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78)
178.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처음 연락이 왔을 때는 흔쾌히 응했고, 그 사실을 주변의 다른 녀석들에게 알려 주자 서로 뛸 듯이 기뻐했다.
하지만 막상 약속한 시간에 약속한 장소에 도착한 순간, 빌은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져들고 말았다.
“안녕하세요! 그쪽이······.”
“비, 빌.”
“아, 팀 키튼즈 코믹북 스토어의? 반가워요. ‘캘리포니아 나이트’의 작가인 첼시 페터슨이에요. 이름이······ 빌 에반스 맞죠?”
“네, 넵.”
“혹시 피아노 쳐요?”
“아, 아닙니다.”
“하하, 이런 소리 자주 듣죠?”
“그, 네.”
빌은 어수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빌 에반스.
키튼즈 코믹북 스토어의 ‘마스터’이자 버거샵의 ‘더 세븐’ 빌의 풀네임이었다.
전설적인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뮤지션인 ‘빌 에반스’와 동명이인.
항상 처음 만나는 사람의 앞에서 그 사실을 지적받는 것이 그가 지금껏 접해 왔던 사회생활의 첫 패턴이었으나, 안타깝게도 빌은 그 농담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해서 유쾌한 분위기를 꾸려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코믹북 마스터’였다.
말인즉슨, 코믹북이라는 주제를 벗어나면 한없이 작아졌다.
‘제기랄.’
두툼한 등 뒤로 식은땀이 배어 나와 이너웨어를 적셨다. 관자놀이에서도 수도꼭지가 틀어진 것 같았다.
프레드와 닉 같은 친구들에게는 잘하고 오겠다며 호기롭게 다스베이더 흉내를 냈으나, 막상 현실 속 실제 현장에 와서는 이 모양 이 꼴이었다.
하지만 환상 속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로서는 영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 편하게 앉아 있어요.”
라디오 방송 조정실은 마치 우주선의 내부 같았다.
음향을 조절하는 장치와 곳곳에 걸린 헤드폰, 방송을 송출하기 위한 기계가 놓여 있는 가운데, 빌은 현실을 도피하려는 타조처럼 구석에 딱 붙어 앉았다. 그리고 방송 준비를 하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이들을 보면서, 새삼스레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듯한 초라한 감정에 휩싸였다.
실제로 이후에 건즈 앤 소드 매거진에서 편집장을 만나면서 더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에게서 자연스럽게 새어 나오는 업계의 프로가 가지는 분위기에 위축되고 말았으니까.
“안녕하세요. 건즈 앤 소드 매거진의 아서 레이놀즈입니다.”
“아, 반갑습니다. 첼시 페터슨이에요. 잡지는 정말 잘 보고 있습니다.”
방긋 웃으며 인사한 첼시가 아서와 빌을 서로 소개시켰다.
“이쪽이 오늘 방송 함께할 빌 에반스입니다.”
“아서 레이놀즈입니다. 그쪽이 쓴 글은 미리 전해 받아서 아주 즐겁게 봤어요.”
“가, 감사합니다. 빌 에반스입니다.”
“오, 재즈 외에도 재능이 있으셨군요.”
마찬가지로 너스레를 떠는 아서.
어색하게 웃으면서 빌은 다시 구석 자리에 앉았다.
방송 시작은 오후 8시.
자신 옆에 다가와 앉은 아서가 가끔 이렇다 저렇다 말을 걸어 왔지만, 빌은 코믹북 스토어에 있을 때처럼 당당하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식은땀으로 전신이 축축했고, 시간이 다가올수록 처형장에 올라가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몸이 떨렸다.
캘리포니아 전역으로 나가는 방송에 나오다니, 제정신으로 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이런 게 술을 마시고 싶은 기분인가.’ 하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술을 마셔 본 적도 없었다. 더군다나 그러다 너무 취하면 오히려 사고를 치는 셈이었다.
“끄응.”
신음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빌.
바로 그때였다.
“빌?”
“아, 넵!”
“빌을 찾는 전화가······ 왔는데요.”
눈앞에 다가온 직원의 눈이 휘둥그레 뜨인 채였다.
‘누, 누구지?’
딱히 전화가 걸려올 만한 곳이 생각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빌은 일단 직원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방송 조정실 옆의 사무실로 그를 데려간 직원은, ‘정체를 알리지 말아 달라.’는 부탁대로 설명 없이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수화기를 들어 건네주었다.
“여기요.”
“아, 넵. ······여보세요?”
[빌? 저예요. 신.]“시, 신?!”
[편집자 통해서 이야기는 대충 들었고, 지금쯤 거기 계실 것 같아서.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 전화했어요.]“뭐, 뭐지?”
