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215)
215.
‘Science fiction and fantasy writers association’.
줄여서 ‘SFWA’는 1965년 설립된 유서 깊은 비영리 작가 조직으로, 작가의 권익을 보호하고 장르 소설 업계의 발전을 위해서 여러 가지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그중에서 세간에 가장 많이 알려진 활동은 물론, 1966년에 만들어진 SF, 판타지 문학상인 ‘네뷸러상’이었다.
SFWA의 활동으로 그들의 권위가 점점 증진됨에 따라 더 높은 위상를 갖게 된 이 상은, 작금에 이르러서 휴고상과 더불어 미국의 수많은 작가가 선망하고 목표하는 자리가 되었다.
SFWA 자체가 비영리 단체라 따로 상금을 지급하지는 않지만, 수상자에게는 운영비에서 충당해 만든 멋진 트로피가 하나 수여되었다. 그 영광스러운 결과물을 얻어내고자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작가가 계속해서 자신의 세계가 들어간 작품을 쓰고 있었다.
사이먼과 만나 호텔 안으로 들어서면서도 나는 줄곧 실감을 느끼지 못했다.
‘이게 진짜로 나에게 벌어지는 일인가.’
전생에는 건즈앤소드 매거진 같은 곳에서 특집으로 결과를 봤었을 뿐인 네뷸러상의 수상.
나는 지금 그중에서도 ‘최우수 장편상’을 받으러 이 자리에 왔다.
캘리포니아 버클리의 클레어몬트 호텔.
붉은색 양탄자가 깔린 화려한 로비. 엘리베이터도 고급이었다.
거기에 타고 나서 심호흡하자 줄곧 옆에 있던 알렉사가 내게 귓속말을 건네 왔다.
“여기 시설 진짜 좋다.”
“······그러게.”
“그, 네가 받은 상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느껴진다고 하면 조금 속물적일까?”
“그게 뭐가 속물적이야.”
그 발언이 귀여워서 덕분에 정신을 차렸고, 나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물론, 네뷸러상에 할리우드의 아카데미 시상식 같은 유명세는 없었다. 업계 관계자나 팬 보이가 아니라면 사실 그렇게까지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래서 알렉사도 상 받았다고 하니 나보다 더 기뻐해 주기는 했지만, 사실 그 크기가 잘 가늠할 수 없었겠지.
하지만 나 같은 작가에게 있어서 그 의미는 정말로 거대했다. SFWA 측에서도 그에 걸맞은 장소를 대관하고 행사의 격을 갖추면서 수상자에 대한 예우를 갖춰준 셈이었다.
호텔 최상층을 향해 쑥쑥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뒤쪽에 서 있던 사이먼이 내게 슬쩍 이런 말을 전해왔다.
“제가 앞장서서 에스코트하겠습니다.”
“고마워요.”
“뭘요. 오늘은 작가님이 주인공인데요. 즐기시죠. 알렉사도요.”
“감사드려요. 사이먼. 오늘 입은 턱시도, 무척 멋져요.”
“감사합니다. 알렉사도 드레스 정말 잘 어울리네요. 어디서 사셨어요?”
“비밀인데, 아버지의 지인 분께 빌렸어요.”
“허, 저는 디자인이 정말 잘 어울려서 맞춤으로 산 줄 알았는데요.”
“후후, 고마워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외향적인 두 사람이 서로 신이 나서 말을 주고받았다. 정신의 에너지가 내면으로 쏠리는 유형이었던 나는 그 사이에서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 멍하니 엘리베이터가 최상층에 이르는 것을 기다렸다.
띵-!
잠시 후,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앞서 말한 대로 사이먼이 앞장섰고, 우리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호텔 최상층에 있는 컨벤션 홀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그 앞을 지키고 있던 정장 차림의 백인 여성이 사이먼이 내민 초대장을 보고는 환한 미소와 함께 우리를 반겨 주었다.
“아, 신 작가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작품, 정말 즐겁게 읽었습니다.”
