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8)
18.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군.’
독일 출신의 유리 공장 사장, 펠릭스는 깊은 절망감에 휩싸인 상태였다.
막 ‘Mother’의 25화를 다 읽은 참이었다. 작품의 결말이 주는 진한 탈력과 무력함에 그는 침대 위에 앉은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15화쯤에 진지하게 수지의 행복을 바랐던 기대감은 후반부에 들어서며 절망으로 뒤바뀌었다. 그의 마음은 20화를 넘어 21, 22, 23, 24화 동안 공포의 풍랑에서 계속 요동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5화, ‘Mother’는 상상하던 최악의 결말을 맞이했다.
오히려 수지가 죽는 게 나은 결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되면 차라리 자유로울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수지는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로 변모해버리고 말았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심했다. 적어도 어머니는 그릇된 신앙을 가졌을지언정 환각과 환청 따위는 보고 듣지 않았으니까.
그는 다시 신문을 펼쳐보았다.
Mother 25화, 마지막 부분.
『수지는 어머니의 가슴에 의식용 단검을 찔러 넣었다.
“거허억······!”
폐부에서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어머니는 고통에 젖은 눈동자로 수지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수지는 단검에 더욱 무게를 실었다. 어찌나 큰 고통이었는지 빠득, 하는 소리와 함께 앙다문 어머니의 이가 깨져버리고 말았다.
“괜찮아요. 어머니. 이 고통은 영원하지 않아요. 언젠가 끝나게 될 거예요. 괜찮아요.”
수지는 어머니를 다독였다.
어머니는 이내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수지는 그와 함께 자신의 감정이 완전히 멈추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서서히 몸을 일으켜 세운 그녀는 피투성이가 된 채 단상 아래에 쓰러진 케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걸 보았음에도 아무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
수지는 이제야 모든 걸 깨달았다.
자신은 벗어날 수 없다. 도망쳐봤자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어머니의 피를 손에 묻혔다는 사실도 변함이 없었다. 모든 건 그대로였다. 말인즉슨, 그것들을 대하는 마음을 무너뜨리면 된다는 이야기였다.
수지는 자신의 마음을 죽였고 이내 모든 고통을 받아들였다.
모든 걸 짊어졌고, 계속해서 짊어진 성모와 같이.
그녀는 부서진 성모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성모시여. 당신의 고통이 계속되고 있음을 이해하옵니다. 저 역시 그러나이다.”
부서진 성모상에 얼굴이 떠올랐다.
일그러진 웃음을 띤 성모가 말했다.
“이제 모두 받아들였느냐?”
“네. 저는 제 고통을 온전히 받아들였습니다.”
“수지. 네가 자랑스럽구나.”
자리에서 일어선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어안이 벙벙한 채로 있는 신도들을 바라보던 수지는 처연하게 웃었다.
신도 중 하나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Mother······.”
-FIN』
흐름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머리로 생각했을 때는 이 결말이 맞았다.
수지는 일평생 어머니 밑에서 폭력과 세뇌에 시달려온 소녀였다. 그녀의 마음은 그곳을 벗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내심 자유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작품에 그런 복선을 몇 번이고 언급했다.
펠릭스는 모아둔 신문을 꺼내 Mother의 이전 화를 다시 읽어보았다.
오늘의 위스키는 버팔로 트레이스.
진한 황금빛이 잔 안에서 흔들렸다.
상자 안에서 나온 수지는 어머니의 명령대로 더 이상 학교를 나가지 않고 종교 시설에 들어가 홈스쿨링을 시작한다.
그곳에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들이 가득했다. 이미 종교적 세뇌가 끝난 그들은 어설픈 수지를 비난하며 헐뜯었다. 수지는 상자에서 나온 이후 보기 시작한 성모의 환상과 대화를 나누며 어떻게든 자신을 지키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개중 얼굴 전체의 화상 흉터를 붕대로 가린 남자, 유진이 수지에게 집착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더더욱 악화되기만 할 뿐이었다.
수지의 정신이 한계에 다다를 무렵, 케빈이 종교 시설을 찾아온다.
겉으로는 일반적인 종교 시설을 가장하고 있던 터라, 어머니는 수지에게 학교의 수업 자료를 주기 위해 찾아온 케빈을 쫓아내지 않았다. 케빈은 짧은 만남과 대화를 통해 수지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고, 몰래 연락할 방법을 찾아 그녀와 소통하며 조금씩 종교 시설의 비밀에 접근한다.
그러던 와중 자신에게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수지의 말을 가볍게 넘겼던 케빈은 결국, 마지못해 수지가 보여준 종교 시설의 실체를 알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곳은 끔찍한 아동 학대가 벌어지는 현장이었다.
