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2)
2.
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어라?’
그리고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이상했다. 생각보다 눈이 더 쉽게 뜨였다. 평소에는 일어나는 게 지옥이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순식간에 정신이 돌아왔고, 그런 상황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어제 분명 술 엄청 마시고 잠들었는데?’
이렇게 쉽게 눈이 떠지고, 게다가 몸이 깃털처럼 가볍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주변을 더듬었다.
벽이 잡혔다. 몸을 움직이자 무언가 우르르 떨어졌다.
‘제기랄.’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어제 분명히 지하실 소파에서 잠이 들었는데 대체 무슨 연유로 이 좁은 곳에서 눈을 뜬 걸까. 가능성은 크게 두 가지였다. 내가 알아서 이 좁은 곳까지 기어 왔거나, 데드맨즈 헤븐의 열렬한 팬이자 내게 비뚤어진 성적 욕망을 가진 남자의 납치거나. 후자면 끔찍하군.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농담을 되뇌며 어제부터 이어진 무기력한 마음을 떨쳐내 보려고 했던 나는 본전조차 찾지 못하고 상체를 일으켰다. 뭔가 몸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벽을 쿵쿵 두드렸는데, 생각보다 얇았다. 몸을 기대며 휙 밀치자 빛이 들어왔다.
“윽······?!”
절로 신음이 나왔다.
눈이 매울 정도로 찬란한 빛.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나는 팔로 바닥을 더듬어 겨우 좁은 공간에서 빠져나왔다.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우자 빛에 눈이 적응했고, 주변을 둘러본 순간 눈이 동그랗게 뜨일 수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뭐야?’
내 오랜 기억에 파묻혀 있던 공간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진한 색깔의 원목으로 된 가구와 바닥. 갈색과 붉은색이 섞인 체크무늬 러그와 싱글 침대. 방 한쪽에 전시된 책장에는 서적이 가득했고, 그 옆의 브라운관 텔레비전은 거의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오래된 물건 같았다.
나는 이 장소를 알고 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지냈던 내 방이었다.
설마 정말로 내 열렬한 사이코 팬이 80년대의 내 방을 재현했다는 말인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면서 나는 허겁지겁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눈 앞에 펼쳐진 계단 아래로 내려가자 거실이 나왔고, 그 또한 기억하던 그대로라 더 소름이 끼쳤다.
전체적으로 베이지 톤에, 천이나 가죽 부분에 꽃무늬가 들어간 마호가니 가구.
‘침착하자. 한신. 침착해.’
여러 가능성이 있다.
방송일 가능성도 물론 제외할 수는 없었다. 나는 아직 외부에 얼굴을 알리지 않았지만, 데드맨즈 헤븐의 드라마 방영에 맞춰서 신상을 공개하고 본격적인 인플루언서 작가로 활동하는 것에 대해 출판사 측과 상의도 했다. 아마 그 일이 진행된 걸지도 몰랐다.
‘사이코 팬보다는 그편이 훨씬 낫겠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신?”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돌아본 나는 경악해 소리쳤다.
“Holy mother······!”
이 새끼들이 돌아가신 어머니까지 섭외했다!!
나는 깜짝 놀라 뒤로 세 걸음쯤 물러섰고, 뒤에서 나타난 섭외된(?) 어머니는 날 보며 눈썹을 찡그렸다.
“말조심하렴. 신. 그게 아주 나쁜 말이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
“다, 당신 누구야.”
“이 녀석이 잠이 덜 깼나? 얼른 학교 갈 준비나 해!”
“누, 누구한테 부탁이라도 받았어? 아니면 방송? 재미없으니까 이쯤 하자고.”
“······허어.”
내 진지한 대응에 한숨을 쉰 묘령의 여성이 다가와 손을 들었다.
쩌억!
“끄하악?!”
등짝을 찌르르 울리는 아픔!
“오늘 고등학교 입학하는 놈이 무슨 헛소리야! 빨리 가서 씻고 나오라니까!!”
“아, 아야야야! 잠깐! 잠깐만요!”
등짝을 후려치고 귀를 붙잡는 콤보는 어머니의 필살기 중 하나였다. 강렬한 통증에 반쯤 울며 끌려가는 동안, 나는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내 어린 시절이, 디테일 하나하나가 완벽한 채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이런 방송이 있다고? 아니, 아니. 이런 변태 살인마가 있다고?’
혼란스러운 채 끌려가 어쩔 수 없이 화장실 안으로 들어섰다.
“끄으윽······.”
귓볼이 아린 통증에 벅벅 긁은 뒤, 고개를 든 나는 더 놀라고 말았다.
“이건, 뭐야.”
거울 속에는 지금의 내가 아닌 과거의 내가 서 있었다.
주름 하나 없는 탱탱한 피부. 적당히 기른 검은색 머리.
