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208)
208.
“저기, 신.”
불현듯 레베카 웡이 나를 불렀다.
“응?”
에스컨디도 초등학교에 도착해 다들 저마다 일하는 위치로 흩어지던 와중에 갑자기 이름이 불렸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니 레베카가 평소의 당당한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무척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
“괜찮은, 거지?”
“아니, 그러니까······ 뭐가?”
“저번에 어떤 초등학생 하나가 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는 모습을 봤어.”
“······.”
봤구나. 네 이놈.
“혹시, 네가 그 여학생을 심리적으로 구속했다던가 그런 건 아니지? 내가 아는 신이라면 그런 일을 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믿어.”
“롤리타를 인상 깊게 읽었구나.”
나는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레베카 웡이 걱정할 만한 일은 당연히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걱정하지 ‘않는’ 일이 벌어져서 문제였지.
“그럴 리가 없잖아. 레베카. 그럴 리가 업성.”
여전히 걱정하는 표정의 레베카를 안심시키고 뒤로 돌아선 후, 나는 다시 표정을 굳혔다.
지금의 나는 사회적인 합의가 존재하는 세계의 신이 아닌, ‘닌자 클랜’의 마스터.
그걸 소설로서 묘사하자면 이러하다.
『레베카 웡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로 돌아섰다.
‘설마, 설마. 신이 그럴 리가 없어.’
신은 좋은 친구였다. 배려심도 깊고 상냥하고 자기 주관도 뚜렷하며 글도 잘 쓰고,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헤쳐나갔다. 그런 친구가······ ‘닌자 클랜’의 마스터일 리가 없었다.
신을 아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터였다.
하지만 그 실체는 달랐다.
“훗.”
신은 미소를 지으며 걸었다. 홀을 떠나 복도로 나와 학교의 반대편에 있는, 이 세상의 온갖 오물이 다 모이는 곳(쓰레기장)으로 걸어가던 그의 옆으로 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바로 닌자였다.
쿵-쿵-쿵-쿵-!
쿵-쿵-쿵-쿵-!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빠밤-!
음험한 기운의 배경 음악이 울려 퍼진다. 닌자들이 직접 입으로 내는 소리였다. 열 명의 닌자들, 그리고 그 가장 앞에서 검은 옷과 복면을 쓴 애슐리가 마스터에게 보고를 올렸다.
“준비는 끝났습니다.”
“좋아.”
고개를 끄덕인 마스터가 손을 뻗었다.
“저열한 악을 뿌리 뽑을 시간이다.”
그리고 그들은 학교 안의 악(쓰레기)을 뿌리 뽑기 시작했다.』
“쑤레기는 다 여기 모아조!”
“응, 여기 캔 있다!”
“캔은 분리수거어-!”
“······.”
애들이 정말 귀엽군.
나는 느긋하게 자리에 서서 생각했다.
닌자 클랜을 이끌게 된 입장이 된 나는 단순히 애들이 벌이는 역할극 놀이에 어울려 줄 뿐만 아니라 이렇게 다 함께 쓰레기를 줍는다든지 했다.
그냥 한다면 노동에 불과한 쓰레기 줍기 하나도, 이런 식으로 즐거운 동기가 부여되자 다들 태도가 삽시간에 달라졌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그런 행위에 자기들 나름대로의 설정을 붙였다.
“오늘도 악을 뿌리 뽑고 있군. 후후.”
“이걸 보면 돌아가신 삼촌이 무척 기뻐하실 테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멋진 말이야.”
닌자 클랜의 아이들은 그 설정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들이 읽은 코믹스에서 인상 깊게 느낀 설정을 다수 차용했다.
일단은 가족 중 누군가가 죽어 이곳에 들어왔고, 그로 인한 슬픔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었으며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흥미롭군.’
