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71)
171.
본디 방송계는 상당히 경직된 곳이었다.
상하 관계가 확실했고, 조금만 잘못해도 고성이 오갔으며, 심지어는 물리적인 제재가 가해지는 경우도 흔했다.
업계의 문화가 그런 식으로 형성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개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한 명 한 명의 ‘실수’가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업계라면 ‘그래, 막내가 실수할 수 있지.’ 하면서 넘어갈 수 있는 일도 항상 마감에 쫓기는 방송국에서는 촬영 비용, 일정 등의 이유로 쉬이 통용되지 않았다. 촬영과 동시에 방송이 이루어지는 생방송이라는 포맷에서는 더더욱 실수와 사고에 대해 가혹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군대처럼 말이다.
그것이 옳든 틀리든, 군대는 ‘전장에서는 사람의 목숨이 오가기에 항상 긴장해야 한다. 하나의 실수가 치명적일 수 있다.’라는 이유로 폭력을 자행했다. 방송국의 문화도 그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이거 다 네가 책임질 수 있어?! 시간! 돈! 인력! 다 네가 책임질 수 있겠냐고!]대충 그런 식의 욕이 자주 나오고는 했다.
비슷한 이유로 신문사 같은 곳도 문화가 경직된 편이었지만, 그들은 방송국에 비해 업계의 규모 자체가 작아 그런 압박은 조금 덜한 편이었다.
1939년 처음으로 시작된 텔레비전 방송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나며 본격적으로 미국의 문화 산업을 주도하기 시작한 매체였다.
투입되는 자본은 나날이 높아졌고, 각 방송사는 경쟁적으로 투자비용을 높여갔다. 그보다 앞서서 성장한 영화 산업과 맞물려 ‘존 웨인’이나 ‘험프리 보가트’ 같은 스타가 탄생하기도 하고, 대중이 거기에 열광하면서 천문학적인 돈이 오가는 사업으로 발전한 것이었다.
그로 인해 소위 말하는 ‘갑질’을 할 수 있는 이의 숫자는 늘어갔다.
방송국의 사장, 투자자, 티켓 파워를 가진 배우, CP, PD, 촬영 감독, 방송 작가, 작품의 원작자, 기타 등등.
각자가 나름의 힘을 가지고 그들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산업 현장은 여러모로 고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인 만큼, 알렉사 플레어가 방송 제작 환경 속에서 고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포지션을 획득한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물론 알렉사 플레어에 대한 사람들의 호감은, 어디까지나 그녀가 ‘엑스트라’라서 쌓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만약 알렉사가 맡은 역할이 조금이라도 비중이 높거나 소속사가 방송 현장에서 입김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었다면, 지금처럼 많은 관심을 받지는 못했을 터였다. 편애의 조짐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어떤 형태로든 견제가 들어오거나 했을 테니까.
알렉사도 그 점을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을 만나왔던 그녀는 그런 사회의 규칙을 금방 이해했고, 운 좋게 주어진 관심에 감사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열심히 노력해 멋진 결과를 쟁취하자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가끔, 그날의 일을 끝내고 돌아갈 때면 괜히 마음속이 스산해지고는 했다.
바로 오늘처럼.
촬영이 모두 끝나고 주차장으로 나온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고등학교 때가 좋았어.’
아무런 이해관계나 대가 없이 그저 순수하게 웃고 떠들던 그때가 약간은 그리워졌다.
소속사에서는 그래도 사람들과 편하게 지내는 편이었지만, 그것도 사실 고등학교 때처럼 아주 편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잘 나갈수록 눈치를 살피면서 행동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모델은 알렉사보다 더 일찍 소속사에 들어왔음에도 일감을 꾸준히 받지 못해 웨이트리스 알바를 전전하는 중이었다. 거기다 그녀는 알렉사처럼 집안의 원조를 바랄 수도 없어서 힘들게 생활한다고 들었다.
그것이 알렉사의 ‘탓’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더 큰 문제가 되는 점은, ‘운 좋게’ 일감을 받은 알렉사조차 방송 촬영 환경에서는 전혀 존중받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사회로 나와서 일견 초라해진 자신을 마주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에 참고 삼켰을 뿐이었다.
