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63)
163.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는 친구를 만들어라.
신이 진지하게 건넨 그 말을 케이트 무어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대체 왜?’
서로 마음을 나눠 봤자 무슨 의미가 있지?
어차피 인간은 혼자인데, 마음을 나눈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지?
애초에 마음을 나누는 행위란 감정과 시간을 소모하는 일 아닌가?
굳이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하루하루가 과제로 범람하고 벌여 놓은 일도 많은 시점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교류하는 일은 솔직히 말해 지금의 케이트에게는 불필요한 일처럼 느껴졌다.
따라서 케이트 무어는 지금껏 누군가에게 딱히 마음을 터놓지 않고 지내 왔다.
그게 편했다. 사람은 사회적으로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기 위해, 더 위로 올라간다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함께 있는 정도면 충분했다. 고등학교 때 방송반에 들어간 이유도 외부 활동으로 점수를 채우기 위해서였으며, 지금 다니는 대학교에서도 그런 식의 활동만을 할 뿐이었다.
그 결과 사회학과 내에서 그녀가 어울리고 있는 사람은 총 여섯.
각자 뛰어난 분야가 있거나, 아니면 성격이 모난 데 없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줄 아는 친구들만을 남녀를 가리지 않고 옆에 둔 것이었다.
또한 대학에 오면서 외모의 중요성도 느껴서 적당히 꾸미기도 시작했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 학과 동기들과 케이트 무어는 삽시간에 사회학과 1학년의 중심 그룹이 되었다. 그들을 중심에 두고 동심원을 그리며 관계가 엮이거나 퍼졌고, 케이트는 딱히 나서지는 않으나 모두에게 사랑과 존중을 받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그것은 참여 중인 클럽이나, 다른 집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딱 이 정도가 좋았다.
언젠가는 정상에 서고 싶지만,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매처럼, 그녀는 원하는 시기가 되면 알아서 자신을 드러내면서 자연스럽게 이 사회학과, 더 나아가 스탠퍼드 전체를 장악할 생각이었다.
케이트는 적당한 위치를 고수하면서 미움 받지 않고 사랑 받아, 결국은 가장 높은 위치에 이르는 데 천부적인 기질을 지녔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그런 식으로 지내왔다. 따라서 신이 하는 말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친구의 정의가 달랐으니까.
그녀는 친구를 불필요하다고 생각해 왔으니까.
그럼에도 그녀가 신이 한 말을 깊게 고민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부터 기인했다.
하나는 그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가장 재미있게 보고 있는 소설, ‘About T’의 작가라는 점, 다른 하나는 케이트의 주변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굉장히 특별한, 사실상 유일한 형태의 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로써 이전까지는 서로 존재만 알고 지내다가 3학년 홈커밍 데이를 준비할 때부터 본격적으로 교류하기 시작한 상대.
신은 케이트의 내면에 있는 어떤 굉장히 딥한 감정을 끌어내는 남자였다.
지금의 케이트 자신도 무엇인지 명확하게 자각하지 못한, 아주 복잡한 감정.
바로 그것은 ‘분노’였다.
케이트 무어의 앞에서만 일부러 더 깐족거리고 앞뒤 재지 않고 말을 쏟아버리는 모습은 분명히 신이 케이트라는 인간의 속내를 알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을 대하듯 웃으며 받아주려고 했던 케이트도 어느 순간부터인가는 완전히 마음을 놓았다.
그리하여 그의 앞에서는 일부러 더 감정을 드러냈다.
그 계기를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문득 떠올랐다.
‘내가 걔가 작가임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나?’
그래서 그때부터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지내게 되었나?
“끄응.”
케이트는 눈썹을 찡그렸다.
고민은 여기까지.
일단은, 오늘 해야 할 일을 할 때였다.
늦은 저녁, 기숙사로 돌아온 그녀는 과제에 돌입하기 전, 로비로 잠깐 다시 나왔다.
매일 밤마다 정해진 시간에 부모님과 통화한다고 하는 그녀만의 ‘루틴’이 있기 때문이었다.