그 눈빛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이 사람도 내가 얼굴을 모를 뿐, SFWA의 멤버이며 동시에 작가겠지.
그런 상대로부터 ‘리스펙’을 받았다는 사실에 다시 심장이 두근거렸다.
눈앞의 큰 문이 열렸다.
사이먼, 알렉사와 함께 컨벤션 홀 안으로 들어선 후, 나는 삼삼오오 모여 즐거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SFWA의 회원들도 있을 테고, 아니더라도 초청을 받아 이곳에 온 업계의 사람일 터였다. 어쨌거나 대부분은 나와 같은 작가라는 말이었다.
그 사실을 의식하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보통 사회에서 작가라는 직업은 희귀하기 마련이었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80년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작가가 가득했다. 시상식 이후에 펼쳐질 행사 역시 무척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어떻게 말을 걸지?’
사실, 옆에 있는 사이먼이 듣는다면 ‘왜 그런 고민을 하지?’라고 고개를 갸웃거릴 상황.
하지만 말보다는 글로 소통하는 편이 편한 나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고민하며 망설이던 그때, 인간 래브라도 리트리버 사이먼 카버가 나섰다.
“작가님, 제게 맡겨주시죠.”
골든 리트리버와는 미묘하게 다른 그가 주변을 슬쩍 돌아보았고, 금방 아는 작가를 찾아가서 말을 건넸다.
그 와중에서도 알 사람은 알 만큼 약간 경직되어 있던 내 뺨을 알렉사가 쿡 찔렀다.
“괜찮아?”
“응, 아무렇지도 않아.”
“나는 옆에서 조용히 있을 테니까 다른 작가님들하고 편하게 이야기해. 알았지?”
“······.”
“알겠지? 응?”
와, 얘 뭐지. 20살 맞나.
지금 상황에서 내 파트너로 왔으니 들뜰 법도 한데, 조용히 옆을 지켜 주겠다고 말했다.
압도적일 정도의 어마무시한 배려심······! 이러니 일터에서도 사랑 받는 게 아닐까.
“고마워. 알렉사.”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자니, 사이먼이 여러 사람을 데리고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신 작가님 맞으시죠?! 진짜 팬입니다!”
가장 앞에 서 있던 안경을 쓴 남성이 환한 미소와 함께 나를 반겨주었다. 수염은 깔끔하게 잘랐으나, 곱슬머리를 어깨까지 기른 것이 특징적이었다.
“감사합니다. 신이라고 합니다.”
“우와, 내가 그 작품을 쓴 작가를 직접 보게 되다니!”
“‘Losers’ 시리즈는 제 뇌를 완전히 바꿔 버렸어요. 머릿속에서 푸슈- 하면서 뭔가가 크게 터지는 기분이었죠. 아, 반가워요. 어슐러 르 귄이에요.”
“어슐러 선생님······?!”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부드러운 인상의 백인 중년 여성이 바로 어슐러 K. 르 귄이라니!
‘어스시 연대기’와 같은 명작을 필두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보이면서,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팬을 거느린 분.
나는 그녀에게 감히 이런 표현을 쓰고 싶었다. 그야말로 대문호 중 하나라고.
나 역시 그녀가 선보였던 작품들의 어마어마한 팬이었던지라 허둥지둥하면서 내민 손을 붙잡았다.
“작품, 정말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어머나, 내가 신 작가에게서 이런 말도 들어보네. 후후.”
부드러운 미소.
하지만 왠지 모를 카리스마와 그에 수반하는 여유가 느껴졌다. 그러자니 함께 왔던 남성이 껄껄 웃으면서 어슐러와 내 사이에 끼어들듯 말을 이어 나갔다.
“내 작품은 혹시 뭐 본 거 있습니까?!”
“그, 실례지만 성함이······.”
“아, 내 소개가 아직이었군.”
남성은 입고 있던 턱시도 앞자락에 손을 슥슥 닦더니 척 내밀었다.
“조지 R. R. 마틴. 편하게 조지라고 불러 주시오.”
“··················.”
세상에.
세상에나 맙소사.