‘일단 집 가서 뭐 좀 먹고······ 내일도 촬영이 있으니 일찍 자야······.’
그렇게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을 멍하게 떠올리며 터덜터덜 자신의 차 앞으로 간 순간이었다.
어둠 속에서 인영 하나가 드러났다.
“응?”
고개를 든 알렉사의 파란 눈이 평소보다 더 큼직하게 뜨였다.
“안녕. 생각보다 늦었네.”
그녀가 처음으로 사귄 남자친구, 신이었다.
멀끔한 얼굴, 훤칠한 키, 살짝 마른 체격에 벌어진 어깨, 그리고 가죽 재킷을 입은 상체 뒤로 뭔가를 감춘 그의 모습을 보면서 알렉사는 축 쳐져 있던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오늘 같은 날, 정말로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알렉사는 반색하며 자신의 차 너머에 서 있는 신에게 달려들어 와락 안겼다.
그리고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소리쳤다.
“시인······!”
“일은 다 끝났어?”
“응응! 여기는 어쩐 일이야······?!”
“근처에 일이 있었거든. 자, 선물.”
“꽃······?”
“오다 주웠어.”
“어디에서?”
“저기 들판 어딘가에서.”
장난스럽게 웃으며 주차장 반대편을 가리키는 신.
말한 본인도,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알렉사도 순간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알렉사는 신이 건넨 꽃의 화려한 내음을 맡으며 흐려져 있던 정신을 차렸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와 줘서 고마워.”
“오늘 일은 어땠어?”
“완벽했지. 폭발 씬도 촬영했다고?”
“······리얼?”
“It’s real. 일단 나갈까? 시간 늦으면 주차비 더 나오니까.”
생긋 웃은 알렉사가 자신의 차를 찾아 문을 열었다.
신은 따로 차를 타고 오지 않아서 조수석에 탔고, 두 사람은 알렉사 플레어가 운전하는 차에 몸을 맡긴 채로 스튜디오를 빠져 나와 할리우드의 도로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늦은 밤, 주홍빛 가로등이 거리를 비췄다.
원래는 일찍 집에 들어갈 생각이었으나, 오랜만에 남자친구를 만나며 기분이 나아진 알렉사로서는 그 계획을 변경하는 것이 당연했다.
“조금 드라이브할까?”
“좋지.”
부아앙-.
알렉사는 빠른 속도로 차를 몰았다.
운전에만 집중하는 그녀의 옆얼굴을 슬쩍 보면서 신은 생각했다.
‘표정이 좀 안 좋았지?’
정확히 말하자면 뭔가를 깊이 생각하는 얼굴이었다고 해야 할까.
별일 아닐 수도 있겠지만, 당연히 신경이 쓰였기에 잠깐 고민하다 슬쩍 말문을 열었다.
“비중 커졌다면서?”
“응? 아, 응! 작가님이 좋게 봐 주셔서.”
“다행이네. 왜 나한테는 이야기 안 해줬어?”
“응? 이야기했잖아. 저번에 전화로.”
“······.”
“시인?”
“제가, 경솔했습니다.”
“시이이인?”
“아, 알렉사! 앞에!! 앞에!!”
신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알렉사를 보며 놀라 외쳤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얼굴로 소리치는 그의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해 알렉사는 샐쭉 웃었고, 자연스럽게 그리피스 천문대 쪽으로 차를 몰았다.
어느새 운전 실력이 능숙(?)해져 척척 차를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는 그녀를 보면서 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촬영은 어때?”
“즐거워. 하루하루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배우고 있지요.”
“스트레스 받지는 않아?”
“으음~. 글쎄.”
조금씩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니까.”
“운이 좋다?”
“사무소에 나보다 먼저 들어왔는데 일감을 못 얻어서 고생하는 모델이 많아. 반면에 나는 들어오자마자 얼마 안 돼서 모델 일 시작했고, 드라마 출연에, 완전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지.”
“알렉사. 그게 왜 운이야. 네 실력이지.”
“······.”
신의 말에 알렉사가 크게 위로를 받았다는 듯 눈을 글썽이며 돌아보았다.
“앞에!! 앞에!!”
하지만 문제는 그녀가 운전 중이라는 사실이었다.
덕분에 다시 분위기가 수습됐다.