공중전화에 동전을 두 개 넣고 전화를 걸자 곧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케이트~!]“······나 아니면 어쩌려고 받자마자 그래?”
[하하하! 딱 이 시간에 맞춰서 전화할 사람이 너 말고 또 누가 있겠니! 예쁜 내 딸!]“아빠, 귀가 아픈데 목소리 좀 줄이고 통화해 줘. 엄마는?”
[네 사랑스러운 엄마는 빙고 하러 갔지!]“아, 오늘 목요일이었지, 참.”
엄마는 목요일이면 빙고 게임을 하러 가고는 했다.
“지미는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프레드는?”
[네 두 동생도 잘 지내고 있지!]“애들 성적 잘 감시하고. 지미는 내년에 입시니까 더더욱. 그리고 조용히 말하고.”
[알겠다. 알겠어. 너는 오늘 하루 어땠니?]“······.”
바로 그때, 옆의 다른 공중전화로 누군가 슬쩍 다가왔다.
케이트의 목소리 피치가 알토에서 소프라노로 삽시간에 뒤바뀌었다.
“오늘도 즐겁게 공부했죠. 아빠는 어때요?”
[옆에 누구 왔구나?]“네에?”
케이트는 짐짓 못 들은 척 되물으면서 아버지에게 눈치를 주었다.
사랑하는 딸이 가족 외의 사람에게는 발톱(?)을 숨기고 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아버지는 더는 그 부분을 딱히 더 건들지 않고 딸에게 맞춰 주었다.
가족 간의 안부를 주고받는 대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끝이 났고, 전화를 끊은 케이트는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다.
가족들 앞에서만 드러내는 자신의 태도가, 신 앞에서 보여 주는 모습과 어딘가 비슷했다.
“······칫.”
그러한 사실을 알아차리고 묘한 불쾌감을 느꼈고, 그녀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을 지워내며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먼저 자는 룸메이트가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책상 앞에 앉아 오늘 받은 과제를 쓰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만년필이 종이에 흔적을 남기는 소리는 어딘가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렇게 새벽까지 과제를 끝마치고 잠든 후, 그녀는 세 시간이 지난 뒤 잠에서 깨어났다.
“······.”
많은 사람이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잠이 덜 깬 케이트 무어는 어딘가 온화해졌다.
그렇기에 새벽 내내 과제하면서 생각한, 신과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걔가 내 친구인가?’
이어서 정신이 번쩍 들면서 분노가 찾아왔다.
그럴 리가 없다.
그럴 리가.
절대로.
그 앞에서는 마음 놓고 ‘About T’에 관해 떠들 수 있지만.
남들 앞에서는 절대 티 내지 않는 고민을 슬쩍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니, 이거 완전히 의존만 하는 관계가 아닌가?
그건 절대 싫었다. 신 같은 녀석에게 의존한다니, 생각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쫘악 돋았다.
‘그 녀석은 대체 뭐야?!’
이제는 눈앞에 신이 없음에도, 케이트 무어의 머릿속에는 폭풍이 휘몰아쳤다.
***
케이트 무어의 고민 상담(?)을 진행하고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청강 중인 수업에 참석할 때마다 녀석이 캔 커피를 하나씩 건네는 것이었다.
“······이게 뭐야?”
“마셔. 오다 주웠으니까.”
뭐지. 독이라도 탔나.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위험을 감수하고 마시거나 다른 하나는 마시는 척만 하고 대충 버리거나.
그리고 나는 제3의 선택지를 꺼냈다.
‘네가 먼저 마셔 봐.’
척 하고 내밀자 케이트 무어가 나를 죽일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무지 인상적이었다.
케이트는 이후로도 수업 때마다 음료수를 하나씩 건네주었다.
녀석이 남들 다 보는 데서 음료수에 나쁜 짓을 할 리가 없다는 사실을 근거로 일단 거절하지 않고 마시는 나였지만, 계속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대체 왜? 굳이?’
설마 감사라도 느끼는 건가?
그 뒤로 어떤 심경의 변화가 생겼나?
