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212)
212.
기말고사를 치르는 것으로 2학년 겨울 학기를 끝마친 뒤, 나는 캘리포니아로 돌아왔다.
‘시간 참 빠르군.’
소설과 공부, 거기에 펄프 픽션 클럽 활동과 연애, 우정, 효도(?)까지.
그동안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아, 잠도 줄여가면서 열심히 살아왔고, 이제야 막 20대에 들어선 몸은 여전히 며칠 밤을 새워도 멀쩡했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꾸준히 체력을 길러 둬야 한다는 사실에서 눈을 돌릴 수 없었고, 나는 운동까지 병행해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지막지하게 싫었지만.
대학에서는 아침에 눈이 떠지면 하고 아니면 안 하는 식이었지만, 캘리포니아로 돌아온 후에는 억지로라도 운동할 계기를 만들어야겠다 싶어 지우에게 아침마다 함께 러닝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알렉사로부터 긍정적인 영향을 흡수해 흑마술사에서 러너로 전직해 있었는지, 지우는 마침 반가운 말이라면서 내게 아침마다 함께 러닝하자고 화답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깨달았다.
“신 오빠! 일어나요! 나가야죠!”
상대의 기상 시간을 고려해야 했는데.
오늘도 새벽 여섯 시였다.
“끄으응······.”
“아침 해 벌써 떴어요!”
“조금만, 더어······.”
“안 일어나면 물 끼얹을 거예요?”
“언제 수속성 마법사로 전직했니······.”
“뭐라는 거람. 빨리 일어나요!”
에너지 넘치는 햄스터, 지우 장을 위해 나중에 쳇바퀴라도 사줘야겠다고 다짐하는 나였다.
나는 반쯤 쫓기듯 일어나 벌써 러닝화까지 신은 지우를 보며 크게 하품한 뒤, 일단 내보내고 대충 옷을 갈아 입었다. 의욕을 불태우고자 장만한 운동복과 신발을 장착하고 나가자, 그제야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지우가 기운찬 발걸음으로 우다다 계단을 내려갔다.
우리는 이른 아침부터 동네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정신이 돌아왔다.
‘참 이상하단 말이지.’
시작하기 전까지는 좀 죽고 싶었는데, 막상 달리기 시작하자 정신이 돌아오면서 상쾌한 아침 공기에 기분이 좋아졌다.
잔뜩 신이 난 듯 앞장선 지우의 뒤를 따라 느긋하게 뛰다가, 땀이 나기 시작하자 조금씩 속도를 높여 지우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러닝은 대략 30분에서 1시간 사이로 끊어서 동네를 크게 한 바퀴 돌아 공원을 찍고 돌아오는 정도로 하기로 했다.
한인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라 이따금 아는 분을 만나기도 했고, 모르는 분과 눈이 마주치더라도 아침 일찍 일어난 사람 간의 유대감이 존재하는 법이라 서로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그러던 중, 지우가 해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신 오빠가 체력은 좋네요.”
“그래?”
“네, 지금 꽤 빨리 뛰고 있는데 안 지치고 계속 따라오잖아요.”
“몸이 젊어서 그런가······.”
“음?”
“아냐. 아냐.”
나는 가볍게 손사래 쳤다.
확실히 일주일 정도 지나니까 이전보다 체력이 붙는 것이 느껴지기는 했다.
앞으로도 지우의 도움을 받아서 운동 습관을 더 길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뛰었다.
이렇게 아침마다 운동하면서, 우리는 그동안 모르던 서로의 근황을 자주 이야기했다.
“수업 따라가기가 요새 점점 버거워져서 큰일이에요.”
“잘할 수 있을 거야.”
“······왠지 영혼이 점점 없어지는 기분인데. 아하, 지치고 있구나.”
“아니거든.”
“좀 더 뛸까요?”
“이따가 쳇바퀴 사줄게. 좀만 페이스 맞추자.”
“쳇······?”
