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9)
19.
토런스 뉴 미디어에서 ‘Mother’의 연재가 시작된 이후, 이 조그마한 한인 커뮤니티에서 나와 어머니에 대한 사람들의 대우는 그야말로 세상이 바뀌었다 싶을 정도로 크게 달라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작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작은 캘리포니아 코리아타운 한인 교회의 ‘유일한’ 작가.
굳이 숨기고 싶지 않았던, 아니, 오히려 작가라고 하는 직업의 사회적인 위치를 이용해 무시받던 상황을 바꿀 생각이었던 나는 어머니가 1화가 실린 신문을 들고 교회에 가서 사람들에게 아들 자랑을 하는 것을 가만히 뒤에 서서 지켜보았다.
어머니는 어깨가 으쓱해져 이게 내 아들 소설이라며 사람들에게 자랑했다. 다들 축하해주었고 몇몇은 나를 색다른 눈빛으로 보았다. 놀람과 경외. 그게 또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사람이란 의외로 이런 식으로 적당히 유치한 감정을 충족시켜야 살아갈 때 정신적인 문제가 덜 생기는 법이었다. 체면만 차리기보다는 자랑할 수 있는 게 있을 때는 남들에게 기분 나쁘지 않은 방식으로 알리는 실력 또한 재주였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가만히 있는데 사람들이 알아주는 거기는 했다.
바로 지금처럼.
“야야야!”
학교를 마친 뒤, 코리아타운의 가게로 출근(?)하는 길.
정육점의 박씨 아저씨가 큰 목소리로 날 불러 세웠다.
“우리 복덩이 작가님!”
“복덩이라뇨. 아무튼 안녕하세요.”
“그래, 그래. 밥은 잘 챙겨 먹고 있지?”
“그럼요. 아저씨는 요새 어떠세요?”
“이 아저씨는 너 때문에 큰일이다. 요즘에 주문이 아주 물밀듯이 밀려 들어와서 쉬는 날이 없어요.”
“잘된 일 아닌가요?”
“그래! 자식아! 고기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
“감사합니다.”
대충 그런 식이었다.
원래는 이곳에 사는 한인이 대부분이었던 코리아타운 안에는 ‘Mother’의 열풍으로 인해서인지 조금씩 외부 관광객이 늘었다. 그들이 가볍게 음식을 먹기도 하고 한국 스타일의 장식품을 사기도 하면서 이곳 한인 상인들의 숨통이 트인 모양이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거리 곳곳에 가득한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 그중 상당수가 ‘Mother-lover’나 그들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일 터였다.
그 흐름 자체는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한인 교인들과 근처 상인들에게 아직 미성년자에다 자칫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이유 등등을 가져다 대며 내가 작가라는 사실은 숨겨달라고 신신당부했다.
‘Psycho bitch가 올 수도 있는 노릇이고······.’
당장은 원치 않는 유명세는 최대한 사양하고 싶었다.
그렇게 인종의 군집을 지나쳐 가게에 도착했고, 나는 어머니를 대신해 카운터에 들어섰다.
우리 가게도 이 시류를 틈타 조금 더 바빠지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는 평범한 마트인 만큼 다른 곳보다는 훨씬 한산한 편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느긋하게 소다와 팝콘을 먹으며 오늘 나온 신문과 잡지를 읽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한 백인 노부부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어섭셔.”
적당히 인사하고 잡지를 마저 읽으려 했지만, 무뚝뚝해 보이는 백인 노인에게 문득 시선이 고정됐다.
이번 이벤트에서 내 적극적인 지지로 1위를 차지한 구독자, 펠릭스 피셔.
아내와 함께 코리아타운에 방문해봐야겠다는 감상평의 구절이 문득 떠올랐다.
‘에이, 설마.’
무슨 드라마도 아니고, 그런 일이 벌어질 리가 있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함께 온 여성과 물건을 보다 슬그머니 언성을 높여 다투기 시작하던 노인이 내게 다가왔다.
“크흠, 흠.”
“뭐, 필요하신 거라도?”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데.”
“넵.”
“이 근처에서 한국 음식 가장 맛있게 하는 곳이 어딘가?”
“사장님, 제 입은 자판기라서 동전을 넣어야 말이 나옵니다.”
“어, 그럼······.”
적당히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노인이 가게에서 팔던 철제 사다리를 가져왔다.
“······.”
아무리 내가 수전노라고 하지만 이렇게 비싼 걸 팔 마음은 없었다.
“담배나 한 갑 사시죠.”
“그, 그러지.”
노인은 말보로를 샀다. 세금으로 왕창 떼이지만 어쨌든 가게 수입이 발생했다.
“그럼,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나는 이참에 한인의 정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두 사람을 안내했다.
“매운 건 좀 드십니까?”
“아내는 괜찮다고 하는데 나는 영.”
“그러면 국밥 드시죠. 국밥.”
“Good bob?”
