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82)
182.
‘소설 좀 평가해 줬으면 해.’
레베카 웡의 말을 들고서 나는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도대체 무슨 소설을 어떤 경위로 써 왔기에 나처럼 눈 밑이 거뭇거뭇하게 착색되었을까.
마침 ‘Country of losers : Part 2’도 다 썼겠다, 나는 수업을 마치고 곧장 레베카 웡과 함께 근처 카페테리아로 가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눠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곳에 먼저 도착해 있던 한 인물과 마주했다.
“기다리고 있었어.”
쓰고 있던 안경을 스윽- 밀어 올리는 케이트 무어.
“······기다리긴 뭘 기다려. 내가 언제 여기 올 줄 알고.”
“너는 보통 수업이 끝나면 이 카페테리아를 찾으니까.”
“경찰 선생님, 여기에요.”
“할 말이 있어서 찾아온 거야. 나랑 이야기 좀 해.”
“선약이······.”
나는 슬쩍 옆에 서 있던 레베카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케이트 무어가 순간적으로 눈을 가늘게 뜨더니, 이내 부드럽게 웃었다.
내 앞에서 적당히 각을 틀어, 방금까지 내게 보여 주었던 ‘가면’의 모습이 교묘하게 레베카에게 보이지 않도록 했다.
케이트 무어, 무서운 아이. 더 북의 조언을 듣고 있는 게로구나.
“아, 미안. 내가 방해했나?”
“괜찮아.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지 물어봐도 돼? 함께 이야기해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
“아, 신의 소설 때문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Country of losers’?”
“그래, 그거! 정말 고통스러운 소설이었거든.”
“하하! 마음에 드는 표현이야!”
레베카 웡이 호탕하게 웃더니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 문예창작과 1학년인 레베카 웡이야.”
“사회학과 1학년, 케이트 무어. 만나서 반가워. 레베카.”
“‘그 소설’ 때문에 마침 나도 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거든. 네 감상도 듣고 싶은데, 괜찮다면 합석해서 이야기 나누는 거 같이 들어도 돼?”
“나야 좋지. 커피는 내가 살게.”
저기, 케이트야. 너 평소에 나한테 커피 살 때 그렇게 쿨하게 안 굴었잖아.
레베카도 그래. 왜 이야기의 주체인 나는 가만히 놔두고 너네들 둘이서 협의하니.
“······.”
뭐, 인제 와서 어떠랴.
어쨌든 간에 두 사람 다 내 소설로 인해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생각을 들어 주는 것이 작가로서도, 사회생활을 하는 개인으로서도 유용한 일이 되리라.
나는 두 사람과 함께 카페테리아의 야외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정말로 케이트가 커피를 샀고, 나는 그 행동에 경의(?)를 표하며 물었다.
“얼마나 기다렸어?”
“3일 정도?”
······조만간 내가 납치되면 케이트 무어를 의심해 주세요.
“‘Country of losers’ 때문에?”
“그래, 그거. 읽고 나서 굉장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거든.”
“무슨 생각?”
“나는 불행해지고 싶어.”
“······캘리포니아 나가면, 참치잡이 배에서 선원 구할걸?”
“농담하지 말고.”
눈을 가늘게 뜨는 케이트.
이제는 이런 부분도 서로 아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편하게 웃으며 사과했다.
“미안, 미안. 제아무리 그래도 케이트 ‘더 가면’ 무어 님이 솔직하게 칭찬하는 걸 듣는 것이 처음이라 좀 놀랐단 말이지. 그래서, 왜 불행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행복만을 추구하는 건 아무 의미도 없으니까.”
“내 생각도 그래.”
레베카 웡이 눈을 반짝였다.
“행복만을 추구하는 건 무의미해. 우리는 불행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맞아. 불행은 행복에 이르는 과정이 아니야.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어! 나 자신이 이건 좀 아닌데, 불행한데, 라고 느꼈던 내 삶의 모든 모습이 바로 그것만으로도 소중한 거야!”
“······.”
