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229)
229.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한 제안이 들어왔다.
무려 ‘Kung-fury’의 영화화 소식이었다.
학교생활을 영위하던 중, 사이먼으로부터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나는 그 주 주말이 되자마자 차를 몰고 로스앤젤레스로 가서 하드보일드 퍼블리셔의 사무실로 향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직접 대면한 상태에서 듣고 싶었기 때문에 일부러 전화로는 짧게 이야기했다.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줄리아에게까지 이 이야기가 전해졌고, 내가 도착하자 사이먼은 일주일 내내 오늘만을 손꼽아 기다린 사람처럼 잔뜩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D.C. 코믹스 측에서 말하기를, ‘Kung-fury’의 영화화 제안이 들어왔답니다.”
“어디에서?”
역시 줄리아. 곧바로 본론으로 파고들어 주었다.
“그, 뭐라고 했더라······. 아, 왜 갑자기 안 떠오르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책상으로 돌아가 자신의 수첩을 가져오는 사이먼.
그 반응에 나는 딱히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영화사일 것이라 짐작했다. ‘콜롬비아 픽처스’나 ‘파라마운트 픽처스’처럼 유명한 곳이었다면, 굳이 수첩에 따로 적어 둔 이름까지 찾아볼 필요가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수첩을 넘긴 사이먼의 말을 들고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아, 소니랍니다.”
“소니? 거기에 영화사가 있던가?”
“이번에 설립한다고 하던데요.”
‘소니 픽처스’.
그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1980년대 전자 산업으로 세계를 거의 지배하다시피 하던 소니가 컨텐츠 사업으로 확장을 꾀하며 만든 곳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압도적인 자본력을 바탕으로 머지않아 코카콜라에게서 콜롬비아 픽처스를 인수한다.
‘미래까지도 굉장히 잘 나가는 영화사 중 하나지.’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면서 생각했다.
일단 다시금 확인 차 물었다.
“혹시 텔레비전 영화 제안인가요?”
“아뇨, 극장 상영작이라고 합니다.”
사이먼의 말에 나는 더 눈을 가늘게 떴다. 이제 거의 바늘처럼 보이려나.
텔레비전 영화는 상영관을 잡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으로 일반 영화보다 더욱 싼 가격에 제작할 수 있다는 특징이 존재했다. 그래서 보통 저예산으로 신인 배우를 캐스팅해서 짧게 치고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Kung-fury’도 그 형식에 맞춰 제안한 것이 아닐까 했지만,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정리해 보자면······.’
직접적으로 회사를 통해 제안이 들어온 걸 보면 ‘소니 픽처스’의 설립은 관계자들 사이에서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는 것일 테고, 당연히 초기 사업도 어느 정도 구상되었을 것이다. 가령, 어떤 영화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부터 시작해서, 마케팅까지 말이다.
그리고 그 목록에 ‘Kung-fury’까지 끼워 넣으려는 듯했다.
‘글쎄다.’
나는 이게 말이나 되나 싶었다.
머나먼 미래에서야 기술의 발전으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같은 코믹스 원작 영화가 유행하면서 주류가 되었지, 기본적으로 ‘슈퍼 히어로 영화’는 굉장히 마이너한 장르에 가까웠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나는 원작의 장르가 ‘코믹스’라는 점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이 시대에 ‘코믹스’는 사실상 아이들이 전유하는 문화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코믹스를 읽고 자란 아이들이 성장해 시장을 이끄는 추세가 서서히 바뀌어 가는 시기였지만, 어쨌든 아직까지 세간의 인식은 그러했다.
1966년, 배트맨.
1977년, 스파이더맨.
1978년, 닥터 스트레인지.
그렇듯 슈퍼 히어로 영화들은 ‘텔레비전 영화’의 형식으로 나왔으나, 본격적인 극장용 블록버스터로 처음 제작된 영화가 바로 그 유명한 1978년 작, ‘슈퍼맨’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캡틴 아메리카’ 같은 작품은 여전히 텔레비전 영화의 형식을 따랐다.
