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214)
214.
네뷸러상은 소설의 분량과 분야에 따라 다양한 수상작을 선정했지만, 아무래도 그중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은 ‘최우수 장편상’일 수밖에 없었다.
SF 장편 소설은 많은 상업 작가가 도전하는 장르였으며, 말 그대로 별처럼 많은 작품이 한 해에 쏟아져 나왔다.
개중에서 후보작이 될 수 있는 작품은 여섯 개 전후.
그 후보작으로 최종 투표를 실시해 그 해를 장식한 최고의 SF 장편 작품을 선정한다.
그리고 거기에 내 작품, ‘Losers’ 시리즈가 선정되었다.
‘Country of losers’, 그리고 ‘Universe of losers’로 이어지는 연작.
사이먼으로부터 수상 소식을 들은 순간 짜릿한 전율이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수상을 목표로 소설을 썼건만, 실제로 그 일이 이루어지자 절로 어안이 벙벙해졌다. 지금 내게 벌어진 상황이 믿어지지 않아서 몇 번이고 뺨을 쳤을 정도였다.
[시상식은 4월 26일, 캘리포니아 버클리 클레어몬트 호텔에서 실시한다고 하네요.]“당연히 참석해야죠. 파트너를 데려가도 괜찮을까요?”
[아, 저는 따로 작가님 수행원으로 참석할 예정이라서 괜찮습니다.]“? 아뇨. 알렉사요.”
[아.]약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 직후 나도 모르게 ‘푸흡.’ 하고 웃음이 나왔고, 그대로 참지 못하고 폭소했다.
내가 보고 겪은 미래를 과거로 가지고 와 나 자신의 상상력과 이 시기 사람들의 인식을 버무려 쓴 소설, ‘Losers’ 시리즈.
패배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로 승리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이내 사이먼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도와 줘서 정말 고마워요. 사이먼.”
[에이, 뭘요. 다 작가님이 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는데요.]“그래도 적절하게 브레이크를 걸어 주었죠.”
2부는 특히나 사이먼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내가 원하는 바를 온전히 전달하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작가로서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는 사람이었지만, 자칫 편협한 시야에 갇히지 않도록 옆에서 지켜봐주는 인물의 존재가 항상 필요했다. 그리고 내가 작가로서 성장하고 더 나아갈수록 나와 함께 성장해 온 사이먼이 그 역할을 맡아 주었다.
‘회귀 후 처음 만난 편집자와 이토록 잘 맞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앞으로도 계속 내가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바랐다.
[······감사합니다. 작가님.]“제가 더 감사하죠. 사이먼.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그래야죠! 아직 휴고상 결과도 남았고, D.C. 코믹스 쪽과 진행하는 일도 열심히 해 보죠! 아, 그리고 수상 결과는 일단 주변 지인 분들에게만 알리는 것으로 하시죠. ‘SFWA’ 측에서도 일단 미리 말씀드리기는 하지만 최대한 그래 달라고 하더라고요.]“그렇게 하겠습니다.”
네뷸러상을 주관하는 협회인 SFWA(Science fiction and fantasy writers association)에서 따로 언질을 줄 정도니 딱히 소문을 내고 다닐 이유는 없었다.
어쨌든 권위 있는 상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하면서 나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1986년의 하늘은 놀라울 정도로 별이 안 보였다.
‘구름과 매연 사이에 숨었겠지.’
나는 시간의 흐름을 느꼈다.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에 잠깐 정신을 맡긴 채, 내가 지금 이룬 성과가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 실감했다.
네뷸러상.
모든 장르 작가들에게 있어서 꿈의 영역에 도달했다. 나는 나 자신이 쓴 소설로 은하의 별을 움켜잡은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물론, 그로 인해 원래의 역사와는 달라지고 말았다.