요즘 시대의 아이들은 단순히 과거의 히어로가 보였던 ‘슈퍼’하고 ‘히어로’한 부분 대신 그들의 약점을 더 인상 깊게 읽는 듯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의 인간적인 부분, 다시 말해서 드라마라고 해야 할까? 각 캐릭터 간의 관계에도 집중하는 느낌이 강했다.
예를 들자면, ‘누가 누구와 사귄다더라.’, ‘누가 누구와 헤어졌다더라.’와 같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들 좋아할 수밖에 없는 가십거리 같은 이야기들.
그것들을 겪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왜일까?’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둔 길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것을 아이들의 기호라기보다는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코믹스 시장의 흐름에 편승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내가 의문을 갖는 지점은, ‘왜 지금 어른들은 그걸 좋아하느냐.’였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은 코믹스에 절대 빠질 수 없는 부분에도 신경을 썼다.
바로 ‘전투’였다.
“마스터! 다 주웠어요!”
“오늘도 아수크림!”
쓰레기를 다 줍고 대가를 바라는 귀여운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내 닌자 클랜의 작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돈을 쓸 각오가 되어 있었다.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지갑을 꺼내 들었다.
바로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폭죽이 우리 발밑에 떨어지더니 폭발했다.
파파파팡-!
연속해서 튀어 오르는 불꽃.
“······.”
“······.”
“커헉?!”
“끄억?!”
처음 겪는 상황이었는지 아이들은 조금 늦게 반응했다.
나 역시 이 뭔지 모를 정체불명의 폭발물에 당한 연기를 하면서 자리에 쓰러졌다.
희미해지는 정신(설정).
뒤이어 저 너머로부터 망토를 두른 히어로 여럿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는 저스티스 리그, 적을 무력화했다.”
“취이이이이······. 다들 내 수면 가스에 당했군.”
“잘했어, 배트맨. 플래시, 이들을 저스티스 리그 본부로 옮긴다.”
“알겠어!”
······갑자기 우리 닌자 클랜에 D.C. 코믹스의 영웅들이 난입했다.
“슈우우욱-! ······아, 미안한데. 잠깐 따라와 줄 수 있을까?”
입으로 뭔가 소리를 내더니, 정중하게 말하는 플래시.
위아래가 전부 붉은색 쫄쫄이라는 파격적인 복장을 한 그의 부탁에 몇몇 닌자가 어색한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쫄래쫄래 그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애슐리가 플라스틱 검에 의지해 겨우 일어섰다.
닌자로 각성한 그녀는 놀랍게도 배트맨의 수면 가스를 버텨낸 것이었다.
쓰러진 닌자들을 지키고자 저스티스 리그와 대적하려는 애슐리.
바로 그때, 뒤쪽에서 ‘푸슝-! 푸슝-!’ 하는 소리가 났다.
“이런 아름다운 여성을 괴롭히려고 하다니, 용서할 수 없군.”
젠장,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들이 닌자 클랜을 돕기 위해 참전했다!
뒤엉키는 이야기. 그 사이에서 싹트는 감정!
“캬하하하! 배리배리뱃뱃-! 마 뱃시-!”
마지막으로 ‘진정한 악’이라고 할 수 있는 빌런들까지 참전!
도대체 어디로 뒤엉켜 튀어 오를지 알 수 없는 이야기는 학교 안으로까지 확장되었다.
배트맨이 배트랭을 던지며 자신에게 유리한 장소를 찾아 도주하고, 아이언맨이 그 뒤를 ‘푸슝, 푸슝.’ 하며 쫓아가는 가운데, 나는 아이들을 따라 움직이면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닌자 클랜과 D.C.와 마블의 슈퍼 히어로, 각 빌런은 최강의 적을 마주했다.
“······너희들 거기서 뭐하니? 신, 너는?”
바로 사상 최흉의 악당, 스탠퍼드 대학교의 갤럭투스.
케이트 무어였다.
“윽······! 저 거대한 건 뭐지?!”
“제기랄, 너무도 거대하군!”
“Language!”
말조심하라며 주의를 주는 케이트 무어.