“아, 아니야. 순전히 운이지. 그게 아니라면 나 같은 초짜가 어떻게 캐스팅이 됐겠어?”
“네가 잘해서야.”
“다른 사람들은?”
“못했고.”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그리고 ‘연기를 잘하는 능력’과 ‘배역에 잘 캐스팅되는 능력’이 반드시 같다고 볼 수는 없잖아? 네가 내 작품을 남들보다 감명 깊게 읽은 게 캐스팅 담당자들의 눈에 든 건 아닐까.”
“으음~.”
약간 미간을 찌푸리던 알렉사는 이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거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지.”
다름 아닌 신의 소설이니까.
그렇게 조금은 마음이 풀어진 알렉사의 빈틈을 노리고 신이 불쑥 파고들었다.
“오늘은 뭐가 고민이었어?”
“음, 왠지 옛날이 더 좋았던 것······ 어떻게 알았어?!”
“너 나올 때 표정이 굳어져 있어서.”
혼자 있어도 언제나 활짝 웃으며 총총 뛰어다녔던 그녀인데 말이다.
알렉사가 귀신이라도 본 듯한 눈으로 신을 돌아보았고, 또다시 ‘앞에, 앞에!’ 하는 외침이 차 안을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 알렉사의 자동차는 그리피스 공원 안의 천문대에 도착했다.
차를 적당히 주차해 두고 내린 다음, 두 사람은 주변을 순찰하는 경비원들의 모습을 확인하며 천문대 쪽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About T’ 같네.”
“들어갈 수는 없지만.”
“왜? 들어가면 되지.”
“······경찰에 잡혀 가지 않을까?”
알렉사의 제안에 현실적인 조언을 건네는 신.
문이 굳게 닫힌 천문대를 돌아본 알렉사가 이야기했다.
“고등학교 때였다면 들어갈 수 있었을까?”
“글쎄, 그때도······ 아니.”
신이 씨익 웃으며 가볍게 장난을 쳤다.
“그때면 아주 장난 아니었겠지.”
두피와 지우 두 사람까지 더해서, 사고를 좀 치더라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그리피스 천문대로 진입했을 터였다. 마치 TRPG를 했을 때처럼 클레어, 제이나, 로드 두푸스, 그리고 그들의 마스터인 신이 되어 좌충우돌 우당탕탕 날뛰었겠지.
그 이야기를 듣고는 알렉사가 웃음을 터뜨렸다.
“맞아, 맞아! 아니면 네 명 다 진입하려다가 ‘이건 좀 아닌 듯.’ 하면서 근처 24시 도넛 가게에 가서 도넛 하나씩 먹고 헤어지던가. ······어라, 그쪽이 더 가능성이 있어 보이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즐거웠겠지.”
“맞아. 정말 그리워. 그때가.”
“지금은 즐겁지 않아?”
“그건 아닌데. 음, 모르겠어. 왜 요즘 그때가 그리운지.”
자신의 감정을 순간 이해하지 못한 알렉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 앞에서 신은 순간적으로 기시감을 느꼈다.
‘뭐지?’
왠지 비슷한 상황을 전에도 느껴본 듯했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지금 알렉사의 말은, 전생의 마지막 순간에 품었던 후회와 다르지 않다고.
옛날이 좋았다.
지금보다 예전이 나았다.
그런 식으로 과거를 그리워했던 자신.
자연히 그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그것은 지금의 내가 전생의 자신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그때가 있으니, 지금이 있는 거잖아?”
따라서 스스로 그 말을 입에 담는 자신에게 약간의 괴리감을 느꼈지만, 신은 알렉사를 위해서라도 마음속으로 차근차근 생각을 가다듬었다.
마이클 잭슨이 있어 브루노 마스가 있고.
투팍이 있어 제이-지가 있고.
비치 보이스가 있어서 마룬 파이브가 있다.
마이클 조던이 있기에 르브론 제임스가 있으며.
말론 브란도의 연기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리고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이 있어 존 시나가 탄생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인간이 언제나 과거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그리고 내가 과거를 사무치게 증오했던 이유는.’
당장 눈앞의 현실이 너무나도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숙제처럼 느껴져서.
미래의 인간이 너무나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 고통을 느끼듯이.