원래대로라면 1986년의 네뷸러상 수상작은 ‘엔더의 게임’이라는 작품이었다. 좋은 작품이었지만 내 수상으로 인해 역사가 바뀌었고, 아쉽게도 네뷸러상의 수상은 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상을 포기하거나 내가 소설을 쓰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있을 수 없었다. 나는 내가 가진 기억과 능력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을 뿐이니까. 나는 이 결과를 즐기면서, 동시에 ‘엔더의 게임’의 위대함을 계속해서 기억하자고 마음먹었다.
아무튼, 너무나도 기쁜 일이었다.
‘듄’ 시리즈나 ‘링월드’, ‘라마와의 랑데부’, ‘파운데이션의 끝’ 등등, 온갖 내로라하는 수상작이 즐비한 이 네뷸러상에 당당히 내 작품이 이름을 올렸다.
‘아, 이럴 때는 역시 춤이지.’
머나먼 과거에서부터 인간은 항상 춤을 추면서 기쁨을 표현했다.
나는 엉덩이를 실룩거리면서 걸었다. 그리고 때마침 마중을 나오던 존 스미스와 마주쳤다.
“······.”
“······.”
“엄, 늦게까지 안 돌아와서. 미안.”
사과하지 마라.
사과하면 내가 더 비참해진다. 하지 마라.
제발.
***
주말이 끝나고 찾아온 월요일.
아침 팀장급 인사가 모인 회의에서 처음 나온 말은 다음과 같았다.
“‘쿵-퓨리’, 저희 쪽으로 주시죠.”
그렇게 말한 건 히어로 1 편집팀장이었다. 경력도 국장 다음으로 가장 길고, 그만큼 히어로 코믹스를 보는 눈이 깐깐한 양반이 가장 먼저 요청한 것이었다.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으나 1 편집팀장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내정된 팀이 없다면 말이죠.”
“······그렇기는 한데. 이유를 묻고 싶군.”
“하고 싶어서죠. 그 이외에 이유가 있겠습니까?”
“다른 팀은?”
“저, 저희도 맡고 싶습니다.”
“저희도요.”
“······저희는 히어로 팀은 아니지만 하고 싶네요.”
모든 팀장이 이 작품을 맡고 싶어 했다.
처음 있는 일에 놀란 편집국장 로버트는 각 팀장의 얼굴을 살피면서 그들이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는지 확인했다.
그러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죽여줬지?”
“정말로요.”
“신 작가가 정말 보통 인물이 아니군요.”
“우리도 이런 스토리를 쓸 줄 아는 작가를 계속 길러내야 한다니까요? 대체 언제까지 프랭크와 앨런 같은 양반들에게만 의존하실 겁니까?”
“자자, 회사에 대한 비평은 나중으로 미뤄두자고. 지금은 신 작가의 작품, ‘쿵-퓨리’의 담당을 누가 하는지를 정할 때니까. 그럼 두 번째 질문. 우리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작품의 후반부에 나온 ‘자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거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살려야죠.”
“이건 솔직히 설득 당했는걸요.”
1 편집팀장과 4 편집팀장은 이 정도로 멋진 드라마라면 이대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했다.
시간 역행을 하는 주인공의 서사를 위해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소재인 ‘자살’을 쓰면서도, 신 작가는 이곳에 있는 높은 기준을 가진 인원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조금······ 걱정은 됩니다.”
“근데 멋지긴 하더라고요.”
우려를 아예 떨치지 못하는 2 편집팀장과 3 편집팀장도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선에서 그쳤다. 그들조차 수긍하는 기색을 드러내는 이유는, 조의 자살이 감정적으로 너무나도 공감이 갈 수밖에 없는 구조로 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위험하다는 생각을 차마 지울 수 없었다.
자살을 숭고하고 결의에 찬 행동으로 묘사한다?
여기에 대해 과연 검열이 들어오지 않을까?
D.C. 코믹스는 출간 전에 반드시 심의위원회에 완성 원고를 제출하고 심사를 받아야 했다.