‘슈퍼맨’ 타이틀 다음으로 영화관 상영을 노리고 나온 영화가 기억하기로 몇 년 전, 1984년도에 나온 ‘슈퍼걸’이었고.
그렇다면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냐.
‘슈퍼맨 프렌차이즈 정도가 아니라면 제대로 된 영화로 제작될 수 없다는 말이지.’
그런데, ‘Kung-fury’라고?
본격적인 형태로 제작할 가능성이 거의 없지 않을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제안을 해 왔다.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원작자로서의 결론에 앞서 나는 일단 두 사람의 의견을 물었다.
“두 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요. 제가 영화 산업 쪽은 아는 게 거의 없어서. 하지만 비즈니스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는 일단 계약이 성사가 되면 그걸 토대로 작품 마케팅에 활용할 수는 있겠네요.”
“흐음······.”
시원하게 답을 내놓는 줄리아와 달리, 내 말을 듣고 고민에 잠긴 사이먼.
그 대답은 잠시 후, 이렇게 돌아왔다.
“저는 계약한다고 하더라도 ‘Kung-fury’가 제대로 만들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막말로, 배트맨 무비도 지금 계속 감독을 못 구해서 난리라고 하던데요? 설령 작품이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저희가 생각하는 만큼 좋은 영화가 나올지 우려되고요.”
“맞는 말이야.”
줄리아도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돌아보았다.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뭐, 저도 두 분 의견에 모두 동의합니다.”
나 역시 그렇게 답을 내렸다.
확실히 말하겠다. 나는 ‘Kung-fury’를 내가 쓴 자랑스러운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슈퍼 히어로의 대표격으로 우뚝 서 있는 슈퍼맨이나 배트맨 같은 히어로에 비빌 만하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절대 아니었다.
게다가 영화로 만들어진다 해도, 이 시대에서는 퀄리티에 대한 염려를 배제할 수 없다.
‘분명 내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제작되지는 못하겠지.’
아무리 예산을 투입하더라도 기술의 한계가 존재하니 말이다.
그래서 지금 ‘Losers’ 시리즈도 영화화 제안은 여럿 들어왔지만, 뭔가 다 애매하다 싶어서 거절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 정도로 방대한 세계를 그려내려면 ‘조지 루카스’ 정도는 데려와야 할 테니까.
하지만 줄리아 챈들러의 말처럼, 이 계약이 내 커리어에 있어서 좋은 방점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당장 전생에도 ‘데드맨즈 헤븐’이 미디어화가 되면서 내 이름값은 단숨에 높아졌고, 이번 생의 ‘About T : TV series’도 내 커리어에 있어서 좋은 전환점이 되어 주었다.
영화가 무기한으로 제작 단계에만 놓여 있어도 나는 ‘영화 판권을 판 작품을 쓴 작가’가 되는 셈이었다. 회귀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면 내 작품을 무엇으로 보냐면서 당장 거절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 점 때문에라도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들었다.
항상 나의 동료들과 함께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싶네요.”
한숨을 내쉬는 나를 보면서 두 사람이 각각 한마디씩 얹었다.
“저는 작가님 의견에 적극 따르겠습니다.”
“저도요. 작가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가 중요하겠죠.”
더없이 믿음직한 말이었지만, 그래서 더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
그렇게 회의를 끝마치고 일단 집으로 돌아온 나는 ‘Kung-fury : Novel’을 다시 펼쳐 들었다.
‘과연 이 소설이 영화화가 된다면 잘 표현될 수 있을까?’
일단 비즈니스적인 부분은 다 내려놓고 거기에서부터 출발했다.
페이지를 좌르르륵 넘기면서 읽다가 마침 눈에 들어온 부분은, 작품의 후반부였다.
‘Kung-fury : Novel’의 후반부 전투는 50층이 넘는 고층 빌딩에서 이루어졌다.
