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216)
216.
어슐러 K. 르 귄.
그리고 조지 R. R. 마틴.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까지도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두 작가는 단상 위에서 신이 한 수상 소감을 듣고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패기 넘치는 발언과 모습이 왠지 모르게 자신들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었다.
시장은 언제나 이런 젊은 작가를 필요로 했다.
기존의 가치 체계를 부정하고 새로운 글을 쓰는 이는 어느 정도 중년기에 접어든 작가가 아니라 이런 젊은 작가들이었다. 그렇기에 신이라는 작가의 말은 도전이나 오만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이끌겠다는 포부로 들렸다.
······물론, 신 본인은 그 발언을 수습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금은 농담이었습니다.’라거나 ‘말실수였습니다.’라는 식으로 적당히 넘기지는 않았다. 그가 택한 방법은 정면 돌파였다.
신은 가볍게 심호흡하고 자기 생각을 차분한 어조로 전달해 나갔다.
“저는 작가란 자신 안의 우주를 세상에 내보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제 우주로는 감히 측정할 수 없는 멋진 이야기를 쓰신 분도 많이 계시죠. ······지금 아마 다들 자신을 말한 게 아닐까 생각하고 계실 것 같은데, 전부 맞는 생각입니다.”
가볍게 농담까지 곁들여가며 여유를 되찾아 편하게 이야기하는 신.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했다.
바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걸 추구하겠다.’였다.
“우주에 우열을 나누는 일은 사실, 무의미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 자신에게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끼기 위해서 감히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제 우주 안에서 가장 재미있는 소설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게 이 상의 무게를 견디는 길인 동시에, 제가 사랑하는 이 업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으니까요.”
SF 문학상 시상식이라서일까.
‘우주’를 예시로 든 비유는 많은 이를 미소 짓게 했다.
수상 소감을 끝낸 신이 가볍게 목례한 뒤 단상 아래로 내려왔고, 시상식을 마무리하기 위해 협회장이 다시 앞으로 나서면서 생각했다.
‘짧지만 강렬한 연설이었어.’
처음 그를 알았을 때는 막 스무 살이 된 젊은 작가라고 해서 많이 놀랐다. 작가는 나이를 먹으며 많은 경험을 겪고, 다양한 책과 글을 읽고 생각할수록 깊은 글을 쓴다는 그 편견이 그에게도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신보다 한참 어린 작가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약간 아리송했다.
‘앳된 소년의 패기와 중년의 원숙함이 동시에 느껴지는군.’
일반적으로는 양립하기 어려운 그 두 가지 모두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것도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청년이 말이다.
하지만 분명 맞는 말이었다.
현실의 인류는 우주로 올라가고 별을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그전부터 작가들은 인간의 내면이라는 우주를 각자의 방식으로 바깥으로 꺼내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Losers’ 시리즈를 통해서 표현된 신 작가의 우주는, 분명 네뷸러 수상작에 걸맞은 경이로움을 보여 주었다.
단상 밑으로 내려가는 신에게 내내 박수가 쏟아졌다.
이 미국이라는 사회에 이제 막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작가, 신.
그리고 동시에, 네뷸러상이라고 하는 권위 있는 상에서 가장 높은 값어치를 지닌 상을 수상한 작가이기도 했다.
‘앞으로가 기대되는군.’
그의 차기작이 어서 읽고 싶어졌다.
***
이후로 저녁까지 이어진 SFWA의 연회는 굉장히 즐거웠다.
오늘 시상식의 주인공 중 하나였던 나에게는 많은 작가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주어졌다. 그들은 정말 듣는 이쪽이 다 낯간지럽다 싶을 정도로 ‘Losers’ 시리즈를 극찬했고, 나는 그들에게서 우러나오는 표현을 꼼꼼히 가슴속에 새기면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역시나 작가여서일까.
그들이 하는 말 하나하나가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듯했다.