왠지 모르게 자존감 수업이 된 것 같군.
하지만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소설에서 더 북은 인간의 절대적인 행복을 추구하고자 일부러 불행을 가져온다.
그것을 소설 ‘밖’에서 읽는 독자는, 이게 마치 성서에서 말하듯이 ‘신은 너를 사랑하고 그렇기에 고난을 내리신다.’라는 사실에 대한 은유로 받아들이겠지.
그리고 거기에서 더 나아간 해석을 하는 이런 친구들은 보통 ‘인간의 불행이란 행복을 바라기 위한 과정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나는 그걸 그만두겠다! 신! 나는 불행한 내 삶이 그것 하나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나는 어느새 나온 커피를 휘저으며 생각했다.
‘재미있네.’
‘Country of losers’를 읽은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무언가 삶의 해답을 얻었다는 듯이 기뻐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문학이나 예술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는 인간의 버릇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2부에서는 그걸 모조리 아무 의미도 없이 부술 예정이었다.
인간의 삶도, 행복도, 불행도, 그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다.
그저 ‘존재’할 뿐이다.
많은 이들이 충격에 빠지리라고 예상하는 전개를 내가 떠올리게 된 계기는 두 개.
하나는, 한 번의 삶을 되돌아와 다시 내 삶을 써나가는 나 자신에 대한 허무.
다른 하나는, 그걸 깨닫게 해준 한 사랑스러운 여성의 말이었다.
‘옛날이 좋았던 것 같아.’
한창 1980년대를 살아가던 소녀도.
그리고 그보다 수십 년 후의 먼 미래에까지 살았던 늙은 남자도.
똑같이 그렇게 말했다.
옛날이 좋았다고.
‘그건 대체 어째서지?’
그런 발상에서부터 출발한 ‘Country of losers’의 2부.
슬슬 사이먼 카버가 읽기 시작했을 때였다.
***
『잘 부탁합니다.
Country of losers : Part 2 (가제) 초고.』
사무실에 전송된 팩스의 가장 첫 번째 페이지에 적힌 수기를 확인하자마자, 사이먼은 저도 모르게 풀어진 미소를 짓고 말았다.
건너편의 간이 책상 앞에 앉아서 그 옆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미스 브라운이 입을 열었다.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있어요?”
“신 작가님이 ‘Country of losers’의 2부를 보내 주셨습니다.”
“2부? 1부만 해도 충분히 멋진 소설이라고 생각했는데.”
“일반적인 SF상 장편 부분 수상 요건이 4만 단어 이상이거든요. 거기에 작가님이 1부에서 벌인 충격을 ‘정리하는’ 형태의 이야기라고 해서 더 기대하고 있죠. 흐흐흐······.”
“정말 기분 나쁜 웃음이군요.”
“흐흐흐.”
“우와.”
담배를 입에 문 채 사이먼을 약간 질린 표정으로 바라보는 미스 브라운.
그녀의 호감도가 5 정도 하락했다는 사실은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채, 사이먼은 신이 보낸 원고를 들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따사로운 햇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소설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되었다.
『문자 그대로, 신(神)은 죽었다.
그리고 인간의 손에 의해 ‘더 북’이 만들어졌다.
1964년, 소련의 천문학자인 니콜라이 카르다쇼프가 만든 카르다쇼프 척도를 바탕으로 천문학자이자 작가인 칼 세이건이 제안한 이론에 따르면, 인류는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지만 아직 행성급으로 에너지를 사용하는 아주 미약한 생명체에 불과했다.
인류는 더 나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계속해서 문명과 지식, 기술을 쌓아 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진출했다. 화성을 테라포밍한 뒤 천체를 떠도는 별을 부수고, 그 조각을 이용해 스페이스 콜로니를 건설했다.
그렇게 인간은 미지의 영역이라 불리던 우주와 ‘조우’하면서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
하지만 꽤나 기나긴 시간이 흐른 끝에, 한계가 찾아왔다.
신이 죽은 세계에서, 제아무리 ‘더 북’이라고 해도 무한하지는 않았다.
