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21)
21.
늦은 밤, 시 외곽의 다이너 식당 안에 두툼한 곰 같은 남자 넷이 모였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미시간까지 다녀와야 하는 장거리 운행에 앞서, 친하게 지내는 트러커끼리 안전 운행을 기원하는 의식 같은 만남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거기에다 또 하나의 목적이 존재했다.
합계 체중 500kg에 육박하며, 팔뚝에 해골과 불꽃 문신을 새긴 그들은 남자답게 채소 따위는 메뉴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거친 요리사의 손길로 구워낸 반쯤 탄 팬케이크와 두껍고 기름진 베이컨, 각자의 취향에 맞춘 달걀 요리, 후식으로는 목젖까지 뜨겁게 적셔주는 드립 커피까지.
쩝쩝거리며 아무 말도 없이 음식을 먹는 매쉬비어드 알. 수염에 메이플 시럽을 잔뜩 묻힌 채였다. 참고로 말하자면, 묻은 메이플 시럽은 이따 운전하면서 졸릴 때 딱딱하게 굳은 수염을 빨아서 먹어 치울 예정이었다.
항상 뭐든 빨라서 ‘패스티스’라 불리는 사내가 음식을 가장 먼저 해치우고 입을 열었다.
“개당 10달러.”
“말도 안 되는 가격이군.”
그 질문에 대답한 건 패스티스의 반대편에 앉은 ‘빅 호크’였다. 실제로 이름이 호크는 아니었지만, 트러커인 주제에 모히칸 헤어를 하고 다녀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 모히칸인데 어째서 호크가 되었는지는 이 네 사람 중 누구도 알지 못했지만.
“그러면 꺼지시던가.”
“차라리 빅 존에게 가겠어.”
“빅 존? 그 멍청이가 제대로 일 처리를 하겠어?”
“너는?”
“나 몰라? 난 뭐든 최대 속도로 확실하게 해내는 남자야. 애도 열네 살 때 낳았지.”
“마누라랑 떡칠 때도 빨라서 문제지.”
“닥쳐. 훌리건.”
마찬가지로, 이 남자도 왜 ‘훌리건’으로 불리는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넌 어때. 매쉬비어드. 10달러.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보나?”
“······나는 내겠어.”
뜨거운 커피로 목젖을 덥히며 새어 나온 알의 대답에 호크와 훌리건이 경악했다.
“말도 안 돼!”
“Bullshit! 네가 이렇게 넘어가면 우리는 어쩌라고!”
“미안해.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이유가 대체 뭔데?!”
“내가 그 방송으로 목숨을 건졌거든.”
“엉······?”
“졸음운전으로 갈 뻔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지. 수지수지수지, 하는 그 부분.”
“아, 그 부분. 죽여줬지.”
“나도 운전하면서 듣는데 소름이 쫙 돋더라니까.”
“그래서 이해하기로 했어. 저 빌어먹을 패스티스 놈이 10달러를 받는 걸.”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하잖아?”
“그러면 중간 부분을 안 들을 거냐? 우리가 미시간에 다녀오는 동안 ‘Mother’는 계속될 텐데?”
“그건 못 참지. 젠장. 언젠가 네가 빨리 뒤지길 기원하마. 패스티스.”
“그래, 좋은 말 고맙군.”
낄낄 웃는 패스티스.
나머지 세 사람이 없는 사이에 스푸키 라디오에서 방송해주는 ‘Mother’를 녹음해서 팔아먹을 생각에 신이 난 그는 베이컨 세 장을 추가로 주문했다. 그로써 누적된 내장 지방은 그의 수명을 이틀 정도 깎아 먹었지만, 당장 본인이 행복하니 별문제는 없었다.
한숨을 내쉰 매쉬비어드 알이 입을 열었다.
“대신, 녹음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네 트럭의 주유구를 박살 내겠어.”
거기에는 다소 진심이 담겼다.
