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74)
174.
‘Country of losers’의 초도물량이 완판되는 데는 넉넉잡아 하루 정도가 소요되었다.
사이먼으로부터 재고 소진에 대한 연락을 받은 것이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느지막한 오후였으니, 퇴근한 회사원이 서점에 들러 마지막으로 남은 책까지 싹싹 털어갈 것을 생각하면 대충 하루로 생각해도 문제없을 테지.
우리 역시 늦든 빠르든 재고가 부족할 것을 예상하고 초판 유통이 진행되기도 전부터 곧바로 2쇄 인쇄에 들어갔으나, ‘안타깝게’도 책이 판매되는 속도가 예상을 아득하게 초월했다.
‘단 하루라니.’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제때 공급해 원활히 판매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 지극히 당연한 미덕이었다.
하지만 ‘Country of losers’를 읽고 싶어 하는 독자가 사고 싶어도 사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 연출되고 말았다.
물론, 예상을 벗어난 일은 항상 벌어지는 법이고, 현명한 자라면 그것을 실패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재도약의 기회로 삼으면 그만이었다.
오히려 이럴 때야말로 마케팅으로 전환하는 편이 더 수지가 맞았다.
‘어딘가에서 연재되지 않은 단행본이라는 점이 유효하게 작용했군.’
그동안 독자들은 내 작품을 신문이나 잡지로 처음 접하고, 그에 대한 팬심이나 깔끔하게 제본된 책으로 다시 읽고 싶어 단행본을 구입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에는 전혀 다른 방식을 취했다.
‘Country of losers’는 아직 세상에 어떤 형태로도 공개되지 않은 작품이었다. 내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금광이 발견된 것과 다름없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역마차가 요란하게 울린 셈이다.
거기다 초도물량이 하루 만에 동이 나서 부랴부랴 추가 인쇄에 들어간다?
굳이 내 팬층이 아니어도, 소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까지 엄청난 호기심을 품고 책을 사려 할 터였다. 지금 아니면 언제 희귀한 책을 구해 보겠냐는 심경으로 말이다.
작게나마 두 신문사에 추가 광고비가 들어가게 되기는 했지만, 그것을 감수할 정도로 굉장한 마케팅 효과를 노려볼 수 있는 일이었다.
······뭐, 기다리는 독자들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겠지만, 나는 거기에 대한 대비도 철저하게 해 두었다.
‘그냥 며칠 정도 숨어 있으면 되지.’
코믹북 스토어에 갔다가는 당장에 책을 사지 못한 좀비(?)의 습격에 당할 우려가 있으니 코리아타운의 가게와 집 사이만 오갈 생각이었다.
그것을 위해 일부러 약속도 안 잡아 둔 자신의 지혜(?)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독자의 습격(?)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차례차례 한 명씩, 책을 구매하지 못한 이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
알렉사 ‘더 블랙 맘바’ 플레어.
“······.”
지우 ‘더 베이시스트’ 장.
“······.”
두푸스 ‘더 카우보이’ 킹스턴까지.
마침 책 발매 다음 날인 오늘이 바로 주말이었던지라 다들 거의 비슷한 시간에 모여들었다.
심각하게 굳어진 세 사람을 앞에 둔 채,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다들, 무슨 일이야?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책.”
“응?”
알렉사는 나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책이 왜 서점에 없어? 덴젤도 아직 못 받았다고 하고.”
“무슨 책?”
“당연히 ‘Country of losers’죠. 어떻게 된 거예요? 서점 어디를 가도 책이 없던데요.”
“······501번째였다.”
“음? 무슨 말이에요? 두피?”
“501번째로 서 있어서 내 앞에서 마지막 책이 나갔다. 연차까지 썼는데.”
“······.”
“이해해. 두피.”
책을 구하지 못한 서로를 위로하는 나의 친구이자 독자들.
그때 키튼즈 코믹북 스토어에서 두피가 내 책을 사줬을 때도 그렇고, 다들 친구로서 ‘책 한 권만 줘 봐.’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공연히 내게 부담이 될까 봐 그러지 않는 것이 무척 고마웠다.
그러므로 나 역시 그들에게 ‘선물’을 마련해 두었다.
“알렉사, 지우, 두피.”
“뭐지?”
“응?”
“무슨 일이에요?”
“당연히 이런 사태를 예상하고······ 준비해 뒀지.”
자신만만하게 웃으면서 나는 매대 안쪽에 미리 사이먼을 통해 챙겨 두었던 ‘Country of losers’ 세 권을 꺼내 들었다.
그 순간, 세 사람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신······!”
“저희 주시는 거예요?!”
“그럼,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렇게 셋은 내가 챙겨야지.”
“신, 고마워!”
“오빠 최고!”
“자, 두피. 너도 받아.”