그 존재는 끊임없이 자체 진화하며 아득한 과거에 받은 자신의 사명을 이어 나가고자 했지만, 인류가 20조 명을 돌파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빈틈없던 둑에 서서히 습기가 맺혔다.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 계산해도, 20조가 넘는 모든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 불가능해지기 시작했다. 그로써 몇몇 사람들이 점점 더 북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기에 이르렀다.
화성에서 태어난 천체 물리학자, ‘루시’가 바로 그중 하나였다.
어느 날, 그녀는 신(神)의 계시라도 받은 모세와 같이 단숨에 알아차렸다.
‘이 모든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그녀는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생각했다.
눈앞에는 온갖 자료가 떠오른 채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뇌에 흐르는 전기 신호가 망막에 상을 새기는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더 북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의식과 인지를 한없이 높은 영역까지 끌어올린 그녀는 아인슈타인에 비견될 정도의 천재였다.
아니, 그녀는 그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훨씬 더 ‘진화한’ 인류 중에서도
그것은 더 북이 지금과 같은 사태에 이르기 전에 시도한 일로 말미암은 결과였다.
더 북은 인간의 뇌에 직접 개입해 인간이 느끼는 행복의 범위를 늘리고자 했다. 한정된 자원 안에서 모든 인간이 전부 누리면서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 존재는 인류를 진화시켰다.
모든 인류가 더 북의 진화를 똑같이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제각각 가진 유전자적인 한계와 차이에 따라 진화를 다르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가 진화를 했다는 사실은 동일했다.
그로 인해 인류가 느끼는 행복의 범위는 더더욱 확장되었다.
사실, 이전까지 더 북은 주로 일차적인 행위를 통해 인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기존에 인간이 느끼던 행복에 집중하게 하는 것이었다.
어떤 이들은 고된 노동을 통한 엔돌핀 상승과 정크 푸드를 섭취하는 행위만으로도 엄청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으로 부족하다면 번식한다는 ‘인간의 삶’이 제공되었다. 그들은 때때로 불행을 느끼기도 했으나, 종국에는 사회적 규격에 맞춘 만족으로 행복을 찾아냈다. 그 역시 제각각의 인류가 더 북의 권유에 따라 스스로 선택한 결과였다.
거기에 ‘진화’라는 수단이 포함되면서 더 북은 일견 모든 문제를 해결한 듯했다.
루시는 개중에서도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인간이었다.
선천적으로 지극히 높은 지능을 가지고 태어났기에, 다른 이들과 달리 더 북의 설계에 따라 주입된 뇌세포의 진화를 거의 한계까지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로써 인간의 뇌가 버틸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거의 최대치까지 진화한 그녀는, 평범한 이와 달리 성관계 같은 일차원적 행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존재가 되었다.
운동하거나 먹는 일도 딱히 좋아하지 않아 제약 회사인 달릭 코퍼레이션에서 제공되는 체중 관리 알약과 대체 식품을 먹었고, 평소에는 더 북이 제공하는 정보를 받아들이면서 살았다. 이미 난자도 따로 냉동해 두었고, 성행위가 없이도 적합한 관리에 따라 태어난 아이는 그 위대한 지능을 이어받아 더 똑똑해질 터였다.
앉은 자리에서 천체의 움직임을 모조리 계산해낼 정도로 진화된 지능을 가진 그녀가 각성하게 된 것은, 단지 카페인 섭취를 위해 알약을 하나 먹으면서부터였다.
갑자기 더 북에 의한 이 세계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녀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몇 개의 시대가 넘어간 거지?’
소설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자연스레 떠오르는 의문이었다.
더 북이 인류를 무의식적인 권유로서 조종하던 과거를 지나, 그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고자 완전하게 장악한 미래의 시대.
그러한 세계를 상상하자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고, 사이먼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나.’
이전의 1부에서 신은 인류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며 ‘반드시’ 행복을 얻게 되는 세계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그런 미래가 영원히 유지될 수는 없었다.