“농담이야. 농담.”
“오빠는 학교 다닐 만해요?”
“딱히 어렵지는 않은데.”
“우와, 방금 좀 재수 없었음.”
눈을 가늘게 뜨는 지우.
하나로 묶은 머리의 꼬리가 좌우로 요동쳤다.
잠시 후 반환점인 공원에 도착해 지우와 나는 잠깐 식수대에서 물도 마시고 하며 휴식을 취했다. 이제 돌아가기만 하면 끝이라는 생각에 애써 웃고 있자, 내가 제대로 숨을 고르기도 전에 지우가 먼저 쌩 앞으로 달려 나갔다.
“어서 돌아가죠!”
“······.”
무서운 녀석.
“이 정도 쉬셨으면 괜찮죠?”
“그럼~ 물론이지.”
하지만 지우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나는 이를 악물고 달렸다.
지우와의 토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신작 준비는 잘 되어 가세요?”
“어제 기획서 완성해서 넘겼어. 반응 보고 작업 시작해야지.”
“슈퍼 히어로물이라고 하셨죠? 기대되네요. 저는 오빠가 쓰는 슈퍼 히어로물의 주인공이 스파이더맨처럼 친근한 인물이면 좋을 것 같아요.”
“뭐, 확실히 그런 인물이기는 하지.”
‘쿵-퓨리’의 주인공인 조는 처음부터 ‘슈퍼 히어로’라기보다는 그렇게 되어가는 인물로 그려질 예정이었다. 그렇기에 사람에 따라서는 ‘슈퍼 히어로’로 구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이자 국가의 실험으로 인해 탄생한 초인 병사였던 남자.
하지만 그런 초인조차 버티지 못할 정도로 전쟁은 참혹했다.
사망에 이르러도 안식에 이르지 못하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자신의 힘에 의지해 빗발치는 화력과 폭력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그는 전쟁의 트라우마로 인해 고국에서 보장된 영광을 등지고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그런 몇 가지 ‘특별한 점’으로 인해 조는 코리아타운에도 섞이지 못했고, 그렇다고 일반적인 미국 사회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다 만난 것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시푸지.’
쿵푸 도장을 경영하는 그에 대한 설정을 아직 제대로 풀지 않았지만, 사실 그 역시 중국계 미국인과는 딱히 사이가 좋지 않은 캐릭터였다.
두 사람은 이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살아남고자 다른 인종이 가진 동양에 대한 환상을 이용했고, 그 과정에서 조의 능력 일부를 알게 된 시푸가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하면서 쿵푸 도장은 점점 번영한다.
그러다 또 다른 슈퍼 히어로가 나타나면서 이야기는 점점 앞으로 나아간다.
‘어서 D.C. 측에서 답변이 왔으면 좋겠군.’
공동 작업인 만큼 그쪽의 답변을 듣고서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 맞을 듯해서 아직 기다리는 중이었다.
안 그래도 새로운 장비로 인해 작업 속도가 월등히 상승한 터라, 빨리 작업하고 싶었다.
그렇게 지우와 집으로 돌아와 씻고 어머니가 준비한 아침을 흡입한 뒤, 나는 방으로 돌아와 잠깐 휴식을 취했다.
아침부터 달린 것 때문인지, 혹은 식곤증 때문인지 조금 졸음이 몰려오는 것 같았으나, 기껏 일찍 일어났는데 굳이 루틴을 망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느긋하군.’
그동안 이래저래 바쁘게 지내 왔기 때문일까.
온갖 코믹북 포스터가 붙은 레트로한 분위기의 방에서 한가롭게 싸구려 잡지를 읽는 이 시간이 너무나도 좋았다.
그러다 불현듯 생각이 나, 전생에 항상 틀어박혀 책을 읽던 벽장이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이제는 그냥 피식 웃으며 넘겨버렸지만.
그렇게 점심쯤 되었을까.
똑똑.
노크 소리에 고개를 든 나는 대답했다.
