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87)
187.
“느와르 퍼블리싱······이군요.”
공중전화로 익숙한 단어를 들은 나는 손가락을 들어 이마를 긁적거렸다. 설마 했던 가능성이 그대로 들어맞자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
늦은 밤.
눈앞에 펼쳐진 어둠이 마치 그들을 연상케 했다.
느와르.
범죄나 사회적 윤리를 다룬 어두운 분위기의 작품군을 칭하는 말로, ‘느와르’라고 하는 단어 자체가 프랑스어로 ‘검은색’을 뜻했다.
듣자 하니 회사의 설립자가 프랑스계라고 했던가.
[네, 작가님 작품을 상당히 즐겁게 본 모양이더라고요. 특히 거기 함께 계셨던 헨리 스미스라는 분이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작품에 관해 열변을 토하셔서 비즈니스 자리라는 사실도 잊고 흥분해서 저도 막 떠들어댔네요.]“다, 다행이네요.”
바니걸 콘셉트의 접대부가 있는 바에 갔다고 하더니만, 그 자리에서 내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마구 떠들다니. 도대체 어떤 분위기였을까. 나는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 것을 느끼며 어색하게 웃었다.
‘헨리 스미스라.’
세상에 스미스라는 성씨를 가진 사람이 많다지만, 그 이름을 듣자마자 근래 가장 친하게 지내는 룸메이트, 존 스미스 선생의 얼굴이 문득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서, 일은 어떻게 진행될 것 같나요?”
[일단은 다음 달 안으로 선 벨트와 겹친 주에 출간을 시작하고······.]“그렇게나 빨리요?”
[네. 자신 있어 하던데요.]“계약은요?”
[작가님 허락만 있으면 바로 내일 만나는 자리에서 진행할 예정이었습니다.]“······왜 거기서 제 허락을 맡아야 하죠.”
[전에 느와르 퍼블리싱 이야기가 나왔을 때, 왠지 좀 표정이 굳어지셨던 것 같아서.]사이먼의 말에 나는 소리를 내지 않고 감탄했다.
분명 그랬을 수도 있겠다 싶기는 한데, 짧은 순간의 표정을 기억하고서 이렇게 사람을 배려해주다니.
이 사람, 배려의 왕인가?
“음, 고민이 좀 되기는 하는데.”
이미 반쯤 마음을 정한 상태였음에도 나는 잠깐 뜸을 들이고 대답했다.
그러는 것이 사이먼의 보여 준 배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진행해 보죠.”
[알겠습니다. 적어도 올해 3/4 분기 안에는 미국 주요 주에 모두 출간될 수 있도록 목표를 잡고 있다더군요. 아, 맞다. 말씀드렸던 2부의 수정 사항은 우편으로 보냈습니다.]“예에······.”
나는 살짝 어깨가 늘어지는 걸 느끼며 대답했다.
‘아, 수정 싫다.’
작가라면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으레 낙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내 힘내라는 말과 함께 사이먼이 통화가 종료되었고, 가볍게 기지개를 편 후 방으로 돌아가면서 방금 통화 내용을 다시 생각했다.
‘느와르 퍼블리싱이라.’
이제야 나를 둘러싼 판이 슬슬 커지는 느낌이었다.
캘리포니아 주 안에서만 이름이 알려졌던 상황에서 벗어나, 그 이상으로 날아오를 준비.
그리고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 바깥에는, 어떻게든 나라고 하는 상품을 가지고 주무르고자 하는 온갖 회사가 가득하겠지.
‘일단은 그중에서 가장 큰 쪽과 계약을 진행하는 편이 낫겠지.’
날파리들은 알아서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갈 테니까. 훗날을 위해서라도 이 이력을 가지고 가는 편이 나았다.
그리고 유통 계약만 맺는 형태라면 그쪽에서도 크게 갑질 해 올 건수가 없을 테니 차라리 잘됐다. 또한 바랐던 대로, 겸사겸사 아치발트가 그쪽과 어떤 식으로 일하고 있는지도 알아 둘 수 있을 것이다.
‘너무 정치적으로 생각하나.’
뭐, 그쪽은 직접 확인하지 않아도, 사이먼이나 줄리아에게 부탁해 두어도 될 테니까.
아무튼 목표했던 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으니, 나는 연말에 있을 SF 문학상의 동향에 집중하며 소설 관련 일을 계속 진행해 두면 될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 결론을 내면서 내가 기숙사 방으로 돌아가니, 자리에 앉아 있던 존 스미스가 주인 기다리던 강아지처럼 벌떡 일어섰다.
“신, 왔구나!”
“······그래.”
“호, 혹시 내 소설은?!”
“미안, 아직 못 읽었네.”
나는 스스로 생각해도 전혀 미안하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존 스미스도 장르 소설을 써 와서, 이 모임의 판이 더욱 커졌다.
