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85)
185.
어린 시절에 겪은 ‘마미 이슈’가 트라우마로 변해 미국의 대표적인 마초로 성장한 사나이,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자신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이런 명언을 남겼다.
[“그래도 사람은 패배하기 위해 창조된 게 아니다.” 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나는 그것이 아무리 괴롭고 어려운 일을 겪어도 끝끝내 일어서는 인간의 모습을 사랑한 헤밍웨이의 작품관을 상징하는 대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이런 말을 통해 독자 저마다 생각이 다를 이 ‘Country of losers’에 나름대로의 방점을 찍고자 했다.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십자가를 짊어진다.’
2부의 첫 번째 결말까지 이 소설은, 불행 속에서 행복을 얻고자 발버둥 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이후로는 루시와 더 북을 통해 끝없이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자문했다. 마치 1부를 본 독자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내가 펜으로 직접 써서 바뀐 결말은, 그와는 정반대에 가까웠다.
행복도 불행도, 모두 더 북에게는 주어지지 못한 권리.
그것을 알아차린 루시가 그에게 물었다. 힘들고 고통스럽지 않느냐고.
그로써 불행과 행복을 조장하던 더 북 안에 ‘고통’이 태어났다.
그러므로 나는 사이먼의 말이 참 매력적이면서도 동시에 씁쓸하다고 생각했다.
패배자들의 승리.
“저는 왠지 ‘더 북’이 불쌍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작가님이라면 그러실 수도 있죠. 하지만 독자인 저는······ 특히나 불행을 감내하기로 각오했던 저는, 더 북에게 동정심을 느끼기보다는 마지막까지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더 북을 용서한 루시에게 더 마음이 가네요. 그리고 그녀의 용서로 또 다른 지경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로써 더 북 역시 나름대로 답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그 말도 옳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요.”
문득 미스 브라운이 피우는 연초의 향이 코끝을 맴돌았다. 이 냄새는 말보로 레드로군. 나름대로 진지한 ‘어른의 대화’를 나누는 중이라서 그런지 그 냄새가 참 구수하게 느껴졌다.
‘이때는 실내 흡연이 당연하다는 듯이 용인되는 시대였지.’
어쨌든, 원고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작가님.”
사이먼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네?”
“이 소설, 너무 어렵습니다.”
“······네?”
“저도 작가님의 브리핑을 듣고 그 의도를 겨우 파악한 거 같습니다. 평소 작가님과 대화를 자주 나누며 작가님의 세계를 이해하고 있는 저조차 그런데, 독자들은 오죽할까요. 결말을 바꾸면서 문제작이라기보다는 진한 여운을 남길 작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만.”
어라, 왜지.
어째서 사이먼이 어디에도 없는 안경을 스윽- 밀어 올리는 것 같지.
“이 글, 수정이 필요해 보입니다.”
“어, 어떻게요?”
“전체적으로 문장을 다듬으면서 설명을 추가해야 할 것 같은데요. 너무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 여럿 나오는 것 같아서. 예를 들자면 여기 이 ‘재생’에 관해 묘사하는 부분이라든가.”
“거기는 일부러 연출을 줄여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
“독자가 상상할 수 있을까요?”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어, 그러게?
“안 그래도 1부도 해석이 필요한 글이었는데, 2부는 그보다 더 어렵다면 독자들이 버틸 수 있을까 싶네요. 괜찮으시면 이 부분은 제게 맡겨 주세요. 며칠 내로 수정 사항을 체크해서 다시 작가님 편으로 보내 드릴 테니.”
“예, 예에······. 잘 부탁함다.”
나는 왠지 모르게 손을 공손히 모은 채 말하고 말았다.
패배자들의 여왕 루시에 이은, 독자들의 왕 사이먼이었다.
***
‘지식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한 개인이 타인과 의사소통을 할 때, 자신이 가진 지식을 타인도 가지고 있으리라고 판단하는 인식적 편견을 뜻하는 말이다.
신이 쓴 ‘Country of losers : Part 2’는 그 말이 딱 들어맞는 글이었다.
‘신 작가님이 평소에 이런 글을 쓰시는 분은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SF인 만큼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지만, 보다 이야기가 확장되고 다뤄야 하는 범위가 끝없이 넓어지고, 거기다가 이번 2부에서는 전투 장면까지 다루다 보니 이런 문제가 두드러지게 발생한 것이 아닐까.