“네.”
[오빠, 전화 왔어요.]“아,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싱긋 웃은 채 나는 현관에 설치된 전화기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작가님, 사이먼입니다.]역시나 예상했던 대로였다.
하드보일드 퍼블리셔의 대표이자 내 담당 편집자이기도 한 남자, 사이먼 카버.
그는 내가 계속해서 기다리던 소식을 전해주었다.
[D.C. 코믹스로부터 답변이 왔습니다.]“뭐라고 하던가요?”
[다 좋은데 주인공이 ‘자살’한다는 부분은 좀 빼주실 수 있냐고 묻던데요.]“심의 때문에요?”
[아무래도 자살은 굉장히 금기시되는 행동 아닙니까.]“······잉?”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이런 답변을 받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애초에 코믹스에서 묘사되는 살인부터가 금기시되는 행동 아닌가?’
D.C. 코믹스가 어떤 회사인가.
거의 100년 가까이 히어로 코믹스를 팔아먹기 위해 온갖 막장 이야기를 ‘평행 세계’라는 설정 하나로 다 틀어막는 회사였다.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죽는 스토리가 넘쳐나고, 히어로가 좀비가 되지를 않나, 악당을 만들지를 않나, 감금에 폭행에 온갖 소재를 사용하지 않았나.
“사이먼 생각은 어때요?”
[저도 사실, 조금 가벼이 쓰이지 않았나 싶기는 합니다.]“흠······.”
그 말을 들은 나는 잠깐 고민했다.
그래, D.C. 코믹스로서도 그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았을 리는 없었다.
잠깐 전화기 줄에 손가락을 걸어 빙글빙글 꼬면서 고민하던 나는 고민해 보고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2층으로 단숨에 뛰어 올라가 인쇄해 둔 원고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주인공이 ‘자살’을 통해서 다시 삶을 거슬러 올라가는 부분은 그가 ‘과정’을 원하는 만큼 반복할 수 있으며 그 끝에 ‘결과’를 쟁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었다.
하지만 지적을 받고 다시 읽어보자, 확실히 지금 시대에는 좀 이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1986년이니까.’
후반부에 펼쳐질 이 작품의 드라마를 구성하기 위해 넣은 설정이기도 했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니 굳이 초반부부터 ‘자살’을 넣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래, 오히려 주인공이 ‘자살’하지 않는 것이 후반부를 위해서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후, 나는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사이먼에게 전화를 걸었다.
‘슬슬 내 방에도 따로 전화기를 두든가 해야지.’
수화기에서 신호음이 울렸고, 곧 미스 브라운을 거쳐 사이먼 카버와 연결이 되었다.
[아, 작가님. 생각 좀 해보셨나요?]“네, 저도 다시 읽어보니 자살 설정은 마지막을 위해서 아껴두는 편이 좋을 것 같네요.”
[······어, 마지막에는 들어간다는 말이죠?]“거기에서 나오면 제아무리 깐깐한 D.C. 코믹스 편집자라고 하더라도 뭐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요.”
사이먼에게는 미리 작품의 전반적인 플롯을 공유해 둔 터라, 나는 편하게 이야기했다.
그 말에 고민해 보던 사이먼이 이내 감탄했다.
[아, 확실히. 아, 아아······! 그거면 진짜 죽여주는 스토리겠는데요?!]“후후, 이 부분은 아예 원고로 작성해서 D.C. 코믹스에 보여 줄까 싶네요.”
[거기까지 쓰려면 분량이 상당할 텐데 괜찮으시겠어요?]“그야 물론이죠.”
나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나의 새로운 장비와 함께라면 못 할 것도 없었다.
***
작가가 글을 쓰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커다란 틀을 정해놓고 거기에 맞춰서 글쓰기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글이란 것이 사람의 인생처럼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뭐, 그편이 즐겁기도 하고.’