지나가는 말로 비밀 친구 만들었느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
안 되겠어. 이 녀석.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에 좋은 소식이 하나 들어왔다.
로스앤젤레스의 대형 서점에서 사인회 제안이었다.
사인과 함께 작가와의 대담 시간까지 마련된 이벤트.
‘About T’ 단행본의 판매 촉진을 위해 기획된 행사로 얼마 후에 출간될 후속권, ‘About T : Homecoming’을 사전 예약하면, 먼저 나온 ‘About T : Viewfinder’나 사인지에 사인을 해주는 행사였다.
그곳이라면 지금 케이트 무어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비밀 친구를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다음 청강 수업에서 조심스럽게 권유했다. 그러자 녀석은 잠깐 고민해 보겠다고 말하더니, 그때면 중간고사 끝난 다음이라 괜찮을 것 같다면서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2월 중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훌륭한 성적을 기록한 나는 시험이 끝나는 주의 금요일 밤, 자동차를 몰고 케이트와 함께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왔다.
녀석과는 사인회 현장에서 만나기로 했고, 녀석을 집 앞에 내려준 다음 집으로 돌아오자 늦은 밤까지 기다리고 있던 어머니와 지우가 날 반겨 주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나는 가족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푹 잔 후, 나는 곧바로 다음 날,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코리아타운에서 동쪽으로 적당히 가면 나오는 다운타운에는 키튼즈 코믹북 스토어 이외에도 대형 서점이 몇 군데 존재했다. 종이책이 잘 팔리며 독서율도 꽤나 높은 이 시대에는 책만 전문적으로 팔면서 거의 백화점급의 규모를 자랑하는 서점이 알음알음 존재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로건&캐시 북 스토어’였다.
20세기 초반, 한 부부가 운영을 시작해서 이래저래 세를 확장한 끝에, 현재는 3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사용하는 초대형 서점.
그 전용 주차장에 차를 대고 별생각 없이 내리려던 와중, 나는 생각보다 많이 모여 있는 인파에 순간 놀라 입을 다물고 말았다.
‘뭐 이렇게 많아?’
사인회 시작까지 세 시간 정도 남았는데 벌써 서점 밖까지 길게 줄이 늘어섰다.
줄리아가 혹시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질 수 있으니 출발할 때 전화 달라고 해서, 유난이다 싶으면서도 일단은 그러겠노라고 했는데.
역시 프로(?)의 판단력은 다르구나 싶었다.
만에 하나 알아보는 이가 있으면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어 가만히 차 안에서 기다리자, 이윽고 시간에 맞춰 건물 뒤편을 통해 밖으로 나온 줄리아 챈들러가 시야에 잡혔다.
나는 손잡이를 잡고서 슬쩍 창문을 내린 다음, 살짝 손을 뻗었다.
“작가님, 차 사셨네요?”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요?”
“저는 이 정도는 될 줄 알았는데? 여기요.”
창문 사이로 선글라스가 하나 들어왔다.
“이러면 오히려 알아보기 쉬운 게 아닐지.”
“괜찮아요. 사람들이 혹시나 하면 그냥 넘어가는 편이니까. 작가님 얼굴을 아는 사람도 많지는 않고 대부분 멀리서 본 거라서 쉽게 알아보지는 못할 거예요.”
“믿겠습니다아······.”
그렇게 선글라스를 쓴 채로 차에서 내려 줄리아와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분명 옛날에도 사인회는 여러 번 해봤는데.’
왜 이렇게 떨리는 걸까.
지금이 80년대라? 내가 대학생이라?
아니면 이 ‘About T’라는 소설이 내가 생각하는 고등학교 시절을 담아내고 있어서?
그런 생각들을 떠올리고 있자니, 서서히 마음이 진정되었다.
‘그래, 그래서였군.’
스스로 어딘가 내 작품이 아니라고 느꼈던 ‘데드맨즈 헤븐’과 달리, ‘About T’는 내가 생각하는 바를 가감 없이 담아낸 작품이었다.
떨리는 것도 당연했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 역시 당연했다.