사이먼은 신이 가져온 추가 원고를 원래의 원고에 알맞게 합산하면서, 그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점심까지 실컷 소설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미스 브라운까지 합류해 식사한 뒤, 신은 데이트가 있다면서 돌아갔다. 평소보다 약간 처진 신의 어깨를 보면서 사이먼은 소설 내용에는 문제없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위로해 주었다.
그런 모습은 또 처음 보는 일이라 꽤 신기했다.
‘그래도 왠지 기쁘네.’
자신이 진정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편집자의 역할은 무척 다양하다.
기본적으로는 작가가 쓴 글을 교정해 출판하는 과정에 제대로 이를 수 있도록 돕는 직업이지만, 최초의 독자로서 감평을 하거나, 작품 기획부터 연계 사업 구상과 마케팅에도 참여하며, 또한 작가와 관련되어 일종의 서비스업에 가까운 일을 수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령, 멘탈이 무척 센시티브한 작가들 경우에는 거의 정신과 상담에 준할 정도로 집중 심리 케어를 해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쪽은 사이먼의 전문 분야였다.
‘신 작가님은 전혀 그런 게 필요한 느낌은 아니시지만.’
오히려 신인 시절부터 작가로서 완숙해서 사이먼 쪽이 여러모로 배웠다는 느낌.
그리고 완숙하다고 생각한 작가에게 글적으로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작금의 상황은, 당사자로서 훌륭한 글의 완성에 기여한다는 느낌이 들어 솔직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사이먼은 자리에 못 박히듯 앉은 채 ‘Country of losers : Part 2’ 원고를 차근차근 분석하면서, 어느 부분에서 ‘지식의 저주’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를 꼼꼼히 체크했다.
그가 생각하는 문장이란, 행위의 나열에 디테일을 덧붙이는 것이 기본 골자였다. 여기에서 디테일을 생략할수록 문장은 스피디해졌고, 독자의 상상이 필요했다. 그 비율을 전개에 맞게 조정하는 것을 완급 조절이라고 일컫는다.
그리고 사이먼은 누구보다 신을 이해하는 편집자로서 생각했다.
‘확실히 신 작가님의 설명을 들으니 소설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네.’
어려운 개념이나 시대를 앞서나간 듯한 미래의 묘사로 인해 상상력이 잘 발휘되지 않아서 집중해서 추측해야 했던 부분의 의미가 확실해졌고, 머릿속에서 디테일과 완급조절의 비율이 바뀌면서 더욱 몰입이 가능해졌다.
그와 함께 신이 어떤 의도로 이 소설을 스피디하게 썼는지도 이해가 가면서, 자신이 괜히 작품을 건드려서 이런 재미를 죽이는 것이 아닐까 싶어졌다.
하지만 그래도 반드시 해야만 했다.
작가와 독자의 사이를 중개하는 편집자로서.
‘이대로는 안 돼.’
소설은 소설다워야 한다.
다시 말해, 소설이 논문이어서는 안 된다. 어마어마한 사전 지식을 요구하거나, 읽는 데 문제가 생길 만큼 설정에 대한 이해력을 필요로 해서는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없다. 그것을 간단하게 풀어서 설명하거나 비유하는 궁리가 필요하다.
그것이 사이먼이 가진 철학 중 하나였다.
1부 역시 아슬아슬한 수준까지 지식의 설명과 설정의 전개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여러 매체의 리뷰와 해석글, 라디오 방송 등의 도움이 없었다면 몇몇 독자들은 완독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2부는 그 정도가 더 했다.
‘편집자로서 힘이 될 차례다.’
부디 이 좋은 소설이 독자들에게 온전히 읽히기를 소망하면서, 사이먼은 진지한 얼굴로 챕터 별로 구분 짓고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에 대한 주석을 정리해 나갔다.
“······.”
사각, 사각.
만년필로 수를 놓는 소리만이 고요한 사무실 안에 울려 퍼졌다.
***
‘반성 좀 해야겠군.’
대학교로 돌아오면서 나는 그런 결론을 내렸다.
사실,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 주는 편집자로부터 혹평을 듣는 건 뼈아픈 일이다. 소설이란 작가 자신의 노력과 상념, 인생을 모두 담아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아픈 평가가 스스로에게 납득이 간다면, 화가 나면서도 반대로 웃음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었다. 자신을 그만큼 노력해서 이해해 주는 인물이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렇지.’
