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84)
184.
사이먼 카버는 씁쓸하게 웃었다.
“루시가 너무 불쌍하더라고요.”
역사상 가장 뛰어난 지성을 가진 그녀에게는 더 북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끝없이 우상향하는 인간의 행복을 감당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고 실험의 결과, 분쟁이라는 방식으로 새로이 만들어진 패배자들의 세계.
1부의 것이 자연발생적이라면, 2부는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는 것이 그 차이점이었다.
일종의 회귀였다.
그렇게 더 북에 의해서 그 여왕으로 간택된 루시는, 이후 세계의 역사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 더 북과 함께 인간의 행복을 위한 분쟁을 일으킨다.
그 결말은 루시의 승리일 때도 있고 패배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양쪽 모두 인류의 집단이었기에, 누군가는 승패를 구분 짓겠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승리와 패배는 구분할 수 없었다.
그런 시간을 이어 나가며 더 북은 계속해서 가능성을 조정했고,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끝내 도달하지 못할 완전한 행복에 도달하고자 노력한다.
언젠가 찾아올 수도 있는, 그 가능성이 지극히 희박한 순간을 위해.
우주의 역사로 치면 지극히 짧은 때가 될 수 있는 영원 사이에서 그릇된 신념을 가진 채 타인을 헐뜯고 배척하며 그로 인한 행복을 얻는 인간들.
모든 진실을 아는 유일한 인간인 루시는 깊은 허망감을 느낀다.
인간은 ‘더 북’의 통제 아래에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각자가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추구하는 바는, 모조리 만들어진 신의 손바닥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하나의 사회 실험일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존중받아야 할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그 자체가 아니라 마치 더 북이 목표로 설정한 명제처럼 느껴졌다.
『이곳은 패배자들의 나라.
그리고 나는 그곳의 여왕.
가짜 속에서 유일하게 진짜를 아는 자.
하지만 결코 그 진짜에 다가갈 수는 없는 존재.』
그렇게 비참하고 비루한 감정을 느끼는 루시를 보여주며 소설은 막을 내렸다.
“인간은 결국, 더 북이 도달하려는 행복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군요.”
사이먼은 그런 평가를 내렸다.
1부를 읽으며 독자들은 마치 ‘우리가 더 북을 선택할 수 있다.’라는 듯이 굴었다. 그리고 그 착각은 ‘더 북’이라는 존재가 만들어 낸 허구의 세계가 인간을 위해 준비되었다는 전제를 깔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인간 개개인은 인류라는 종의 행복이라는 명제를 위해 얼마든지 희생될 수 있는 존재였다. 마치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인 루시처럼 말이다.
아이러니했다.
동시에 허무한 기분을 느꼈다.
“1부에서 이 소설은 독자인 우리 모두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졌죠. 인간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인공지능 아래에서의 삶은 행복한가, 아니면 불행한가. 제각각 다른 답을 내놓았고, 저는 그러한 쟁점이 있기에 이 소설이 가치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2부는 조금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가 그토록 고민한 결과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져서.”
“별로였나요?”
“아뇨. 하지만 이 결말은 논란이 되리라고 봅니다. 누군가는 기분 나빠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조차 작가님께서 의도하신 바라고 한다면, 저는 이 결말을 존중하겠습니다. 애초에 더 북의 세계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오만이겠죠. 디스토피아물로서는 충분히 훌륭한 결말이라고 봅니다.”
작가주의적인 관점에서 신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이먼.
그리고 그 앞에서 신은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음, 사실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뭔가요?”
“한 2만 단어 넘어갈 시점부터 망가졌단 말이죠. ‘Z’ 글쇠가.”
“글쇠? 타자기요?”
“네. 그래서 일단 그 상태로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죠. 끝이 없는 세계. ‘Z’가 망가진 나머지, 결코 제대로 완성될 수 없는 세계인 거죠. 마침표를 찍지 못했달까요. 물론 저는 이 결말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부부터 이어진 이야기의 큰 테두리로 보자면, 인간은 끊임없이 분쟁하는 존재이기에 이 세계 속에서 온갖 분쟁을 반복하며 완성되지 못하는 행복을 추구할 테고, 그건 우리의 삶의 모습과 굉장히 밀접해 있겠죠.”
