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200)
200.
굉장히 흥미로운 광경이었다.
학교 안에서는 할 말이 떠오를 때마다 자유롭게 이야기를 주고받던 레베카와 존은, 사이먼과 줄리아가 건네는 피드백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입을 꾹 다문 채 경청했다. 심지어는 케이트조차 어른스럽고 차분한 줄리아의 모습을 보고 뭔가 배우고 싶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그런 세 사람의 모습과 반대편의 담당 편집자 두 사람을 지켜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확실히 저 둘이 어른은 어른이군.’
그리고 뭐랄까.
이제는 편한 사이가 되어서 딱히 의식하지는 않았는데, 사이먼 앤 줄리아는 역시 참 좋은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내가 부탁했다고 해도,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들이 얼마나 레베카와 존의 소설을 진지하게 읽어왔는지가 여실히 느껴졌다.
사이먼은 먼저, 레베카의 소설을 이렇게 평가했다.
“거칠고 잔인합니다. 그래서 취향을 많이 탈 겁니다.”
“네, 네에.”
“하지만 그 안에 섞인 아주 약간의 로맨스가 좋은 조미료로 작용하는 느낌입니다. 분명히 작가님의 몇몇 단편은 시장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진하게 들었어요.”
“저기, 질문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네,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잘, 팔릴까요?”
“냉정히 말하면 그렇지는 않겠죠.”
사이먼의 단호한 말에 어깨가 순간 쳐지는 레베카.
그 앞에서 사이먼이 조곤조곤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장르란 게, 무조건 잘 팔린다고 해서 좋은 글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글만 무조건 뽑지도 않고요. 각 출판사의 기조에 따라서 다르겠습니다만······ 어떤 곳에서는 이런 특별한 작품을 반드시 필요로 합니다. 예를 들자면, 신문사가 있을 수 있겠네요.”
‘오호라.’
나는 감탄했다.
확실히 레베카 웡의 단편은 소위 말하는 ‘마니악’한 성향이 강했다. 그렇기에 잘 팔리지는 않겠지만, 여러 작품을 연재하는 공간에 모아 두었을 때는 다른 작품 사이에서 홀로 개성을 뽐낼 터였다. 레베카의 작품은 그런 쪽에서 수요가 있는 셈이었다.
‘나는 반대로 사자의 꼬리가 아닌 개의 머리를 노렸으니 토런스 뉴 미디어가 맞았고.’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마리의 사자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더더욱 적합한 선택이었다.
“연재처로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어떠신가요?”
“제, 제 작품이 그곳에 실릴 수 있을까요?”
그 말에는 줄리아가 대답했다.
“많은 수정이 필요할 거예요. 게다가,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는 좀 뭣하지만, 미국 5대 신문사 중 하나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는 분명 좋은 작가분들이 많이 계시죠. 웡 작가님의 자리가 날지 말지조차 아직 확실히 알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자, 작가님이라니······.”
“작가님이죠. 소설을 썼으니.”
순간 다시 움츠러들려는 레베카를 보며 줄리아는 힘주어 말했다.
‘뭐지?’
저 사람, 오늘 어딘가 좀 날이 서 있는 느낌인데.
그러나 나쁜 방향은 아닌 듯했다. 당당하게 앞에 서서 어린 작가를 이끌어 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레베카도 줄리아의 말에 큰 감명을 받았는지 순간 자세를 고쳐 앉았다.
“저는 작가님의 작품을 믿어요. 그러니 작가님도 자기 작품을 믿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가,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는 레베카.
다음은 존의 차례였다.
***
‘유쾌하고 개성도 확실한 작품이다. 하지만 아직 구성이 어설프다. 잘만 다듬는다면 잡지사 연재를 노려볼 수도 있을 듯하다.’
그것이 존의 소설, ‘워리어즈 웨이’에 대한 사이먼의 평가였다.
자신이 담당을 맡을 테니 함께 수정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존은 연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렇게 사이먼이 존을, 줄리아가 레베카에게 담당으로 붙어 작업을 진행하기로 한 상태에서 미팅은 마무리가 되었다.
그 후 나는 애들을 데리고 일단 스탠퍼드로 돌아왔다.
“쩔어! 이게 진짜 프로인가!”
“나, 나는 돌아가서 내 원고를 다시 확인해 볼게. 무엇이 챈들러 씨하고 일할 때 도움이 될까 한번 생각을 해 봐야겠어. 케이트, 혹시 좀 도와줄 수 있을까?”
“나 이따 어바웃 티 드라마 봐야 하는데······.”
“밥 살게.”
“아니이······.”