사이먼은 과거로 돌아와서부터 지금까지, 함께 일하게 된 지 5년 차에 접어드는 담당 편집자였다.
그런 양반이 내 소설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면 분명히 그럴 공산이 컸다.
그날 하드보일드 퍼블리셔의 사무실을 나와, 알렉사와 만나 데이트하는 내내 그 생각이 머릿속을 감돌았다. 그러다가 내 정신이 다른 데 있어서 화가 난 알렉사가 내 입술을 ‘떼찌떼찌’ 하면서 잠깐 접어 뒀지만, 그 생각은 다시금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이내 나는 깨달았다.
‘확실히 그런 부분을 고려하지 못했군. 조금 급하게 쓰기도 했고.’
더 북이 있는 세계를 확장시켜 나가면서 나도 모르게 너무 내가 살았던 미래의 감성으로 글을 쓴 모양이었다. 미래에는 수많은 작품들이 쌓이면서 생긴 장르적 데이터베이스에 입각해, 작가도, 독자도 더욱 많은 소재와 클리셰를 쓰고 읽는 것에 익숙해 있었으니까.
거기다 막판에는 그동안 철저하게 지켜 온 학업과 작업의 밸런스를 일부 무너뜨리면서까지 미친 듯이 썼으니 그런 경향이 더욱 심해졌을 터였다.
추가 집필을 할 때도, 사이먼이 요청한 시간에 맞춰서 간만에 수기로 쓰다 보니, 손이 생각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해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썼고.
그래도 다행히 사이먼이 그 부분을 먼저 캐치하고 따로 수정 사항을 전달해 준다고 말했으니, 일단은 너무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자고 마음을 먹었다.
‘역시 소설을 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란 말이야.’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2부는 1부에 비해 생각할 부분도 많았고, 어떤 결론을 내야 할지 고민이 되어서 여러모로 어려웠다. 플롯을 구성하고 집필을 하는 와중에도, 상상과 논쟁의 여지를 남겨 두는 1부만으로도 이 작품은 충분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작가로서 나는 이 작품에서 분명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존재했다.
케이트 무어처럼 모든 방황하는 이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언제나, 모두가 그렇다고.
‘주제를 배배 꼰 느낌이 있지만.’
그런 만큼 제각각 해석이 달라질 여지가 있겠지.
그리고 원래 소설이라는 것이 어떤 주제를 확장시켜 나가면서 흥미진진한 허구적 상상력으로 폭넓게 풀어내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리고, 좋은 소설은 결코 혼자 쓰는 것이 아니니까.’
사이먼이 편집자로서 어떤 피드백을 줄지 기대가 되었다.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 몸을 기댄 나는 한가로이 커피를 마셨다.
이제 슬슬 도착할 때다 싶던 찰나, 저 멀리서 만나기로 약속한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가오는 두 사람은 바로 케이트 무어와 레베카 웡.
조합만으로도 내 유년 시절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만드는 두 사람. 만약 전생의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저 둘을 만났다면 울면서 ‘제발 그만-!’이라고 말할 때까지 괴롭힘을 당했겠지.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아니다. 지금의 나는 한 번의 생을 거쳐 다시 돌아온 아저씨다.
······어라, 근데 왜 커피 잔을 든 손이 떨리지? 진정해라. 나.
‘확실히 전생이었다면 절대 나와 안 어울렸을 조합이기는 하군.’
입만 열면 돌 직구를 쏟아내는 진지충, ‘레베카 웡’.
입만 열면 후후, 하는 웃음과 함께 가면을 쓰고 남에게 맞춰 주는 흑막 같은 분위기의 ‘케이트 무어’.
이야, 진짜 전생의 내가 둘 사이에서 껴 있으면 기가 다 빨려서 체중이 10킬로그램은 빠졌겠군.
“와 줘서 고마워, 신. 부디 기탄없는 평가를.”
먼저 다가온 레베카 웡이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붙잡고 악수하며 싱긋 웃은 내가 대답했다.
“각오는 되어 있겠지?”
“물론! 나는 반드시 장르를 써 보이겠어!”
“내, 내가 이런 자리에 껴도 되는 걸까?”
옆에서 케이트가 가면을 쓰고 말했다.