나와 레베카, 케이트에 존까지, 이렇게 네 사람이 함께 장르 소설 감평회를 진행하기로 했고······ 생각보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나 역시 제안을 받아 들였다.
“오늘 다 읽고 잘게.”
“아, 아냐! 굳이 무리해서 그러지 않아도 돼!”
“뭘. 어차피 내일 다 함께 감평회 가지기로 했잖아.”
피식 웃으면서 나는 내 자리에 앉아 미리 올려 둔 존 스미스의 소설을 손에 쥐었다.
제목은 ‘워리어즈 웨이’. 전사의 길.
그야말로 클래식하다.
그러다 읽기 전에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아, 존. 묻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응, 응! 워리어즈 웨이는 내가 재미있게 읽은 소설인······!”
“아니, 그쪽이 아니라. 혹시 아버지 성함이 헨리 스미스는 아니지?”
“어? 맞는데. 어떻게 알았어?”
“············혹시 느와르 퍼블리싱의?”
“그래! 우리 아버지가 CCO야!”
“정말 네 아버지가 Chief Creative Officer(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라고?”
“응!”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존 스미스 도련님.
이 자식······.
‘그래서 캘리포니아 호텔에 한 달 정도 머물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을 가지고 있었던 거군.’
혹시나 했던 일이 사실이라는 것과 딱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복선이 풀렸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나 소설이라도 우연이 이렇게 겹치면 안일하다고 욕을 먹을 텐데.’
하지만 인간의 삶에 딱히 암시와 복선 없는 우연이 가득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인생이란 정말 알 수가 없구먼.
***
어려서부터 장르 소설을 좋아하는 존을 보면서, 그의 아버지는 항상 기왕이면 문학을 정식으로 배우라고 ‘권유’했다.
그 분야에 흥미가 있다면, 차라리 전문적인 기관, 권위 있는 곳에서 제대로 된 글을 배워라. 글이란 더는 예술이 아닌 공산품에 가까운 무언가가 되었으며, 그렇기에 실력을 떠나 인맥과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는 경력을 만드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된다. 네가 이후에 어떤 길을 걸어가더라도 말이다.
그 대신, 장르 소설가는 웬만하면 되지 마라. 박봉에, 온갖 고생뿐이고, 그 안에서의 성공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일만큼 어렵다.
알겠나?
······그리고 존 스미스는 자신이 지금 처한 상황이 아버지의 ‘권유’와 아예 무관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문예창작과 1학년생, 존 스미스.
사실, 미국 문학계에서 스탠퍼드라는 이름은 엄청나게 크지는 않았다. 왜냐면 스탠퍼드는 연구 중심의 종합 대학이지, 아이오와 대학교처럼 문학을 우선적으로 내세우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스탠퍼드라는 간판 자체가 가지는 가치가 워낙에 커서, 쉽사리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 대학에 다닌 지 어언 1년째.
아버지의 ‘권유’로 과할 정도로 순수 문학도 함께 접해야 하는 환경에서 자라 왔던 존은, 수업 때마다 이쪽도 저쪽도 아닌, 괴작에 가까운 취급을 받는 작품을 쓰는 편이었다.
실제로도 그의 소설은 많은 동기에게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본인은 자신만의 길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적어도 ‘신’만큼은 존의 글에 꾸준히 흥미롭다는 피드백을 건네주었기 때문이었다.
‘Shin’, 동시에 ‘SEEN’.
존과 동년배인 그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장르 소설가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아버지의 ‘조언’과는 달리 벌써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 작가였다.
캘리포니아로 와서 만난 그의 작품은 존 스미스에게 많은 영감이 되어 주었고, 자연히 장르 소설에 더욱 깊은 관심을 두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장르 소설을 써서 감평을 부탁하면, 신이 그걸 받아주는 모임이라고?
“이건 못 참지!”
환하게 웃으며 두 손을 번쩍 드는 존 스미스.
그 앞에서 레베카 웡과 케이트 무어는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반응은 각각 자기 성격대로 나왔다. 레베카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고, 케이트는 살포시 쓰게 웃을 뿐이었다.
카페에 모인 후, 엇갈리기 시작한 세 사람의 반응을 살피면서 신은 생각했다.
‘쾌활한 존 스미스는 최상위 포식자다.’
너드답게 파워 레이팅에 집착하는 그였다.
“그래서, 다들 어땠어? 내 소설.”
“아, 음. 응. 워리어즈 웨이?”
“망설임 없이 까 달라고! 평소에도 자주 까이니까!”
엄지를 치켜세우는 존 스미스.
‘이걸 뭐라고 하더라. ‘웃프다’인가.’
신은 왠지 모르게 막막한 분위기 속에서 다시금 차분하게 생각했다.
‘워리어즈 웨이’.
존 스미스의 창작 장르 소설로, 장르는 소드 앤 소서리였다.
