간 눈이 동그랗게 뜨였던 레미가 물었다.
“개인 정보 수집과 이용 동의에 독자들이 반발한다면?”
“어라? 토런스 뉴 미디어가 개인 정보를 수집해 이용하는 이유는 독자님들이 어떤 이벤트 경품을 선호하고 어떤 형태의 제품을 필요로 하는지 조사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요?”
“······이 아이디어가 나쁘지 않게 느껴지기 시작했어.”
피식 웃으며 담배를 입에 문 사장이 물었다.
“저녁은 먹었나.”
“아뇨, 아직. 사장님께서 사주신다고 들어서요.”
“토런스에는 괜찮은 식당이 없어. L.A.로 가지.”
그는 본격적으로 내 이야기가 듣고 싶다는 표정이었고, 그 타이밍에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를 끊어내려는 듯 휴고 어빙이 나섰다.
“사, 사장님?”
“무슨 일인가. 휴고.”
“이번에 토런스에 레스토랑 하나가 오픈했는데, 퀄리티가 아주 좋더군요. 제가 그쪽 셰프하고 좀 친해져서 말씀만 해주시면 바로 작가님과 같이 모실 수 있는데, 어떠신가요?”
“그래? 그거참 좋군! 문제가 있지만.”
“어떤 문제죠?”
“자네들은 일해야지.”
“······.”
“······.”
“사이먼!”
“네, 네! 사장님!”
“이번 기사 좋았어! 읽어보지는 않았네만.”
“감사, 합니다?”
“그러니 나와 토런스 뉴 미디어에 좀 더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하라고. 그래야 나도 자네들 월급 주는 것에 마음이 덜 아프지 않겠나?”
껄껄 웃은 사장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말할 때 머릿속에서 필터링 한 번만 거치면 인생에서 겪는 문제가 반 이상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의 사람이로군.’
문제는 본인이 그럴 생각이 없을 것 같다는 점이었다.
***
1980년의 밤, 로스앤젤레스는 네온사인을 머금은 화려한 거리로 변모했다.
토런스에서 레미 마틴과 함께 이동하면서, 나는 사이먼의 이야기와는 달리 그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일부러’ 그러지 않는 쪽에 가까웠지, 상식이란 게 뭔지 정도는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래 보여도 한 신문사의 사장.
그 나름대로, 아니, 그렇기에 남들보다 더욱 깊은 자신만의 세계가 있는 인물 같았다.
밤늦게까지 영업하는 로스앤젤레스의 한 레스토랑.
레미는 알코올이 거의 들어가지 않은 샴페인부터 권했고,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며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본심을 듣게 되었다.
“나는 돈이 벌고 싶어.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돈이.”
“······.”
“하지만 남 밑에서 일하는 건 딱 질색이야. 남자라면 누군가의 밑에 있어서는 안 되지 않겠나? 그래서 이 토런스 뉴 미디어를 세웠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반대편에 섰지.”
“나름대로 전략적인 선택이셨다는 거군요.”
“그래, 맞아. 우리는 로탐과 반대로 자극적이고 우파적인 시각에서 신문을 제작하면서 나름대로 이 캘리포니아 뉴스페이퍼 시장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어. 물론, 나는 글이라면 세금 고지서도 안 읽는 인간이라서 대부분 다른 친구들에게 맡겨 놓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야.”
전채로 나온 빵을 씹던 레미가 싱긋 웃었다.
“그리고 그 전략대로, 우리는 레이건이 당선되자 파도를 타게 되었지. 사람들은 자극을 원하니까. 그리고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 뭔가가 더 필요하지는 않을까,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시점에 딱 고등학생 차이나 보이가 내게 굉장히 흥미로운 제안을 해오고 있군.”
“코리아입니다.”
“나도 꼬냑이 아니라네. 중요한 건 모습이 아니라 본질이지.”
무례와 차별을 별일 아니라는 듯이 넘기는 레미.
“그런 의미에서 하나 묻겠네만, 이런 제안을 해온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다짜고짜 깊숙이 들어왔다.
어차피 숨길 마음도 없었던 나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돈 때문이죠.”
“돈! 그야말로 순수한 이유로군. 마음에 들어.”
“세상의 문제 대부분은 돈이 있으면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그래, 맞는 말이야. 그렇다고는 해도 일개 고등학생이 하기 쉬운 발상은 아닌데. 나만큼이나 험난한 삶을 살아온 게 느껴지는군.”