그 앞에서 각 히어로 연합이 뭉쳐 대치했고, 지금 상황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 케이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가까이 다가왔다.
저벅, 저벅.
그녀가 걸을 때마다 그 무시무시한 발걸음에 대지가 진동했고, 히어로, 빌런, 닌자들은 공포에 질리고 말았다.
“안되겠어. 방금 나쁜 말 쓴 애 나오렴. 선생님께 데려가야겠어.”
나쁜 말을 쓴 사람은 바로 배트맨이었다.
형언할 수 없는 거대한 악(케이트 무어)을 앞에 둔 그는 태어나 최초로 공포를 느꼈다. 하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함께해 온 동료들은 물론이고, 그동안 싸워온(10분) 적들마저도 배트맨을 지켜주려는 가운데, 앞으로 나선 캡틴 아메리카가 방패(종이로 제작)를 들고 외쳤다.
“Avengers assemble!”
[Waaaaaaaaagggghhh-!!]달려드는 히어로&빌런&닌자 연합.
하지만 이어지는 케이트 무어의 일갈.
“조용히 해! 학교 안이잖니!”
다들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크윽,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힘이······!”
다들 절망에 빠져 무너지려던 바로 그때.
‘내 차례군.’
나는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신?”
고개를 갸웃거리는 케이트. 그 앞에서 나는 수신호를 보냈다.
[애들 노는 거야. 적당히 좀 맞춰줘. 데리고 나감.]“손짓으로 뭐라는 거야?”
“······.”
전혀 통하지 않았다.
***
잔뜩 혼만 나고 내쫓긴 아이들.
배트맨이 무력하게 케이트 무어의 손에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배트맨을 구출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모두가 패배 속에 배우고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끝나는 이번 이슈······.
‘아니, 그런데. 어차피 그냥 혼 좀 나고 풀려나는 거 아닌가?’
사소한 의문을 느끼면서 스탠퍼드로 돌아오던 차 안.
조수석에 앉은 케이트 무어가 물었다.
“도대체 아까 그건 뭐야?”
“아, 그냥 학교 애들 역할 놀이하는데 어울려줬을 뿐이야. 슈퍼 히어로, 빌런, 닌자 연합까지. 세 팀이 치열하게 싸우다가 오늘은 케이트 무어의 제재에 당하고 말았지.”
“그게 그런 거였어?”
뒤쪽에서 불쑥 고개를 내미는 레베카.
“그럼 그때 여자애가 네 앞에서 무릎 꿇은 것도?”
“아, 그건.”
“여자애가 무릎을 꿇었다고?!”
케이트와 존이 앞뒤 맥락이 전혀 없는 이야기를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고개까지 조아리던데.”
“······애가 나를 닌자라고 착각해서 기술을 가르쳐달라고 했을 뿐이야. 그러다가 다른 애들하고 엮이면서 이렇게 됐지.”
“푸하하하! 그거 진짜 장난 아니다! 대박인데?!”
존이 웃음을 터뜨리더니 나를 또 숭배했다.
“역시 신이야. 어디를 가던 주목을 받는군.”
“이상하게 그런 식으로 된단 말이지.”
케이트 무어조차 납득했다.
뭐, 나도 신기한 흐름이라고 생각은 했다. 애들 노는 중에 내가 끼어들어서 뭔가 이야기가 막힐 때마다 그 부분을 푸는 데 도움을 주고 있으니까.
이것도 다 작가의 기술이려나.
어쨌든 일이 이렇게 밝혀진 이상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너희들도 좀 이질적인 옷 입고 노는 애들 마주치면 너무 이상하게 보지만 말고 좀 맞춰 줘. 어차피 우리야 봉사 활동 겸해서 왔으니까 애들하고 노는 게 많은 경험이 되어 주겠지.”
실제로 나 역시 이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슈퍼 히어로의 존재를 느끼고 있는지 확실히 느꼈고 말이다.
내 말에 제각각 다른 대답이 나왔다.