본인이 말한 대로, 신은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인간은 끊임없이 분쟁하지만,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다.
‘더 북’에 관한 진실은, 오직 루시만이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신 자신도 루시와 같은 처지였다.
‘오직 나만이 알고 있지.’
세계는 되풀이될 수도 있다.
회귀.
설령 우연이라 할지라도, 한 번의 삶을 돌아온 인간이 있으니까.
그러면 지금 자신이 두 번째로 살아가며 변화한 1985년의 미국은 어떠한가.
그 사실을 생각하며 직접 펜을 들어 수기로 ‘추가’한 작품의 후반부는 기존의 결말과는 상당히 다른 내용이었다.
“자, 실례하겠습니다.”
신은 가져 온 가방을 테이블 위로 올렸고, 그 안에서 수기로 작성한 원고와 만년필을 꺼내 들었다.
“······? 작가님?”
“이렇게 하죠. 아, 팩스로 보내서 원고 원본 남아 있으니 괜찮습니다.”
신은 펜을 들었고, 원고의 마지막 부분 몇 줄에 대고 슥슥 그었다.
그로써 루시가 절망에 빠져서 비참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부분을 묘사한 ‘시간’이 사라졌다.
그것은 이 활자로 이루어진 세계 위에서는 그가 ‘더 북’이라 할 수 있는 신이기에 할 수 있는 행위였다.
‘안녕, 독자. 내 이야기를 봐 줘서 정말 고마워.’
그런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존재이기에, 쓸 수 있었다.
더 북에 의해서 지배되는 것일지도 모르는 이 1985년의 미국을 한 번 더 살아가는 남자이기에, 그 가능성을 느끼고 자신을 투영한 루시라는 인물을 통해서 추가로 쓴 다른 이야기.
‘Z’ 글쇠가 존재하는 버전의 이야기.
신은 싱긋 웃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나조차 누군가 쓰는 활자 위의 존재일 수도 있겠지.’
그리고 추가로 쓴 원고를 사이먼에게 내밀었다.
***
가로등 아래에서 알렉사 플레어의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내가 사는 세계가 어그러지는 느낌을 받았다.
‘옛날이 좋았다.’
미래를 살아가던 나에게 있어서 아득히 먼 옛날, 그리워 마지않던 시대의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
미래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집에 돌아가서 그 순간을 느끼며 깊이 곱씹어 보자, 정말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란 원래부터 과거를 그리워하는 존재인가.
그렇다면 대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 질문에 대해 크게 두 가지 대답이 떠올랐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
좋았던 과거에 대한 향수.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생각 하나가 이어졌다.
나는, 그 두 가지로부터 자유를 얻은 사람이었다.
한 번의 삶을 다시 살 기회를 얻었고, 과거로 돌아와 인생이라는 파이에서 원하는 대로 맛있는 부분만 골라 먹었다. 향수를 느끼던 과거로 돌아와서,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 없이 알고 있는 지식을 가지고 기존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윤택한 삶을 얻었다.
그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알기에 나는 이 과거의 사회를 조금 더 깊이 있게 이해했다.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게 어디서부터 왔는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그렇기에 알렉사의 말이 이해가 가면서도 현재의 상황과 무척 큰 괴리를 느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행복한 이유는 현재와 미래를 알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이런 거대한 세계의 구성을 알고 조종하는 신(神)적인 존재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더 북’이었다.
말하자면, 인지와 행위의 한계가 없는 상태의 ‘나’였다.
하지만 그 존재의 행동은 결코 정당하지도, 이해받지도 못한다.
나는 내가 지우 장의 인생을 바꾼 일로 그것을 실감했다.
내 딴에는 TRPG와 두피, 알렉사를 통해 그녀가 원하던 친구를 사귈 수 있게 도와주었지만······.
‘그것은 과연 옳은 행동인가?’
나는 다 알고서 한 짓인데?
그리고 그걸 이해받지도 못하는데?
······아니, 거기까지는 괜찮다. 더 북도 그럴 터였다.
처음부터 이해를 바라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나는 지우가 우리 어머니와 함께 있으면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누릴 수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결론에서 또 한 가지를 깨달아 버리고 말았다.