로스앤젤레스의 랜드 마크이자, 미국이 세운 거대한 자존심 중 하나.
제로는 그곳을 완전히 무너뜨리면서 시민들을 선동하고자 했다.
미국 정부와 슈퍼 히어로는 무능하며 위선자에 불과하다. 분노하라. 깨어나라. 너희들을 위해 앞장선 나 ‘제로’를 연료로 삼아 모든 것을 불태워라.
그리고 쿵-퓨리는 홀로 그에 맞섰다.
그들의 ‘첫 번째’ 싸움은 아주 치열하게 이루어졌다.
쿵-퓨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로 역시 그랬다. 그는 그저 자신의 ‘슈퍼 파워’에 오래되고 낡아빠진 무술로 대응하는 쿵-퓨리 앞에서 간단하게 여러 능력으로 대응했다.
불꽃을 일으켜 주변을 태우고, 가스관을 얼린 뒤 뽑아내 폭발을 함께 일으켰다. 거울과 거울 사이로 이동하면서 갑자기 탄환을 난사했다.
하지만 그저 지켜만 보고 있을 쿵-퓨리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힘과 지식, 경험을 총동원해 제로에게 맞서 싸웠다.
옛 국가의 실험으로 얻게 된 강력한 신체는 그저 도구에 불과했다.
그가 제로에게 맞설 수 있도록 하는 근간은, 시푸로부터 배운 무술과 수도 없이 많은 죽음을 반복하면서 쌓은 경험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끝이 없으니 그는 두려움을 몰랐고, 용맹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포기를 모르고 자신을 압박해 들어오는 쿵-퓨리를 향해, 제로는 마침내 스타 체이서로부터 빼앗아 온 슈퍼 파워를 사용했다.
가장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나는 능력.
제로는 건물의 안과 밖을 종횡무진 날아다니며 쿵-퓨리를 공격했다.
하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하기에만 바빴던 다른 슈퍼 히어로들과는 달리, 쿵-퓨리는 자세를 굳건하게 잡고 그의 돌격을 계속해서 흘려보냈다. 그럴수록 제로는 속도를 더 빠르게 높여가며 돌진을 거듭했다.
쿵-퓨리가 제로의 돌진에 대항할 수 있던 이유는 물론, 마찬가지로 두 가지였다.
하나는 스타 체이서를 상대하며 이미 겪어 봤다는 사실. 다른 하나는 시푸로부터 배운 무술의 힘. 역시나 초인적인 육체 능력은 단지 그 두 가지를 수행하기 위한 보조 수단일 뿐이었고, 쿵-퓨리는 능력에만 매몰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이고 이어진 충돌 끝에, 스타 체이서의 슈퍼 파워를 견뎌내지 못한 제로의 몸이 서서히 붕괴했다.
스파이크가 달린 갑옷은 박살이 났고 왼쪽 팔은 완전히 날아갔다. 그리고 얼굴 부분의 천이 뜯어지면서 그 아래에 있던 인간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와 함께 건물 역시 붕괴하기 시작했다.
쿵-퓨리는 그에 놀라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제로의 돌진을 쳐낼 때마다 다른 방향으로 튕겨져 날아가면서 그 여파로 그의 몸이 건물을 지지하던 기둥을 조금씩 부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고서야 아직 빌딩 안에 있는 많은 시민들이 구조를 기다리는 상황임을 깨달은 쿵-퓨리는 당황에 빠졌고, 그 빈틈을 노린 제로에게 목을 붙잡히고 말았다.
흥미로운 목소리로 제로는 말한다.
[너, 역시 내가 알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군.]다른 슈퍼 히어로의 능력을 빼앗을 수 있는 제로조차 알지 못하는 능력.
그것을 경계한 제로는 능력만 빼앗아 무능한 원초로 되돌렸던 다른 슈퍼 히어로와는 달리, 쿵-퓨리를 이 건물과 함께 완벽히 죽이려고 든다.