특히나 코믹스가 검열에 민감한 이유는, 현재에 들어 이 매체가 ‘어린아이’들을 위한 문화라는 인식이 강하게 퍼져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어린아이와 관련된 일에서는 절대 봐주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편집국장은 생각했다.
‘쿵-퓨리는 절대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팔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작금의 시장에서 그 중요도가 점점 커지고 있는 성인 독자를 겨냥한 작품이었다.
그들은 분명 이 작품에 짙게 깔린 블랙 코미디적인 색채를 이해하고 즐겁게 볼 터였다. 이 작품에 깔린 문학적인 기조는, 달리 보면 슈퍼 히어로물이라는 장르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회사 측에서는 고려할 부분이 여럿 존재했다.
“데생을 한다면 누구로 생각 중이지?”
“헤븐즈 코믹스에서 ‘Double spy’ 코믹스를 맡았던 친구 있잖습니까. 그 친구 그림이면 괜찮을 것 같던데요. 그림 실력이 ‘Double spy’ 전후로 완전히 달라졌어요.”
“아니,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이어서 맡기는 건 오히려 신선함이 떨어질 거 같아요. 저라면 존이나 크리스에게 그림을 맡겨보고 싶군요.”
“존 번하고 크리스 매캐디?”
“둘 다 멋진 그림을 가지고 있죠.”
“존은 지금 슈퍼맨을 맡고 있고, 크리스는 이제 데뷔를 앞둔 신인인데? 둘이 너무 다르군.”
“두 사람의 이력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죠. 실력으로 봐야지. 제 기준에서는 지금 확실히 물이 오른 작가들입니다.”
4 편집팀장의 말에 로버트의 눈썹이 꿈틀 흔들렸다.
“아니, 그럼 둘이 그림체가 비슷하기라도 하던가.”
존 번은 예나 지금이나 D.C. 코믹스의 간판 그림 작가 중 하나였다. 심미적이면서 깔끔하게 잘 그리고, 거기에 만화라는 매체를 잘 이해하는 그의 연출 실력은 업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었다.
반대로 크리스 매캐디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신인이었으나, 전문적으로 대학에서 그림을 배운 만큼 향후가 기대되는 그림 작가였다. 그리고 존 번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조금 더 최신 트렌드에 맞는 화려한 그림을 그리는 편이었다.
안정적인 베테랑이냐, 기세가 넘치는 신인이냐.
고민하던 로버트는 이내 입을 열었다.
“신 작가가 코믹스 스토리 경험이 아예 없다는 사실을 고려해 보면 존 번이 맞겠지.”
“······국장님.”
1 편집팀장이 입을 열었다.
“저는 크리스 매캐디가 맞다고 봅니다. 이 소설은 그런 소설이니까요.”
‘그런 소설’.
그 표현이 참 어울린다 싶어서 로버트는 피식 웃고 말았다.
하지만 맞는 말이었다.
‘쿵-퓨리’는 기존의 슈퍼 히어로물과는 전혀 다른 내용과 전개를 가진 작품이었다. 어찌 보자면 ‘슈퍼 히어로’라는 소재를 사용했을 뿐, 작가의 사적인 감정을 담아낸 별개의 장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기에 D.C. 코믹스는 이 작품을 필요로 했다.
경직된 사내 분위기와 더불어, 마블 코믹스에 비해 참신한 시도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회사의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로버트였다. 그것은 편견에 불과하며, D.C. 코믹스는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이렇게 가지.”
자살이라는 소재는 살리고, 그림은 크리스 매캐디에게 맡긴다.
그리고 하드보일드 퍼블리셔와 계속해서 소통하면서, 신 작가가 써오는 코믹스 스토리에 대한 컨펌은 최소화하여 진행한다.
“정부의 ‘검열’과 ‘통제’로 얼룩진 세상에 관한 이야기인데, 우리가 굳이 제 발 저려서 정부 놈들처럼 이 작품을 건드릴 필요는 없지 않겠나?”