[합평집 재미있게 읽었다고요.]“······어, 그리고?”
[그게 전부예요.]“전부?”
[예. 당신과 당신을 믿는 ‘동료’들이 만든 합평집, 재밌었어요.]그 말이 기묘하게도 빌의 마음을 울렸다.
‘동료.’
그래, 잊고 있었다.
지금 여기에 있는 자신은 혼자가 아니다.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합평집을 만든 동료들의 마음이 함께하고 있다.
“그래······. 프레드가 ‘여기는 나에게 맡기고 어서 가!’라고 했었지.”
[······어, 뭔가 위험한 스위치가 눌린 모양인데.]“괜찮다. 신. 문제없다.”
빌은 수화기 반대편 귀 뒤로 삐져나온 안경의 팁을 툭 쳤고, 방금까지 축 처진 듯 흘러내려 있던 안경이 제자리에 돌아왔다.
“나를 믿어 주는 ‘우리’를 믿어 보도록 하지.”
[저기, 나중에 정신 차리면 후회할 수도 있어요?]더 이상 신의 충고는 그에게 들리지 않았다.
이제야 원래의 자신이 됐으니까, 더 이상 듣지 않아도 괜찮았다.
처음으로 코믹북 스토어가 아닌 곳에서 ‘The 코믹북 마스터’가 된 빌은 전화를 끊고 당당한 얼굴로 뒤돌아 걸어 나갔다.
***
첼시 페터슨은 한창 업계에서 경력을 쌓아 올리고 있는 젊은 방송 작가였다.
방송국 안에서는 주로 ‘여자답지 않게 잘한다.’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본인은 그런 헛소리를 딱히 깊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당장 매일 같이 밀려드는 방송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캘리포니아 전역에 송출되는 FM 라디오 방송, ‘캘리포니아 나이트’.
월화수목금, 주 5회의 방송을 황금시간대에 진행, 주로 그날 있던 가십이나 음악, 사연, 시청자 참여 코너로 구성되는 인기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현재 첼시가 방송 작가로서 맡고 있는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물론, 이 프로그램의 작가는 첼시 혼자가 아니었고, 다른 작가도 함께했다.
하지만 저녁 늦게 시작하는 라디오 방송의 특성상 밤까지 업무가 계속되는데, 그녀는 일에 대한 열정과 하나뿐인 동생을 먹여 살려 대학을 보내고 싶다는 소망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그중 누구보다 열심히 수행했다.
그뿐 아니라 트렌드를 캐치하는 능력도 훌륭해서, 젊은 나이에도 여러 좋은 아이디어를 내, 호평 섞인 엽서가 찾아오는 일등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결과 첼시 페터슨은 어느덧 이 방송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심인물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최근 그녀는 진행을 맡고 있는 쌍둥이 형제 코미디언 ‘로스 브라더스’의 토크를 들으면서 ‘Country of losers’와 관련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 소설에는 진입 장벽이 존재했다.
빽빽하기 짝이 없는 분량과 문장.
인기 장르 소설 작가인 신이 기존에 쓰던 소설과는 달랐다.
물의 깊이가 깊을 때 거기에 망설임 없이 뛰어들 수 있는 자는, 그 안에서 헤엄치고 잠수할 수 있을 만한 능력을 갖춘 다이버뿐이다.
그리고 ‘Country of losers’는 해구에 비견될 만한 깊이 있는 소설이었다.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하드커버 디자인과 그것을 둘러싼 드라마에 매혹되어 구매하더라도, 페이지를 펼친 순간부터 몰아치는 깊이 있는 내용과 활자의 압박에 독서를 뒤로 미루게 만들었다.
현실에 치여 빽빽한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머리를 비우고 쉬기 위해 소설을 읽는 사람들.
그들의 입장에서는, 읽기 어렵고 깊은 생각을 필요로 하는 소설을 보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시간 날 때 읽자.’ 하고 넘길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어쨌든 ‘Country of losers’는 많은 사람들이 구매했고, 구매하지 않은 사람들도 최근의 소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러니 이 시류를 타고 특별 코너를 편성한다면 상당한 반응을 얻을 수 있다.
첼시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궁리하던 중 평소처럼 늦은 시간에 집으로 퇴근했는데, 평소 장르 소설만 읽던 동생 맥스가 한 개인 제작 매거진의 도움을 받아 ‘Country of losers’를 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그녀는 특유의 실행력으로 섭외를 진행했고, 한 코믹북 스토어에서 시작된 날갯짓은 굉장한 나비 효과를 가지고 왔다.
마침내 방송이 시작되었고, 아무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토크가 흘러가기 시작했다.
‘뭐야?’
첼시는 이어지는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계속 헛웃음을 짓고 있었다.