그는 그 정도로 이 ‘Mother’에 진심이었다.
그리고 이 네 사람을 포함해, ‘스푸키 스토리즈’를 듣는 모든 이가 하는 생각이었다.
***
주말 예배를 마치고 어머니와 함께 집에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신아.”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자 김 목사의 모습이 보였다.
“네, 목사님.”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을까? 성도님, 괜찮을까요?”
“아, 네. 물론이죠. ······신, 엄마는 차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살짝 걱정 섞인 표정으로 돌아서는 어머니.
무슨 일 때문에 부른 건지는 대충 예상되었다.
‘내 소설 때문이겠지.’
나는 딱히 긴장하지 않은 채 김 목사의 뒤를 따라 걸었다.
예배당 안쪽의 개인실로 나를 데리고 간 그는 평소 좋아한다고 밝혔던 캐모마일 티를 깔끔한 찻잔에 따라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게 따로 언급은 안 했던 것 같은데. 네 소설 잘 읽었다.”
“감사합니다.”
“라디오 드라마도 잘 듣고 있고.”
“방송국에서 잘 만들어줘서 저도 기쁘네요.”
나는 막힘없이 대답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Mother’의 라디오 드라마는 확실히 좋은 반응을 얻었다.
PD 도리안이 나와 사이먼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준 덕에, 좋은 성우와 좋은 연기, 생생한 효과음과 음산한 음악까지 더해져 더 생동감 넘치는 버전의 ‘Mother’가 되었다.
그만큼 상상하는 맛은 줄어들기는 했지만, 일종의 홍보가 되어 뒤늦게 재연재를 따라붙은 이들에게서 다시금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있을까?”
“한인 사회에서 제가 지닌 처지와 거기에서 확장시킨 상상을, 수지라는 캐릭터를 통해 드러냈습니다. 어디까지나 장르 소설이라고 하는 틀 안에서요.”
“······후우.”
한숨을 내쉰 김 목사가 담배를 꺼내려다 멈칫했다.
“세 가지 이유에서 놀랐다.”
“네.”
“하나는 내가 그토록 장르 소설에 관해 지적했음에도, 네가 장르 소설을 보는 걸 넘어서 직접 쓰기까지 했다는 사실이고. 두 번째는 내가 그토록 경계했음에도 사람들이 네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점. 마지막은 무엇일 것 같니? 한번 맞춰보련?”
“설마 목사님도 재미있게 보셨나요?”
“Touche.”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마는 김 목사.
툭 튀어나온 ‘한 방 먹었군.’이라는 표현에 나도 따라서 웃었다. 지금 상황에 맞게 의역하자면, ‘판사님도 웃으셨잖아요.’에 가깝지 않을까.
“딸아이가 하도 난리여서 읽어봤는데, 이만하면 볼 만하더구나. 아니, 정말 재미있었어. 밤 중에는 짧게 기도를 하고 나서야 화장실에 갈 수 있을 정도로.”
“감사합니다.”
“네가 종교와 마더에 대해 묘사한 방식이 살짝 마음에 걸리기는 하는데······ 아예 실제와 딴판이니 볼수록 헛웃음이 나왔지.”
“그 역시 의도한 부분이죠.”
작중 사이비 종교와 연결시킨 동양적 색채는 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한인 문화일 뿐 실제 한인 교회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것. 플롯 단계에서부터 꽤나 중요하게 여긴 부분이었다.
내 신념에 따라, 내가 작가라는 것을 감추고 살 생각은 없었으니까.
“소설을 읽고 코리아타운에 갈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들더구나.”
“어떤 기분이요?”
“이 소설은 ‘그들’을 Touche하게 만들었어.”
여기서 말하는 ‘그들’이 누구인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우리’와는 다른 인종들.