『무릎을 꿇고 앉은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를 올려야 했다. 자칫 졸거나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면 채찍질을 당했다. 방 안에는 기이한 냄새가 났고 수지는 그것이 ‘Hyang’이라고 설명했다.
케빈은 아이들이 앉은 맞은편에 있는 성모상을 발견했다. 자신이 알아볼 수 없는 검은 글씨가 새겨진 성모상의 얼굴은 방 안 가득한 양초가 움직임에 따라 음영이 다르게 졌는데, 그럴 때마다 웃는 듯 우는 듯 보였다.
“이곳은 미쳤어.”
“이제 알겠니? 어서 이곳에서 나가.”
수지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케빈은 도망쳤다.』
수지는 자신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서러운 눈물을 터뜨렸다. 하루에 한 번씩 이어진 케빈과의 만남은 그녀에게 크나큰 마음의 위안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케빈이 자신에게 더욱 접근해와 상처 입는 게 싫었다. 수지는 그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케빈은 되돌아왔다.
『“방법이 있어.”
“뭐······?”
“경찰에 신고하자. 증거를 모아줘. 그리고 이곳을 탈출하자.”
“네가 이럴 필요는 없어.”
“아예 없지는 않아. 수지.”
케빈은 가죽 재킷을 걷어 자신의 팔뚝을 보여주었다.
멍 자국이 가득한 팔. 누군가에게 맞은 흔적. 거기에서 수지는 모든 걸 알아차렸다.
케빈 역시 자신과 같은 사람이었다.』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정말 좋았단 말이지.’
펠릭스는 씁쓸하게 웃으며 소설을 계속 정독했다.
수지는 어머니가 운영하는 종교 시설을 무너뜨릴 만한 증거를 찾기 시작했다. 밤마다 순찰을 도는 어머니를 피해 아이들은 절대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예배당 안쪽의 ‘Sa-dang’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그 안에서 끔찍한 조형물을 여럿 발견하고는 헛구역질을 해댔다.
그곳에서 어머니는 다른 교인과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수지는 공포를 이겨내지 못하고 몇 번이고 무너질 뻔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를 붙잡아준 것은 바로 마음속의 케빈이었다. 성모를 대신해 어느 순간부터인가 수지의 앞에 나타나기 시작한 케빈. 위기의 순간마다 그가 도움을 주었고 수지는 조금씩 탈출을 준비했다.
하지만 이조차 다시 읽어보니 복선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 그런 결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음을 알리는 복선.
『“수지! 이쪽으로 와!”
“아니야! 이쪽으로 와! 내가 진짜야! 저놈은 가짜고!”
두 명의 케빈이 자신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수지는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수지의 정신은 이미 온전하지 못했다.
수지의 입장에서만 글을 봐서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결국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고 빠져나가고 싶어 했던 종교와 하나가 되었고.
새로운 어머니가 되었다.
‘빌어먹을.’
소설을 다시 읽으며 마음이 좀 진정된 펠릭스는 자신이 정말 좋은 소설을 읽었다고 느꼈다.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동양적인 색채가 가미된 기괴하기 짝이 없는 세계를 엿보게 했고, 그 세계의 주인공인 수지에게 동정심과 함께 몰입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펠릭스 역시 한창 혈기 왕성하던 시절에는 자신에게 주어진 전통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결국, 가장 힘든 순간에는 그곳으로 돌아갔다.
아무리 수지가 발버둥 쳐도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빠져나가지 못했던 것처럼.
‘그래.’
딱 머릿속에 좋은 문장을 떠올린 그는 펜을 들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토런스 뉴 미디어로 또 한 번 감상평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좋든 싫든, 작가에게 닿기를 바라며 보내는 편지였다.
***
17,281통.
그것은 토런스 뉴 미디어와 문화 섹션 연재작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알려주는 지표였다.
사장인 레미 마틴도, 편집장인 휴고 어빙도, 문화 섹션 기자인 사이먼 카버를 비롯해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럴 수밖에. 어느 누가 신문 이벤트에 이 정도로 많은 이가 편지를 보내리라고 예상했겠는가. 그것도 직접 글을 쓰고 편지로 보내야 하는데 말이다.
‘Mother’에 대한 독자들의 감상은 시기별로 제각각 다른 게 특징이었다.
1화부터 14화까지는 수지에 대한 동정심과 어머니에 대한 공포가 주를 이뤘다.
15화부터는 케빈의 존재로 인해 수지의 행복을 바라는 이가 늘어났다.