어차피 평가하는 것은 대중이다.
이 작품에서 묘사되는 자살이 정녕 사회적으로 지탄 받을 일이라면 대중이 알아서 검열할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면 단순히 작품에 나오는 이야기적 장치로써 받아들여질 터였다.
그리고 로버트는 이 작품이 가진 힘을 생각하자면, 분명히 후자의 반응이 주류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대로 한번 가보자고. 쿵-퓨리.”
“······저기, 근데.”
“응?”
“그래서 결국, 담당은 어디에서 맡습니까?”
“아, 그걸 이야기 안 했군.”
3 편집팀장의 말에 로버트는 싱긋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맡는다.”
“예?”
“갑자기?”
“아니, 편집 일 손 떼신지 오래면서! 그냥 저희 줘요!”
“안 돼. 이건 오랜만에 내 작품 혼에 불을 붙였거든.”
껄껄 웃으며 제멋대로 자신의 권력욕을 발휘하는 D.C. 코믹스 편집국장, 로버트.
그 저열함 앞에서 각 편집팀장이 할 수 있는 조치는 아무것도 없었다.
***
시간은 빠른 속도로 흘러갔다.
D.C. 코믹스에서는 섬세하게도 스케치와 잉크, 컬러와 텍스트 작업에 투입될 인원을 선정해서 알려 주었고, 나는 그들이 제시한 가이드라인대로 스토리 원고 작업을 시작했다.
사실 ‘크리스 매캐디’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누구지 싶었으나, 그림을 보고 함께 작업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쪽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건 아니라서 자세히 말은 못하겠지만, 그림 자체에 힘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실력은 있으나 전생에는 시운을 못 만나 빛을 못 본 케이스일 수도 있겠군.’
알렉사 플레어나 두피 킹스턴처럼 말이다.
내가 좋은 사람들과 만나게 되면서 전생에는 받지 못했던 상을 타게 되었듯이, 그가 내 작품을 맡아 이름이 알려지게 된다면 그것은 그거대로 좋은 일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코믹스 원작 스토리 작업을 맡게 되었다.
각 페이지에 들어갈 대사나 행동 지문을 컷에 따라 배분하고 알맞게 적어나가는 일은 소설을 집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작업이었지만, 기본적으로 생각과 글로 하는 일이라 그런지 그럭저럭 할 만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무려 D.C. 코믹스의 편집국장인 로버트의 힘도 컸다.
내 작품에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어 오랜만에 담당을 맡게 되었다는 그는, 무척 바쁠 텐데도 불구하고 코믹스 스토리를 짜는 데 있어 여러 조언이나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소설에 따라 ‘Kung-Fury’의 첫 번째 이슈 작업이 시작되고 며칠 뒤.
나는 네뷸러상 시상식에 참여하기 위해 한 호텔 앞에 서 있었다.
“······.”
캘리포니아의 주도 세크라멘토와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클레어몬트 호텔.
어디 유럽의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나 존재할 법한 새하얀 호텔의 정문 위에는 ‘제21회 네뷸러상 시상식’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상태였다.
나는 심장이 떨리는 것을 느끼면서 옆에 서 있는 사람을 돌아보았다.
바로 알렉사 플레어였다.
내가 시상식에 함께 참석해줄 수 없겠냐고 묻자 두말하지 않고 이곳까지 따라와 준 그녀.
지금 심장이 두근거리는 이유에는 새하얀 파티 드레스 차림의 그녀도 분명 한몫을 하리라.
“준비됐어, 신?”
“물론이지. 알렉사.”
내가 천천히 팔을 들었고, 그녀가 거기에 우아하게 손을 얹었다.
우리는 당당하게 호텔 안으로 들어서려다······ 이내 멈췄다.
“아, 사이먼 기다려야 됨.”
“오.”
되게 멋진 입장을 하려고 했는데 초장부터 실패했다.
