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196)
196.
스탠퍼드 대학교는 명문 중의 명문이었다.
미국의 최상위권 대학이 다들 그렇듯이, 이곳은 엄청나게 높은 학구열을 자랑했다. 학생들은 학교에 있는 시간 대부분을 공부에만 매진했으며, 그러지 않을 때도 사고 능력을 함양하기 위한 토론을 즐기거나, 경험과 경력을 위해 외부 봉사 활동을 많이 나가는 편이었다.
신이 속한 문리과대학도 당연히 그랬다.
아니, 오히려 기초 학문 전공은 응용 학문 전공보다 취업이 비교적 어려운 편이라서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학교 성적에 집착해,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기보다는 책을 보면서 지내는 그들은 마치 ‘Country of losers’에서 예견한 미래의 인간들 같은 모습이었다.
하여간 사람은 끼리끼리 모이는 법이라고, 신입생도 대부분 그런 성향이 강했다.
스탠퍼드 문예창작과 신입생들은 고등학교 때 여기저기 다니며 놀기보다 주로 공부에만 매진하는 이들이 많았다. 심지어 쉴 때조차 글을 쓸 정도였다.
그렇게 문학에 대한 부푼 희망과 꿈을 가지고 이곳에 온 이들은 입학식을 거치며 가슴속에 점점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드디어 3년간의 입시가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이 조화된 낡은 건물.
곳곳에 높이 솟은 나무와 넓은 도로. 가도 가도 끝이 나지 않는 넓은 부지.
그곳에서 문학을 함양하는 멋진 대학 생활······!
“미쳤어! 미쳤어!”
“학교 건물 진짜 예쁘징 않아?!”
“내일부터 어떤 나날이 우리를 기다릴까?!”
잘 꾸며진 여학생 기숙사에 도착한 여학생들은 뮤지컬 주인공처럼 흥분해 소리쳤다.
“······.”
“······아, 여기 내 침대.”
“Cool.”
반면 반대편의 추레한 본인들 기숙사에 도착한 뒤, 서로 낯을 가리는 남학생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그들의 방에 찾아왔다.
“안녕?”
그것은 사람이라 하기엔 너무도 컸다.
“문예창작과 신입생?”
“네, 넵.”
“반가워. 내 이름은 존 스미스. 2학년이야.”
“아, 안녕하세요.”
평소 주변에서는 말이 ‘조금’ 많은 아주 좋은 친구로 생각되는 존 스미스였으나, 이제 막 학교에 들어온 1학년생의 앞에서는 그 거대한 키가 주는 압박감이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존은 타고난 성격으로 1학년의 태도를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말했다.
“이따가 신입생 환영회 겸해서 모일 건데, 올래?”
“어, 어······.”
“술 마실 생각이고 아마 신도 있을 거야.”
“신?”
신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남학생 하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 서, 설마!”
“그래, 바로 그 ‘신’이야.”
“그게 누군데?”
다른 주에서 온 남학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Country of losers’······!”
“어, 그 소설 쓴 사람이 여기 학생이에요?!”
소설 제목을 말하자 곧바로 존이 한 말을 이해한 다른 주의 남학생이 놀라 소리쳤다.
캘리포니아 밖에서는 ‘SEEN’이라는 이름보다도 ‘Country of losers’가 훨씬 더 유명한 상황이었다.
존은 이유 모를 자부심을 느끼며 대답했다.
“그럼, 나하고 같은 2학년이지.”
“미쳤다! 소문으로 듣긴 했는데! 당연히 가야죠!”
“좋아. 좋아. 이따 데리러 올게.”
존 스미스는 그렇게 신의 이름을 대며 학생들의 흥미를 끌었다.
신을 모르는 학생도, 아는 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Country of losers’는 누구나 다 알았다.
그렇게 문예창작과 남자 신입생 모두에게 신입생 환영회에 대한 정보가 전해지고, 시간이 흘러 저녁을 먹은 뒤의 밤.
“좋아. 다 모였지? 출발한다!”
