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93)
193.
오랜만에 쉬는 날, 지우 장은 아침부터 여전히 잠옷 차림으로 침대에 붙어 있었다.
입고 있는 병아리 잠옷은 얼마 전에 아주머니와 함께 마트에 갔다가 선물 받은 물건이었다.
락커인 자신의 취향은 아니었으나 아주머니가 워낙 귀엽고 잘 어울린다고 했고, 게다가 무척 편해 항상 입게 되었다. 말뿐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정말 조그마한 지우의 몸에 맞춰 제작된 것처럼 잘 어울렸다.
그녀는 잘 때보다 조금 더 위로 올라와서 침대 헤드에 비스듬히 등을 기댄 채, 신이 가장 최근에 낸 작품인 ‘Universe of losers’을 손에 쥐고서 읽고 있었다.
300페이지가 넘는 하드 커버 소설은 무척 무거워서, 가슴과 배 사이에 계속 올려놓고 있으니 조금씩 그 부위의 감각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
그러면 뒹굴.
옆으로 누워 책을 계속 읽었다.
20분 정도 지나면 몸에 짓눌린 쪽의 팔이 저려 왔다.
반대편으로 뒹굴.
“······.”
그러고 있자니, 밑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우야아~.]“······.”
[지우야~. 점심밥 먹어어~.]“······앗. 네에-!”
뒤늦게 이름이 불리고 있음을 깨달은 지우는 책을 손에 들고 소리쳤다.
후다닥 밑으로 내려가 식탁 앞에 앉은 그녀는, 오늘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는 아주머니께 뭐하냐는 질문을 듣고 머쓱한 듯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신 오빠의 소설을 읽던 중이었어요.”
“아, 그 유니버시인가 뭔가 하는 그거?”
“네. 오늘은 계속 이것만 읽을 것 같아요.”
“재미있니?”
신이 작품을 출간할 때마다 항상 해 오는 질문이었다.
한인 이민자 1세대로 영어에 취약한 아주머니는 영어로 된 소설 역시 잘 읽지 못했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아들의 소설이 나와도 읽고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그마저도 당신의 삶이 너무 바쁘기에 반쯤 잊고 지낼 때가 많았다.
그렇기에 지우는 신의 소설이 어떤 내용인지 틈틈이 설명해 주면서 아주머니와 더욱 가까워졌다.
하지만 아직 다 읽지 않은 소설이라 대답에는 조금 시간이 걸렸고, 지우는 점심 식사를 음미하며 이런 답을 내놓았다.
“뭔가, 거대해요.”
“응······?”
“제가 인식하고 있는 한도 내에서 가장 거대한 이야기예요.”
그 입가에는 미소가 번진 채였다.
이해될 듯 말 듯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지은 아주머니와 함께 식사를 마친 후, 지우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서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1부로부터 어마어마하게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인류의 수는 10조를 돌파했으며, 인류는 우주로 진출했다.
‘우주라.’
다시 침대에 드러누운 다음, 지우는 다리를 꼬고 그 위에 책을 올려놓은 채 생각했다.
‘흐흐음, 지금 인구가 48억 명이라고 하던데.’
10조 명을 돌파했다면, 무려 2,000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셈이었다.
자신의 인지로는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숫자에 지우는 머릿속이 순간 아득해졌다. 그러고 보면 학교에서 선생님이 우주의 크기에 관해 설명해 주었을 때도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당장 이곳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한 씨네 집만 해도 엄청나게 넓다고 느끼는데.
‘이조차 우주라는 영역에 비하면 먼지보다 못하니까.’
압도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더 북의 통제에 균열이 일고 등장하는 루시.
그녀가 진실을 깨닫고 더 북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저항 세력에 가입하는 지점까지, 정말 흥미롭고 재밌었다.
원고에서 더욱 가필된 섬세한 묘사와 읽는 이가 따라갈 수 있도록 보다 설명을 곁들여 천천히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편집자인 사이먼 카버가 수정을 부탁하고 신이 받아들인 그대로였다.
‘저항 세력, 우주, 화성, 콜로니.’
온갖 용어와 미래 시대에 관한 묘사를 읽으면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지우.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에 매진했던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한때는 흑마술에 심취했던 소녀는 어느새 소설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락 음악 다음으로 온갖 펄프 픽션, 코믹북, 보드게임 등을 섭렵했고, 서브 직업으로 너드로 전직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는 그녀가 코믹북 스토어에 갈 때마다 너드들이 공주 대접을 해줘서 그야말로 ‘프린세스 지우’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물론, 그 모든 과정에는 ‘두●’라고 하는 사내의 지분이 상당수 컸다.
‘진짜 미쳤다.’
지우 장은 눈을 반짝이며 소설을 계속해서 읽어 나갔다.
시간은 흘러 밤이 되었다.
침대에 하도 누워 있다 보니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다가 결국에는 한여름날의 햄스터처럼 자세가 축 늘어졌다. 하지만 그런 것은 신경조차 쓰지 않을 정도로 소설에 깊이 몰입해 있었고, 지우는 루시가 저항 세력의 일원으로 싸워나가는 장면에서 심장의 떨림을 느꼈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스피디한 전개.