어디 현장 학습이라도 다녀온 학생들처럼 흥분한 두 예비 작가.
학생들의 인솔자(?) 역할로 보냈던 하루였지만, 즐거웠다. 내가 신인 작가로서 느끼던 감정을 어깨 너머로 다시 겪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세 사람과 헤어진 후, 나는 곧바로 기숙사의 공중전화로 가서 사이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와는 오늘 일에 관해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잠깐의 신호 후, 미스 브라운이 전화를 받고 사이먼에게 넘겨 주었다.
[작가님, 잘 들어가셨나요?]“사이먼.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기왕이면 줄리아도 옆에서 들었으면 좋겠는데.”
[아쉽지만 한잔하러 먼저 가 버렸네요.]“그러고 보니 최근에 줄리아한테 무슨 일 있었어요? 오늘 좀 날카롭던데.”
[제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래서······.]“아, 이해합니다. 나중에 따로 물어보죠. 그런데, 애들 소설 진짜 괜찮았던 것 맞죠?”
[네, 물론이죠. 제가 이런 걸로는 허튼 말 안 하는 거 아시면서. 근데 신기했던 게 있었어요.]“뭐죠?”
흥미를 느끼면서 나는 공중전화 유리 벽에 기대어 섰다.
[레베카의 소설은 ‘Mother’를, 존의 소설은 ‘Princess quest’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야기가 비슷하다기보다는 전반적인 분위기랄까?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아, 확실히.”
스릴러와 기괴한 분위기가 기반에 깔려 있다는 점에서 레베카의 소설은 ‘Mother’를, 분위기 자체가 밝고 소재가 특이하다는 점에서 존의 소설은 ‘Princess quest’를 연상케 하는 측면이 있었다.
내가 굳이 의식하지 못하던 부분이라, 지적을 받고 생각해 보니 조금 신기하게 느껴졌다.
[왠지 저와 줄리아가 각각의 작품을 맡은 게 운명처럼 느껴지네요.]“그, 그런가요?”
[이전에 ‘Princess quest’는 줄리아가, ‘Mother’는 제가 맡았었잖아요? 이번에는 상황이 반대가 된 거죠! 뭔가 운명적인 흐름을 느끼지 않나요, 작가님?]“아, 확실히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작업이 잘 되어서 두 작품 모두 빛을 봤으면 좋겠네요. 거기다 기왕이면 잘 팔리기까지 해서 이후에 하드보일드 퍼블리셔 명의로 책이 나온다면 더더욱 좋을 것 같고요!]마음 편히 웃는 사이먼의 반응에 나 역시 덩달아 안심이 되었다.
슬슬 인사를 마치고 전화를 끊으려던 그때, 사이먼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참, 그리고 작가님.]“네?”
[처음에 여쭤 보셨잖아요? 줄리아 관련으로. 다시 생각해 보니, 작가님이 의도하신 행동은 아닐 테지만 이번 일이 줄리아에게 큰 도움을 주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그렇게 말씀하시니 더 모르겠는데요.”
아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
그로부터 약 한 달 후.
하드보일드 퍼블리셔와의 계약서 작성을 끝마치고 11월 초까지, 줄리아 챈들러와 레베카 웡의 원고 작업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서로 거리가 있어서 전화 통화로만 이루어진 피드백과 수정이었지만, 생각보다 즐거웠다.
줄리아는 평소 버릇대로 긴장하는 초보 작가와 서로 감정적인 교류와 원활한 피드백을 진행하고자 이런저런 질문을 했는데, 거기에서 나온 이야기가 생각보다 흥미로웠기 때문이었다.
[원래 장르 소설을 읽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신 때문에 이렇게 되었죠.]신이 수업 시간에 쓴 소설이 너무 재밌어서 대체 장르 소설이란 게 뭘까 궁금해서 찾아보다가, 결국은 직접 쓰게 되기까지 했다는 레베카.
그리고 거기에서 이어지는 ‘펄프 픽션 클럽’이라는 활동까지.
대략적인 사정을 들으면서 줄리아는 레베카가 어떤 작가인지 파악해 나갔다.
레베카는 아직 데뷔조차 하지 않은 신인인 만큼, 아무래도 그녀의 소설은 장르로서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작업과는 별개로, 작가 본인도 계속 긴장하고 멘탈이 흔들리는 모습을 대화 중에 종종 드러내었다.
그것을 지켜보면서, 줄리아는 여러 가지 전략을 사용했다.
칭찬을 크게 하고 고칠 부분을 축소해서 말한다든가.
고칠 부분을 많이 말하고 칭찬은 최대한 적게 말한다든가.