[얼마 전에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죠. 챌린저호 사고요. 그걸 보고 ‘Losers’ 시리즈가 생각이 났어요. 우리는 과학이 발전하고 미래 시대가 오면 모든 게 나아지리라고 믿죠. 그건 마치 지금 이 삶에서 찾을 수 없는 행복을 더 나은 미래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달까요.]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작가들 역시 끝없이 경고한다.
미래 시대가 마냥 행복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고. ‘Country of losers’가 그랬듯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많은 것을 현재가 아닌 미래에 건다. 그렇기에 그것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의 실망, 다시 말해 챌린저호 사고와 같은 일은 많은 미국인에게 순간적인 우울증을 안겨 줄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그 일을 떠올리면서 무척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
우리 대부분은 ‘평균적으로 불행한’ 삶을 살아간다.
나는 그 이유가 행복에는 ‘무뎌짐’의 속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가 그토록 추구하는 행복은 계속해서 무뎌지며, 반대로 불행은 마치 살갗을 파고든 가시처럼 계속해서 열상을 일으킨다. 그것은 트라우마, 융의 그림자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어, 예상치 못한 순간 불쑥불쑥 튀어 나와 우리 인간이 진정한 삶을 살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인간에게는 희망이 필요하다.
행복, 성공, 안정 같은 아직은 붙잡을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찾아올 ‘좋은 무언가’를 향한 염원.
하지만 나는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은, 나에게 있어서 뭐지?’
그토록 원하던 미래인가? 아니면 한때 원했던 과거인가?
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와 과거로 돌아왔다. 시간 역행. 지금 코믹스 제작이 진행 중인 ‘쿵-퓨리’의 조처럼, 조금 더 원숙하고 능숙한 내가 되어 삶을 다시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로 인해서 나는 행복해졌다. 나의 과거는 한때 그토록 기대하던 미래가 되었기에 행복해질 수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부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까지나 ‘과거’였다.
내가 겪었던 미래는 아직도 한참 후에 있다.
‘······어렵군.’
1986년 4월 말.
캘리포니아의 밤 풍경이 눈앞을 스치운다. 내달리는 듯한 주홍빛 가로등이 연달아 내 곁을 지나가며 조명을 드리웠지만, 사실 움직이는 것은 내 쪽이다.
그것이 마치 내가 ‘과거’로 돌아와 나의 ‘미래’를 바꾼 이상한 상황처럼 느껴졌다.
이걸 뭐라고 하더라.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나는 내내 고민했다.
‘과거로 돌아온 나는 사실 새로운 미래를 살고 있다.’
불현듯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졌다.
이것을 가지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었다.
“신?”
문득 귓가를 간질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고, 나는 조수석에 앉아 있는 알렉사를 발견했다. 여전히 드레스 차림. 머리는 오늘 아침에 봤을 때보다 아주 살짝 더 흐트러졌지만, 오히려 그래서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루 종일 옆에서 함께해 준 그녀에게 감사를 느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너무 말이 없었나?”
“아냐. 뭔가 깊이 생각하는 얼굴이어서. 그냥 편하게 기다렸는걸.”
“오늘 계속 곁에 줘서 고마웠어. 지루했을 텐데.”
“응? 전혀. 오히려 정말 즐거웠어.”
“그래?”
“예전에 말했던 거 기억나? 너의 세계를 엿본 것 같다는 느낌. 그 파티에 있으면서 그 느낌을 더 크게 받았거든. 아, 오늘은 ‘우주’라고 표현했었지?”
나는 흐뭇하게 웃는 그녀가 한 말에 흥미를 느꼈다.
“어떤 점에서?”
“일단 너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러기도 했고. 또 뭐랄까, 네가 당연히 가장 특별하지만, 너 말고도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를 보고 있으면······ 굉장히 즐거워. 때로는 정말 안타까울 때도 있지만, 이 세상이 아름다운 곳처럼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아름답다고?”
“네가 ‘Losers’ 시리즈에서 말했듯이, 행복과 불행이 뒤엉킨 채 존재한다는 게 말야.”