“그 부분은 사장님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크크크, 알겠네. 그래, 그거라면 자네 하기에 따라 내가 얼마든지 줄 수 있지.”
“저 또한, 사장님이 원하는 걸 드릴 수 있죠.”
“호오, 내가 원하는 게 뭐라고 생각하나?”
“로-탐을 무너뜨리는 일 아닙니까?”
“크하하! 잘 아는군! 서로 원하는 바도 알았으니 본격적으로 일 이야기를 해보자고!”
메인 메뉴가 나올 즈음부터였다.
레미는 값비싼 위스키를 홀짝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토런스 뉴 미디어는 레이건의 당선 이후로 신문 판매량이 일곱 배, 구독자 수는 다섯 배가 상승했지. 이 시점에서 소설의 감상 이벤트. 좋아. 대부분은 그때 마침 연재를 시작한 자네 소설에 대한 팬레터를 보내겠지만,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또 뭐가 필요한가?”
“물론, 이벤트 상품입니다.”
“1위는 텔레비전, 2위는 라디오, 3위는 자전거 정도면 어떤가?”
“2위는 라디오보다는 워크맨이 어떨까요?”
“소니의? 왜?”
“워크맨이 요즘 세대를 겨냥하고 있거든요.”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참 이질감이 느껴지는 이야기를 했다.
워크맨. 소니의 휴대용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브랜드. 요즘 잘나가는 ‘Cool kid’들에게는 거의 필수품이나 마찬가지였다.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원할 때, 워크맨과 헤드셋으로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이때 사람들에게는 사이버펑크가 실현된 거나 다름없었더랬지.
솔직하게 말하자면, 1980년대에 나고 자랐기 때문일까. 나는 일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1세대 이민자인 부모님의 영향 역시 지대했다.
그런 여러 역사적인 문제로 인해 나는 일본에 대해 약간의 불편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일종의 편견이었다. 물론, 나는 사회화가 된 인간이었으므로 속으로는 그럴지언정 겉으로 티 내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고, 그들 개개인을 편견 없이 대하도록 노력했지만 말이다.
이때 미국의 주류 문화는 나와 마찬가지로 일본을 조롱하고 미워했다.
그럼에도 일본이 겪는 조롱과 미움은 내가 겪는 바와는 상당히 달랐다.
이 당시의 일본은 정말로 ‘대단한’ 나라였다.
선진국인 유럽과 미국의 기술을 그대로 베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는 했지만, 그들의 제품은 80년대 전반을 지배했다. 온갖 차별에 시달렸지만 ‘그래서 뭐 어쩔 건데? 일본 제품 안 살 거야?’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내가 쓰는 글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당연히 좋을 것이다.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겠지. 하지만 현실적으로 꿈꿀 만한 목표는 아니었다. 차별은 생존과 관련되어 인간의 DNA에 각인된 본능이었으니까.
그러니 내가 생각할 수 있는 현실적인 목표는, 사람들이 내 앞에서 입조심을 하는 거였다.
지금의 이 행동도 그 일환이었다.
대박을 터뜨린 작품을 낸 작가임에도 그저 ‘귀여운 어린 동양인 소년’으로 취급받는 현실.
눈앞의 사장이 ‘차이나 보이’라고 입을 털어도 별말 못 하는 현실.
난 그걸 바꾸고 싶었고, 그걸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생각이었다.
‘비즈니스’적으로 말이다.
사장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모집 기간은?”
“한 달 정도로 가시죠.”
그때쯤에 ‘Mother’가 완결 날 예정이었다.
“좋아. 자세한 기획은 사이먼으로부터 받으면 되겠나?”
“네. 그래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결론이 빨리빨리 나서 좋군.”
그렇게 일 이야기가 일단락되고 레미와 나는 스몰토크로 화제를 전환했다.
“소설은 언제부터 썼나?”
“조금 됐습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대단한 글을 썼군. 천재적이야. 그래서 한편으로는 아쉬워.”
“어떤 부분에서 아쉬움을 느끼셨나요?”
“자네가 백인이었다면 텔레비전 쇼에 출연해서 돈을 쓸어 담았을 테니까.”
“······.”
나는 그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너무도 합당한 이야기였다. 내가 만약 현재 미국의 주류 인종인 백인이었다면 사람들은 내게 훨씬 더 큰 관심을 가졌을 테지. 나 역시 거리낌 없이 전면으로 나서서 나를 포장했을 테고 말이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는 말인가.
“지금보다 조금 더 떠서 나가면 되겠죠?”
“음······?”
