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62)
162.
‘About T : TV Series’의 방영 다음 날, 나는 줄리아에게 집계된 시청률을 전해 들었다.
[약 120만 가구예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머릿속을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지금 뭘 잘못 들었나?
그런 생각을 하자니 뒤이어 줄리아가 확언했다.
[캘리포니아 TV 가입자의 대략 6분의 1 정도가 ‘About T : TV Series’를 시청한 셈이죠.]“미쳤네요.”
그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줄리아는 캘리포니아의 한 가구당 텔레비전이 하나 꼴로 가입되어, TV 가입자가 대충 650만 정도 된다고 이야기했다. 거기다 기숙사처럼 어디 모임 장소에서 다 함께 드라마를 보는 경우도 있으니, 내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이 드라마를 봤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 규모가 얼마나 큰지를 압도적인 숫자로 느끼고 말았다. 내가 쓴 작품이 캘리포니아 전역에 미치는 영향을 실감한 것이었다.
[텔레비전 방영 효과로 함께 출시된 단행본 판매에도 불이 붙었다는 모양이에요. 대형 백화점의 도서 코너에서 이벤트에 들어갔고, 작가님 앞으로 사인회 부탁할 수 있겠냐는 요청도 여럿 들어왔어요.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도 있듯이 지금이 팍팍 치고 나갈 때겠네요.]“그, 주말이면······ 어찌어찌 시간 낼 수 있을 듯합니다.”
나는 약간 얼떨떨한 채 대답했다.
바로 어제저녁, 존 스미스와 같은 학과 동기들로부터 시간 되면 함께 로비에서 드라마 보자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괜히 원작자가 자리에 참석했다가 드라마에 집중하기 어렵거나, 모두가 즐기는 분위기를 흐릴까 우려되어 가지 않고 방에서 과제나 했던 나였다.
‘존이 죽여줬다고 말해서 좀 안심하기는 했는데.’
이 정도로 엄청난 결과가 나올 줄이야.
새삼 ‘텔레비전’이라고 하는 매체의 힘을 실감했다.
이 시대에도, 아니, 이 시대니까 더더욱 책보다는 텔레비전을 좋아할 테지. ‘Country of losers’에도 묘사했듯이, 사람들은 점점 편리해지는 형태의 미디어에 길들여졌으니.
그 수혜를 입어 내 작품은 앞으로도 더 잘 팔리겠지만, 왠지 좀 씁쓸하기도 했다.
‘다들 소설이 아닌 드라마로 About T를 기억할 수······도 있으려나?’
바로 그때였다.
[다 작가님 작품 덕이다. ······그쪽에서 그렇게 전해 달라던데요.]“네?”
[작가님이 멋진 원작을 써 주셔서 캘리포니아 픽처스도 한숨 돌렸다는 모양이에요. 아, 혹시 그거 알아요? LBS하고 캘리포니아 픽처스에서 이 작품에 엄청난 공을 들인 거. 광고도 꽤 많이 한 편이었죠. 겨우 파일럿 에피소드인데도 말이에요.]“그랬죠.”
[아무래도 실적 이슈 때문에 이래저래 좀 윗선으로부터 쪼이고 있었나 봐요. 특히 캘리포니아 픽처스가. 시즌 제작은 사실상 100% 확정이니 잘 좀 부탁드린다고 하더라고요.]“뭐, 그쪽에서 드라마를 잘 뽑았으니 가능한 일이었겠죠.”
[아뇨, 그렇지 않아요.]줄리아는 단호하게 말했다.
[맞아요. 드라마 정말 잘 만들었죠. 작가님이 상상했던 ‘About T’라는 세계를 멋지게 재현한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남들은 할 수 없는 상상력으로 좋은 글을 써낸 건 작가님이고, 그건 세상 그 누구도 아닌, 오직 ‘신’이라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요.]“감사, 합니다.”
······이 양반, 혹시 남의 속을 읽을 줄 아나?
과거 ‘데드맨즈 헤븐’의 기억으로 인해 마냥 기뻐하지는 못하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위로를 해 오다니.