“······.”
왠지 모르게 그 말이 내 가슴에 와 닿았다.
알렉사 플레어는 분명히 나와는 다른 존재였다. 분명 그렇게 생각이 되었다. 그녀는 치어리더였고, 백인이었으며, 미인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은 알렉사를 조금도 표현하지 못한다고. 이제는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말이 내게 와 닿는 것이리라.
“알렉사.”
“응, 신.”
“그 말을 하는 네가 더 아름다워.”
“······어? 네?”
“진심이야.”
나는 싱긋 웃으며 계속해서 차를 몰았다.
알렉사는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인 채 이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서 조수석에 있는 그녀의 허벅지를······ 아, 아니, 아니. 손을 잡았다. 분명 손이었다. 나는 그렇게 경우가 없는 남자가 아니란 말이다.
‘이렇게 부끄러운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다 얘 때문이지.’
내 옆에 항상 있어 주면서 언제나 삶과 인간에 대한 영감을 주는 소중한 사람, 알렉사.
한동안 이 드라이브가 계속해서 지속되었으면 했다.
“아, 으어. 자까니임, 오늘, 최고였슴다.”
······일단 뒷좌석에 만취해 쓰러져 있는 사이먼부터 적당한 모텔에 내려 주고 고려해 볼까.
***
‘Losers’ 시리즈의 네뷸러상 수상 소식은 금방 캘리포니아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토런스 뉴 미디어, 기타 등등, 온갖 신문에서 이례적으로 네뷸러상의 수상 결과를 기사로 실었다. ‘최우수 장편’에 ‘신 작가’의 ‘Losers’ 시리즈가 뽑혔다고. 동시에 네뷸러상의 역사와 그 의의까지 구구절절 설명한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야, 내가 이거 될 줄 알았다니까?!”
K.H. 에이전시의 대표, 칼 홉스는 아침부터 신문을 들고 잔뜩 신이 나서 소리쳤다.
신 작가는 이제 명실상부한 캘리포니아의 인기인이었다. 고향 사람이 타지에 나가서 인정받으면 기쁘듯이, 아니, 더 나아가 자신만 알던 누군가의 진가를 모두가 알아주면 기쁘듯이. 딱히 ‘Losers’ 시리즈를 읽지 않았어도, 그 유명세만은 익히 알고 있던 칼 홉스가 껄껄 웃었다.
이른 아침, 사무실에 출근한 알렉사는 그의 말을 들으며 미소를 지었다.
‘신기하단 말이야.’
그리고 동시에 기뻤다.
빙그레 웃는 알렉사를 보고 사무실의 다른 모델들이 물었다.
“알렉사, 뭐 좋은 일이라도 있어?”
“뭔가 뺨이 붉은데. 남자?”
“아, 아니에요.”
“맞네에~!”
“꺄악! 누구야?! 잘생겼어?!”
“······.”
그렇게 질문이 들어오자 알렉사는 참지 못하고 시선을 홱 피해 버렸다. 그러자니 신문을 읽으며 껄껄거리던 칼 홉스가 다가와서는 슬쩍 말을 걸어 왔다.
“뭔 이야기들을 그렇게 하고 있어?”
“아무것도 아니에요.”
“별일 아니지, 그치?”
“허어, 다 들었거든.”
모델들에게는 모델들만의 세계가 있으니 평소에는 짐짓 모르는 채 넘어가던 칼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알렉사 플레어는 현재 K.H. 에이전시의 간판 모델이었다. 오늘도 점심때쯤 나가서 촬영을 하고 돌아올 계획이었다.
그렇기에 물어야 했다.
“알렉사, 네 개인사니 왈가왈부할 수는 없지만, 잘 생각해.”
“네, 네?”
“너한텐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야. 사람들은 네가 점점 유명해질수록 너에게 ‘순수’를 요구하게 될 거야. 지금의 너는 그런 이미지니까. 그러니······ 굳이 이때 남자를 만나느니 네 미래를 중요하게 생각하라고 말해 주고 싶네.”