“그들이 우리가 사는 지역에 와서 순두부찌개를 먹고 입술이 벌게져서 돌아가는 걸 보면, 왠지 모르게 고조되는 기분이야. 목사로서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같은 기분이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한인 사회의 사람들이 ‘Mother’를 받아들이는 이유도 사실 거기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이유야 어쨌건, 나는 ‘우리’만이 향유하는 문화를 그들에게 보여주며 호기심을 느끼게 했다.
누군가는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 한국계 미국인을 무서워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별건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건 무관심이다.
지금 나와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욱 큰 관심이었고.
좋은 반응을 듣고 싱글벙글 웃는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 김 목사는 이런 말을 남겼다.
“앞으로 좋은 작품 많이 써줬으면 한다. 되도록이면 덜 악마적인 걸로.”
“목사님, 악마가 나온다고 해서 악마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것도 맞는 말이구나.”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김 목사.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Touche.’
깔끔하게 한 방 더 먹였다.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김 목사까지 인정해?’
장르 소설은 사회악이라면서 성도들에게 설교할 정도였던 그가 말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의 입장을 달갑지 않게 여기면서도, 거기에 반발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그마저 장르 소설을 읽도록, 인정하도록 만들었다. 심지어 굉장히 신성모독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글을.
하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시대에서 미국의 한인들은 신념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달리 말하자면 억척스러움이다. 다들 열심히 교회에 나가지만, 따지고 보면 미국 사회에 적응하고 속하려 하는 발버둥의 연장이었다. 오직 독실하기만 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굳이 따지자면 대부분 예수님의 ‘팬’에 가깝겠지.
그러니 내가 이곳의 문화를 비틀어 글을 써도 미국인들에게 좋은 호응을 끌어낸 이상, 이 상황을 두고 ‘신성모독’이라 생각하기보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덕에 신이가 좋은 글을 써서 한인 사회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크게 기여했습니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다들 화끈하다니까.’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그런 김에, 신아. 너를 만나고 싶어 하는 분이 계시다. 내가 안 된다 안 된다 그렇게 거절했는데, 거의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로 부탁을 해오셔서 말이야.”
“예?”
갑작스러운 김 목사의 이야기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쪽이 본제인 듯했다.
“여기 나성(LA)에서 작게 사업하시는 분인데, 네가 만나 뵈면 좋을 것 같아서.”
슬쩍 일어선 김 목사가 문을 열었고, 그 뒤에서 기다리던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깔끔한 인상에 정장을 차려입은 중년의 동양인 남성.
“안녕, 네가 신이구나.”
“······안녕하세요?”
“아저씨는 토니 정이라고 한다. 만나서 반가워.”
“아, 예.”
나는 살짝 경계하면서도 한국식의 예의를 차렸고, 토니 정은 명함을 한 장 내밀었다.
그걸 본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라이언스 테일 출판사’.
“만나자마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웃기긴 한데······.”
“출판사 사장님이셨군요.”
“바로 맞췄구나.”
“사자의 꼬리라니. 기발한 작명이네요.”
“용기를 내어 사자의 꼬리를 쥐는 자만이 기회를 쟁취할 수 있지 않겠니?”
“맞는 말씀이시네요.”
“우리 신이가 좋은 작품을 써서, 이 아저씨가 책으로 내고 싶어서 찾아왔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였다.
거기다 우리 신이라느니, 아저씨라느니.
슬쩍 옆을 돌아보자 김 목사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은 채 우리 이야기를 경청 중이었다.
‘이 양반들.’
이래서 내가 한인 사회에 진짜 독실하기만 한 신도는 없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들의 신앙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한인 특유의 기질, 연을 중시하며 억척스럽게 뻗어나가려고 하는 의지가 그만큼 컸다.
“그래요? 계약서부터 볼 수 있을까요?”
“으, 응?”
“계약서요. 작품 계약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 그건 그렇지. 그런데 일단, 아저씨는 신이 상황이 듣고 싶어서 말이야.”
“아, 그러셨구나.”