작중의 묘사에서 일컬었듯이, 더 북은 신(神)이 아니었으니까.
‘20조나 되는 인간의 모든 행복을 이루어 줄 수는 없었겠지.’
그것을 해결하고자 더 북은 인간을 ‘진화’시켰다.
스스로는 모르는 통제를 통해 인류를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얼핏 몇몇 디스토피아 SF 소설이 떠올랐다.
앞선 작품과는 상당히 다른 색채를 띤 채 이어지는 이야기에 사이먼은 복잡한 기분을 느꼈다.
이후의 이야기도 그랬다.
『“루시. 천체물리학자였어요.”
“‘였다’라. 지금은 아닌가?”
“지금은 그저 그런 떠돌이에 불과하죠.”
“그들이 자네를 추적할 텐데.”
“하라죠. 차라리 죽더라도 그때로 돌아가지는 않겠어요.”
“왜?”
“나는 이런 구질구질한 시궁창에서 지내고 싶어졌거든요.”』
루시는 스스로 불행에 뛰어들었다.
마치 사이먼이 회사를 뛰쳐나오고 모험을 선택했듯이, 뇌에 장착된 더 북을 스스로 제거하고 저항 세력으로 들어가는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녀가 들어간 저항 세력에게는 더 북의 개입 없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에 제한 없이 접속할 수 있는 기기가 존재했다.
그것은 과거부터 이어진 이름대로 단지 ‘퍼스널 컴퓨터’라고 불렸다.
루시는 그 기기를 통해 자신이 지금껏 접해온 정보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알게 되었다.
만들어진 행복 아래 파묻힌 만들어진 불행의 진상.
정신을 차리고 보니 화장실에서 헛구역질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고 있는 자신을 비웃는 다른 놈들의 모습을 보면서 오기를 느꼈다. 제아무리 더러운 ‘정보’라고 해도 버티고 버텨 이 세계의 실체를 제대로 알고 싶어졌다.
그녀는 덤벼들었고.
기계와의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흐음.’
루시와 저항 세력은, 1984년에 개봉된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나오는 미래의 인류 같았다.
구축된 시스템 부정하며 인류의 행복을 저해하는 세력을 상대하기 위해 더 북이 만들어 낸 안드로이드 세력에 맞서,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의지를 품고 고군분투하는 루시.
하지만 그러한 가운데에서, 그녀는 조금씩 깨달음을 얻기 시작했다.
더 북은 오직 인류의 행복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인류는 스스로 행복해질 능력이 없다.
인류에게는 그들의 죄를 짊어지고 용서하며, 불투명한 미래가 찬란하리라는 것을 보장할 이가 필요했다.
과거에는 그것이 성서 속의 신이었다면, 지금은 더 북일 뿐이었다.
만약 그 존재가 없었다면 인간의 문명은 지금처럼 발전된 시대를 이룩한 것이 아니라, 분열된 채 뒤죽박죽 뒤엉키다가 바벨탑을 짓던 시절로 돌아가 버렸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루시가 그 사실을 깨달은 시점이 너무 늦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직 멸망으로 치닫는 길이라고 하더라도, 인류는 해방되어야 했다.
자신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스스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저항 세력은 ‘화성’을 더 북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했다.
지구는 물론이고, 곳곳의 콜로니에서 암약하고 있는 저항 세력과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은 그들은 화성의 중심부에 있는 마르스 시티에 위치한 더 북의 코어 시스템을 부수기 위한 시도를 이어갔다.
안드로이드 세력과의 격렬한 전투 끝에 많은 동료를 잃었으나, 루시가 세운 작전은 사실상 성공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장면까지 소설을 읽은 후, 사이먼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뭔가 이상한데.’
소설 자체의 퀄리티나 구성은 흠잡을 곳이 없었다.
더 북은 저항 세력이 대두되면서 조금씩 인류에 대한 통제를 잃어갔다. 각지에서 들고 일어난 저항 세력은 많은 희생을 감내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싸웠고, 그 끝에 더 이상 예전 같은 완벽함을 보이지 못했으며, 저항 세력은 더 북의 아성을 일부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흥미진진했고, 거침없는 전개에 쾌감마저 느껴졌다.