나는 어이가 없어 지그시 노려보았고, 그녀는 시치미를 떼면서 두 사람 분의 커피를 주문하고 돌아왔다.
이렇게 오늘 우리가 모인 목적은, 저번에 이야기가 나왔던 레베카 웡의 단편 장르 소설, ‘숲속에서’를 감평하기 위함이었다.
이전에 우연히 우리 셋이 마주한 날.
한참 ‘Country of losers’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레베카의 감평 요청까지 이어졌고, 그때 자리에 같이 있던 케이트가 흥미를 보여서 이 자리까지 함께하게 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나 대신 케이트를 편집자처럼 적당히 옆에 붙여 준 뒤에 슬쩍 빠질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잠깐 고민한 끝에 마음을 달리 마음먹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첫 번째는 장르를 전혀 모르는 그녀가 평가를 받고 써 나갈 작품이 어떠한지 알고 싶어서.
두 번째는 혹시라도 앞으로 좋은 소설을 쓰면 우리 하드보일드 퍼블리셔에······ 으흐흐.
“신, 지금 표정이 굉장히 음흉해 보여.”
레베카가 악의 없이 나쁜 말을 했다. 사람한테 그러면 안 된단다.
“후후, 뭔가 이상한 생각이라도 한 모양이네.”
케이트도 가면 쓰고서 아무렇지 않게 독기 서린 말을 날리면 심장이 아프잖아.
“······흠, 그럼 시작해 볼까.”
아무튼 세 사람이 자리에 앉은 상태에서 나는 이야기의 진행자로서 입을 열었다.
이거 왠지 모르게 TRPG를 하던 때가 생각이 나는구먼. 그때는 참 즐거웠는데. 옛날이 좋았지. 아- 알렉사 보고 싶다.
”먼저, 소설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숲속에서’는 우연히 숲에서 만난 도시 소년과 시골 소녀의 사랑을 그린 작품이었다.
도시에서 시골로 갑자기 내려온 소년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불쾌감을 느낀다. 자주 즐겨 가던 게임 센터나 스케이트 보드장 같은 시설이 주변에 전혀 없고, 오직 산과 들만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만으로 투덜대는 소년의 앞에 나타난 소녀는 그에게 시골의 아름다움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아직 사랑에 눈뜰 나이가 아니었던 소년은 지금 자신이 느끼는 벅찬 감정이 사랑인지, 아니면 소녀의 말을 듣고 시골이라는 환경의 아름다움을 느껴서인지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야기는 종료된다.
뭐, 적당히 잘 썼다.
“자연에 대한 묘사와 주인공 소년의 심리가 겹쳐지면서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이야기가 일품이었어. 확실히 레베카는 이런 센시티브한 글을 잘 쓴단 말이지. 나도 이 광경을 함께 상상하면서 소녀를 만나는 순간이 기대되었다고 해야 하나.”
감평의 기본은 ‘기분을 적당히 더럽게’ 하는 것이었다.
내가 뭐라고 레베카의 소설을 최악이라고 깎아내린단 말인가? 아무리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나의 기준이 무조건적인 정답이 아닌 이상에야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일단 느껴지는 소설의 장점을 이야기했고, 레베카는 그것을 열심히 받아 적었다.
“음, 고마워. ······케이트는 어떻게 읽었어?”
자연스럽게 바통을 이어 받은 레베카가 케이트에게 직접 물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약간 불길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그것이 케이트가 가면을 써서 그런 것이라 짐작하고는 그냥 넘겨 버리고 말았다.
얼굴에 만면한 미소를 띠운 채로 있던 케이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 감상을 솔직하게 말하면 되는 거야?”
“응. 있는 그대로 말해 줘. 아무리 심하게 말해도 상처 안 받을 테니까.”
“그러면 말하기 전에 질문. 이 소설은 로맨스 소설인 거니?”
“······그렇다고 볼 수 있겠지? 기본적으로 로맨스를 기반에 두고 썼어.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사랑을 기반에 두고, 자연주의적인 냄새를 묻히려고 노력했거든. 너무 로맨스 쪽에 치중해서 소설의 메시지가 약하지는 않았나 싶었는데, 거기에 대한 의견이 듣고 싶어.”
“응. 그럼 솔직히 말할게.”
방긋 웃은 케이트가 입을 열었다.
“재미없었어.”
······어라, 지금 가면 벗었니?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