충혈 없이 맑게 빛나는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저도 모르게 손을 들었고 거북목으로 인한 어깨 쪽의 고질적인 통증이 없음을 알아차렸다. 몸에 기름칠이라도 했는지 매끄럽게 움직인다는 사실도.
그런 자신의 몸이 신기해 나는 한동안 방방 뛰기도 하고 몸을 이리저리 꺾기도 하면서 젊은 몸을 즐겼고, 이내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
‘Shit, 요즘 방송 참 좋군.’
그 직후, 말이 튀어나왔다.
“······그럴 리가 없지.”
그렇다면 꿈인가? 아니었다. 아직도 귓볼이 얼얼했다.
지금 이건 현실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했던 말을 통해 지금의 상황을 유추했다.
‘고등학교 입학 날이라고?’
1980년 9월 8일.
열여섯 살을 코앞에 둔 나는 센트럴 시티 밸류 하이스쿨이라는 이름의 공립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이날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막 1년을 넘기고 있는 시점이었다.
지금 내가 그때로 돌아왔다는 말인가?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다는 말인가.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세수하고 치아를 닦았다.
충치 하나 없이 깨끗한 건치였다. 피부를 타고 흐르는 차가운 물의 감촉을 느끼며 정신을 조금 더 일깨운 나는 옛 버릇을 기억하고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80년대에 지냈던 내 방을 마주하게 되자 조금씩 그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중고등학생 시절, 나는 자주 벽장 안에서 틀어박히고는 했다.
이 안은 어머니가 싫어하는 장르 소설을 숨어 읽을 만한 장소로 제격이었기 때문이었다. 집과 학교만을 오가던 모범생인 나에게 있어, 하루의 일과를 모두 마치고 읽는 장르 소설은 어렵고 힘들었던 현실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창구였다.
하지만 그랬던 80년대의 추억은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났을 때,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그랬지.’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바닥 곳곳에 흩어진 잡지를 무심하게 지나친 나는 벽장 안에서 체크무늬 셔츠와 면바지를 꺼내 입었다. 그리고 계단을 타고 내려가 주방에 있던 어머니의 등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진짜, 라는 거겠지.’
정말 내가 과거로 돌아왔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어머니 또한.
“신 한. 너 어제도 밤새 그 이상한 잡지 읽었지?”
“아.”
한창 요리한 음식을 내놓으며 핀잔을 주는 어머니에게 뭐라 대답해야 할지 순간 감이 오지 않았다. 내 기억 속에서는 오래전에 돌아가셨던 분이 젊은 모습으로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뭐라 형언할 기분조차 들지 않는 이상한 감정이 가슴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그런 내 상태를 알 리가 없는 어머니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엄마랑 약속한 거 안 지킬 거야?”
“······.”
이때 어머니와 무슨 약속을 했지?
“너 그 잡지, 12시 이후로는 안 읽는다면서?”
“······아, 그거요.”
“목사님이 악마의 책이라고 했는데도 네가 좋아한다고 하니까 엄마가 양보했지?”
“죄송해요. 너무 재미있어서 그만.”
“다음부터는 조심해줬으면 한다. 어서 아침 먹으렴.”
식탁에 요리가 차려졌다.
베이컨과 스크램블 에그, 식빵과 버터. 단출한 구성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식사를 미국식으로 바꿨다. 한식은 80년대의 미국에서는 사치품에 가까웠고, 우리는 그걸 감당하기에는 가난해지고 말았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크게 기운 가세. 그리고 어느새 거기에 적응해버려, 생활이 나아진 뒤에도 우리는 제대로 한식을 먹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음식은 내게 특별했다.
어머니의 수제 요리였으니까.
“잘, 먹겠습니다.”
“남기지 말고.”
어머니의 손짓에 따라 자리에 앉은 나는 천천히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방송도, 사이코 팬도 아니었다. 완벽한 현실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 상황이 도저히 설명되지 않았다.
끝을 살짝 크리스피하게 태운 베이컨의 맛.
진짜 어머니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이야기까지.
‘그래, 이때는 이랬지.’
80년대에 장르 소설은 90년대의 텔레비전이나 2000년대의 게임, 2010년대의 스마트폰 같은 취급을 받았다. 어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였으며, 아이들은 열광했다. 학교부터 시작해 교회 같은 곳에서는 거의 사탄이 만든 물건 취급을 받았을 정도였다.
우리 어머니도 그랬다.
독실한 신자였던 어머니는 한인 교회의 목사가 한 말을 철석같이 믿고 내가 장르 소설 잡지를 보지 못하게 하려고 하셨다. 하지만 말 잘 듣는 모범생 아들이었던 나도 그런 어머니의 훈육에는 저항했고, 끝끝내 규칙을 정하고 장르 소설을 계속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때의 나는 그 정도로 소설을 좋아했군.’
하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나는 항상 현실을 답답하게 느꼈으니까.
이 당시 누구보다 나를 자유롭게 해줬던 게 소설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어른이 되어 다시 그 시절의 소설을 읽었을 때, 실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곳에는 내가 현실로 겪었던 동양인에 대한 온갖 편견이 가득했으니까.