음, 지금까지는 딱히 엄청 의식해 본 적은 없는데, 왠지 ‘누나’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 줄리아는 나보다 훨씬 어린데 그렇게 생각하는 게 어딘가 좀 웃기지만.’
나는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 가지 배웠군.’
그래,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어쨌든 드라마는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니까.
싱긋 웃은 나는 수업에 가기 위해 기숙사를 나섰다.
***
‘About T : TV Series’가 방영되고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집에서 가족들과 드라마를 ‘본방 사수’ 하면서 알렉사 플레어는 자신의 출연 분량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했고, 사이좋은 가족들과 함께 얼싸안고 꺅꺅 비명을 질렀다.
그제야 정말이지 꿈과도 같은 일이 눈앞에서 펼쳐졌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내가 텔레비전에 나오다니!
그것도 정말 좋아하는 신이 쓴 ‘About T’ 텔레비전 시리즈의 배역으로!
알렉사에게 있어서는 감회가 남다른 일이었다. 대사 하나만 있는 엑스트라라고 하더라도 누구보다 좋아하는 사람의 작품에 자신도 함께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뻤다.
치어리딩 전국 대회에 나가서 우승했을 때 역시 텔레비전에, 그것도 전국에 얼굴이 나갔었지만, 그때는 우승이라는 경험이 너무 값져서 그 사실이 얼마나 큰일인지 실감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갖는 힘을 아주 생생하게 느꼈다.
그래서 잔뜩 신이 나 며칠 뒤, 신에게 전화해 자랑(?)을 늘어놓았다.
“신, 나 텔레비전에 나온 거 봤어? 봤지! 봤구나!”
신은 그 말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안 봤어?”
전화 중인 알렉사의 눈에서 순간 생기가 사라졌다.
신은 절절 매며 최선을 다해 자신이 왜 ‘About T : TV Series’를 보지 못했는지 설명했다.
기숙사에 텔레비전이 하나뿐인데, 원작자인 자신이 가 봤자 괜히 분위기만 이상해질 것 같아 보지는 못했으나, 방송국에 따로 비디오를 요청했으니 나중에 같이 보자!
······마치 변명 같은 일련의 이야기를 듣고 상황을 이해한 알렉사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구, 확실히 작가면 다 같이 보는 자리에 가기 불편할 수도 있겠네.”
미안, 나도 꼭 보고 싶었는데. ······라고 신이 대답했다.
“아냐! 아냐! 어차피 나중에 같이 또 볼 거잖아. 사실 그게 가장 기대돼.”
안 그래도 꼬인 전화기 선을 더 배배 꼬면서 배시시 웃은 알렉사는 그렇게 신과 한참이나 전화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헛기침 소리에 돌아보자 뒤편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누구니?”
“아, 신이요. 전화하셔야 해요?”
“아니, 괜찮다.”
왠지 모르게 딱딱한 아버지의 태도.
아버지가 잠깐 와서 말을 걸었다고 하자 왠지 당황하는 신.
두 남자 사이의 묘한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알렉사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이내 출근할 시간이 되어 신과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전화를 끊었다.
요즘 들어 알렉사는 운전을 시작했다.
미국의 틴에이저가 그렇듯이 부모님이 첫차를 사 주셨고, 새로운 마음으로 얼마 전부터 출근할 때 타고 다녔다. 조그마한 1982년형 포드 에스코트는 비록 중고였지만, 언제든 자신이 원한다면 이 차를 타고 스탠퍼드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알렉사는 무척 기뻤다.
문제는, 그녀가 아직 운전에 익숙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빠앙-! 빵빵!
“미안해요!”
······순수했던 그녀는 창문을 열고 경적을 울리는 차에게 일일이 사과했다. 아마 신이 그 옆에 있었더라면 ‘아무리 그래도 차선 5개 동시 변경은 미친 짓이다.’라고 흔치 않게 당황했을 테지.
그럼에도 어찌어찌 차를 운전하면서, 그녀는 할리우드 근처의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사장 칼 홉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를 맞이해 주었다.
“알렉사! 우리 에이전시의 가장 큰 스타!”
“안녕하세요~! 대표님! 다들 좋은 아침이에요!”
“안녕, 알렉사!”