나는 슬쩍 ‘꼬리’를 내리는 토니 정의 모습에 경계를 약간 풀었다.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아 해가 바뀌었어도 나는 여전히 열여섯, 한참 어린 나이다. 자칫 우호적으로만 나갔다가, 이 한인 사회에서 나이가 어리다면서 ‘후려치기’를 당할 공산이 컸다.
물론, 호락호락 당해주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확실히 알려줘야지.’
내가 그럴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단 계약된 출판사는 없어요.”
“그, 그래?”
“지금 계약 조건을 말씀하시기 힘들다면, 계약서에 적어서 우편이나 팩스로 전해주시면 검토해보겠습니다. 통화 원하시면 오후 4시부터 10시 사이에 한씨네로 주시면 되고요. 감사합니다. 어머니가 차에서 기다리셔서 더 할 말 없으시면 먼저 일어나도 될까요?”
최대한 예의는 차리면서 내 의사는 확실히 전달한다.
전생에 교사로 근무하면서 깨달은 나름의 처세였다.
“그, 그래. 어, 음.”
버려진 리트리버 같은 표정을 짓는 토니 정을 뒤로한 채,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
그로부터 며칠 뒤, 가게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고음에 귀가 살짝 울려서 전화기를 귀에서 뗄 수밖에 없었다.
“누구······?”
[아, 죄송해요. 저는 라이언스 테일 출판사와 함께 일하고 있는 줄리아 챈들러라고 해요. 혹시 통화 괜찮으실까요?]“예, 괜찮습니다. 그런데 함께 일하고 계시다는 건······.”
[제가 사실은 신문사 기자로 근무하고 있거든요. 말씀드렸다시피 라이언스 테일 출판사와는 협력 관계에 있는데, 대표님이 어떤 식으로 계약을 진행해야 할지 잘 감이 안 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직접 전화를 드리게 된 거죠.]설명을 들은 나는 잠깐 고민에 빠졌다.
‘신문사라고?’
이때 당시 출판사가 어디 신문사에 잘 빨대(?)를 꽂아 괜찮은 작품을 타 먹는 일이야 흔한 일이었으니 납득은 됐지만, 아직도 의문인 점이 많았다.
“챈들러 씨.”
[편하게 줄리아라고 불러주세요. 제 성을 안 좋아해서.]“그럼, 줄리아. 어디 신문사 소속이시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요.]“······.”
[그리고 이전에는 토런스 뉴 미디어에서 근무했죠.]이야기가 묘하게 흘러간다는 느낌에 나는 바로 되물었다.
“혹시, 사이먼이 말하던 선배 기자 분?”
[네, 그게 저예요. 사이먼이 그렇게 작가님 정보를 숨기려 들어서 뭔가 싶었더니, 이렇게 나이가 어리신 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네요. 아, 혹시 이 말이 실례였다면 미리 사과드릴게요. 다른 의미는 없었어요.]“아닙니다.”
나는 짧게 대답한 뒤, 잠깐 생각에 잠겼다.
이전 라디오 계약 때 사이먼이 말했던,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근무 중인 선배에 대해 흥미를 느낀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다음 연재작 계약금을 잘 따내기 위해서는 내세울 만한 무기가 많을수록 좋았고, 데뷔작의 선전에 이어 다른 파이프의 존재가 페이 협상에 간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이먼이 아니라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 적당히 넘겼던 토니 정을 타고 그 선배 기자와 연결되다니.
‘세상일 참 모르는 법이군.’
뜻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어진 인연이었지만, 나는 기껍게 웃었다.
“줄리아.”
[네, 작가님.]“한번 뵙고서 이야기 나누고 싶은데, 혹시 시간 괜찮으실까요.”
나는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하드보일드 나인 싸우전드 타자기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사이먼이 보면 기겁할지도 모르겠군.’
그 옆에는 ‘Mother’ 2부의 완성 원고가 쌓인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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