허공에 떠오른 그의 안광 사이로 고열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결국 건물이 완전히 붕괴했다.
잔해에 휩쓸린 채 지상을 향해 추락하면서, 쿵-퓨리는 보았다.
건물의 붕괴와 더불어, 거기에 휘말려 함께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오늘, 그의 첫 죽음이었다.
그렇게 사망한 그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제로와 마주하기 직전의 순간으로 되살아났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아직도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죽기 직전 느낀 열기와 고통, 사람들의 비명과 죽어가는 시체가 아직도 눈앞에 선명한 상태였다.
쿵-퓨리는 이를 빠드득 깨물었다. 인간으로서의 선을 아득히 넘은 대량 학살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제로를 반드시 막아야겠다는 각오를 되새겼다.
왜냐면 그는 자신을 완벽한 메신저로 자칭하며 잘못된 메시지를 퍼뜨리고 있으니까.
다행히도 모든 것을 파악한 듯 구는 제로가 단 한 가지 모르는 사실이 존재했다.
쿵-퓨리라는 존재를 ‘죽이는 것’만으로는 이 상황이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좋아, 좋아.’
이어서 내가 D.C. 코믹스나 사이먼에게 피드백을 받아 수정한 파트가 등장했다.
쿵-퓨리는 몇 번이고 다시 제로에게 덤벼든다.
그러면서 그는 이전과 달리, 제로와 조금씩 대화를 나누며 그의 사상을 살피고자 한다.
슈퍼 히어로와 미국 정부에 무조건적인 반감을 지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쿵-퓨리는 신경이 분산되어 계속해서 죽음을 맞이했고, 그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기억하지도 못할 때쯤에야 결국 어이가 없어 이렇게 소리친다.
『“야! 아무리 그렇다고 해서 너의 행동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고!”
“흔해 빠진 말만 하는군······! 나는 장작이 되는 걸로 충분하다!”
“젠장, 꼭 미치광이들이 그런 소리를 하던데! 올바른 말을 들으면 입에 발린 소리라 지껄이고! 자기 자신만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그래, 맞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이다!”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는 제로.
하지만 쿵-퓨리는 거기에 현혹되지 않았다. 증오를 담아 분노를 터뜨리며 덤벼오는 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면서, 옆구리로 파고드는 불꽃의 창을 피해냈다. 동시에 그와 함께 무릎을 들어 창을 든 제로의 팔을 옆으로 쳐냈다.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단순히 ‘피하기만’ 한다면 이 뒤에 제로가 몰래 심어둔 가스에 불꽃이 닿아 폭발하리라는 사실을, 이미 벌써 몇 번이고 시간 역행을 반복하면서 알아낸 뒤였다.
제로의 붉은 안광이 순간 흔들리는 것을 확인하며, 쿵-퓨리는 배를 걷어차 녀석을 반대편으로 날려 보냈다.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 쿵-퓨리.”
“아니, 적어도 너보다는 많은 걸 알고 있을걸. 하다못해 올바르지 않은 행동이란 게 뭔지는 알거든.”
다시 자세를 잡으면서, 깔끔하게 되받아치는 쿵-퓨리.
그의 말대로 정말 제로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일 가능성도 존재했다. 그리고 아마 자기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분명 그럴 터였다. 그 정도가 아니라면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고, 그 과정 속에서 자신마저도 죽게 할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는 말인가?
“그냥 쿵푸 도장이나 등록하라고!”
“뭣······?”
“그리고 돈이나 내 놔! 그걸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너하고도 ‘쿵푸’해 줄 테니까!”
요즘 사람들은 메시지에 아무 관심이 없다.
그들이 원하는 건 그저 ‘슈퍼 히어로’, ‘쿵푸’ 같은 멋들어진 간판뿐이다.
그리고 쿵-퓨리는 돈을 벌기 위해 그 사실을 철저하게 이용해 온 존재였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는 말인가?