존은 기숙사 앞에 모인 1학년생을 인솔해 걷기 시작했다.
작년과 똑같은 상황. 하지만 처지는 달라졌다.
그때는 잔뜩 흥분해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술은 무슨 맛일까, 잔뜩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행사를 진행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새삼스레 1년이란 세월이 지났음을 자각하면서, 존 스미스는 뒤쪽에서 1년 전의 자신과 마찬가지로 흥분한 남자 신입생이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신이 이 대학교 학생이었어?”
“그래······! 저번에 사인회 다녀왔거든!”
“우리 주에서도 그 사람 소설 엄청 잘 팔리고 있음. 어떤 사람일지 궁금한데?”
“분명 쩔어 주는 배드애스일 거야!”
“한 대의 시가가 어울리는 멋진 어른······!”
그들에게 신의 대단함을 전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대는 존 스미스.
하지만 자신이 여기서 아무리 말해 봤자 눈으로 보는 것만 못하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일부러 신입생의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거나 기름을 붓는 행동은 하지 않고 얌전히 인솔만 했다.
지금쯤 클럽 하우스에서 다들 준비를 끝마치고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한동안 걸어서 남자 기숙사로부터 조금 떨어진 클럽 하우스 앞에 도착하니, 반대편에서 여자 신입생을 인솔해 온 3학년, 레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쪽으로 다가가면서 존은 넉살 좋은 웃음과 함께 먼저 인사를 건넸다.
“고생하셨습니다!”
“너도 고생 많았어. 원래 신입생 인솔은 제프리가 해야 할 일인데 부탁하게 됐네. 그 녀석, 신이 정글 주스를 만드는 걸 옆에서 지켜보고 싶어 해서 말이야.”
“괜찮슴다. 오늘 기대되네요. 신이 칵테일을 만들 줄 알다니 놀랐어요.”
“그러게 말이야. 너무 도수만 높지 않았으면 좋겠어.”
“괘, 괜찮겠죠? 보드카는 처음인데.”
“달달해서 마시기 쉬울 거라던데, 과연?”
고개를 갸웃거리는 레나.
바로 그때, 뒤쪽에 있던 여자 신입생 하나가 물었다.
“저,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응, 뭐니?”
“혹시······ 안에 신이 있나요?”
“아마?”
“지금쯤 너희를 기다리는 중일 거야.”
[꺄아아악-!]존의 말에 여학생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들 역시 남학생들처럼 이곳으로 오면서 상급생인 레나로부터 이 학교에 ‘신’이 다니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상태였다. 평소에 책을 많이 읽고 대부분은 ‘Country of losers’를 읽은 여학생들은 그 말 한마디만으로도 신에 대한 팬심을 크게 드러내며 열광했다.
‘이게 진짜 스타 작가로군.’
그만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하며 웃은 존의 옆에서 레나가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슬슬 들어가자. 그리고 다들 명심해. 너무 취하지 않는 거야.”
[넵-!]합창처럼 울리는 우렁찬 대답이었다.
그렇게 신입생들은 첫 대학 행사와 유명 작가인 신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느끼며 클럽 하우스 안으로 들어섰다. 어둠에 휩싸인 클럽 하우스 안에서는 달콤한 냄새가 풍겨왔고, 앞서 말했듯 고등학교 내내 공부만 했던 이들은 기분 좋은 긴장감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앞에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Wel······come. 히끅!”
“하, 학회장?”
순간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는 레나.
학회장은 머리에 빨간 플라스틱 컵, 이름은 아무도 모르지만 이런 파티에서 모두가 애용하는 ‘그 컵’을 쓴 상태였다.
평소에 잘 쓰고 있던 안경은 코에 걸치고 있었지만, 새하얗던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어 도저히 제정신으로 볼 수 없는 상태였다.
‘거리의 부랑자에게 당했나?’
순간 떠오르는 무례한 생각을 지우지 못한 채, 존은 작년의 신입생 환영회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상황에 할 말을 잃었다.
이미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은 신입생들은 존과 레나의 뒤에 서서 말을 수군거렸다.