평범한 대장장이의 아들이었던 주인공이, 기사를 동경하고 검을 사랑했으나 사실 자신이 마법에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되면서 겪는 혼란과 성장을 다루는 스토리.
분위기는 가볍고, 기대감도 들게 했다.
신의 첫 평가는 그랬지만, 다른 두 사람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이걸로 완결이 아닌 거지?”
레베카의 질문에 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직 왕도에 들어서지도 않았잖아!”
“그래서 그런가. 뭔가, 잘 모르겠어.”
케이트가 페이지를 들여다보며 가볍게 뺨에 손을 얹었다.
신은 가면을 쓴 것이 분명한 제스처에 기분 나쁜 티를 내지 않고자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주인공이 마법에 재능이 있는데, 왜 소설 제목이 ‘워리어즈 웨이’야?”
“아, 나도 그 점을 지적하고 싶었어.”
반대편에 앉아 있던 레베카가 케이트의 말에 동의했다.
존이 복사해 넘겨준 원고 곳곳에는 밑줄과 동그라미, 글씨까지 써서 빽빽하게 체크한 모양새가 가득했다. 신은 그 중간에 무수히 적힌 ‘굳이?’라는 메시지를 보고는 애써 외면했다.
“으, 음. 주인공이 전사가 되고 싶어 하니까?”
“왜?”
“전사는 모든 소년의 꿈이니까!”
“······뭔가 딱히 와 닿지 않는 느낌.”
“응, 나도.”
“······.”
아까는 얼마든지 까 달라더니 금방 시무룩해지는 존.
그를 긍휼히 여긴 신이 마침내 혼란을 수습하고자 나섰다.
“구조 자체는 훌륭하다고 생각해.”
“지, 진짜?!”
“주인공이 마법에 재능이 있지만, 자신은 반대로 전사를 꿈꾸고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기대가 된다고 해야 할까. 분명 마법사도 멋지지만, 전사가 되고 싶기에 생기는 내면의 갈등을 잘 풀어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아.”
“그래! 멋지지?!”
“······?”
“응?”
‘허어?’ 하고 의외라는 듯이 반응하는 레베카와 가면을 쓴 채로 가증스럽게 갸웃거리는 케이트.
신은 그 두 사람의 반응을 예시로 들어 설명했다.
“문제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점이지.”
“······아.”
“설명이 전반적으로 두루뭉술했어. 그리고 사실, 소드 앤 소서리치고는 굉장히······ 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싶었고, 신은 잠깐 눈썹을 찡그렸다.
솔직히 읽으면서 좀 놀라기는 했다.
‘워리어즈 웨이’는 지극히 고전적인 제목과는 달리, 영웅이 되고자 하는 기존의 소드 앤 소서리 스타일과 클리셰에서 한 번 더 꼬아서 특별함을 준 작품이었다.
문제는 현재의 독자들이 쉽사리 받아들이기에는, 여러모로 독특하고 이상한 작품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이었다.
신은 이 작품이 오히려 미래에 더욱 잘 먹힐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온갖 클리셰로 범벅이 된 소설이 범람하는 미래에는, 이런 식으로 ‘적당히 꼰’ 작품이 새로운 주류가 되었다.
‘그리고 꼬아 놓은 작품인 만큼 설명을 잘해야 하는데.’
그 부분을 영리하게 접근하지 않아서 글 자체가 조금 허술하게 느껴지는 것이 가장 아쉬운 점이었다.
아무래도 어떤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나서 깊은 생각 없이 손 가는 대로 써 나간 글이라 그런 것이 아닐까.
그래도 나름대로의 매력은 있고, 옆에서 누군가 보조를 맞춰 주면 시장에서 먹힐 가능성이 엿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아직 이 소설이 ‘1화’라는 점도 감평에 있어 고려해야 할 대상이었다.
하나의 완결성 있는 글을 써온 레베카와는 달리, 존은 ‘연재소설의 첫 화’라는 느낌으로 소설을 써 왔다. 그러니 다들 제대로 이해 못 하는 것이 당연했다. 갑자기 이야기가 뚝 끊겨 버렸으니 말이다.
잠깐 침묵이 감돌자, 레베카가 슬쩍 손을 들었다.
“잠깐, 신.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소드 앤 소서리’가 뭐야?”
“판타지의 하위 장르 중 하나야.”
신은 왠지 점점 더 진짜 클럽 활동이 되어 가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설명을 이어 갔다.
사실, 완벽하게 정립된 단어는 아니다. 딱 잘라서 나누는 명확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현대’에 정립된 모든 판타지 장르 중 최초가 바로 ‘소드 앤 소서리’라는 점이었다.
이 용어는 유명 장르 문학 작가인 ‘프리츠 라이버’라는 양반이 만들었는데······.