때로는 격려한다던가. 아니면 나무란다든가.
각각의 반응과 돌아오는 원고의 퀄리티를 살피면서 계속 레베카와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집에 돌아와 칵테일을 홀짝이며 레베카의 소설을 읽는 것이 줄리아의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자연히 이런 생각에 이르렀다.
‘왠지 옛날 생각이 나네.’
때로는 엄한 스승으로, 때로는 같은 소설을 읽고 감상을 나누는 동료로, 때로는 그를 밑에서 받쳐주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레베카 웡이라는 작가가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도록,
그것은 줄리아가 신이 대학에 들어간 이래, 최근까지 잊고 지내던 감정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편집자로서 누군가의 도움이 된다고 하는 기쁨이었다.
‘About T’를 진행하는 동안 신에게 편집자로서 큰 도움을 준 적이 없었고, 대리인으로의 활동으로 더 바빴기 때문이었다.
레베카는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정말 낮은 작가였다. 조금만 마음을 놓으면 문장을 깊이 있게 쓰고자 노력하는 순수 문학 특유의 버릇이 나왔고, 그러는 바람에 정작 장르에서 중요한 작품 자체의 원초적인 재미를 잊는 경우가 빈번하게 벌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콕 집어 장르를 쓰고 싶어 했다.
그 이유를 물어보자 이런 대답이 나왔다.
[‘Losers’ 시리즈 같은 작품을 쓰고 싶어요. 아, 이건 신에게는 비밀이에요. 아무리 존경하는 작가라고 하더라도 걔는 저하고 같은 대학에 다니니까, 굳이 앞에서 티 내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장르의 재미와 자신의 철학을 깊이 녹여낸 그 소설은, 정말로 재밌었어요.]신의 소설은 레베카 웡의 세계를 완전히 바꾸었다.
레미 마틴의 세계를 바꿨듯이.
‘2부도 타 주(州) 출간이 막 시작되면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것을 읽은 사람들은 또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
‘Country of losers’의 후속작인 ‘Universe of losers’는 과연 사람들의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변화시킬까.
참 기대가 되었고, 그만큼 기뻤다.
한 사람의 재능 있는 작가가 외부의 사정으로 뒤틀리거나 스스로 자멸하는 것이 아니라 쭉쭉 자신의 세계를 드러내는 이 순간들이, 그녀에게 크나큰 만족을 가져다준 것이었다.
이후로 작업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12월에 들어서면서 드디어 결과가 나왔다.
“레베카 작가님의 연재가 결정됐어요.”
2학년 가을 학기를 끝마치고 돌아온 신과 만나는 자리.
사이먼은 따로 미팅이 있어 좀 늦는다 했고, 오랜만에 둘만 있게 된 상황에서 줄리아가 그런 말을 꺼내자 신은 반색했다.
“정말요?! 그 자식, 나한테는 말도 안 하더니!”
“아, 그럼 괜히 말했나 싶네요.”
“걱정하지 마세요. 걔 말할 때까지는 저도 모른 척할 테니까. 그리고 걔 성격에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해서 숨기고 있는 걸 수도 있어요.”
“후후, 실제로도 계속 걱정을 참 많이 하시더라고요.”
“다행이네요. 사이먼하고 존 쪽은 어떻게 되고 있대요?”
“아무래도 둘이 조화가 좀 안 맞는 모양이에요. 사이먼이 존을 부추기면, 정말 재미는 있는데 이해는 안 가는 그런 글을 써서 가지고 온다고.”
“······그, 그러다 또 둘이 어떻게 시그널이 잘 맞으면 확 풀리겠죠. 뭐.”
“그래요. 사이먼은 그런 편집자니까.”
옆에서 작가를 끝없이 응원해 주고 격려하는 스타일의 편집자.
작가를 분석하고 이런저런 방향으로 유도하는 줄리아와는 정반대였다.
하지만 둘 다, 작가를 생각하는 마음은 같았다.
신 역시 두 사람을 믿고 가을 학기 내내 학업과 함께 자신의 작업에 몰두해 왔다.
그리고 얼마 전, 마침내 ‘About T’를 마무리 지었다.
어마어마한 인기로 인해 하이스쿨을 넘어 대학 시절로까지 넘어간 성장의 이야기.
토니와 앨리스는 각각의 자리에서 환경의 변화와 생각의 성장으로 인해 비롯되는 여러 위기를 극복하고, 애틋한 사랑을 완성하면서 결국은 끝이 났다.
대중 소설로서 모두가 바라는 기대감을 충족시키는 한편, 신이라고 하는 작가 특유의 반전적 요소로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해 독자들에게도 크나큰 호응을 얻었다. 여전히 이다음의 이야기를 더 써 주기를 바랄 정도로.