“어제 잘 잤어?”
“방송 잘 봤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오늘 촬영이 잡힌 모델들이 그녀를 반겨 주었다.
알렉사는 유난히도 자신을 칭찬하는 칼 홉스를 본 뒤, 일단은 군소리하지 않고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 주었다.
알고 보니 이유가 있었다.
“정규 시즌에도 출연해 달라는 제안이 들어왔어! 그쪽 FD한테 슬쩍 물어보니 이번에 방영된 파일럿 에피소드의 시청률이 장난 아니라고 하던데! 열심히 한번 해보자고!”
보통 여기에서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겸손을 보일 터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쌓아 오면서, 알렉사는 반쯤 본능적으로 ‘겸손’만으로는 불만을 품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람이란 가진 이가 그걸 과시해도 불만, 겸손을 보여도 불만을 가지는 법이었다.
물론, 사람을 믿는 성격인 알렉사는 여기 모인 이들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럼에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이렇게 말했다.
“제가 가서 PD님한테 자주 인사드리고, 연기 엄청 열심히 해서 일 많이 따올게요! 우리 에이전시에 얼마나 멋진 모델과 배우들이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말겠어요!”
곧바로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그쪽으로 넘어갔고, 어찌 보면 순진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녀의 쾌활한 반응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아! 가서 너만 열심히 해!”
“PD님하고 따로 이야기 나눌 시간도 없을걸?”
“식사하실 때 옆에 슬쩍 가서······는 안 될까요?”
놀랍게도 그녀의 슈퍼 파워는, 이 ‘연예계’라는 환경에서 더없이 잘 발휘되고 있었다.
***
‘About T : TV series’가 방영되고 일주일 뒤.
청강을 들으러 간 수업에서 마주친 케이트 무어가 웬일로 먼저 말을 걸어왔다.
“끝나고 잠깐 시간 좀 내 줘.”
“커피 삼?”
“아이······.”
순간 눈을 부릅뜬 그녀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의외로 순순한 것으로 봐서는 뭔가 부탁이라도 할 게 있는 모양이었다.
‘돈 빌려 달라는 거면 바로 도망쳐야지.’
반쯤 장난스럽게 생각했지만, 나는 케이트가 할 말이 ‘About T : TV series’와 관련이 되어 있으리라는 예상을 어렵지 않게 했다.
그리고 생각한 대로였다.
수업이 끝나고 간 근처의 커피숍.
커피와 케이크를 시키고 자리에 앉자 케이트는 이런 말부터 꺼냈다.
“나 요즘 너 때문에 이상해.”
“······뭐?”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어서 도망가려고 가방으로 손을 뻗는데, 말이 이어졌다.
“고민해 봤어. 대체 내 마음이 흔들리는 게 뭐가 문제인지. 그리고 이런 결론에 이르렀어. 네가 나한테 한 짓, 네가 보여 준 그거. 바로 그게 문제야. 네가 나를 더럽혔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너로 인해서 요즘 이상한 생각밖에 안 든다고!”
흥분한 듯, 말하면서 점점 언성이 높아지는 케이트.
“저, 저기. 친구야? 다들 오해하잖니. 이게 싸구려 코미디도 아니고 왜 주어를 생략해.”
나는 학교에서의 내 평판이 실시간으로 조져지는 것을 느끼며 케이트를 바라보았다.
아, 이미 옆에서 수군거리고 있다. 망했군.
“그, 그러니까, 이런 말이잖아.”
‘About T’ 때문에 혼란스럽다.
케이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안타깝게도 볼륨은 아까 마지막에 말할 때와 같았다.
“그래, 맞아! 밤마다 잠도 안 오고 계속 그게 생각난다고!”
“어바우트티라고 확실히 말해!!!!”
나 역시 순간 흥분해 맞장구치듯 소리쳤다.
케이트가 질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왜, 왜 소리를 질러? 야만인이야?”
“아니, 옆에서 이상하게 보잖아!”
“? 주변을 왜 신경 써?”
“그 누구보다 주변 눈치를 많이 보는 네가 그렇게 말하니 웃긴다야.”
나는 어이가 없어 웃고 다시 자리에 앉아 팔짱을 꼈다.