“No, Gook-bap.”
살짝 힘주어 정확하게 발음했다.
나는 바로 앞에 있는 최씨 아저씨네 가게를 소개해주었다. 소머리 국밥을 아주 기가 막히게 만드는 분이었다. 노부부는 가게 앞에서부터 풍겨 나오는 고소한 냄새를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고, 그 옆모습을 보면서 슬쩍 물었다.
“코리아타운은 처음이십니까?”
“그래, 절대 올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슨 연유로 사모님 모시고 데이트까지 나오셨어요?”
“소설 때문이지. 소설.”
“설마 ‘Mother’?”
“알고 있나?”
“그럼요. 엄청 유명한 소설인데.”
나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자니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 나이에 소설과 작가의 팬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어떤 부분이 좋으셨습니까?”
“원죄처럼 벗어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다룬 게 좋았어.”
“······저도 그 부분을 제일 좋아합니다.”
나는 왠지 모를 벅찬 감정을 느끼며 대답했다.
이렇게 나이 많은 백인 노부부까지 내 소설을 좋아해 준다. 작가이자 한 명의 인간으로서 벅찬 감격을 느낄 만한 순간임에는 분명했다.
그렇기에 나는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신 한이라고 합니다.”
“신? 그 작가와 이름이 같군. 펠릭스 피셔라고 하네.”
“저도 어디선가 본 이름이군요.”
“학생, 혹시 이번에 감상평 이벤트 결과 나온 거 봤어요?”
옆에 있던 아내의 물음에 펠릭스 피셔가 눈썹을 찡그렸다.
“그런 건 뭐 하러 말해?”
“왜요. 자랑할 만하잖아요. ······이 양반이 감상평 이벤트에서 1등 하고 소니 텔레비전을 받아서 내가 밥 사기로 했거든요.”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네요.”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두 사람의 데이트를 방해하지 않고자 돌아섰다.
가게로 돌아가면서 힐끔 보자 소머리 국밥을 끝장내기 위해 가게 안으로 들어서던 펠릭스가 순간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쪽을 돌아보았다.
나는 살갑게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Mother’는 여러모로 한인 사회에서 문제작으로 여겨질 여지가 있는 작품이었다. 종교적인 광기와 폐쇄된 한인 커뮤니티를 비틀어서 창조해낸 세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머니부터 시작해 한인 대부분은 소설의 내용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소설가가 되었다는 사실에만 집중했고, ‘Mother’도 허구로 이루어진 가상의 세계로만 받아들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
다른 미국인들은 내가 사용한 장치들을 동양적 색채로 느끼지만, 그것과 실제 현실 사이의 괴리감은 너무 컸다. 그리고 허구의 이야기까지 문제 삼기에는 우리가 현실에 처한 상황이 더욱 냉혹했다.
어머니 역시 처음 소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신기함과 당황이 반쯤 섞인 반응을 내보였지만, 어떤 작품이더라도 괜찮으니 내가 가진 상상력을 마음껏 뽐내라고 격려해주었다.
나는 그러한 어머니의 말을 믿고 본격적으로 내 신작, ‘Mother’의 2부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백열등이 책상 위에 내리쬤다.
오돌토돌한 용지를 타자기에 끼우고 둥글대를 돌려 깊게 고정했다.
수평을 맞춘 뒤, 고정대로 종이가 벗어나지 않도록 지지했다.
타탁, 탁.
타자기의 글쇠를 누를 때마다 글자 하나하나가 용지에 때려 박혔다.
『나의 어머니를 어떤 분이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한 가지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나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 역시 나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지지하지 못하는 상태의 모녀 관계가 십 년이 넘도록 이어졌습니다.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머니는 씹.』
“아.”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Fire’라는 단어를 쓰려고 했는데 ‘I’를 대신해 옆에 있던 ‘U’가 눌렸다. 한순간에 그걸 깨달은 나는 그냥 뒤에 ‘ck’를 붙여 신문에는 절대로 실을 수 없는 단어를 완성해버렸다.
기막히게 글을 쓸 수 있고 가만히 장식만 해둬도 멋진데다가 여차하면 누름돌로 쓰거나 들고 던지면 사람 머리통도 가볍게 부술 수 있는 이 멋진 타자기의 유일한 단점.
그것은 바로 오타를 수정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젠장.”
나는 종이를 부욱 찢어 공을 만든 뒤, 옆에 둔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는 똑같은 문장을 쓰고 계속해서 소설을 써나갔다.
확실히 타자기로 쓰니 손으로 쓸 때보다 훨씬 더 편했다. 수정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하지만 훈련을 거치면 사실 거의 겪기 힘든 일이었고,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글씨가 나온다는 점이 무척 좋았다.
글을 쓸 때, 그게 꽤나 큰 차이로 다가왔다.