“인종의 벽 따위는 허물 정도로 멋진 소설을 써보겠다는 포부였습니다.”
“푸하하하하하! 이거 완전 물건이군!”
호쾌한 웃음을 터뜨리는 레미 마틴.
그는 상당히 솔직한 인간이었다. 또한 자신이 필요로 한다면 딱히 편견 따위는 신경 안 쓰는 배포 역시 가졌다. 캐피탈리즘의 비스트다웠다.
그렇게 값비싼 싱글몰트 위스키를 홀로 홀짝이던 그는 금방 술에 취했고, 나는 전생의 이 시절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음식을 맛보면서 머릿속으로 잠시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일평생 이런 음식은 꿈에도 꾸지 못했지.’
알게 해드리고 싶었다.
이게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은 그저 가만히 견디고 지나가게 두어서는 안 된다는 걸.
그걸 위해 레미와 관계를 열어두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일 듯했다.
***
그리고 다음 날 오전.
토런스 뉴 미디어 사무실 안에 싱글몰트 위스키의 향이 퍼졌다.
“좋아! 다들 오늘도 힘들 내라고!”
아침 발제 도중에 술에 잔뜩 취해 들어온 사장이 직원들을 독려했다. 그로 인한 디버프는 모두의 일할 의욕을 대략 15 정도 떨어뜨렸고, 마침 자기가 할 일을 끝마치고 걸려 온 신 작가의 전화를 받고 있던 사이먼은 경악에 찬 표정으로 수화기에 대고 물었다.
“작가님? 어제 사장님하고 밤새 같이 있으셨나요?”
[그럴 리가요. 사장님은 젠틀하게 밤 10시가 넘기 전, 저를 집에 데려다주셨습니다.]“방금까지 마시다 오신 분위기인데.”
[꼬냑인 레미 마틴이 아침까지 혼자 위스키를 마셨다니 흥미롭군요. 뭐라고 하시나요?]“다들 오늘도 힘을 내······.”
“싸이먼!!”
[힘내시죠.]신이 덜컥 전화를 끊었다.
사장이 다가오며 겨냥한 외침을 들은 듯했다.
“사, 사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어제 이야기한 그 프로젝트. 진행해보게. 아주 흥미롭겠어.”
“아?! 알겠습니다!”
어제 이야기가 잘 풀린 걸 알고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사이먼.
그 모습을 지켜보던 휴고가 눈썹을 찡그렸지만,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 그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사장이 하라고 하는데 자기가 뭘 어쩌겠는가.
바로 그때, 누군가 겁도 없이 술에 취한 사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장님, 어제 회동은 어떠셨습니까?”
“앙? 방금 누가 말했지?”
“조지 키본입니다. 사장님의 직원이죠.”
“그래, 키본. 인터뷰라도 하는 듯이 묻는군. 어제 신이라는 그 애송이와의 만남에 대해 궁금한 모양이지?”
레미 마틴은 슬쩍 주변을 돌아보았다.
신의 이야기가 나오자 다들 흥미로워하는 게 속이 쓰렸지만, 취기로 달랬다.
“뭐, 이래저래 할 말이 많네만. 짧게 요약하자면, ‘상상 이상’이라고 할 수 있겠군.”
씨익 웃은 레미 마틴.
그 모습을 힐끔 보며 사이먼은 의욕을 고취시켰고, 신 작가에게 조언을 들은 대로 이벤트 기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틀 뒤, 추가 페이지를 받아 제작된 문화 섹션의 감상평 이벤트는 바로 아래에 ‘개인 정보 수집 및 이용 동의서’까지도 확실하게 포함이 된 상태였다.
물론, 당연히 개인 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한다고 해서 토런스 뉴 미디어가 그걸 북한으로 넘긴다거나 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터였다. 그런 정황이 발각되면 사장은 물론이고 직원들까지 연방 교도소에 수감되어 일렬종대로 비누를 줍게 될 테니까.
확실한 동의를 받아 추후 비즈니스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개인 정보의 확보, 큰 경품 이벤트를 연다는 고무적인 홍보, 토런스 뉴 미디어라는 신문을 향한 관심의 집중까지.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진 상태에서 경품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1등. 일제 텔레비전 1대.
2등. 일제 워크맨 2개.
3등. 일제 자전거 3대.
좋아하는 작품에 대한 감상을 신문에 적을 수 있다는 기대감과, 멋진 상품까지.
곧, 토런스 뉴 미디어에 편지가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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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비즈니스 (3)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