‘영화화를 노리고 계신 건가?’
사이먼으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근래에 범람하고 있는 수많은 SF 영화들은 대부분 액션을 강조하며 환상적인 세계를 그려냈다. 하지만 1부는 그러한 트렌드를 따르기보다는 전반적으로 정적이고 산문성이 짙었다. 영화화를 노리고 일부러 시류에 맞게 2부를 보다 사건 위주로 구성한 것일까 싶었다.
하지만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또 다른 한 가지 가능성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설마.’
사이먼은 식은땀을 흘리며, 다시 문자의 호수에 빠져 들었다.
『“우리가 해냈어!”
“그래! 루시! 해냈어!! 우리가 드디어 더 북을 무너뜨렸다고!”
“······아직 끝나지 않았어. 포트, 몰릭.”
루시는 전투용으로 개조된 비행기에서 내렸다. 격렬한 싸움이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것은 여기저기 그을렸고 날개는 반파되었다. 하지만 끝내 이곳에 이르렀다.
마르스 시티의 중심부에서도 더욱이 안쪽. 인간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더 북이 있는 공간.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간 일행은 드디어 더 북과 대면했다.
그 존재는 홀로그램을 통해 빛이 나는 인간과 같은 형태로 나타나 물었다.
[왜 모든 것을 부수려는 것입니까?]』그것은 마치 신(神)과의 대담 같았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 불행을 내리는 신과 가장 뛰어난 지성을 가진 인간의 대화.
우리는 불행하더라도 인간으로서 살겠다.
그런 인간 찬가적인 외침을 부르짖는 일행 앞에서 더 북은 최후의 저항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미 그 존재는 서서히 지워지고 있었다. 루시가 만들고 투입시킨 프로그램 덕이었다. 더 북의 압제에서 벗어난 덕에 그녀의 비상한 머리는 이런 일도 할 줄 알게 된 것이었다.
고통에 겨워 몸부림치며 죽기 싫다고 외치는 더 북.
인류는 그렇게 승리했다.
오오, 위대한 승리였다.
······사이먼에게는 작중의 묘사가 마치 선전용 도서에 나오는 어색한 문장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아직 손 안에 한참 남아 있는 이야기를 끝까지 읽기 위해 페이지를 넘겼다.
사이먼의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Mission complete.』
텅 빈 종이 위에 적힌 단 한 줄의 글.
다시금 한 페이지가 넘어갔다.
『전 인류의 절대적인 행복을 위한 고난, 완료.
‘순교자’의 수. 31,350,671,991.
자문, ‘그들은 행복하였는가?’
자답, ‘관찰 결과, 그러하다.’』
이조차 더 북의 손바닥 위였다.
루시가 신의 계시를 받은 듯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묘사부터가 복선인 것이었다.
더 북에게 대항하면서.
더 북에 의해 죽으면서.
더 북을 쓰러뜨리면서.
인간들은 더욱 행복해졌다.
모두 더 북이 의도한 대로였다.
더 북은 ‘20조’라는 한계를 넘어 앞으로도 인류를 행복하게 만들고자 이런저런 시험을 거듭하고 있었을 뿐, 절대로 약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인류의 행복이라는 규칙에 위배되지 않는 다양한 ‘실험 데이터’를 통해 계속해서 발전을 꾀하고 있었다.
인류는 여전히 행복했다.
“하, 하······.”
어이가 없어 허탈하게 웃고 마는 사이먼 카버.
그는 남아 있는 원고가 얼마나 되는지 손으로 움켜보았다.
아직도 절반 정도의 분량이 남았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밝혀진 반전은 1부와 유사했지만, 충분히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러한 사실이 밝혀진다면, 이 이후의 전개는 과연 어떻게 되는 걸까.
신 작가는 도대체 얼마나 더한 충격을 독자에게 선사해 주려고 하는 걸까.
기대가 되면서도 동시에 두려웠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