세상에나 맙소사 지저스 크라이스트.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어딘가 아주 약간은 장난스러운 태도를 가진 작가 분의 성함이 조지 R. R. 마틴이시란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와 악수했고,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팬입니다. 진심으로요.”
가끔 캐릭터를 너무 굴리신다 싶을 때면 미운 마음도 들었지만, 일단은 그랬다.
‘얼음과 불의 노래’ 시리즈를 출간하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이후의 일이지만, 이 시기에도 꾸준히 집필하며 작품 활동을 보이던 대문호.
삽시간에 위대한 거장을 둘이나 만나버린 상황에 적응하지도 못했는데, 그분들로부터 이어지는 칭찬에 나는 뇌가 녹아내리는 듯한 감각에 휩싸였다.
“작품 잘 봤어요. ‘Losers’라는 제목은 아주 야아아악간 촌스럽다고 생각하지만, 내용은 아주 환상적이었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나 모르겠군.”
“과, 과찬이십니다.”
“과찬이 아니에요. 인간을 넘어 인류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빛났다고 해야 할까. ‘더 북’이라는 존재도 무척이나 흥미로웠고. 그리고 그러한 존재를 가엾게 여기는 결말에서 신 작가의 색이 느껴져서 아주 좋았어요.”
옆에 계신 어슐러 선생님도 덩달아 칭찬했다.
어느새 ‘신’이라는 이름을 듣고 근처로 점점 모여드는 사람들.
나는 마치 파도 속에 갇힌 모험자 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다.
지금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이먼은 엄지만 척 치켜세운 채 뒤로 물러섰고, 내가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바로 옆에 서 있는 소중한 여자친구, 알렉사뿐이었다.
온갖 이름이 다 나왔다.
제이미 웨이, 케이트 윌헬름, 리처드 매드슨, 하비 로스.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에도 더 엄청난 작품을 쏟아낼 온갖 작가들의 향연.
그들이 내 소설을 칭찬하고 먼저 악수까지 청해 오자, 솔직히 말하자면 부끄러움에 무어라 말이 나오지를 않았다.
‘이런 일은 전생에도 못 겪어봤던 거 같은데.’
내가 보고 자란 작품을 쓴 이들이 지금 내 작품을 칭찬하고 있다.
그것은 정말이지, 이루어 말할 수 없는 감격스러운 상황이었다.
***
알렉사 플레어는 사실 그렇게까지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었다.
신의 소설은 모두 챙겨 보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의 소설이라서 그런 것이었다. 그의 인생이 담긴 듯한 글은, 읽을 때마다 절로 그가 작품을 쓸 때의 감정을 상상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어쩌면 알렉사는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라 신의 인생을 읽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사실, 잘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어슐러 르 귄!’
‘조지 R. R. 마틴!’
‘리처드 매드슨!’
온갖 작가의 이름이 나왔고, 그럴 때마다 신은 번개라도 맞은 D.C. 코믹스의 샤잠처럼 펄쩍펄쩍 뛰었다.
가끔 찾아가는 코믹북 스토어에서 얻은 지식으로 이런 비유를 생각할 만큼 이제는 이쪽 문화(?)에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아직 소설은 조금 어려웠다.
하지만 신이 얼마나 큰 성과를 거뒀는지는 명확히 느껴졌다.
단순히 좋은 호텔의 최상층 컨벤션 홀이어서가 아니었다. 이후에 나오는 샴페인도 굉장히 맛이 좋았지만, 그것은 이유 중 하나로도 들어가지 못했다.
알렉사는 그냥 ‘신이 그만큼 기뻐했기에’, 그 옆에서 그 감정을 고스란히 느꼈다.
그로써 그가 정말로 바라던 영광스러운 결과를 맞이했음을 알게 되었다.
조용히 옆에 있다가 가끔 신이 새로운 작가와 인사 나눌 때 같이 악수하거나 이름을 밝히는 정도였지만, 그가 가장 바라던 자리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기뻤다.
자신에게 보낸 초대가 정말로 특별한 것이라는 사실이 이제야 진정으로 마음에 와 닿았다.