방송 부스 안에서 펼쳐지는 빌 에반스라는 아마추어와 프로인 아서 레이놀즈, 마지막으로 로스 브라더스가 펼치는 ‘토크쇼’ 때문이었다.
‘그래, 이런 걸 기대했지.’
장르를 다루는 편집장에게는 ‘전문성’을, 아마추어 팬에게는 ‘순수함’을 기대한 그녀였다.
그리고 처음에 왔을 때 아마추어 쪽이 잔뜩 긴장하고 있어서 잘 될까 싶었는데, 바라던 대로 상황이 풀렸다.
[FM 라디오! 지금은 캘리포니아 나이트입니다. 잠깐 광고 듣고 왔는데요. 팀 키튼즈 코믹북 스토어의 빌 에반스 씨가 말하고 싶은 감정을 꽤나 참기 힘들었던 모양이에요. 어떻습니까. 빌. 아직도 이 소설에 관해서 할 말이 남아 있을까요?] [얼마든지 말할 수 있죠. 방송 분량을 다 이걸로 채우고 싶을 정도예요!] [푸하하! 좋아요! 좋아! 얼마든지 더 해 보자고요! 사실, 저도 그렇고 제 동생인 릭도 그렇고, 이 소설이 꽤나 어렵다고 느낀단 말이죠. 여기에 대해서는 편집장님 생각이 궁금하군요.] [글쎄요. 저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군요. ‘Country of losers’는 분명 진입장벽이 있지만, 그 깊이에 빠져 들고 나면 누구라도 반할 수밖에 없는 소설이라고 말이죠.] [빌의 생각은 어때요?] [맞습니다! 이 소설은 읽었다고 만족하면서 끝이 아니에요! 사실, 그때부터가 시작입니다!] [아까 빌이 말했죠. 생각할 여지가 많은 작품이라고요.] [자, 그럼 저희가 무엇을 중점에 두고 이 작품을 보면 될까요, 편집장님?] [······음.] [잠깐 고민할 시간을 드릴까요.] [아, 아뇨.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을 때, 인간에 대한 믿음을 내려놓으라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현재, ‘다시 잘해 보고자’ 노력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떤 의미에서 그런 말씀을 해 주시는지가 좀 궁금한데요.] [레이건 대통령의 ‘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도 그렇고, 현재 정세로 보면 소련에 고르바초프가 취임하게 되면서······. 아, 이런 말, 해도 되나요? 라디오 방송에서?] [하하하, 이미 늦었으니 계속하시죠.] [음, 그러니까 최근 ‘냉전 무드’가 저물어가고 있는 추세 같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죠. 바야흐로 세계가 다시 평화로워지지 않을까, 온갖 전쟁과 죽음을 이겨온 우리는 평화를 위해 화합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하지만 이 소설을 접하게 되면, 그 생각이 완전히 뒤바뀝니다.]설령, 각 국 사이의 전쟁이 끝이 나더라도.
[인간 간의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굉장해요. 편집장님. 멋진 발언입니다.]진행자의 지시 없이 말을 꺼내는 빌.
누가 말하는지 헷갈릴 수가 있어 라디오 방송에서 자주 금기시되는 행동이었지만, ‘쇼’에서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자연스럽게 즉흥연주가 이루어지는 법이었다.
[맞아요. 빌. 인간은 끝없이 서로를 증오하도록 만들어진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되죠.] [인터넷이라는 만인의 공론장으로 말미암아 서로를 끝없이 비교하도록······.]그렇게 서로 진지한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
“흐음.”
메쉬비어드 알은 오랜만에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평소에 자주 듣던 방송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깡촌의 트레일러하우스 촌에 있는 그의 집은 오롯이 그만이 영위하는 아늑한 공간이었다.
몇 개월 전, 원래의 집과 수입의 상당 부분을 양육비로 보내는 대가로 ‘이혼’이라고 하는 축복을 받게 된 것이었다.
드넓은 미국을 가로질러 트럭 운행을 다녀오고 나서 홀로 휴식을 취할 때면, 그는 낡은 리클라이너에 육중한 몸을 쑤셔 박은 채 맥주를 마시면서 별생각 없이 풋볼 중계를 보거나 라디오 방송을 멍하게 흘려듣고는 했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 달랐다.
서두부터 관심이 갔기에 라디오에 저절로 귀가 기울여졌고, 의식이 거기에 집중됐다.
‘인간에 대한 믿음을 내려놔야 한다고.’
그는 이미 그것을 진즉에 내려놓은 바였다.
