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22)
22.
어느 주말, 교회에 다녀온 이후의 이른 점심.
“다녀올게요.”
나는 어머니에게 미리 말씀드렸던 대로 집을 나섰다.
원고와 펜, 어머니가 싸준 샌드위치 도시락을 가방에 넣은 뒤 어깨에 멨다. 나는 근처 정류장에서 산타모니카 스테이트 비치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주말 아침이라서 그런지 나와 마찬가지로 해변에 가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득했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겨울에도 캘리포니아는 나름대로 선선한 날씨를 유지하는 편이라 바닷가는 항상 노는 장소로 인기가 좋았다. 거대한 카세트테이프 오디오를 든 흑인이 마이클 잭슨의 ‘Off the wall’을 리믹스 버전으로 틀었고, 버스는 신나게 덜컹대며 해변가를 향해서 달려갔다.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다.
‘서로 바닷가에 가는 목적은 다르긴 하지만.’
이 사람들이 내 목적에는 도움을 줄 수 있을 듯했다.
나는 소설을 쓰고 나면 다양한 환경에서 읽어보는 편이었다. 그 소설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환경과 반대되는 곳에서도. 오늘도 신문사 측에 2부를 공개하기 전에 그럴 생각이었다.
소설이란 ‘몰입’을 전제로 둔 콘텐츠였다. 똑같은 소설을 읽는다고 해도 읽는 분위기나 환경, 시대에 따라 영향을 받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제대로 쓰인 소설은 읽는 독자의 분위기나 환경을 ‘잊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 내 소설이 그런 힘을 가지고 있나 시험해보고자 했다.
‘조금 오버스럽나 싶기는 한데.’
겸사겸사 누군가를 만날 계획이 함께였으므로 괜찮았다.
그렇게 한참을 달린 끝에 버스가 산타모니카 스테이트 비치에 도착했다.
“휴우.”
만석인 버스에서 내린 후 나는 눈 앞에 펼쳐진 캘리포니아 해변을 따라 느긋하게 걸어갔다.
날씨는 꽤나 좋은 편이었다.
나는 근처에 보이는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원고를 꺼냈다.
확실히 몰입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퍼들이 신이 나서 바다로 뛰어들고 힘차게 파도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옆 도로에서는 스케이트보드를 타거나 러닝을 하는 사람, 음악에 춤을 추는 사람들이 보였다. 온갖 인종의 사람들이 곳곳에 서서 양손에 핫도그와 맥주를 든 채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들었다. 야구모자를 쓴 꼬맹이도, 적발의 블루진 아가씨도, 두툼한 뱃살의 아저씨도.
흔하디흔한 1980년 캘리포니아의 풍경이었다.
나는 커피가 나오는 시점에 맞춰 천천히 ‘Mother’의 2부를 읽기 시작했다.
수지의 딸 ‘앨리’의 시점에서 시작되는 소설.
나는 2부를 구상할 때, ‘공포의 대상’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
1부에 등장하는 공포의 대상은 크게 세 가지였다.
‘마더’와 ‘종교’ 그리고 ‘환각’.
이것들의 공통된 특징은, 철저하게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그려진다는 점이었다. 종교라고 하는 광기에 물든 마더와, 그 누구의 시선으로 봐도 이해할 수 없는 믿음을 가진 종교 집단.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수지가 겪는, 그 불안정한 심리를 반영한 환각까지도.
그 요소들이 제법 잘 어우러져 이야기가 진행된 끝에, 나는 ‘Mother’가 공포 소설로서는 최고의 결말이 나왔다고 생각했다.
‘독자 반응만 봐도 알겠어.’
뒤숭숭하고 씁쓸한, 그럼에도 납득할 수밖에 없는 결말.
그러니 지금과 같은 인기를 끌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2부는 달라야 한다. 그게 내 생각이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2부가 1부의 재탕이면 기존의 인기에만 기댄 작품이 될 뿐이고, 애초부터 마더를 2부작으로 기획했기 때문이다.
1부를 통해 대중의 관심을 획득한 상태에서, 나는 2부를 통해 이 작품에서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전달할 계획이었다.
나는 ‘Mother’가 ‘무지’에 관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겪은 차별. 내가 하는 차별. 그 모두가 무지에 의한 것이었다. 대상을 알지 못하고 단순한 카테고리에 넣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 그리고 문제는, 세상의 그 누구도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로부터 기인했다.
따라서 우리는 선택한다.
보다 편협해지기를.
잊어버리기를.
강해져서 짓밟기를.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작가는 에고이스트다.’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개중에서도 리얼리스트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이해하고 소설에 써나갔다.