‘뭐야, 저거. 부랑자인가봐.’
‘학교에 저런 사람도 사나?’
‘불쌍하게도. 직업이 없나 봐.’
얘들아, 저 사람이 학회장이야.
차마 그런 말을 하지 못하는 존 앤 레나.
뒤이어 어둠 속에서 또 한 명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레베카 웡이었다.
“레, 레베카!”
“아, 존. 신입생 데리고 온 거야?”
“그래, 음······ 다들 먼저 마시고 있었어?”
“맛 봐야 하니까, 가볍게 한두 잔 정도?”
믿음직한 미소와 함께 말한 레나가 손에 들고 있던 붉은 컵을 흔들었다.
역시 세상이 다 끝나는 그 순간에도 왜 세상이 멸망하는가를 예술적으로 분석하고 받아들일 그녀다웠다.
하지만 직후, 레베카는 손에 든 컵을 흔들면서 입을 열었다.
“이 컵 말이야.”
“으, 응?”
“아무도 이름을 모르잖아. 그래서 전에 조사를 해봤단 말이지. ‘솔로 컵 컴퍼니’라는 곳에서 출시하는 모델이라고 하더라고. 1939년에 설립된 일회용품 전문 제조 업체인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다양한 문화의 아이디어가 되었어. 이런 걸 보면 그저 컵에 불과한 무언가라도 집단의식의 함유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의미가 부여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지 않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순간 식은땀을 흘리고 마는 문예창착과의 기린, 존.
뒷덜미를 타고 흘러내린 땀이 등을 지나 바닥에 툭 떨어지는 데까지 필요한 시간은 2초 정도. 그 정도로 키가 커다란 그는 레베카의 머리 위를 지나 뒤쪽에서 누군가가 건네는 술을 홀짝홀짝 마시고 있는 무리를 발견했다.
그 무리는 오늘 환영회에서 신입생들과 어울리기로 한 상급생들이었고.
그 누군가는 바로 신이었다.
마치 마녀가 백설공주에게 먹일 독을 만들듯이, 그는 커다란 보울을 계속 휘젓고 있었다.
***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3학년, 레나의 질문에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 다들 목이 마른다면서 한두 잔씩 마시다 보니······.”
이렇게 되고 말았다.
보울 가득한 정글 쥬스는 문예창작과 사람들을 완전히 매혹했다. 처음에 맛을 보고 ‘와, 진짜 맛있네. 술맛 하나도 안 난다.’ 하면서 홀짝거리던 이들이 만취하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도 계속해서 동이 나는 중이라 나는 추가 제조를 해야 했다.
얼음을 때려 박은 뒤 쥬스를 붓고 과일을 칼로 슬라이스 해서 넣은 뒤, 보드카를 탄다.
그러면 학회장이 나타나 훌쩍 가지고 갔다.
“신입생들한테도 이 넥타르를 나눠 줘야지!”
참고로 넥타르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의 음료를 뜻했다.
후후, 다들 이렇게 좋아하니 바텐더로서 보람차군.
“뭐, 그래도 분위기 좋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그, 그건 그래.”
존이 뒤를 돌아보며 동의했다.
처음에는 좀 어색해하던 신입생 애들도 술이 맛있어서 그런지 금방 적응해서 플라스틱 컵에 든 술을 홀짝였다.
난생처음 맛보는 술에 신기해하는 애들 옆에 상급생이 자연스럽게 다가가서 말을 걸고 친해지는 광경을 보면서, 나는 술을 더 빠르게 탔다.
하지만 내가 여기에서 계산하지 못한 것이 하나 존재했다.
정작 나는 술을 계속 타야 해서 한 잔도 마시지 못했다.
······젠장.
“너 대체 뭐니?”
그런 내 모습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하는 레나.
“뭐가요?”
“진짜로 바텐더 일 한 적 있어? 뭐 이렇게 술을 빠르게 잘 타?”
“별거 아니에요. 그냥 대충 섞기만 하면 되는데?”