“TV 방영된 거 재밌게 봤나 봐?”
“······엄청.”
그녀는 새침하게 얼굴을 붉혔다.
코에 확 딱밤을 먹이고 싶었다.
“나뿐만이 아니야. 우리 기숙사에 같이 있는 애들 다 완전히 홀렸어. 영상하고 배우들 연기하고 스토리하고 음악하고 조화를 이뤄서······ 지금 밤마다 녹화된 거 틀면서 보고 있어. 나도 벌써 여덟 번이나 봤고.”
“공부는 안 하니?”
“그래서 문제야!”
놀리듯 묻는 거였는데 마침내 이해 받았다는 듯이 반색하는 케이트 무어 선생.
“왜인지 모르겠어! 근데 너무 재밌어! 토니하고 케이트하고 같이 로스앤젤레스 여기저기를 막 돌아다니면서 노는 거! 그냥 그게 전부고 사실 묘사가 생략된 부분이 많아서 소설이 더 재미가 있는데······!”
“너 좋은 녀석이구나.”
“응?”
“아, 아냐. 아냐.”
이 아저씨, 방금은 감명 받았다.
아아-. 나는 영상보다 소설을 좋아해 주는 케이트 무어에게 구원 받은 것이다-.
“계속해 봐.”
어쨌든, 대충 상황은 이해했음에도 나는 녀석이 계속 말을 털어놓도록 부추겨 주었다.
원래 이럴 땐 스스로 이야기를 털어 놔야 하는 법이다. 그러면서 정리도 되는 거지.
“모르, 겠어.”
“드라마를 보면서 그렇게 열광하는 너 자신이?”
“그래,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하루 루틴이 완전히 깨지고 있단 말이야.”
“그냥 스트레스가 너무 쌓여서 그런 거 아니야?”
“응?”
내 지적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케이트.
나는 차근차근 그녀가 현재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본인의 모습을 설명해 주었다.
“대학 와서 어딘가 공허하다면서. 그런 상황에서 네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학교생활을 그려내는 ‘About T’를 영상으로 접하니까 즐거웠던 거지.”
“으, 으음. 모르겠어. 그런데 나는 지금 내 모습도 마음에 드는걸.”
“야, 어떻게 사람이 매일 똑같은 일만 하면서 사냐? 가끔은 쉬어 주기도 해야지.”
“······.”
“너도 그러니까 매일 드라마로 대리만족하는 거 아냐.”
“화, 확실히.”
“요즘에 좀 놀았어? 방학 때는 뭐 했는데?”
“계절 학기.”
“미쳤군.”
“왜, 왜! 어서 졸업해서 취직해야지!”
“그렇게 취직하면 뭐할 건데?”
“일?”
“그러다 뭐?”
“결혼?”
“그리고?”
“출산? ············헉.”
순간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 케이트 무어.
이야, 이 자식 봐라.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속이 음흉하군.
하지만 본래 억제된 욕망이란 사람을 더 욕구불만으로 만드는 법.
나는 상대가 듣는다면 무례하다고 여길 만한 생각을 하면서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람이 좀 풀 줄도 알아야 돼. 언제 쉬냐?”
“그, 그걸 너는 어떻게 푸는데?”
“뭐어,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 친구들 만나서 놀고.”
“혼자서는? 나는 친구가 없어서.”
거 참, 슬프군.
아무렇지도 않게 슬픈 말을 하는 케이트의 앞에서 나는 어이가 없어 대답했다.
“친구 만들면 되지.”
알렉사나 두피가 먼저 다가와 주지 않았다면 친구가 없었을 남자의 말이었다.
“너도 내 사정 알잖아. 학교에서 딱히 마음 터놓고 지내고 싶은 사이는 없어.”
“마음을 터놓는 게 친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 나한테는 그래. 그리고 사실, 그거 해 본 적 없어.”
“······그럼 뭐, 방법이 하나 있지.”
“뭔데?”
“‘비밀 친구’를 만들면 되는 거야.”
다른 사회적 연결점이 없이도 속내를 마음껏 터놓을 수 있는 친구.
이름하야 비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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