20화쯤에 이르러서는 다들 불안감을 느끼는 듯했다. 수지는 케빈의 도움으로 탈출을 준비하지만, 오히려 케빈이라는 희망이 생겨났기에 그 뒤로 깔리는 절망이라는 복선은 읽는 이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화에 이르러서는 저주에 가까운 말이 쏟아졌다.
17,281통의 편지 중, 사이먼이 최종적으로 나에게 골라 달라며 보내준 감상평은 총 105통이었다. 하나하나를 읽으며 대충 이 사람이 어디까지 읽고 감상평을 보냈는지를 예상하던 중, 나는 전에 봤던 이름을 하나 발견하고는 저도 모르게 눈썹을 치켜떴다.
펠릭스 피셔.
15화까지 소설을 읽고 케빈과 수지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감상평을 삐뚤빼뚤한 손 글씨로 써서 보낸 그에게서 편지가 한 통 더 왔다.
한 사람이 두 번 감상평을 보낸 건 처음이라, 나는 흥미를 느끼며 곧바로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Mother’는 우리의 이야기다.
기괴하게 비틀린 동양의 공포를 담아내고 있는 이 글은(부디 동양이 이러지 않기를 바란다), 신 작가의 특별한 감성 너머로 예리한 통찰력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우리는 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다. 그리고 그 가정의 문화를 받아들인다. 한창 자랄 때는 어른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걸 거부할 때도 있지만, 가장 힘들 때 결국 다시 찾게 되는 것이 가정이다. ‘Mother’는 그것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수지는 가장 힘들 때 성모를 찾는다. 그녀의 의식은 케빈을 향해 있지만, 무의식은 마더를 향해 있다. 작품 안에서 그것이 꾸준히 언급되고, 작가는 우리에게 내재된 불안을, 거부감을 자극한다. 그리고 마침내 상상은 현실이 되며 수지는 자신의 전통을 택했다.
함부로 평가하는 듯하여 조심스럽지만, 나는 이 작품이 참으로 발칙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일을 비틀어 현실보다 더 끔찍한 현실을 창조해낸 이 소설은, 내가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나의 아내도 나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이번 주말에는 함께 코리아타운에 놀러 가자고 이야기해봐야겠다.』
“10점, 10점이오.”
나는 지금까지 읽은 것 중에서 가장 뛰어난 감상평이라는 생각을 했다.
얼핏 보기에도 글에서 연륜이 느껴졌다. 솜씨가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노회함이 묻어 나오는 문장에서 이 사람이 그동안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살았는지가 느껴졌다.
내가 ‘Mother’를 통해서 표현하고자 했던 바가 그 안에 담겨 있었다.
어찌 보면 차갑기 그지없는 현실이었다. 우리 모두가 겪고 살아가는 현실 말이다.
나의 색과 상상이 더해졌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랬다.
‘소설 쓸 맛 좀 나는군.’
싱긋 웃은 나는 계속해서 감상평을 읽어나갔다.
대부분 이 작품의 결말을 충격적이지만 좋다고 평가해주었다. 또한 여러 감상평을 통해 사람들이 한인 사회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고 보면 요즘 들어 자꾸 외국인 손님이 온다면서 어머니가 울상이었지.
‘아주 좋아.’
원하는 대로 진행되고 있음에 만족감과 기쁨을 느끼면서, 나는 마음 편히 타자기를 돌아보았다.
검은색의 미끈한 섹시 보이.
하드보일드 나인 싸우전드.
그걸로 쓰게 될 첫 작품은 바로 ‘Mother 2’였다.
플롯은 다 작성해두었고, 이제 쓰는 것만 남았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성장한 이후의 나에 대해서 쓸 예정이었다.
Mother에 나오는 어머니는 1세대였다. 영어보다 한국말이 더 익숙하고, 그 문화에 갇힌 채 서로를 보호하며 살아가던 세대.
나는 그러했던 어머니와의 정서적 독립을 통해 스스로가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고, 그걸 Mother에서는 살인이라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공포 소설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해서 성장한 2세대도 1세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독신이었던 나로서는 알지 못하는 영역이지만, 내가 알고 지내던 2세대 한인 부부는 3세대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갈등을 겪었다. 거기에 인종 간 결혼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나는 Mother 2에서 바로 그러한 갈등을 그리며 또 다른 공포를 보여줄 예정이었다.
그 첫 문장은 같은 방식으로 시작되겠지만 말이다.
『나의 어머니를 어떤 분이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수지가 낳은 한국계 미국인 소녀, 앨리.
그녀 역시 수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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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비즈니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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