“······그 손놀림이 너무 빠르잖아.”
“역시 대단해! 신!”
존이 감탄했다. 요 감탄의 요정 같은 녀석.
“이제 됐어. 나하고 존이 쥬스 만들 테니까, 너는 따로 또 할 일이 있잖아?”
“아, 그렇죠.”
나는 레나의 말을 듣고 원래 목적을 상기했다.
······분명 신입생 앞에서 뭔가 연설을 하라고 했지?
***
교대를 위해 존 앤 레나에게 정글 쥬스의 레시피를 가르쳐 준 다음, 나는 온리 보드카에 얼음과 라임 슬라이스를 띄운 레드 컵을 들고 홀짝거리면서 신입생과 상급생이 모인 곳으로 향했다.
차가운 보드카는 그 자체만으로도 점성이 있는 느낌이라 좋았다.
‘크으.’
인간이 혀로 느낄 수 있는 맛을 넘어서서, 말초신경으로 음미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전생에 같은 학교 교사들은 물론이고 혼자서도 술을 자주 마시는 편이었던 나는 대학에서 접한 맥주 이후로 오랜만에 느끼는 알코올의 감각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아버지도 술을 잘 자시는 분이었다고 말했었지. 이런 부분은 타고나는 거라고 해야 할까.
언제나 좋은 아들이기를 자청했던 나인지라 어머니와 함께 살 때는 술을 잘 마시지 않았지만, 돌아가신 이후로는 혼자 외로워서 홀짝거리다가 반쯤 알코올 중독이 되었다.
물론, 이제는 아니었다.
지금은 이렇게 남들과 같이 술을 마실 때가 즐거웠다.
나중에 친구들이라든가 사이먼, 줄리아, 거기에 더해 케이트 무어와 함께 술을 마셔도 즐거울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잔뜩 술에 취한 학생들 곁으로 다가갔다.
“야, 문학이란 말이야······!”
평소에는 약간 근엄하더니 막상 술에 취하자 실컷 신이 난 학회장.
“‘About T’ 진짜 재밌지 않냐. 나 다 녹화 떠 뒀음.”
“맞아요! 진짜 너무 틴에이지 감성 잘 살려서······!”
“뭐야. 그거? 재미있어요?”
“원작은 신이 쓴 소설인데, 캘리포니아에서 TV 드라마 방영 중이야. 틴에이지 로맨스.”
“와, 진짜 재미있겠다······! 다음에 보여 주면 안 돼요?”
“좋아. 빌려 줄게. 이름은 없는데 안경 쓴 여자애가 진짜 귀여워.”
그 옆에서 나한테는 전혀 티를 안 내더니 ‘About T’에 대한 애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제프리.
······이거 나중에 알렉사한테 사인이라도 좀 받아다 줘야 하나.
나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라도 된 기분으로 컵을 들었다.
클럽 하우스의 벽에 붙어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이들은 갑자기 누군가 중심에 서서 컵을 들자 하나둘씩 집중하기 시작했다.
마치 양초의 불이 꺼지듯 고요가 찾아왔고, 나는 학회장의 눈치를 슬쩍 살피고는 가볍게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신입생 여러분. 문예창작과 2학년, 신 한입니다.”
전생에 다녔던 캘리포니아 주립대에서는 이런 식으로 다 함께 뭉치는 문화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스타일의 문화는 서로의 관계를 중시하는 ‘한인’스러운 경향이 있는지라, 내게는 오히려 더 잘 맞았다.
“현재 ‘SEEN’이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에 있습니다.”
[Woooooooo-!!]신입생들이 놀라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 긴말은 필요하지 않겠군.’
연설이라고는 했지만, 나는 정글 쥬스로 그 연설을 대신 한 셈이었다.
대학 생활이란 술처럼 달콤한 부분도 있지만, 그 뒤에 따르는 대가도 분명히 있다.
‘숙취’처럼 치명적인 대가가.
그리고 아직 그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신입생은 그저 이 분위기가 좋다는 듯이 싱글벙글 웃고만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