사인회는 생각보다 본격적이었다.
미리 답을 생각해 보라며 줄리아가 대담 때 나갈 질문지를 내게 건넸고, 그것을 읽는 동안에 헤어나 메이크업이 이루어졌다.
이렇게 사람들 앞에 나서기 전에 준비하는 것은 미래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나를 돕는 여러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사인회를 대비했다.
그나저나 케이트 무어는 시간에 맞춰서 여기에 왔을까.
‘사람이 좀 많긴 한데, 괜찮겠지?’
적당한 사람도 불러 두었고, 별문제는 없겠지 싶었다.
***
오후 1시.
로건&캐시 북스토어에서 ‘SEEN’ 작가의 첫 번째 사인회가 시작되었다.
시간에 맞춰 현장에 도착했던 케이트 무어는 가게 앞까지 늘어서다 못해 거리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엄청난 양의 인파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정도였어?!’
사실, 작가라고 하는 존재는 그 인기를 실감하는 것이 무척 어려운 직종이었다.
아무리 책이 잘 팔리고 작품이 유명해져서 주변의 사람들이 이야기한다고 한들,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문에 한정되었으니까.
드라마로 만들어졌어도, 독자인 케이트의 입장에서는 ‘인기 좀 좋은가 보다.’라고 느끼는 정도지, 어느 정도인가는 전혀 가늠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 전부 모여 이곳에 있는 것이었다.
신 작가의 작품을 읽고 큰 재미를 느끼거나 감동하기도 하고, 그 끝에서 자신의 시간을 내서 작가의 사인을 받고 싶다고 생각하는 부류 말이다.
그렇게 모인 인원은 대략 5,000여 명에 달했으나, 그마저도 홍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아 전체로 봤을 때 적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설마, 혹시나 다른 줄일까 싶어 가게 안까지 들어간 케이트는 4층까지 개방형 구조로 된 서점의 줄 끝에서 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케이트는 왠지 그가 별세계의 사람 같다고 느꼈다.
[로건&캐시 북스토어 주최 ‘About T’ 작가 SEEN 사인회>라고 적혀진 현수막이 매달린 단상 아래에 앉은 그는 열심히 사인을 진행 중이었다.그 앞으로 늘어선 팝업 스토어에는 신의 소설인 ‘About T : Viewfinder’ 단행본과 ‘About T : Homecoming’ 교환권을 판매했다. 다들 거기에서 하나씩 사서 안으로 들어가 사인을 받고 있었다.
“······.”
그 앞에서 케이트는 정말 이루어 말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초라하게 하루하루 본성을 숨기며 아등바등 살아가는 자신과는 달리, 저 단상 위에서 누구보다 화려하게 빛나고 있는 신을 보고 있자니, 예전에 느꼈었던 그 감정이 더욱 강해졌다.
‘아, 그래.’
하이스쿨 시절부터 신을 볼 때마다 샘솟던 감정이었다.
자신은 혼자 열심히 호박 마차를 만들고 있는데, 저 멀리에 있는 왕궁에서 벌써 무도회가 시작되는 것을 바라보는 신데렐라 같은 느낌.
그 울적함이 다시 몰려오려고 하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Frrrrrrrrr······.”
어디선가 들려오는 입술을 터는 소리.
뭔가 싶어 뒤를 돌아보고는, 케이트의 눈이 진정한 경악으로 물들었다.
“내가 좀 늦었군.”
케이트가 익히 알고 있지만, 알고 있는 남자가 아니었다.
금발 포마드 헤어, 청바지에 붉은색 점퍼. 흰색 티셔츠. 붉은색 스니커즈.
하지만 흑인.
안소니 마일스였으되, 두피 킹스턴이었으며.
두피 킹스턴이었으되, 안소니 마일스였다.
······어렵게 설명하기는 했으나, 두피가 안소니를 ‘코스튬 플레이’ 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가 안경을 스윽 밀어 올리며 말했다.
“이 몸, 등장.”
[ 『About T : TV Series』 (3) > 끝(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