앨리는 마더, 다시 말해 수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수지 역시 앨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는 십수 년 동안 환각이라고 하는 고통 속에 살면서도 그 안에서 ‘살기’ 위해 편협함이라고 하는 틀로 무장했으니까. 철저하게 자신의 틀 안에서 살아갔으니까.
‘나와, 우리가 모두 그러듯이.’
1부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요소였던 마더, 종교, 환각.
그중에서 2부에 남는 건 ‘환각’뿐이다.
수지의 환각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것이고 수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그런 가운데에서 수지는 어떻게든 앨리를 위해 살아가고자 했다. 앨리는 반대로 그러한 수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문제를 일으켰다.
수지의 입장에서 보자면 앨리가 공포의 대상.
앨리의 입장에서 보자면 수지가 공포의 대상.
하지만 이 소설은 ‘Mother’다.
그로 인해 나는, 일반적인 공포 소설과는 조금 다른 결말을 택했다.
‘마음에 들어.’
이 소설이 흔하디흔한 공포 소설 중 하나가 아니라, 장르라는 탈을 쓴 상태에서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전해주며 어떤 여운을 남길 수 있도록.
어느새 캘리포니아는 사라졌다.
이곳은 ‘Mother 2’의 세계 안이었다.
소설을 다 읽은 나는 어느새 석양이 지는 걸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2부로 인해 ‘Mother’는 완성되었으며, 이건 내가 세상에 던지는 하나의 메시지였다.
나는 이를 통해 사람들이 인종 차별에 대한 경각심을 느끼고 한인에 대한 차별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를 바라······기보다는, 그저 나중에 나올 출판본이나 한 권 사줬으면 했다.
‘그래야 당장 내게 돈이 들어오니까.’
정말 스스로가 무지하게 여겨지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단지 소설 하나만으로 그런 일이 벌어질 수는 없었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었다.
피식 웃고 있던 나는 저 멀리서 다가오는 여성 한 명을 발견했다.
이 캘리포니아 해변에는 어울리지 않는 정장 바지 차림, 틀어 올려 묶은 금발 머리.
“혹시 신 작가님?”
“아, 네. 혹시······.”
“만나서 반가워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줄리아 챈들러라고 해요.”
빙긋 웃은 상대가 맞은편에 앉았다.
“한참 찾았네요. 여기가 좀 넓어야 말이죠.”
“약속 장소로 지정하기는 별로였을까요?”
“아뇨, 작가님이 원하시는 대로 가야죠.”
지금 이 만남은 분명, 이후의 계약에 도움이 될 터였다.
***
줄리아 챈들러와의 미팅 이후, 나는 약간 고민에 잠겼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서 신이라고 하는 작가에게 관심을 갖는다.
이 사실을 어떻게 토런스 뉴 미디어 측에 전달해야 하나 싶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줄리아는 짧은 만남을 가졌을 때, 작가님 작품이 로탐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나중에 혹시 그쪽에서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는다고 느끼면 자기하고도 함께 일해보자며 명함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내 생각을 말하자면, 일단 당장은 로탐과 일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종이 서적 출판사는 고민이기는 하지만.’
이 업계, 아니,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돈과 이득만을 좇는 사람으로 비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돈에 미친 새끼고, 내 신념에 해가 가지 않는 이상에야 뭐든 할 생각이지만, 누군가가 그걸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이먼이 좋은 사람이기도 하고.’
그와의 관계를 저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나를 위해 일해주고 내 마음도 이해해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인데, 적어도 ‘Mother’만큼은 토런스 뉴 미디어에서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최대한 갑질하는 티를 안 내면서 갑질하느냐.
“······별수 없군.”
딱히 방법이 안 떠올랐다.
사이먼의 멘탈에는 잠깐 악영향을 끼치겠지만, 그대로 밀고 나가는 수밖에.
그런 결론을 내린 나는 정기적으로 연락해오는 사이먼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사이먼, 전에 말해주셨던 그 선배 기자 분 있지 않습니까?”
[······? 아, 네.]“이번에 어쩌다 보니 우연히 뵙게 되었습니다. 정말 괜찮은 분이시던데요.”
[어, 어?]아니, 그렇게 눈에 띄게 당황하면 내가 죄책감이 심하게 들잖아요. 사이먼.
“어쩌다 보니 출판사 사장님하고 알게 되었는데, 그쪽 통해서 연락주셨거든요.”
[어, 음. 어.]“······.”
도무지 사회적으로 적당히 돌려 말하기 어려운 사람이군.
“사이먼. 지금 주변에 사람 있어요?”
[어, 아뇨. 없습니다. 작가님.]“그럼 까놓고 말씀드리죠. 저 소설 쓴 거 있습니다.”
[어떤, 거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로 가시나요?]“Holy mother······ 아니, 그쪽하고 계약하고 싶은 거니까 지금 이러는 거잖아요.”