***
아침을 다 먹은 뒤, 나는 집앞에서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
17세에 면허를 딸 때까지 수백 번은 족히 탔을 버스.
파노라마와 같은 풍경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철골을 엮어 만든 다리. 저 멀리 공장 굴뚝에 연기가 치솟았다.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커다란 카세트 오디오를 틀고 춤을 추거나 스케이트보드를 타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1980년도에 학창 시절을 보낸 나는 이때부터 90년대까지를 미국 역사상 컨텐츠가 가장 많은 발전을 이뤘던 시기로 기억했다. 그때 당시 미국의 대통령은 마이클 잭슨이었고 마이클 조던이었다. 아,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와 존 카멕, 마지막으로 빌 게이츠까지.
창문을 열어둔 덕에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거리의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생각했다.
‘내 눈으로 보면 참 촌스럽구나.’
네온 컬러의 티셔츠. 하이 웨이스트 데님 팬츠.
남자들은 옆은 바싹 치고 뒷머리를 길렀다. 여자들은 최대한 머리 볼륨을 부풀렸다.
바로 이 시절이, 내가 소년으로 살던 때였다.
스마트폰은커녕 핸드폰도 없어서 좀 살던 집 아이들은 무전기를 사용했다. 다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진짜처럼 믿었고, 싸구려 특수 효과로 점철된 영화를 보면서 환호했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친구 집의 지하실에 모여 D&D를 플레이했다. 환상적인 시절이었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새로운 시대가 탄생하기 직전의 상황.
나는 추억을 더듬어 기억을 계속 찾아 나갔다.
학교에 도착했다.
센트럴 시티 밸류 하이스쿨은 주변 치안도 좋고, 교육 수준도 높았으며 학생들의 인종적 다양성도 괜찮은 편이라, 어머니가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기뻐서 방방 뛰었던 게 기억났다.
그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가 처음으로 ‘진짜’ 웃었던 순간이었다.
입학 첫날인 만큼 학생들은 인종별로 무리를 지었다. 미래에도 같은 인종끼리 뭉치는 경향은 딱히 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학생들이 생각보다 더 서로를 크게 경계해 좀 놀랐다.
따로 입학식은 진행되지 않았고, 그 대신 시니어 학생이 진행하는 스쿨 투어를 마친 나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예전의 나라면 어머니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운영하는 한인 스토어로 가서 일을 도왔겠지만, 오늘은 확실히 머릿속을 정리해두고 싶었다.
‘좋아.’
방으로 들어간 나는 일단 바닥에 한가득 널린 잡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 권, 두 권, 모아보니 서른 권쯤 됐다. 그걸 책장에 꽂을까. 아니면 갖다 버릴까. 고민하다가 저도 모르게 제일 위에 있던 걸 꺼내 아무 페이지나 뒤적이며 가볍게 펼쳐보았다.
‘마침 또 이게 나오네.’
대충 확인한 나는 ‘로난 더 바바리안’이라고 생각했다.
로난 더 바바리안 시리즈. 80년대에 가장 유행했던 소드 앤 소서리 소설 중 하나였다.
멋대로 눈이 가 문장을 읽어냈다.
『바바리안 라난은 정복자 잔의 부하들로부터 습격받았다.
그는 우렁차게 외쳤다.
“Behold my shining sword!”
그가 검을 치켜들자 검에서 광채가 일었다.
잔의 부하들은 공포에 질려 몸을 떨었다. 하지만 라난의 거대한 근육질의 몸과 검보다도 그들을 두렵게 만드는 것은 그 주인인 잔에 대한 공포와 충성심이었다. 부하들이 고함을 내지르며 달려들었고, 라난은 샤이닝 소드로 그들을 베어 넘기며 용맹하게 맞섰다.
샤이닝 소드가 가장 앞에 선 적의 골통을 까부쉈다.
머리뼈가 으스러지며 뇌와 눈알이 튀어나왔다. 흘러내린 피로 목욕하는 것은 전사의 영광이었다. 라난은 흥분했고, 시뻘겋게 달아오른 근육질의 가슴팍에서 선명한 땀이 흘러내렸다.
“Oh My······!”
그를 지켜보던 Whore-Queen(창-녀왕)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고간에서 화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그녀가 가진, 라난을 해하려고 하던 치명적인 성병 때문이 아니라 끝을 모르는 남성성에 대한 경외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라난은 그런 건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에게 여성은 단지 착취의 대상에 불과했다.
그렇게 수십여 명의 적을 모두 쓰러뜨린 라난이 우렁차게 고함을 내질렀다.
“Uoooooooooooooooooooooohhhhh-!!”
-다음 화에 계속.』
“············Holy mother.”
소설을 다 읽은 뒤, 나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멍하니 눈을 깜빡거릴 수밖에 없었다.
1980년대는 대체 어떤 곳이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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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으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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