“로버트 E. 하워드가 쓴 소설, ‘코난 사가’의 프랜차이즈 네임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마이클 무어콕의 편지를 받고서, 거기에 대해 그가 보낸 답장에 최초로 등장한 용어라고 하지.”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존 스미스는 흥에 겨워 멋대로 상황극에 돌입했다.
신은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 일단 적당히 맞춰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뭔가, 학생?”
“그러면 다른 판타지와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주로 영웅 서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 그래서 소드 앤 소서리는 히로익 판타지라는 식으로 불리기도 해. 그 외에도 각각의 특징에 따라 하이 판타지, 로우 판타지, 다크 판타지나, 뭐 별의별 판타지가 있단다. 이러다 ‘토스트에 바른 구버 잼 판타지’도 나올 수도 있겠지.”
“호오.”
“어머, 흥미롭네. 그런 식으로 구분하는 이유는 뭐니?”
케이트 무어가 전혀 흥미롭지 않으면서 흥미로운 척을 하며 대답했다.
“카테고리를 정립하는 건 문화의 발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 음악만 하더라도 클래식, 팝, 재즈 등으로 구분하고, 또 재즈 안에서도 스윙, 비밥, 쿨 같은 다양한 장르가 있잖아. 그리고 제각각 만들어진 이유와 그 시대에 인기를 끌게 된 이유가 존재하지. 그걸 시대상이라고 부르고.”
‘코난 사가’와 ‘반지의 제왕’은 엄연히 다른 작품이다.
판타지라는 틀 아래에 함께 엮여 있다고 하지만, 어떤 식으로 내용을 표현하고 작가의 색을 드러내는가가 전혀 다르다고 해야 할까.
코난 사가가 히로익 판타지로서 영웅인 코난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면, 반지의 제왕은 거대한 세계의 흐름에 집중한 작품······이라고 신은 개인적으로 생각했다.
“시, 신! 조금만 더 자세히 설명해 줘! 코난 사가와 반지의 제왕의 차이는 어디에서 발생하는 것 같아?!”
“음.”
잠깐 고민하던 신이 입을 열었다.
이 정도는 힌트로써 괜찮겠다고 생각하면서.
“로버트 E. 하워드가 어린 시절에 왕따를 당했다고 하더라고?”
“······.”
“······.”
순간 숙연해지는 분위기.
그것을 덜어내듯이 신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삶에서 닥쳐오는 여러 고난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크고 아름다운 근육과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그 결과 만들어진 게 ‘코난 더 바바리안’이라는 야만용사 캐릭터였고, 그 캐릭터가 코믹스를 통해 본격적으로 알려지면서 미국 전역의 수많은 왕따 소년들의 희망이 되었지.”
대리 만족.
흔히들 쓰지만, 그 깊이를 제대로 알고 있는 이는 드문 용어.
“톨킨의 작품도 그래. 선이 악이라고 하는 고난을 이겨내고 평화와 행복을 쟁취하는 내용이지. 그의 작품 세계가 가진 심오한 설정을 차치하고서라도, 그의 작품이 당시 온갖 전쟁과 자연에 대한 경외와 공포를 겪던 사람들에게 희망과 더불어 작은 즐거움이 되어 주지 않았을까 싶어. 톨킨 본인도 그런 환경에서 자란 사람일 테니까.”
어느새 다들 말없이 신이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경청하고 있었다. 존부터 시작해서 레베카는 물론, 소드 앤 소서리라는 주제에 내심 심드렁해했던 케이트까지도.
약간의 거리감마저 느껴질 정도로 유창한 설명.
자신의 전문 분야에 관한 깊은 통찰과, 그로써 형성된 자신의 논지를 확신에 차 말하는 모습은 순간적으로 세 사람에게 깨달음을 하나씩 주었다.
‘아, 이런 게 진짜 작가구나.’
존 스미스.
‘장르라는 분야를 너무 얕봤어.’
레베카 웡.
‘얘는 진짜······. 인정하기 싫지만, 확실히 뭔가 자기만의 기준이 있는 것 같단 말이야.’
케이트 무어까지.
그런 가운데에서 신은 존을 슬쩍 돌아보며 말했다.
“즉, 장르는 욕망의 구현이라는 말이지. 그래서 나는 장르를 제대로 쓰려면, 자신이 풀어내고 싶은 욕망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이런 질문을 하고 싶어. 존, 너는 작가로서 어떤 욕망을 가지고 이 소설을 쓴 거야?”
“······제기랄.”
존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헝클였다.
그리고 신의 말을 곱씹으면서 레베카와 케이트 역시 깊은 고민에 빠진 눈빛이 되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신은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어떻게 전달할지, 그 방법 역시 무척 중요하지.’
토론의 분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실컷 장르론을 늘어놓다 보니, 자연스럽게 ‘Country of loser : Part 2’를 어서 수정하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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