거대한 우주 공간과 그곳에서 인간이 만들어 온 거대 병기에 대한 묘사.
더 북이 만들어낸 안드로이드와 싸워나가는 루시, 그리고 저항 세력의 일원들.
자연스럽게 그들을 응원하면서 소설을 읽어나가던 지우는 저항 세력이 더 북을 쓰러뜨리는 장면까지 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뭔가를 깨달았다.
‘어라.’
이거 너무 형편 좋게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지 않나?
신(SEEN)이라는 작가의 소설에 내성(?)이 없는 인원이라면 여기까지 읽은 시점에서 문장의 흡입력과 전개, 작가의 상상력에 혀를 내두르며 읽을 테지만, 지금의 지우 장은 이제 한 사람의 훌륭한 너드였다.
그렇기에 의심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 하나 존재했으니.
절대, 신은 이런 올바른 전개를 택하지 않는다.
1부를 보고서 생각한 건데, 이 소설은 ‘Mother’와 결이 같았다. 기본적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채택했으며, 그렇기에 지우는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에 도달했다.
‘혹시 이 상황 자체가 더 북의 의도대로 아닐까.’
마치 루시가 그렇게 생각했듯이 말이다.
달콤한 승리에 취해 그 사실을 미처 떠올리지 못한 루시와는 달리 순간 더 북의 지배에서 벗어난 것처럼 가능성을 떠올린 지우.
그것을 확인하고자 소설을 읽는 속도는 더더욱 빨라졌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옳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우는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어쩐지!’
인간이 벌인 지금까지의 모든 저항이 무의미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지우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거기까지 읽은 시점에서도 소설은 아직 어마어마한 분량이 남은 상태였다.
‘미쳤어. 이제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
지우는 활자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Universe of losers’ 속으로 계속해서 빠져들었다.
***
1985년 7월 17일.
캘리포니아 전역에 발매된 ‘Universe of losers’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팔려 나갔다.
당연한 일이었다. 1부도 현재 30만 부 이상 팔렸고, 지금도 판매량이 꾸준히 누적되는 추세였다. 발매 기간 대비 이 정도 수치라면, 캘리포니아에서 현재까지 발매된 소설 중에 역대급이라고 보더라도 무리가 없었다.
‘글렌다 호프먼의 소설도 이 정도 반향을 불러올 수는 없겠지.’
사이먼 카버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미국 주부들의 애환을 달래 주는 친정어머니 같은 존재인 글렌다의 소설조차 이 정도로 빠른 속도로 팔리지는 않을 터였다.
이로써 신은 자신을 증명했다. 신문 연재와 잡지 연재를 거쳐서 이제는 단행본만으로도 충분히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이먼은 이 작품의 성공 요인을 크게 두 가지로 분석했다.
첫 번째 요인은, 신이 가진 글솜씨였다.
신은 정말로 뛰어난 작가였다.
안정적인 문장력. 깊이가 묻어나는 아이디어와 스토리 기획력. 독자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전개하면서도,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과감하게 꺾어 독자를 길들이는 능력까지.
만약 신을 실제로 대면하지 않는 상태였다면, 사이먼은 신의 글을 읽고서 오랫동안 글을 갈고 닦은 중년의 작가라고 생각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게 아니면 작가가 필명을 갈고 재데뷔했다든가.’
하지만 얼굴을 본 이상, 그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본인은 절대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사이먼이 보기에 작가로서 신은 그야말로 천재였다.
그리고 두 번째 요인은, 시대를 역행하며 충격을 주는 이 소설의 서사였다.
‘Country of losers’는 미래와 과학 기술에 막연한 희망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사이먼조차 그랬다. 그는 독일의 히틀러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소련의 스탈린 같은 인물이 인류를 멸망으로 몰고 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은 그렇지 않은 미래를 그려냈다.
인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그들 자신이다. 그리고 발전된 과학 기술과 지식이다.
무척이나 신선하고 충격적인 아이디어였고, 사람들은 이 소설의 해석을 찾아보며 즐길 정도로 ‘Country of losers’가 건네는 미래 담론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것은 대중뿐만 아니라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미래에 ‘불행’의 씨앗을 심는 소설.] [통제되는 행복이냐. 서로를 증오하는 불행이냐.] [이 소설을 읽으면 신 작가를 미래에서 온 사람이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미래를 향한 냉철한 시선은 ‘Mother’ 때부터 예견된 결과로······.]온갖 잡지사에서 ‘Country of losers’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 모두가 신 작가의 상상력과 이 소설의 구성을 칭찬했다.
가끔은 ‘너무 허무맹랑하고 과장된 게 아닌가.’, ‘인간을 어디까지 의심할 것인가.’ 하는 비평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 정도야 비평하고자 하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수준의 이야기였다.