[ Nebula awards >214.
네뷸러상은 소설의 분량과 분야에 따라 다양한 수상작을 선정했지만, 아무래도 그중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은 ‘최우수 장편상’일 수밖에 없었다.
SF 장편 소설은 많은 상업 작가가 도전하는 장르였으며, 말 그대로 별처럼 많은 작품이 한 해에 쏟아져 나왔다.
개중에서 후보작이 될 수 있는 작품은 여섯 개 전후.
그 후보작으로 최종 투표를 실시해 그 해를 장식한 최고의 SF 장편 작품을 선정한다.
그리고 거기에 내 작품, ‘Losers’ 시리즈가 선정되었다.
‘Country of losers’, 그리고 ‘Universe of losers’로 이어지는 연작.
사이먼으로부터 수상 소식을 들은 순간 짜릿한 전율이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수상을 목표로 소설을 썼건만, 실제로 그 일이 이루어지자 절로 어안이 벙벙해졌다. 지금 내게 벌어진 상황이 믿어지지 않아서 몇 번이고 뺨을 쳤을 정도였다.
[시상식은 4월 26일, 캘리포니아 버클리 클레어몬트 호텔에서 실시한다고 하네요.]“당연히 참석해야죠. 파트너를 데려가도 괜찮을까요?”
[아, 저는 따로 작가님 수행원으로 참석할 예정이라서 괜찮습니다.]“? 아뇨. 알렉사요.”
[아.]약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 직후 나도 모르게 ‘푸흡.’ 하고 웃음이 나왔고, 그대로 참지 못하고 폭소했다.
내가 보고 겪은 미래를 과거로 가지고 와 나 자신의 상상력과 이 시기 사람들의 인식을 버무려 쓴 소설, ‘Losers’ 시리즈.
패배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로 승리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이내 사이먼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도와 줘서 정말 고마워요. 사이먼.”
“그래도 적절하게 브레이크를 걸어 주었죠.”
2부는 특히나 사이먼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내가 원하는 바를 온전히 전달하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작가로서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는 사람이었지만, 자칫 편협한 시야에 갇히지 않도록 옆에서 지켜봐주는 인물의 존재가 항상 필요했다. 그리고 내가 작가로서 성장하고 더 나아갈수록 나와 함께 성장해 온 사이먼이 그 역할을 맡아 주었다.
‘회귀 후 처음 만난 편집자와 이토록 잘 맞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앞으로도 계속 내가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바랐다.
[······감사합니다. 작가님.]“제가 더 감사하죠. 사이먼.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그래야죠! 아직 휴고상 결과도 남았고, D.C. 코믹스 쪽과 진행하는 일도 열심히 해 보죠! 아, 그리고 수상 결과는 일단 주변 지인 분들에게만 알리는 것으로 하시죠. ‘SFWA’ 측에서도 일단 미리 말씀드리기는 하지만 최대한 그래 달라고 하더라고요.]“그렇게 하겠습니다.”
네뷸러상을 주관하는 협회인 SFWA(Science fiction and fantasy writers association)에서 따로 언질을 줄 정도니 딱히 소문을 내고 다닐 이유는 없었다.
어쨌든 권위 있는 상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하면서 나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1986년의 하늘은 놀라울 정도로 별이 안 보였다.
‘구름과 매연 사이에 숨었겠지.’
나는 시간의 흐름을 느꼈다.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에 잠깐 정신을 맡긴 채, 내가 지금 이룬 성과가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 실감했다.
네뷸러상.
모든 장르 작가들에게 있어서 꿈의 영역에 도달했다. 나는 나 자신이 쓴 소설로 은하의 별을 움켜잡은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물론, 그로 인해 원래의 역사와는 달라지고 말았다.