예를 들자면 ‘Apple’이라는 단어를 쓴다고 쳐보자. 수기로는 그 하나하나를 천천히, 남들이 알아볼 수 있게 그려야 했다. 하지만 타이핑은 그렇지 않았다. 누르는 행위만으로 글씨가 완성된다는 건, 집필에 들어가는 정신적인 에너지를 상당히 아낄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 덕에 나는 조금 더 소설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는 불꽃 같기도 했고 얼음 같기도 했습니다. 얼핏 모순되는 두 가지 모습을 다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양면성을 띤 존재였습니다. 나를 죽일 듯이 미워하다가도 어느새 다가와 잘못을 빌고는 사랑을 속삭였습니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소녀의 시각에서 덤덤하게 그 인생과 어머니에 관한 생각을 이야기했다.
내가 2부를 기획하면서 가장 먼저 상상했던 부분은, 1부의 완결 시점으로부터 십수 년이 지나 어른이 된 수지는 과연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수지는 의지만 있을 뿐, 행동까지는 가지 못하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전생의 나를 빗대고 있었다.
종교와 환각에 기대어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고 계속 도망만 치고 있는 인간. 깊은 내면의 고통을 안고서도 그것을 직면하기는커녕 회피만 거듭하는 부류.
그럼에도 수지는 나와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적어도 수지에게는 ‘가족’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충분한 성공을 거뒀음에도 그걸 함께 누릴 사람이 없어 타인에게 숨겼던 나와는 달랐다. 수지는 공허한 감정으로 가득했던 나와 달리 딸을 가졌고, 그 삶과 생각은 나와는 많이 다를 터였다.
나는 끊임없이 상상했다.
딸을 가진 부모의 마음을.
1화를 다 쓰고 2화로 넘어갔다.
2화부터 작품은 또다시 수지의 시점을 보여줄 예정이었다.
『십수 년이 넘은 오랜 기억은 희미해지지조차 않고 그녀를 계속해서 괴롭혔다.
수지는 감정을 참기 어려울 때마다 허벅지에 바늘을 찔러넣었다. 처음에는 단지 그뿐이었으나, 어느 순간부터인가 바늘에 잉크를 묻혔다. 허벅지에 길게 찔러 넣은 자국은 벌써 수백 개가 넘었다. 수지의 한쪽 다리는 마치 실로 기운 것처럼 얼룩덜룩해졌다.
“어머니, 안 돼요. 아아, 제발. 제발 부탁이에요. 더 이상 견뎌내기 힘들어요.”
그것은 둘 중 어느 어머니에게 하는 말일까.
중요한 사실 하나는, 다시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그게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수지는 계속해서 허벅지를 바늘로 찌르면서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고통으로 점철되었던 과거를 헤집어 답을 찾으려 했다.
“아아.”
그러던 어느 날, 수지는 깨달았다.
앨리, 나의 앨리.
이름도 모르는 남자와 몸을 섞어 딸을 낳은 이후부터 다시 고통이 시작되었다.
불에 덴 사람이 황급히 팔을 빼듯이 행동하게 되었다.
또다시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 속에서 괴로워하던 그녀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죽여야 해.”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그래야 했다.』
그리고 거기에 공포라는 틀을 덧씌울 예정이었다.
한참 작업을 계속하고 있던 도중,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다.
영어가 미숙한 어머니를 대신해 집으로 걸려 오는 전화는 모두 내가 받았다. 늘어져라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 뒤, 문밖으로 나가 1층으로 내려가 텔레비전 옆의 전화를 받았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작가님, 사이먼입니다.]“아, 사이먼. 오늘은 또 무슨 재미난 일로 연락을 주셨을까요?”
[‘Mother’에게 아주 좋은 제안이 하나 들어왔습니다.]“어떤 제안이죠?”
[‘Mother’를 라디오 방송에서 읽고 싶다고 말하는 이들이 나타났습니다.]“흥미롭군요. 어디죠?”
[캘리포니아 지역 라디오 방송국입니다. ‘스푸키 스토리즈’라고 하는 공포 전문 방송이고요.]“딱 제 작품이 읽히기 좋은 환경 같군요.”
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런 식의 전개를 원했다.
당장에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라디오 방송에서 내 소설을 읽고 싶다 이야기한 건 또 다른 성공의 지표나 다름없었다. 또한 이 시대 사람들은 라디오를 많이 듣는 편이었으니, 내 소설 ‘Mother’를 읽은 사람의 수가 더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있었다.
[사장님도 아주 입이 귀에 걸리셨습니다. ‘Mother’가 이 정도로 큰 파급력과 부가 수익을 낳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신 것 같아요. 아예 라디오 방송 시점에 맞춰서 ‘Mother’를 재연재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네요.]“그 기분으로 재계약 때는 원고료 좀 올려주셨으면 좋겠네요.”
[하하하! 당연히 그러실 겁니다!]사이먼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에 나 역시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라디오 방송이라.’
어서 들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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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deo killed the radio 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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