칼의 말을 들은 알렉사는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주변의 모델들이 수군덕거리며 뒤돌아서는 칼을 마구 깠다.
“뭐야아. 연애 좀 할 수 있지.”
“이렇게 예쁠 때 안 하면 언제 해?”
“연예인도 사람인데 말이야, 그치?”
“그, 그게에. 아하하.”
알렉사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어 어설프게 웃었다.
한창 ‘About T’ 시리즈의 시즌 2에 출연 중인 그녀는 드라마의 엑스트라나 모델 일을 병행하면서 지내는 중이었다.
대중들에게도 그럭저럭 존재가 알려져 어디를 가든 한눈에 알아보는 사람이 왕왕 생겼으나, 아직은 어떤 선 너머로는 나아가지 못한 채 정체하고 있는 상태라 해야 할까.
하지만 알렉사는 신이 네뷸러상을 타는 순간을 지켜보면서 자신도 더 열심히 노력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에 따라 오늘 있을 촬영을 위한 각오를 다지고 잠도 충분히 자 두었다.
그때, 사무실 안에 요란한 전화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 K.H. 에이전시입니다.”
대표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사무 업무를 맡고 있는 직원인 미스 그라우스가 전화를 받았다. 그러더니 ‘네, 네.’ 하고 대답하다가 대표 쪽으로 전화를 돌렸다.
왠지 모르게 묘한 기분이 들어, 다른 모델들이 수다를 떠는 와중에도 알렉사의 시선은 자연히 그곳으로 향했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아, 네. 맞습니다.”
담배를 피우고 있던 칼 홉스의 눈이 휘둥그레 뜨이는 것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 어. 아, 알겠습니다. 바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툭 끊어지는 전화. 곧바로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서 끈 칼 홉스가 안색을 창백하게 물들인 채 다시 모델들이 대기 중인 소파 근처로 후다닥 다가와 알렉사에게 말을 걸었다.
“아, 아아아, 알렉사!”
“네, 네?”
“너, 너한테 제안이 왔다! 영화······ 무려······ 주연······!!”
“······넹?”
갑작스러운 이야기를 들은 알렉사 플레어 역시 눈이 휘둥그레 뜨였다.
***
한편, 같은 시각.
신은 한 남자와 은밀한 회동을 갖는 중이었다.
불법에 가까운 일을 저지르려고 했기에 두 사람의 만남은 철저히 비밀리에 이루어졌다.
신이 자리에 앉아 슬쩍 서류를 내밀자 반대편의 남자가 ‘Frrrrr······.’ 하는 소리를 내더니 그대로 서류를 가져가서 그 안에 그려져 있던 그림을 살펴보았다. 새하얀 종이에는 성조기의 흰색, 붉은색, 파란색에서 따온 것 같은 복장을 한 근육질의 슈퍼 히어로가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는 똑같은 포즈를 취한 흑인 남성이 정장과 안경을 쓰고 있었다.
이른바, 설정화라는 녀석이었다.
“······SEEN.”
안경을 스윽- 밀어 올린 남성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 앞에서 신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때. 널 모티브로 삼은 친구야.”
“나는······ 이렇게 멋지지 않다만.”
“내게는 그렇게 보여.”
‘쿵-퓨리’에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 ‘스타 체이서’.
이 세계관에서 가장 높은 격위를 지닌, D.C. 코믹스의 슈퍼맨에 대응되는 캐릭터.
그는 누구보다 뛰어난 전투력과 강력한 능력을 갖췄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복면과 히어로 슈트로 온몸을 꽁꽁 싸매고 활동하는 슈퍼 히어로였다.
그러한 배경 스토리를 들은 두피 킹스턴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슬슬 그걸 시작해야겠군.”
두피 킹스턴, 스타 체이서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되기 위한 다이어트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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