‘가장 기쁜 자리에, 나와 함께해 주는구나.’
팔짱을 끼기 위해 신의 팔에 가볍게 얹혀 있던 알렉사의 손에 약간 힘이 들어갔다.
신으로부터 전해진 감정은 고양감이 되어, 그녀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
‘앞으로 나도 더 열심히 해야겠어.’
자신도 이런 자리를 만들어 신과 함께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만약, 이따가 둘만 남을 수 있는 자리가 생기면 이 감정을 그대로 말하고 싶었다.
그만큼 이 순간이 그녀에게도 감격스러웠기 때문에.
그렇게 한참 인사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중,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었다.
제21회 네뷸러상 시상식.
진행을 맡은 SFWA 협회장이 나왔고, 그의 가벼운 인사말과 함께 시상이 시작되었다.
지금이 할리우드의 아카데미 시상식이었다면 온갖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함께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그 과정을 텔레비전 방송으로 내보냈겠지만, 네뷸러상은 그렇지 않았다. 가볍게 후보의 명단을 이야기하고, 수상자를 호명하면 나가서 박수와 함께 상을 받은 뒤 수상 소감을 말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러다가 코니 윌리스라는 한 작가가 나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조금 더 극적으로 발표하시죠!”
다들 폭소했다.
가족적이면서도 유쾌한 분위기.
작가라는 연대감 하나만으로도 그들은 서로 격의 없이 편하게 지냈다.
그의 요청에 피식 웃은 협회장이 입으로 ‘두구두구두구-.’ 하는 사운드를 내면서 아까 알렉사도 이름을 들었던 ‘조지 R.R. 마틴’이라는 작가의 수상을 발표했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중요한 순서가 찾아왔다.
“그럼 마지막으로, ‘최우수 장편상’을 발표하겠습니다.”
후보군이 주욱 읊어졌고, 알렉사는 신이 약간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가볍게 몸을 붙이면서 그가 진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말없이 돌아본 신이 빙긋 웃었고, 알렉사가 조용히 말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가서 멋지게 수상 소감 말하고 와. 그와 거의 동시에 발표가 이루어졌다.
“올해 네뷸러상 최우수 장편상은 바로 ‘Country of losers’, ‘Universe of losers’. 통칭 ‘Losers’ 시리즈입니다. 축하드립니다.”
[Waaaaaaaaaaagggghhhh-!!]이제 스무 살 남짓한 젊은 작가에게 쏟아지는 박수와 환호는 참으로 어마어마했다.
다들 특별한 대우라도 해주려는 듯이 신에게 어마어마한 반응을 보내 주었다. 알렉사는 슬며시 손을 놓았고, 천천히 단상 위로 올라간 신은 많은 이들의 앞에서 트로피를 건네받았다.
검은 하단부에 이름이 적혀 있고 그 위로 솟은 직사각형의 투명한 유리 안에는 천체를 표현한 장식이 들어가 있었다.
멍한 얼굴로 거기에 적힌 자신이 쓴 소설 제목과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면서, 신은 옆에서 협회장이 박수를 치며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수상 소감 진행해 주세요.”
그 말에 천천히 마이크 앞으로 다가갔다.
사실, 그는 어슐러 K. 르 귄과 조지 R. R. 마틴의 이름을 들을 시점부터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렇게 대단한 작가가, 너무나도 위대한 작가들이 자신의 소설을 읽고 기억해 줬다는 사실 자체에 넋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전생에서부터 동경했던 시대의 거인들 앞에서 그의 정신적 방벽이 허물어졌고, 그렇기에 이어지는 수상 소감의 첫 마디는 가감 없이 그의 본심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발언은, 알렉사 플레어가 치어리더 시절 벌인 ‘소감 없음 사건’에 비견될 정도로 이후 두고두고 작가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다.
신이 꺼낸 말은 다음과 같았다.
“저는, 여기에서 가장 재미있는 소설을 쓰겠습니다.”
젊은 작가로서 너무나도 패기 넘치는 발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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