D.C. 코믹스와 하드보일드 퍼블리셔의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슈퍼 히어로물, ‘쿵-퓨리’는 소설과 코믹스라는 두 가지 형태로 출간될 예정이었다.
지금 시대에 장르적으로는 딱히 메이저 하지 않은 슈퍼 히어로 ‘소설’과, 그것을 원작 삼아 제작되는 슈퍼 히어로 ‘코믹스’.
예상보다 스피디한 회의 끝에, 두 회사는 내게 이 작품을 각각 ‘단행본’과 ‘코믹북 이슈’라는 형태로 발간하자고 제의해 왔다.
소설 쪽은 단행본 단권 구성에, 코믹스는 이슈 10개를 하나로 묶어서 총 4개의 볼륨.
다시 말해 소설은 한 권으로 끝이 나지만, 코믹스의 경우 코믹북 이슈가 한두 주마다 한 권씩 꼬박꼬박 나온다면 완결까지 1년 전후가 걸리는 대장정이 된다. 그리고 출간 이후에는 독자 반응에 따라 이 작품의 캐릭터들이 D.C. 코믹스의 메인 유니버스에 편입할지 말지를 결정할 예정이었다.
‘소설을 읽은 독자들이 자연히 코믹스를 찾는 구조로 따라올 것이다. 그 반대로도 마찬가지일 테고.’
바로 그것이 그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
소설과 만화는 서로 같은 이야기를 글과 그림이라는 서로 다른 형태로 표현하는 매체였다.
둘 다 저마다의 장단점이 있으며, 그 둘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소설은 결말까지 읽더라도 오직 독자의 ‘상상’에만 의존해야 하나, 코믹스는 그렇지 않았다. 주인공의 생김새, 슈퍼 히어로로서의 복장, 특정 상황에서의 행동을 직접 그림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은 소설이 가지지 못하는 만화만의 장점이었다.
반면, 만화는 소설처럼 섬세한 묘사가 불가능했다. 그러려면 쓸데없이 지면을 낭비해야 할 때가 많았다. 그렇기에 맥락을 표현하는 데 능숙해졌고, 이를 ‘연출’이라고 불렀다.
‘서로 표현 방식이 다르니, 접근 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지.’
소설을 쓸 때 일부러 묘사를 생략해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듯이, 만화도 컷과 컷 사이에 벌어진 일의 속도감을 조절하는 기술이 존재했다.
그로써 나오는 결론은, 결국 예술이란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의 감정과 상상력에 의존하는 점이 크다는 사실이었다.
‘자살’에 대해 D.C. 코믹스나 사이먼이 우려를 표현한 부분도 그와 비슷했다.
지금으로부터 먼 미래에는 ‘회귀하는 주인공’이 ‘자살’이라는 수단을 선택하는 것은 딱히 엄청나게 지탄을 받을 만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주인공의 독기를 표현하는 설정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지.’
죽음이라는 과정을 통해 시간을 되돌아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설정이 클리셰의 하나로 정립되지 않은 시대였기에, 그 과정을 천천히 설명하면서 드라마로 써먹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지금 시대에 사는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은 셈이군.’
동시에 나 자신의 변화가 좀 웃기기도 했다.
전생에 겪었던 ‘데드맨즈 헤븐’의 일로 인해, ‘Mother’를 쓸 때만 하더라도 누가 내 소설을 터치한다는 사실 자체에 굉장한 거부감을 느꼈다. 그런데 지금은 그와 반대로 다른 사람이 낸 의견을 곱씹어 보고 내 나름의 방식으로 소설에 적용하고자 하고 있으니 말이다.
D.C. 코믹스는 자살이 사회적인 금기라 빼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이먼 카버는 너무 가벼이 쓰이지 않았느냐며 우려를 비췄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간단했다.
‘그걸 납득시키면 그만이지.’
새로이 주어진 과제 앞에서 가슴이 뛰는 것을 느끼며, 나는 주인공의 설정과 플롯을 약간 수정하고 집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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