나는 이마를 짚고 말았다.
다행히 잘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이해했습니다. 작가님. 저도 사실, 작가님 신작 계약에 특별히 신경 쓸 수 있도록 이런저런 정보를 취합 중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신문사로 오고 있는 팬레터의 개수라든가, 라디오 드라마를 통해서 얻은 홍보 효과라든가, 그런 걸 말이죠.]“감사합니다. 그쪽은 믿고 부탁드려도 될까요.”
[어, 물론, 이 정도의 대박은 저희 쪽에서도 처음 겪는 일이라 잘 될까 걱정이긴 한데요.]“······사이먼? 제가 믿고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러니 부디 자신감 없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게 당황하며 대답하면서, 나는 어쩌면 그쪽에서 엄청난 부담을 느낄 이야기를 하나 더 꺼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신작은 ‘Mother’의 2부입니다.”
[2부요?!]역시나, 생각했던 대로의 반응이었다.
나는 추가적으로 하나를 더 전달했다.
“일단 5화까지 보내드릴 테니······ 읽고서 정해주시죠.”
사이먼 쪽에 확실히 의사를 전달해두고 며칠 뒤.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이번에는 편집장인 휴고 어빙으로부터였다.
[작가님, 신작에 관해서 말씀드리고 싶어서 전화드렸습니다.]“네, 편집장님.”
[‘Mother 2’는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저희 쪽에서 현재 제일 잘 나가는 앤드류 스미스 작가님이 화당 50달러를 받고 계신단 말이죠. 그쪽하고 맞추는 편은 어떻겠습니까? ‘Mother 2’는 화당 50달러를 받는 걸로 말이죠.]“생각해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대충 이렇게 말해두면 좀 더 나은 답변이 돌아오겠지.
그런 식으로 전화를 뚝 끊었다.
그리고 또다시 며칠이 지나자, 이번에는 아예 사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작가 양반.]“네, 사장님. 전화 받았습니다.”
[······이쪽에 핵폭탄 하나 터뜨려놓고 그쪽은 참 마음이 편해 보이는군.]“어, 그랬나요?”
[사이먼이 온갖 자료를 다 가져와서는 마더 2부는 반드시 우리 쪽에서 내보내야 한다고 난리를 피우더군. ‘그’ 사이먼이 말이야. 그래서 휴고도 두 손 두 발 다 들고 50달러라는 오퍼를 넣었네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군? 이렇게 기다리게 하는 걸 보니.]“고민 중이었습니다.”
[아예 전 사원이 들고일어났어. 사이먼, 그 영리한 개자식이 어느샌가 ‘Mother 2’를 뿌렸더군. 자네라는 작가와 자네의 작품을, 그것도 ‘Mother’를 로탐에 빼앗길 수는 없다던데? Holy crap, 솔직히 말하자면 소설 하나에 이 정도로 격한 반응이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지. ······그리고 놀랍게도 나도 같은 생각이야. 내고 싶어. 내 신문사에.]“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돈이 필요하겠지? 굉장히 합리적인 돈이.]“······.”
[그리고 지금 거는 오퍼는 자네라는 작가가 아니라 ‘Mother 2’라는 작품에 한한 오퍼일세. 만약에 후일, 자네가 토런스 뉴 미디어에 ‘Mother’와는 완전히 다른 작품을 연재할 때 같은 금액을 제시할 생각은 없다는 점을 미리 밝혀둠세.]“네, 그 점은 확실히 인지해두겠습니다.”
[화당 300.]“······.”
[300달러면 어떤가. 캘리포니아 전역을 뒤져도 신문사 연재로는 탑 티어에 드는 금액 아닌가? 사이먼이 그렇게 말하던데.]나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이때 당시 작가가 얼마나 되는 돈을 벌었는지에 대한 확실한 지식은 없었지만, 나는 미래의 정보와 물가 차이를 고려해 지금 받는 돈을 계산했다.
······물론, 무려 30배가 뛰어버린 가격이라 굳이 거절하고 싶은 마음은 안 들기는 했지만.
‘짚어야 할 건 짚어야 하니까.’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미래의 신문 연재를 통해 벌어들이는 돈은 신인의 경우 한 화당 대략 60달러였다.
그리고 커피 가격을 통해 봤을 때 80년대와 미래의 물가 차이는 5배 정도.
즉, 미래로 따지면 나는 한 화에 1,500달러 정도를 받게 된 셈이었다.
‘미쳤군.’
이건 두 번 말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 이번 작품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지. ······어째, 자네는 내가 알고 있는 동양인이나 열여섯 소년과는 영 다른 느낌이군.]“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는 법이죠.”
나는 환하게 웃으며 레미 마틴의 의심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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