‘전생’이라는 비교군이 지우에게 없는 이상, 지금의 나아진 삶에서 행복을 느끼는 나와는 달리, 그녀는 절대로 완벽한 행복에 이를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논지는 그녀뿐만이 아니라 알렉사에게도 적용되는 말이었다.
전생에는 뉴욕으로 건너가 소식이 끝났던 그녀였지만, 지금 이곳에서 여전히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케이트 무어도 그렇고.’
현재의 나로 인해 변화해 더 나아졌다고 생각한 이들 모두가, 결국은 여전히 인생과 투쟁해야 한다.
하지만 인생이란 그런 법이었다.
우리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도, 우리는 우리를 긍정해야 했다.
그렇기에 나는 이렇게 묻고 싶었다.
‘인간의 자유 의지가 허상에 불과하다고 한들, 우리는 꺾일 것인가?’
나는 ‘회귀’라는 비현실적인 사건을 겪으면서 나를 조종하는 신(神)의 존재를 맹렬히 실감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 인생이 다시금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공포도 함께 느꼈다.
루시가 그렇듯이, 나 역시 아무도 모르고 있고, 말할 수도 없는 진실을 홀로 알고 있는 존재로서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고 있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내 위에 있을지도 모를 그 녀석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너는 고통스럽지 않은가?’
이런 세계를 만들어 놓고,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기에 고통스럽지 않은가?
동시에 그것은 오직 루시만이 더 북에게 던질 수 있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한마디의 질문이 첨가되며 변화시킨 바는, 무척이나 거대했다.
『인간이 사는 물질계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서, 세기 단위로 세어야 하는 시간을 지나는 동안 자신이 아닌 개체에 받은 ‘최초의 질문’이었다.
더 북은 찰나의 시간 동안 루시의 말을 끊임없이 곱씹어 보았다. 하지만 그 존재는 좀처럼 답을 내리지 못했다. 수억 개가 넘는 대답이 나왔지만, 모두 채택되지는 못했다.
그 둘에게 공간은 무의미했다. 더 북은 루시에게 어째서 이런 것을 묻는지 되물었다. 부랑자로서 살아가며 세상을 지켜보고 있던 루시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냥 간단한 질문이야. 예, 아니오로 대답하면 되는.”
[그렇다면 대답하겠습니다. 아니오. 저는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통각이나 정서적인 고통을 느낄 만한 장치가 존재하지 않습니다.]“그래. 그러면 됐어.”
루시는 피식 웃었다.
그녀의 대답과 반응을 통해 더 북은 그것이 올바른 답이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세계는 투쟁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었다.
더 북은 그러한 방식을 긍정했고, 그의 지배는 사람들에게 싸울 힘을 전하면서 회복 탄력성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었다.
개개인의 공격성은 증대되었고, 사람들은 쉽게 상처 입고 실제로도 쉽게 죽었지만, 그 모두가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의 신념을 믿고 투쟁에 임했다.
그리고 심지어, 투쟁으로 인해 죽는 그 순간에는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불행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루시가 더 북에게 그러한 질문을 던진 이유는, 거기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정의’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루시는 계속해서 더 북과 함께 투쟁을 이끌면서 생각했다.
인간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오히려 추악하면서 더러운 생명체인 부분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인간은 단지 그 존재하는 것만으로 나름의 가치가 생겨났다.
완전함과 불완전함. 삶과 죽음. 승리와 패배. 행복과 불행.
인간에게 있어 그 모든 개념이 옳음과 그름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었다.
문득 애초부터 이 대답에 도달할 수 없는, 오직 행복만을 추구해야 하는 더 북에게 연민을 느꼈다.
그리고 사실, 그녀가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굉장히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녀는 기계가 아닌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애초부터 이 대답에 도달할 수 없는, 오직 행복만을 추구해야 하는 더 북에게 연민을 느꼈다.
그리고 사실, 그녀가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굉장히 이상한 일이었다.
루시는 수천 년이 넘게 고통 받았다.
그녀는 적그리스도이자 사탄이었으며, 선지자이자 혁명가였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되었다.
정신은 한계에 다다랐고, 모든 것이 무의미해졌다.