먼저 존.
“좋아. 좋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둘게!”
그다음으로 레베카.
“응, 분명 많은 경험이 되겠지.”
마지막으로 케이트.
“싫은데. 아무리 그래도 규칙은 지켜야지.”
“······.”
아무래도 역할 놀이를 하는 친구들에게 복도는 끔찍한 지역이 될 것 같다.
그런 식으로 나머지 세 사람에게도 지금 상황을 충분히 전달하고 부탁까지 한 다음, 나는 중간에 식당을 들러 다 함께 저녁을 먹고 나서 레베카와 케이트를 여자 기숙사 앞에 내려주고 존과 기숙사로 돌아왔다.
“푸하아, 피곤하네.”
하루종일 초원을 달린 기린처럼 곧바로 침대 위에 뻗는 존.
“그러게. 오늘은 특히나 더······.”
적당히 대답하며 재킷을 벗던 나는 책상 위에 택배가 있음을 발견했다. 최근 기숙사에 도난 이슈가 좀 있어서 기숙사 리더가 책임지고 직접 가져다 놓은 듯했다.
“택배 시켰어?”
“아니, 아. 사이먼이 보냈네.”
“사이먼?! ······내일까지 작업물 드리기로 했는데.”
“힘내라고.”
가볍게 웃으며 돌아보자 앓는 소리를 낸 존이 다시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가 책상에 앉아 타자기를 아무 의미 없이 탁탁,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사이먼으로부터 온 택배를 뜯었다.
“호오.”
“뭔데, 뭔데?”
내가 안의 내용물을 보고 감탄사를 내뱉자 순간 먹기 좋은 나뭇잎을 발견한 기린처럼 달려오는 존.
상자 안에 있던 건 코믹북이었다.
그것도 현 시점에서 어마어마한 화제가 되고 있는 코믹북.
바로 ‘다크나이트 리턴즈’.
어두운 밤, 하얀 번개가 표지 위를 삭 가르고 어디론가 날아차기를 하려는 듯한 주인공, 배트맨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흥미를 느끼며 책을 꺼내 들자 그 아래에 있던 사이먼의 쪽지가 또 눈에 들어왔다.
[연락 바랍니다.]‘갑자기?’
평소에 일이 있으면 기숙사 쪽으로 연락해 왔을 사이먼인데, 다크나이트 리턴즈와 함께 연락해 달라는 쪽지를 보내다니. 어딘가 극적인 연출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옆에서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짓는 존 스미스에게 일단 ‘다크나이트 리턴즈’를 건네주었다.
“읽어 봐. 진짜 좋은 책이니까.”
“오케이!”
녀석이 신이 나 책을 가지고 돌아갔고 나는 기숙사를 빠져나와 공중 전화로 향했다.
그리고 이제는 더없이 익숙한 나의 회사, 하드보일드 퍼블리셔로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철커덕.
[네, 하드보일드 퍼블리셔입니다.]“웬 택배에요?”
사이먼의 목소리임을 알아차린 나는 인사를 생략하고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니 반대편에서 환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작가님! 전화 기다렸습니다.]“다크나이트 리턴즈라니. 기대해도 되죠?”
[물론이죠. 제가 상당히 공을 들인 연출이었습니다.]그리고 이어진 사이먼의 말은 순간 내게 헛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D.C. 코믹스에서 작가님께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같이 일하고 싶다.’라더군요.]‘다크나이트 리턴즈’, 그리고 ‘왓치맨’. 슈퍼 히어로의 이야기를 조금 더 딥한 세계로 인도한 두 작품을 발매했을뿐더러, 그 외에도 ‘슈퍼맨’이나 ‘원더우먼’을 비롯한 수많은 슈퍼 히어로 프랜차이즈를 만들고 미래까지도 유지하고 있는 미국의 양대 코믹스 회사.
‘이거 상황이 너무 좋은데.’
어쩌면 신작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비즈니스로 갈 수 있을 듯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