“······.”
얼굴이 빨개진 알렉사와 지우에게 책을 한 권씩 건넨 다음, 나는 마지막으로 두피에게 책을 건넸다. 하지만 두피는 그걸 받지 않고 잠깐 고민하더니,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차 키였다.
아마도 드로리안의.
“이 녀석이 새 주인을 찾은 모양이군.”
“······마음만 감사히 받을게.”
아무리 그래도 고작해야 책 한 권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게 아닐까요.
***
고작해야 책 한 권.
신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의 음흉한 계략대로 책이 ‘없어서 못 파는’ 지경이 되면서 독자들의 구매 욕구와 기대감은 삽시간에 상상하지 못할 만큼 치솟았다.
‘Country of losers’를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안 독자들은 답답한 마음을 해결해 보고자 주변에 토로하거나 다방면으로 움직이며 책을 구하려 했다.
개중에서 마음 급한 몇몇 사람들은 ‘Country of losers’를 출간한 ‘하드보일드 퍼블리셔’에 직접 전화를 걸어 책을 구할 수 있는 방안을 확인하려고 들었다.
하지만 이제 막 출범한 하드보일드 퍼블리셔의 전화번호를 알 수 있는 방법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보통 이럴 때 사람들은 기출간작에 판권지에 적혀 있는 출간 정보나 전화번호부를 확인했지만, 아쉽게도 하드보일드 퍼블리셔는 이번이 최초의 출판이었고, 아직 전화번호부에 게재되지도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책을 산 사람들은 번호를 알고 있으니, 책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역설적인 상황이었다.
그쯤에서 많은 이가 전화를 포기하고 답답한 마음을 안고 기다리는 길을 선택했다.
개중에서 정말 마음 급한 몇몇은 책이 있다는 사람을 찾아가서 번호를 따가거나, 하드보일드 퍼블리셔의 광고를 게재한 회사로 전화를 걸어 직접 전화번호를 물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 ‘귀찮은’ 과정을 거쳐서 하드보일드 퍼블리셔와 연락이 닿은 그들에게는, ‘정말로 죄송합니다.’ 하는 정중한 사과를 듣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여기까지 단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달리 있었다.
그 귀찮은 과정을 이어간 이들은 극히 소수였지만, 그 소수를 단 혼자서 상대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사이먼은 계속해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며 다른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점점 정신적으로 지쳐갔다.
그의 유한 성격이 요구하고 윽박지르기만 하는 이를 상대하는 데에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는 심연 속에서 홀로 외로이 투쟁하는 하프 오크 파이터와도 같았다. 죽고 싶을 만큼 괴롭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바로 그때, 한 여인이 혜성처럼 사이먼 앞에 등장했다.
“Need some help?”
도움이 필요하다고 물으며 담배를 건네는 환상의 여인.
바로 얼마 전에 토런스 뉴 미디어를 퇴사한 미스 브라운이었다.
“미스 브라운!”
“같이 담배 피울 사람이 없네요.”
“설마, 그때 말했던 데이트 때문에······!”
“쉿, 너무 앞서 나가지는 말아요.”
빙긋 웃으며 다가온 그녀가 노란 필터 담배를 건넸다.
‘같이 담배 피울 사람이 없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누구나 알다시피 ‘핑계’였다. 사이먼 카버가 토런스 뉴 미디어에서 퇴사하고 내내 그가 걱정이었던 미스 브라운이었다. 사이먼은 이 시대의 전형적인 회사다운 그곳에서 자신을 동등하게 바라보며 챙겨 준 몇 안 되는 좋은 기자였으니까.
때로는 그런 ‘좋은’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 것이 현명한 여인의 심리.
마치 1960년대 흑백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미스 브라운이 건넨 담배를 사이먼은······.
“아, 저 금연했는데용.”
“?”
“신 작가님이 담배 싫어한다고 하셔서.”
이 미친 작가 너드가.
왠지 신 작가와 계약하고 나서부터 담배 피우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싶더라니.
사이먼의 치가 떨리는 태도에 미스 브라운은 가볍게 입술을 질겅이고는 작은 한숨을 쉬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일단 전화라면 제가 받죠. 그쪽은 어서 다른 업무 처리해요. 한창 바쁠 텐데.”
“예?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믿고 맡기라니깐. 상황 공유만 해 줘요.”
따르릉-.
그녀는 말이 끝나자마자 걸려오는 전화를 사이먼이 뭐라 할 새도 없이 받아 버렸다.
중견급 신문사에서 경리 5년 차. 회사의 금전 출납 관리 업무는 물론이요, 전화 응대와 손님 접대 역시 충분히 능숙할 경력이었다.
때마침 수화기 너머의 상대는 사이먼이 가장 대하기 곤란해하는 ‘화가 난 고객님’이었다.