원래대로라면 1986년의 네뷸러상 수상작은 ‘엔더의 게임’이라는 작품이었다. 좋은 작품이었지만 내 수상으로 인해 역사가 바뀌었고, 아쉽게도 네뷸러상의 수상은 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상을 포기하거나 내가 소설을 쓰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있을 수 없었다. 나는 내가 가진 기억과 능력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을 뿐이니까. 나는 이 결과를 즐기면서, 동시에 ‘엔더의 게임’의 위대함을 계속해서 기억하자고 마음먹었다.
아무튼, 너무나도 기쁜 일이었다.
‘듄’ 시리즈나 ‘링월드’, ‘라마와의 랑데부’, ‘파운데이션의 끝’ 등등, 온갖 내로라하는 수상작이 즐비한 이 네뷸러상에 당당히 내 작품이 이름을 올렸다.
‘아, 이럴 때는 역시 춤이지.’
머나먼 과거에서부터 인간은 항상 춤을 추면서 기쁨을 표현했다.
나는 엉덩이를 실룩거리면서 걸었다. 그리고 때마침 마중을 나오던 존 스미스와 마주쳤다.
“······.”
“······.”
“엄, 늦게까지 안 돌아와서. 미안.”
사과하지 마라.
사과하면 내가 더 비참해진다. 하지 마라.
제발.
***
주말이 끝나고 찾아온 월요일.
아침 팀장급 인사가 모인 회의에서 처음 나온 말은 다음과 같았다.
“‘쿵-퓨리’, 저희 쪽으로 주시죠.”
그렇게 말한 건 히어로 1 편집팀장이었다. 경력도 국장 다음으로 가장 길고, 그만큼 히어로 코믹스를 보는 눈이 깐깐한 양반이 가장 먼저 요청한 것이었다.
다들 눈을 동그랗게 떴으나 1 편집팀장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내정된 팀이 없다면 말이죠.”
“······그렇기는 한데. 이유를 묻고 싶군.”
“하고 싶어서죠. 그 이외에 이유가 있겠습니까?”
“다른 팀은?”
“저, 저희도 맡고 싶습니다.”
“저희도요.”
“······저희는 히어로 팀은 아니지만 하고 싶네요.”
모든 팀장이 이 작품을 맡고 싶어 했다.
처음 있는 일에 놀란 편집국장 로버트는 각 팀장의 얼굴을 살피면서 그들이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는지 확인했다.
그러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죽여줬지?”
“정말로요.”
“신 작가가 정말 보통 인물이 아니군요.”
“우리도 이런 스토리를 쓸 줄 아는 작가를 계속 길러내야 한다니까요? 대체 언제까지 프랭크와 앨런 같은 양반들에게만 의존하실 겁니까?”
“자자, 회사에 대한 비평은 나중으로 미뤄두자고. 지금은 신 작가의 작품, ‘쿵-퓨리’의 담당을 누가 하는지를 정할 때니까. 그럼 두 번째 질문. 우리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작품의 후반부에 나온 ‘자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거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살려야죠.”
“이건 솔직히 설득 당했는걸요.”
1 편집팀장과 4 편집팀장은 이 정도로 멋진 드라마라면 이대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했다.
시간 역행을 하는 주인공의 서사를 위해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소재인 ‘자살’을 쓰면서도, 신 작가는 이곳에 있는 높은 기준을 가진 인원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조금······ 걱정은 됩니다.”
“근데 멋지긴 하더라고요.”
우려를 아예 떨치지 못하는 2 편집팀장과 3 편집팀장도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선에서 그쳤다. 그들조차 수긍하는 기색을 드러내는 이유는, 조의 자살이 감정적으로 너무나도 공감이 갈 수밖에 없는 구조로 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위험하다는 생각을 차마 지울 수 없었다.
자살을 숭고하고 결의에 찬 행동으로 묘사한다?
여기에 대해 과연 검열이 들어오지 않을까?
D.C. 코믹스는 출간 전에 반드시 심의위원회에 완성 원고를 제출하고 심사를 받아야 했다.