트러커로서 거칠게 살다 보면 별의별 인간을 다 만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영원할 줄만 알았던 아내와의 사랑에 종지부를 찍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런 일상 속에서 우연한 계기로 시작된 소설 읽기라는 취미는, 메쉬비어드 알의 삶에 있어 알게 모르게 큰 축을 차지했다.
‘Mother’로 시작해, 그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About T’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줬다고 여기는 ‘신’이라고 하는 작가의 소설에만 국한되었지만 말이다.
알게 모르게 트러커 식당에서 단 음식을 자주 시키기 때문일까. 자신의 성향을 넘어서 틴에이저의 알콩달콩 달달한 로맨스 스토리조차 무척이나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었고, 심지어 얼마 전에는 따로 시간을 내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의 사인회도 다녀왔을 정도였다.
그러나 얼마 전에 새로 발매된 신의 소설은, 금방 손에서 내려놓았다.
‘인터넷이란 게 대체 뭐지?’
설명이 분명 자세히 쓰여 있었지만, 잘 이해가 가지를 않았으니까.
그렇게 잠깐 상념에 빠져 있을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귀에 박혔다.
[그럼 인터넷이란 무엇인지 상상해 보죠. 이렇게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데, 실시간으로 방송을 듣고 있는 청취자들하고 소통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아무나 어떤 글을 쓰기만 해도 전 세계의 사람들이 곧바로 그걸 읽고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가상의 공간이 있으면, 사람들은 과연 뭐라고 이야기할까요?]‘그게, 인터넷인가?’
메쉬비어드 알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그리고 자주 사용되지 않아 본래보다 흐릿해진 상상력으로 생각했다.
만약 자신이 저 라디오 방송에서 마음대로 한마디 할 수 있다면 분명 이렇게 말했겠지.
“섹●.”
왜냐면, 웃기니까.
설령 누군가가 비웃더라도 딱히 개의치 않을 것이다. 자신의 거친 친구들은 하나 같이 배꼽을 붙잡고 웃을 테니까.
‘아, 그래선 안 되겠군.’
그렇게 말해 버리면 그의 집 앞 트레일러하우스에 사는 조그마한 꼬마, 닉이 듣고는 괜한 충격을 받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전 세계의 사람들이 가득한 상황에서, 닉이 자신이 한 말을 들을 수는 있을까?
평소보다 머리를 써서 그런지, 메쉬비어드 알은 머릿속이 무척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긴장을 풀기 위해 고개를 까닥거리며 주변을 슬쩍 돌아보다가, 장식장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 둔 ‘Country of losers’의 표지에 시선이 꽂혔다.
“······.”
그는 지금 다이빙대 앞에 서 있었다.
끝을 모르는 깊이로 인해 언제 다시 나올 수 있을까 걱정이 되어 뛰어들기를 주저했던 신의 소설 앞.
깨끗하게 빛나는 바닷속에서 먼저 헤엄치고 있던 아서와 빌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것과 유사한 환상을 ‘본’ 사람은 메쉬비어드 알뿐만이 아니었다.
“정말 그런 시대가 온다고?”
대표적으로, 캘리포니아의 한 저택에서.
마사 피셔가 침대 옆에 놓아 둔 책을 집어 들자, 그녀의 남편이자 유리 공장을 경영하는 펠릭스 피셔가 혀를 찼다.
“우리 애들 교육이 걱정이로군.”
“그러게요. 온갖 욕은 다 배울 것 같은데.”
“안 되겠군. 대체 어떤 건지 오늘 밤이라도 확인해 봐야겠어.”
그렇게 캘리포니아 주 각지에 흩어진, 이 책을 샀으나 다이빙대 앞에서 주저하고 있던 이들 모두가.
‘호오, 그거 참 흥미로운 이야기인데?’
‘되게 복잡한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읽을 만하겠는걸?’
‘얼마나 재미있게 읽었으면 이렇게 흥분해서 떠들어?’
가게, 사무실, 자동차, 침대, 소파, 욕조 등, 각자의 자리에서 라디오 방송을 듣고 나서 책을 집어 들었다.
풍덩-.
그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문장의 바다 속으로 하나둘씩 몸을 던졌다.
1985년 4월의 어느 날.
지금으로부터 수십 년 후의 미래를 그려내고 거기에 깊은 상상력을 가미한 소설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파고들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
한편, 그 시각.
여전히 이 책을 ‘상품’으로서만 바라보고 있는 이도 존재했다.
자신의 집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며 라디오를 듣고 있던 남자, 레미 마틴이 그러했다.
[아무튼, 진짜 재미있다니까요!] [캘리포니아를 넘어서서 이 미국 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칠 만한 소설 같습니다.]‘그렇단 말이지.’
건즈 앤 소드 매거진의 부사장 아치발트 파이퍼와 마찬가지로, 그는 철저하게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이 소설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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