줄리아는 그 길고 길었던 이야기의 종지부에 이런 평가를 내렸다.
“좋은 결말이었죠.”
“케이트가 울더라고요. 그 자식, 로봇인 줄 알았는데.”
“케이트면 작가님 친구?”
“네. 그리고 ‘About T’ 시리즈의 어마어마한 팬이죠.”
“드라마도 시즌 2 제작에 들어갔으니 좋아하시겠네요.”
“······제작 발표회도 다녀왔다던데.”
배우와 제작진이 함께해 대중 앞에서 공개한 시즌 2 제작 발표 행사.
두피와 참석한 케이트는 그야말로 관계자들까지 모두 그 존재를 알 정도로 ‘About T’에 대한 어마어마한 사랑을 보여 줬다는 모양이었다.
참고로 그때 신은 한창 작업과 학업에 집중하느라 참여하지 못했다.
아주 조금이지만, 두 주인공의 사랑이 이어지는 과정을 묘사하는 데에서 막힌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의외의 인기를 얻은 알렉사가 출연진 측에 포함되었다고 해서 많이 기대했는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연말부터 시작될 SF 어워즈에 대비하고, 다음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을 유지하기 위해 ‘About T’ 시리즈에서도 유종의 미를 거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도 그 덕에 작품을 잘 마무리했으니 다행이었다.
“이제 슬슬 ‘Losers’ 시리즈에 관한 각 잡지사의 평가가 나올 때죠?”
“그렇죠. 올해를 빛낸 작품 선정. 작가님. 제가 대충 전해 들었는데······.”
“아아, 말하지 마요. 괜히 기대했다가 잘 안 되면 어떻게 해요?”
“후후, 괜찮아요. 작가님. 분명 잘 풀릴 거예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웃은 줄리아가 넌지시 질문했다.
“작가님, 혹시 신작 생각은 하고 계신가요.”
“항상 하고 있죠. 그러려고 ‘About T’에 집중했으니, 이제 완전히 다른 소설로 넘어가도 되지 않을까. 문제는 어떤 소설을 어떻게 쓸지겠죠. 아직 전업이 아니다 보니, 이거다 싶은 소재가 확 와야 본격적으로 시작을 하는 편이라서요. 영감을 얻을 때까지는 사람 만나고 하면서 아이디어 정리를 하려고요.”
“어떤 소설을 쓰더라도 제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싱긋 웃으며 대답하는 신.
그리고 줄리아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작가님,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어떤 부탁이요.”
“어떤 신작을 쓰더라도 작가님의 소설로 세계를 계속 변화시켜 주었으면 해요. 지금까지 그랬듯이.”
뼈가 담긴 말을 건네는 줄리아.
그 말을 들으면서 신은 문득 이전에 그녀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자신이 처음으로 정체를 공개했던 졸업식이 끝나고 나서의 일이었다.
그때도 줄리아는 지금과 비슷한 투로 말했다.
‘앞으로도 좋은 글을 써 주세요. 단상 위에서 말했듯이.’
마치 장성한 동생을 바라보는 듯한 어조로.
아주 잠깐 입을 다문 채 생각에 빠져 있던 신은 약간 낯간지러운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저 혼자서는 할 수 없죠. 줄리아 챈들러라는 편집자가 계속 함께해 줘야지.”
“예?”
“우리는 좋은 팀이잖아요? 같이 나가서 비즈니스 미팅할 때도 그렇고, 소설 이야기 나눌 때도 그렇고. 아, 물론 사이먼까지 포함해서 세 명이 한 팀이죠. 아마 ‘A-Team’보다 저희의 팀 업이 더 죽여줄걸요?”
신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소설은 혼자 쓰는 것이 아니다.
작가에 따라 그 정도는 다르겠지만, 궁극적으로 편집자와의 공동 작업이었다.
작가는 머릿속에 떠도는 상념을 편집자에게 두서없이 말하고, 편집자는 거기에 맞장구를 쳐주면서 기획과 정리를 돕고, 더욱 깊이 있게 파고들 수 있도록, 자칫 그릇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돕는다. 심리적으로도 서로가 서로의 등대가 되어 줄 수 있다.
딱히 소설에 관한 직접적인 내용이 아니더라도, 신에게 있어 지금 이 1985년을 살아가는 줄리아의 의견은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충분했다.
이어지는 설명을 듣고 줄리아는 순간 심장이 저릿해 오는 것을 느꼈다.
자기 자신도 파악하지 못한, 지금 그녀가 가장 듣고 싶던 말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