특히나 코믹스가 검열에 민감한 이유는, 현재에 들어 이 매체가 ‘어린아이’들을 위한 문화라는 인식이 강하게 퍼져 있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어린아이와 관련된 일에서는 절대 봐주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편집국장은 생각했다.
‘쿵-퓨리는 절대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팔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작금의 시장에서 그 중요도가 점점 커지고 있는 성인 독자를 겨냥한 작품이었다.
그들은 분명 이 작품에 짙게 깔린 블랙 코미디적인 색채를 이해하고 즐겁게 볼 터였다. 이 작품에 깔린 문학적인 기조는, 달리 보면 슈퍼 히어로물이라는 장르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회사 측에서는 고려할 부분이 여럿 존재했다.
“데생을 한다면 누구로 생각 중이지?”
“헤븐즈 코믹스에서 ‘Double spy’ 코믹스를 맡았던 친구 있잖습니까. 그 친구 그림이면 괜찮을 것 같던데요. 그림 실력이 ‘Double spy’ 전후로 완전히 달라졌어요.”
“아니,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이어서 맡기는 건 오히려 신선함이 떨어질 거 같아요. 저라면 존이나 크리스에게 그림을 맡겨보고 싶군요.”
“존 번하고 크리스 매캐디?”
“둘 다 멋진 그림을 가지고 있죠.”
“존은 지금 슈퍼맨을 맡고 있고, 크리스는 이제 데뷔를 앞둔 신인인데? 둘이 너무 다르군.”
“두 사람의 이력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죠. 실력으로 봐야지. 제 기준에서는 지금 확실히 물이 오른 작가들입니다.”
4 편집팀장의 말에 로버트의 눈썹이 꿈틀 흔들렸다.
“아니, 그럼 둘이 그림체가 비슷하기라도 하던가.”
존 번은 예나 지금이나 D.C. 코믹스의 간판 그림 작가 중 하나였다. 심미적이면서 깔끔하게 잘 그리고, 거기에 만화라는 매체를 잘 이해하는 그의 연출 실력은 업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었다.
반대로 크리스 매캐디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신인이었으나, 전문적으로 대학에서 그림을 배운 만큼 향후가 기대되는 그림 작가였다. 그리고 존 번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조금 더 최신 트렌드에 맞는 화려한 그림을 그리는 편이었다.
안정적인 베테랑이냐, 기세가 넘치는 신인이냐.
고민하던 로버트는 이내 입을 열었다.
“신 작가가 코믹스 스토리 경험이 아예 없다는 사실을 고려해 보면 존 번이 맞겠지.”
“······국장님.”
1 편집팀장이 입을 열었다.
“저는 크리스 매캐디가 맞다고 봅니다. 이 소설은 그런 소설이니까요.”
‘그런 소설’.
그 표현이 참 어울린다 싶어서 로버트는 피식 웃고 말았다.
하지만 맞는 말이었다.
‘쿵-퓨리’는 기존의 슈퍼 히어로물과는 전혀 다른 내용과 전개를 가진 작품이었다. 어찌 보자면 ‘슈퍼 히어로’라는 소재를 사용했을 뿐, 작가의 사적인 감정을 담아낸 별개의 장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기에 D.C. 코믹스는 이 작품을 필요로 했다.
경직된 사내 분위기와 더불어, 마블 코믹스에 비해 참신한 시도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회사의 상황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로버트였다. 그것은 편견에 불과하며, D.C. 코믹스는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이렇게 가지.”
자살이라는 소재는 살리고, 그림은 크리스 매캐디에게 맡긴다.
그리고 하드보일드 퍼블리셔와 계속해서 소통하면서, 신 작가가 써오는 코믹스 스토리에 대한 컨펌은 최소화하여 진행한다.
“정부의 ‘검열’과 ‘통제’로 얼룩진 세상에 관한 이야기인데, 우리가 굳이 제 발 저려서 정부 놈들처럼 이 작품을 건드릴 필요는 없지 않겠나?”