알렉사를 위로하기 위해 꺼낸 화두를 통해, 신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 출간을 준비 중인 자신의 소설이 이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로써 그때 자신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지금 왜 그런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지가 명확해졌다.
그리고 상념 끝에, 그가 알렉사에게 건넨 말을 이러했다.
“괜찮아. 지금 너는 잘 하고 있어.”
별거 아닌 단어의 나열처럼 보여도, 누구에게나, 언제나 필요한 말.
어두컴컴하게만 보이는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위로의 한마디.
그렇기에 신은 자신이 쓴 소설 속 ‘더 북’이라는 존재를 부정적으로 묘사했다.
모든 인류의 행복을 위한 도구는 인간이 가진 자유 의지를 부정하니까.
알렉사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자신의 의도조차 의심하게 만드니까.
사실, 신의 내면에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지울 수 없는 작은 불안감이 있었다.
지금의 자신이 두려움 없이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이유는, 미래에 벌어지게 될 일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고.
어떤 거대한 의지가 더해져 회귀라는 일을 겪었는데, 사실은 이 모든 것이 ‘더 북’ 같은 존재에게 조종당했기 때문이 아닐까 상상하면 지금도 어딘가 많이 소름이 끼치고 무섭다.
하지만······.
‘아직 증명된 부분이 아니지.’
그러니 이 비밀에 대해선 앞으로도 혼자 간직하고 넘어가자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 대신, 확고하게 결심한 바가 있었다.
자신이 회귀로 얻을 이득을, 자신을 포함해서 주변의 많은 이에게 베풀며 살자고.
눈앞의 알렉사, 그리고 어머니.
두피, 지우, 코믹북 스토어의 너드 가이들.
업계의 동료들, 스탠퍼드 대학에서 만난 사람들.
더 나아가 자신의 책을 읽어 준 많은 독자들까지.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알렉사.”
그리피스 천문대 앞, 가로등 불빛 아래.
알렉사는 신이 자신을 위로하고 있음을 느끼고 고개를 푹 숙였다.
가장 듣고 싶은 사람에게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을 들었다.
“······나 안겨도 돼?”
“그럼~.”
신이 팔을 활짝 벌리자 종종걸음으로 다가온 알렉사가 품속에 폭 안겼다.
알렉사는 한동안 신의 가슴에 안긴 채 섬유유연제와 섞인 특유의 향을 맡으며 진정했고, 마치 어린아이가 어리광을 부리듯이 뺨을 비벼댔다.
신 역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해 주었으며, 그러다가······ 크나큰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이런, 제기랄.’
지금 자신의 몸이 19살이라는 사실을 깜빡 잊고 말았다!
그것은 연애 중에 당연히 발생할 수 있는 해프닝이었다.
그래, 절대 더러운 반응이 아니다. 남녀 사이에, 그것도 서로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는 사이인 만큼 정말 흔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일인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마음은 늙었어도 몸은 소년이니까!
하지만 그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간과하고 만 신이라는 사내는, 뭔가가 ‘발’각될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기’를 쓰고 불편한 진실을 감추려고 들었다.
슬쩍 허리를 뒤로 빼는 신.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알렉사는 꿈틀대는 신의 허리를 더 세게 팔로 감아 바싹 붙었다.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못하게 하려는 듯이.
그럼에도 신이 이리저리 허리를 옆으로 뒤틀자, 알렉사가 고개를 들었다.
“······? 왜 그래?”
커다란 눈망울이 신을 바라보았다.
시트러스로 시작해 플로랄을 지나 바닐라가 느껴지는 향수 냄새가 났다. 그러고 보면 향수는 참 신기한 물질이다. 어떻게 이런 조화를 이루며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래, 취한 것 같았다.
말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알렉사도 신과 눈이 마주친 시점에서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굳어졌다.
순간 신의 머릿속에 내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타이밍 완벽하고.’
하지만 이내 그런 상념조차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마음은 늙었어도 몸은 소년이었고, 그녀 앞에서는 마음조차 소년이 되었기에.
가로등의 주황색 불빛이 한 차례 깜빡였다.
알렉사가 살짝 발끝을 들었고, 신의 고개가 숙여졌다.
[ Loved by everyone (2) > 끝(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