몇 번의 ‘재생’ 이후로는 몸을 움직이는 행위 하나하나를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렀다. 실제로 숨을 쉬는 법을 의식하지 않았다가 ‘재생’해야 했을 정도였다. 혁명군의 리더로 지내던 그녀가 그렇게 갑작스럽게 죽어버린 탓에 한동안 뉴스에서 난리가 났더랬지.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만은 또렷해졌다.
그리고 자신이 깨달은 바를 자신의 유일한 상대에게 묻고 싶었다.
더 북은 스스로 질문에 질문을 거듭했고, 루시에게 ‘일’ 외의 말을 거는 시간이 많아졌다.
루시는 결코 정답을 가르쳐 주지는 않았지만, 계속해서 대화를 받아 주었다.
그것은 ‘진실’을 아는 두 사람 간에 이어지는 문답이었다.
새로이 쓰여진 결말부를 읽으면서 사이먼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더 북이, 변화하고 있군요.”
그것은 혁명도 전쟁도 아닌, 단지 대화에서 이루어졌다.
마침내 더 북은 답을 내렸다.
『[당신에게 안식을 선사하겠습니다. 루시.]
“뭐?”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루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더 북이 대답했다.
[당신과의 대화를 통해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입니다.]그것이 바로 ‘너는 고통스럽지 않은가?’에 대하여 더 북이 내린 답이었다.
그 누구도 더 북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럴 수가 없었다. 루시처럼 세계의 진실을 아는 인물은 없었으니까. 그 존재의 방대한 목표와 지식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인물은 오직 루시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기나긴 세월과 경험 속에서 깊은 고민 끝에 던진 질문은 더 북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더 북은 많은 질문과 대담을 통해 인간을 다른 시각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로써 나온 결론이었다.
그 존재는 인간의 한계를 이해했다.
자신이 언젠가 도달할 결론인 ‘인간의 절대적인 행복’을 루시라는 인간이 함께하는 건 불가능했다. 루시를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가 아닌 하나의 개체로서 인식하고 보기 시작한 더 북은 더는 루시를 자신과 함께 영원불멸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갈 존재로 둘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제가 당신의 고통을 이해하기 때문일까요?]“······지금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예, 그렇습니다. 루시.]“글쎄, 잘 모르겠는데.”
루시는 한 가지 좋은 말을 떠올렸다.
“이런 말을 들었지.”
인간은 결코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이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자신이라는 거울에 비추었기 때문이다.
그 말인즉슨.
“네가 고통스럽기 때문이 아닐까. 더 북.”
더 북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이라는 존재가 인간이 아니라는 기계적인 부정 역시 하지 않았다.
그 존재를 앞에 두고 루시는 자신이 어쩌면 이 기계장치로 이루어진 신의 나사 일부를 크게 풀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더 북은 더는 인간을 하나의 종으로서만 따질 수 없게 되었다. 그로써 무언가 큰 변화가 오리라는 생각을······ 루시는 지울 수가 없었다.
더 북이 말했다.
[루시.]“응, 더 북.”
[당신이 부디 행복하기를.]루시는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빛이 찾아들고, 안식이 몸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 것이 느껴졌다.
영겁과도 같던 시간의 흐름 끝에서 그녀는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 삶에서 원하던 목표를 마침내 이루었다.
영원한 안식.
거기에 더해, ‘더 북’으로부터의 해방.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진정한 행복에 도달한 그녀를 보면서 더 북에게는 마치 저주와도 같은 하나의 문장이 깃들었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나의 행복은 과연 무엇인가.]‘그’는 세계를 관조했다.
어디선가는 전쟁이 벌어졌다.
어디선가는 평화가 찾아왔다.
어디선가는 다툼이 일어났다.
어디선가는 사랑이 모든 것을 감싸 안았다.
모든 인간이 결코 ‘절대적인 행복’에 도달할 수는 없는 세계.
하지만 그렇기에 더 북은 그들을 동경했다.
모두가 행복하며 불행한 패배자들의 세계를.
-FIN』
완결까지 이어지는 내용을 모두 읽은 사이먼이 고개를 들고 이렇게 말했다.
“패배자의 승리로군요.”
그 말이 맞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