어차피 평가하는 것은 대중이다.
이 작품에서 묘사되는 자살이 정녕 사회적으로 지탄 받을 일이라면 대중이 알아서 검열할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면 단순히 작품에 나오는 이야기적 장치로써 받아들여질 터였다.
그리고 로버트는 이 작품이 가진 힘을 생각하자면, 분명히 후자의 반응이 주류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대로 한번 가보자고. 쿵-퓨리.”
“······저기, 근데.”
“응?”
“그래서 결국, 담당은 어디에서 맡습니까?”
“아, 그걸 이야기 안 했군.”
3 편집팀장의 말에 로버트는 싱긋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맡는다.”
“예?”
“갑자기?”
“아니, 편집 일 손 떼신지 오래면서! 그냥 저희 줘요!”
“안 돼. 이건 오랜만에 내 작품 혼에 불을 붙였거든.”
껄껄 웃으며 제멋대로 자신의 권력욕을 발휘하는 D.C. 코믹스 편집국장, 로버트.
그 저열함 앞에서 각 편집팀장이 할 수 있는 조치는 아무것도 없었다.
***
시간은 빠른 속도로 흘러갔다.
D.C. 코믹스에서는 섬세하게도 스케치와 잉크, 컬러와 텍스트 작업에 투입될 인원을 선정해서 알려 주었고, 나는 그들이 제시한 가이드라인대로 스토리 원고 작업을 시작했다.
사실 ‘크리스 매캐디’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누구지 싶었으나, 그림을 보고 함께 작업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쪽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건 아니라서 자세히 말은 못하겠지만, 그림 자체에 힘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실력은 있으나 전생에는 시운을 못 만나 빛을 못 본 케이스일 수도 있겠군.’
알렉사 플레어나 두피 킹스턴처럼 말이다.
내가 좋은 사람들과 만나게 되면서 전생에는 받지 못했던 상을 타게 되었듯이, 그가 내 작품을 맡아 이름이 알려지게 된다면 그것은 그거대로 좋은 일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코믹스 원작 스토리 작업을 맡게 되었다.
각 페이지에 들어갈 대사나 행동 지문을 컷에 따라 배분하고 알맞게 적어나가는 일은 소설을 집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작업이었지만, 기본적으로 생각과 글로 하는 일이라 그런지 그럭저럭 할 만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무려 D.C. 코믹스의 편집국장인 로버트의 힘도 컸다.
내 작품에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어 오랜만에 담당을 맡게 되었다는 그는, 무척 바쁠 텐데도 불구하고 코믹스 스토리를 짜는 데 있어 여러 조언이나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소설에 따라 ‘Kung-Fury’의 첫 번째 이슈 작업이 시작되고 며칠 뒤.
나는 네뷸러상 시상식에 참여하기 위해 한 호텔 앞에 서 있었다.
“······.”
캘리포니아의 주도 세크라멘토와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는 클레어몬트 호텔.
어디 유럽의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나 존재할 법한 새하얀 호텔의 정문 위에는 ‘제21회 네뷸러상 시상식’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상태였다.
나는 심장이 떨리는 것을 느끼면서 옆에 서 있는 사람을 돌아보았다.
바로 알렉사 플레어였다.
내가 시상식에 함께 참석해줄 수 없겠냐고 묻자 두말하지 않고 이곳까지 따라와 준 그녀.
지금 심장이 두근거리는 이유에는 새하얀 파티 드레스 차림의 그녀도 분명 한몫을 하리라.
“준비됐어, 신?”
“물론이지. 알렉사.”
내가 천천히 팔을 들었고, 그녀가 거기에 우아하게 손을 얹었다.
우리는 당당하게 호텔 안으로 들어서려다······ 이내 멈췄다.
“아, 사이먼 기다려야 됨.”
“오.”
되게 멋진 입장을 하려고 했는데 초장부터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