신은 첫 작품인 ‘Mother’ 이후로 밝은 소설만을 써 왔다.
‘Double spy’, ‘Princess quest’, ‘About T’, 그 세 작품 모두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희망이 깃든 글이었다.
그리고 사이먼은 초창기의 독기가 어려 있던 신 작가와 서로 친해진 이래 자신과 웃고 떠드는 신 작가, 그 둘 모두가 지금 발매되는 ‘Losers series’에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한 시리즈 명이지만, 나쁘지 않군.’
1부가 행복과 불행, 희망과 절망, 그 사이에서 독자에게 선택을 강요했다면, 2부는 달랐다.
끝까지 절망으로 인간을 몰고 가는 것 같다가, 마지막 순간에 희망의 여운을 남기는 작품.
‘신 작가님의 인간에 대한 생각이 묻어나는 것 같았단 말이지.’
어서 이 소설에 관한 반응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사이먼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으로 하얀 표지의 ‘Universe of losers’를 내려다보았다.
***
같은 소설을 사더라도 완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제각각 다를 수밖에 없었다. 각자 소설을 읽는 데 투자하는 시간과 읽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사이먼이 명명하기를 ‘Losers series’의 2부, ‘Universe of losers’도 그랬다.
다들 자신의 속도에 맞춰 소설을 읽었다. 하지만 그들이 도달하는 지점은 제각각 똑같았다.
소설이 발매된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빨리 책을 읽은 것은, 바로 신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가장 좋은 독자, 그리고 레지앤베이 토이스의 디자이너인 두피 킹스턴이었다.
발간일에 그는 휴가까지 내고 이른 아침 서점에서 세 번째로 소설을 구매했고, 분량이 많은 하드 커버의 책을 온종일 시간을 들여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늦은 밤, 자신의 집에서 깊은 여운에 빠져들었다.
“신, 너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거였군.”
행복과 불행, 희망과 절망.
모두 대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
인간은 그저 존재하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승리한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후우.”
수술을 통해 정상이 되었다고 ‘하는’ 심장.
하지만 두피는 아직도 그 말을 믿지 못했다. 그는 어린 시절에 심장이 저릿해지면서 세상의 모든 것이 멀어지던 감각을 아직도 기억했다. 소위 말하는 하트 어택이었고, 그로 인한 두려움은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두피를 지배하고 억압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는 서핑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두툼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도 그렇게 계속 ‘존재’할 예정이었다.
그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다음 날 이른 새벽.
“푸하아······. 뭐야. 이거.”
자신의 방에 앉은 코믹북 마스터, 빌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제 머잖아 출근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그는 이 소설을 놓지 못했고, 결국 끝까지 완독하고야 말았다.
‘Universe of losers’는 지금 현실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거대한 세계에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다룬 소설이었다.
빌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굉장히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다.
도무지 답을 내릴 수가 없는 문제를 부여 잡고 있는 것 같은 감각.
‘더 북’과 ‘루시’의 문답에서는, 머릿속에 거대한 뭉친 실타래가 턱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끝에 이르러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음에도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이 소설, 다시 말해 신이 전하고자 하는 말을.
“우리 모두, 그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두피 킹스턴과는 비슷하지만, 표현이 다른 해석.
두 사람은 아마 조만간 키튼즈 코믹북 스토어에서 만나 자웅을 겨룰 터였다.
그렇게 하나둘씩 소설을 완독하고, 저마다의 여운에 젖어 그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신이 쓴 날카로운 원고에 사이먼 카버의 편집이 더해지면서, 소설은 훨씬 더 부드러운 색채를 띠게 되었다.
‘Universe of losers’는 많은 이들에게 저마다 인간의 존재에 관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레미 마틴 역시 책을 읽기 시작하고 3일째에 소설을 완독했다.
회사에 출근해 점심쯤의 일이었다.
“즈엔장, 고작해야 이런 내용이었어?”
일부러 폄하하듯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가 이 소설을 정말 즐겁게 읽었음을, 그리고 더 나아가 소설이라는 매체 자체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음을 내심 부정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뭐라고, 블라블라블라. 결국 살아 있는 게 최고라는 내용이잖아.”
그렇게 한참 소설을 깎아내리던 그는 이내 어떤 말 하나를 떠올렸다.
일전에 신에게서 전화로 들은 한마디.
인간이기에 의미가 있다.
“······.”
그것이 문득 생각이 나 레미는 한동안 침묵하고 있다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1부의 유통 관련해서 돌아가는 이야기는 대충 들었다.
‘저쪽은 느와르 퍼블리싱이라고.’
현재 장르 쪽에서 가장 떠오르는 퍼블리셔라고 하니, 이쪽도 수준을 맞춰 줘야겠지.
뚜르르르-. 뚜르르르-.
신호음이 가고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최근 들어 급부상한 신문사의 사장인 레미 마틴조차 굽혀야 할 상대.
1925년 설립된, 어마어마한 역사와 힘을 가진 퍼블리셔.
[네, 랜덤 하우스입니다.]여기밖에 없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