‘만들어진 전쟁 영웅’, ‘만들어진 슈퍼 히어로’, ‘만들어진 쿵푸 마스터’는 옳은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결점을 가진 인간은, 옳은 행동을 할 수 없단 말인가?
“우오오오오-!!”
쿵-퓨리는 내면에 들끓는 자신의 ‘Fury’를 폭발시켰다.
파앙-!
깔끔한 파열음.
공기를 가르며 날아간 주먹이 제로의 복부에 꽂혔다. 한계까지 내몰린 제로가 비틀거리면서 물러났고, 쿵-퓨리는 주먹을 내지른 자세 그대로 이야기했다.
“네 과거 따위는 아무 관심도 없다. 내가 보는 건, 지금의 너와 그 행동이야.”
“······그래. 너는 끝까지 위선의 상징으로 남겠다는 말이군.”
“돈을 주니까 말이지.”
말은 퉁명스럽게 하면서도, 쿵-퓨리의 마음은 과거에 느꼈던 고양감으로 넘쳐났다. 국가의 실험으로 초인이 되고 사람들을 구할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빠졌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이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그것이 착각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행하려고 한다는 것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메시지였으니까.
“나와는 완전히 대칭이로군. 그래, 좋다. ‘Kung-fury’······. 나는 위악의 상징. 진실을 알리고자 악을 자처하는 자. 이제부터 너는 나를 이렇게 불러도 좋다. ‘Nin-zero’라고 말이야.”
닌-제로.
“너는 앞으로 지켜보게 될 것이다. 너의 그 위선이 가져올 더 큰 폐해를······!”
그 말과 함께 그가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쿵-퓨리 주변에 흐릿한 안개 같은 필터가 씌워졌다. 뭔가 싶어 움찔한 사이, 자신이 어떤 반투명한 구체에 갇혔음을 알게 되었다. 슈퍼 히어로 ‘캡틴 아르마딜로’의 능력 ‘포스 실드’였다. 견고한 방어력을 가졌지만, 한 번 사용하면 해제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들어 제로는 전투 중에 이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 능력을 왜 자신에게 사용했나. 그러한 의문을 떠올린 순간, 쿵-퓨리는 눈앞에서 제로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쿵-퓨리는 감각을 곤두세우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쾅! 콰쾅! 콰직! 건물을 지탱하는 굵은 기둥이 하나둘씩 파괴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쿵-퓨리는 건물이 진동하면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고, 어떻게든 포스 실드 바깥으로 나가려고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하지만 쿵-퓨리의 움직임에 따라 마치 햄스터용 공처럼 굴러갈 뿐, 붕괴를 막을 수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를 안전하게 지켜줄 터였다.
닌-제로는 이곳에서 쿵-퓨리를 해치우는 대신, 보여 주려고 들었다.
그가 위선을 관철함으로써 얻게 될 희생을.
“제기랄!”
“후흐하하하! 너의 무력함을 느껴라! 쿵-퓨리!!”
짧은 순간, 한 층의 기둥을 모조리 파괴하고 돌아온 닌-제로는 필사적으로 포스 필드를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치는 쿵-퓨리를 바라보며 사악하게 웃었다. 지금의 그는 포스 실드 안에 안전하게 수용된 채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로의 생각이었다.
쿵-퓨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선택하기로 했다.
‘이건, 어쩔 수 없군.’
그리고 영웅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유리 조각을 집어 들어 자신의 목을 힘차게 그어 버렸다.
“무슨······?!”
순간 경악을 금치 못하는 닌-제로의 얼굴을 보면서 쿵-퓨리의 의식은 붕괴하는 건물 사이로 빨려 들어가듯이 사라졌다.』
“······아.”
거기까지 읽은 나는, 마음의 결론을 확실하게 내렸다.
“이건 제임스 완이 만들어야 됨. 진짜로.”
20년만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