[이봐, 거기가 하드보일드 뭐시긴가?]“네, 고객님. 하드보일드 퍼블리셔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캘리포니아 어디를 뒤져봐도 책을 찾을 수가 없잖아! 일 똑바로 안 해?!]“아, 저희 쪽에서 출간한 책의 구매 문제 때문에 전화를 주셨군요?”
[맞아! 서점에 책 안 냈어?! 낸 건 맞아?!]“네, 분명히 4월 1일자로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그런데······.”
미스 브라운은 담배를 입에 물고 성냥을 툭 긁으며 사이먼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가 종이에 대고 필담을 건넸다. [재고 소진]. 미스 브라운은 담배 연기를 내뱉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코로 내뱉으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아쉽게도 지금 각지의 모든 서점에서 재고가 소진된 상태라고 해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기대감으로 찾아 주셨을 텐데 고객님의 시간을 빼앗은 점 정말 사죄드립니다.”
[아니, 서점에 책이 없는 게 말이 돼?! 무슨 일 처리를 그따위로······!]“신 작가님의 작품을 정말 좋아해 주시는 그 마음을 깊이 새기고 앞으로 더욱 분골쇄신해서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신 작가님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어? 으, 으음. 커흠. 뭐어······ 그 친구 소설이 정말 재밌더군.]“맞아요! 이번에 나온 ‘Kingdom of losers’도 기대를 배반하지 않을 거예요.”
컨츄리! 컨츄리!!
막 찾아와서 사정을 잘 모르고 말하는 미스 브라운을 향해 입을 뻥긋거리며 신호하는 사이먼.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으니, 부랴부랴 필담으로 다시 이렇게 적었다. [내일 저녁, 2쇄 배본]. 책상 위에 걸터앉아 스타킹으로 감싼 다리를 꼬고 있는 요염한 자세와는 대조적으로, 미스 브라운이 무척이나 밝고 상냥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마 이틀 뒤면 다시 서점에서 만나 보실 수 있을 예정입니다.”
[그, 그래? 내 이틀만 참고 기다리지.]“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그러고는 뚝, 하고 전화를 끊는 미스 브라운.
“상황은 파악했으니까, 이렇게 대응할게요.”
가느다란 연기가 붉은 입술 사이에서 후욱 새어 나왔다.
그 앞에서 사이먼은 얼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내가 방금 뭘 본 거지······?”
“뭐긴 뭐야.”
하드보일드 퍼블리셔의 새 직원이지.
***
총판에서 도매상으로, 도매상에서 각지의 소매상으로.
이 유통 과정이 최대한 빠르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관계자들 모두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인쇄된 책을 포장하고 배달하는 과정에 단기 알바까지 동원되어 이례적으로 다급하게 이루어졌고, 인쇄가 끝난 바로 그 직후에 ‘Country of losers’의 추가 배본이 간신히 성사될 수 있었다.
하지만 3쇄는 물론이요, 어쩌면 4쇄까지 이 폭풍 같은 작업이 반복될지도 몰랐다.
그리하여 4월 4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 토런스 뉴 미디어를 통해 짧은 사과문이 게재되었다.
『[죄송합니다!]
하드보일드 퍼블리셔의 대표, 사이먼 카버입니다.
이번 ‘Country of losers’의 재고 소진 사태에 관하여 독자 여러분께 사죄드립니다. 예상하지 못할 만큼 빠르게, 판매 첫날 6시간 만에 초판 물량이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금일부터 ‘Country of losers’를 각 서점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현명히 대처하겠습니다. 』
사과문의 임팩트는 강렬했다.
각지의 업계 관계자들은 그 사과문을 접하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6시간 만에 초판이 모두 나갔다고?”
“대체 얼마나 잘 팔리는 거야?”
“이번 신 작가 신작의 흥행력이 정말 엄청난 모양인데······.”
그 아무도 ‘초판 물량을 적게 뽑았겠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애초부터 종이책 시장이라는 것은 ‘깔아 놓는’ 형태의 장사였다. 책이란 설령 허름해진다 해도 음식물처럼 아예 썩어 버리는 것이 아니니까. 서점이나 백화점, 문구점 등등 도소매상을 통해 온갖 매장에 깔아 놓았다가 훗날 반품되는 경우가 허다했지만, 생각보다는 만만한 손익분기점만 넘긴다면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 정도 시스템이 갖춰진 출판사는 아예 예상 판매량보다 넉넉하게 찍어서 출하와 재고를 관리하는 편이었다.
그러니 현재 신 작가의 이름값으로는, 결코 적게 뽑는다는 일이 벌어질 수가 없었다. 인기 작가의 경우, 전작의 판매량을 기준으로 잡고 초판 부수를 뽑는 만큼, 어지간한 이슈가 없고서야 6시간 만에 초판 물량이 소진되는 경우는 무척 드물었다.
그렇기에 업계인들은 그동안 쌓아 온 업계 지식에 따라 주어진 정보를 왜곡된 방향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인쇄소 쪽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금세 진실을 알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3만 부가 아주 적은 숫자도 아니었고.
그리고 그런 지식이 아예 없는 이들도 비슷하게 생각했다.
‘진짜 잘 팔리는 모양이네.’
케이트 무어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어디에나 있는, 아니, 어디에나 있다기에는 강박 성향과 불안이 심한 대학생인 그녀의 손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 방금 서점에서 산 ‘Country of losers’가 들려 있었다.
2쇄를 배본했다고 하지만, 작은 서점 세 곳을 뒤져서 겨우 한 권 찾아낸 것이었다.
‘그만한 작품인가?’
비전문가로서 책이 잘 팔리고 있는 이유를 신의 이름값이 아니라 작품에 대단한 뭔가가 있으리라는 쪽으로 해석하면서, 그녀는 페이지를 펼쳐 들었다.
책을 사러 나온 김에 러닝까지 하고 들어갈 생각이었던 터라, 공원의 벤치에 잠시 앉아서 쉬고 있던 채로 별생각 없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었다.
‘날씨도 좋고, 조금 읽고 나서 달려야겠다.’
지금은 이 따사로운 햇살 아래서의 독서를 즐기고 싶었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은 것을 알고 말았다.』
뭔가 현학적인 느낌이 드는 첫 문장으로 시작되는 소설.
입시 준비와 대학에서의 공부로 ‘인터넷’이라는 개념에 대해 알고 있는 만큼, 케이트는 이어지는 내용을 읽으며 자신이 아는 개념과 작품에서 제시되는 미래상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해 나가는 데 몰두했다.
그렇다면, 인터넷으로 너무나도 많은 정보를 알게 된 인류가 어떻게 서로를 비교하게 불행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인가.
“······.”
그렇게 소설을 읽으면서 케이트 무어의 숨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깊이 집중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였다.
눈도 거의 깜박이지 않은 채 안경 너머로 종이 위에 새겨진 글자를 더듬어 나가며, 신이 제시하는 ‘패배자들의 나라’에 빠져드는 케이트.
그녀가 점점 더 몰입함에 따라 읽는 속도 역시 피치가 올라갔고, 그녀의 머릿속으로 그동안 그녀로서는 떠올리지 못했던 생각들이 미세한 바늘처럼 따끔따끔 파고들었다.
자연히 머릿속에 과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녹색의 눈동자가 도화선이 타들어가듯 행과 열을 따라 거칠게 글씨를 훑고 있었고, 그러다 눈꺼풀이 간신히 브레이크를 밟았다.
눈이 뻑뻑했다.
이마를 짚으며 겨우 정신을 차린 케이트는, 각막 뒤편에서 가득히 맴도는 온갖 상념에 머리가 터질 것 같다고 느끼며 안경을 벗어 벤치 옆에 내렸다.
그리고 한동안 감고 있는 눈 주변을 주무르면서 이 소설에서 제시하는 삶에 관해서 생각했다.
아직, 소설은 다 읽지도 않았다.
아직, 이 소설의 마지막 반전에 이르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어떤 막막함을 느꼈다.
행복의 정의, 불행의 정의.
‘너무 많은 걸 알아서 불행해졌다고?’
행복을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 불행해지는 원인이라고?
삶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모든 과정이?
지금껏 자신이 추구해 왔던 이 ‘노력’이?
얼마 전 ‘About T : College’를 읽고 앨리스처럼 살아가고자 했고, 이 삶에 자신만의 만족을 덧붙여 행복해지고자 했다.
하지만 지금 ‘신’ 작가는 이 작품에서 그 결론조차 부정하는 듯했다.
그녀는 문득 생각했다. 이 소설은 어쩌면, 기존의 자신이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했던 방식과 ‘About T’를 통해 제시받은 삶, 두 가지 모두를 부정하는 주제의 글이 아닐까.
어느 쪽도 정답은 아니다.
아니, 애초에 정답은 존재하고 있는가.
‘대체 어쩌라는 말이야······?’
슬픔과 분노, 혼란과 허망함,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감정을 눌러 삭이며, 눈을 꾹 감은 채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려 노력했다. 그것은 일종의 명상과도 같았다.
그리고 한숨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어느덧 해가 기울었고, 벤치 옆 가로등만이 자신을 처연하게 비추고 있었다.
여전히 머릿속은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복잡했다.
하지만 케이트 무어는 인공의 빛에 의지해 다시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자신만의 정답을 찾기 위해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