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n American Retro Novelist RAW novel - Chapter (23)
23.
화당 300달러.
이 계약으로 인해 나의 가치는 어마어마하게 뛰었다.
이때 당시 화이트칼라 남성의 주급은 대략 140달러 언저리였다. 그리고 블루칼라 남성은 그보다 낮은 110달러 선에서 책정되었다. 말인즉슨, 나는 1,000자 전후의 소설을 하루 연재해서 그 두 배가 넘는 돈을 벌고, ‘Mother’ 2부 전체로 그들의 연봉 정도의 돈을 벌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나쁘지 않아.’
하지만 이걸 통해서 깨달은 사실이 존재했다.
1980년도는 역시, 장르 소설 ‘비즈니스’의 태동기였던 만큼 계약이 중구난방이었다. 지금이 미래였다면 내가 아무리 ‘Mother’로 큰 성공을 거뒀더라도 그 2부에 토런스 뉴 미디어와 같은 신문사가 이만한 돈을 선뜻 투자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업계 표준이라는 게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나아질 수도 있으면서도, 그와 동시에 자칫 삐끗하면 내가 이뤄온 이 작은 영광이 모조리 다 한낱 꿈처럼 사라질 수도 있었다.
일단 당장은 증명한 게 있다 보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다시 10달러 받는 작가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걸 신경 쓰지는 않았다.
‘앞으로 나는 계속해서 소설을 쓸 테고.’
세상에 계속해서 내가 누군지를 선보일 테니까.
레미 마틴은 돈 문제에서는 깔끔한 태도를 보였다. 그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게 돈이다 보니 그런 것 같았다.
구두로 이야기가 오가고 바로 다음 날 계약서가 팩스로 도착했고, 그로부터 며칠 뒤에는 사이먼이 계약을 위해 나를 찾아왔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그와 약속한 나는 시간에 맞춰 그곳으로 향했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사이먼은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작가님. 어떻게, 금액은 만족스러우셨을까요?”
“사장님이 제 작품의 가치를 알아봐 주셔서 기쁘네요.”
“최고의 신문사는 최고의 작품을 연재해야 한다고 말씀드렸거든요. 그리고 현재 신문 연재작, 아니, 이 캘리포니아 전체를 통틀어 나오는 소설 중에서 이만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작품은 ‘Mother’ 이외에는 없다고 생각했고요.”
“그런가요?”
“네, 어디를 가더라도 이 ‘Mother’ 이야기뿐이었죠. 저로서는 정말 다행이네요. 사실, 이런 좋은 작품은 저희보다는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연재가 되는 게 더 맞다는 생각도 들어서.”
“사이먼.”
기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나는 확실히 정리를 해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제가 줄리아와 만난 이유는 종이책 출판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별다른 소득 없이 서로 헤어졌고요. 아무래도 그쪽 사장님이 기세만으로 접근해오셨지만······ 그렇지 않습니까? ‘Mother’는 아직 종이책으로 나오기에는 좀 ‘아쉬운’ 작품이니까요.”
“그건 확실히 그렇죠.”
사이먼도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1화부터 25화까지 총 25,000자 분량의 ‘Mother’를 종이책으로 낸다. 뭐, 아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소설은 역이나 공항의 서점에 들여놓고 여행 중에 잠깐 읽고서 버리는 용도로 소비되는 편이었다. 종이도 진짜 싸구려 중의 싸구려를 썼고.
가격도 3달러에서 5달러 사이. 지금 내 앞에 놓인 커피 두 잔 값이었다.
“작가님. 지금 Mother의 팬층을 생각해보면, 2부까지 잘 연재가 되었다는 가정 아래에 제대로 묶어서 내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기왕이면 일러스트도 첨부해서요.”
“제대로 전달이 됐나 싶은데, 말씀드리고 싶은 바는 간단합니다.”
나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저는 제대로 된 금액을 원하기는 했지만, 그만큼이나 제 작품의 가치를 토런스 뉴 미디어와 제 담당 기자인 사이먼 카버가 알아봐 주기를 원했습니다.”
“······작가님.”
사이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더니 이내 싱긋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뭔가, 항상 놀랍네요.”
“그런가요?”
“네. 첫 출판 맞으시죠? 뭔가 이전에도 이런 일을 많이 겪어보신 것처럼 너무 능숙하게 행동하셔서요. 솔직히 말하면 닳고 닳은 사회인도 작가님처럼 좋은 계약 조건을 레미 마틴 사장님에게서 뽑아낼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거든요.”
“············Holy mother.”
“작가님?”
“아, 그, 그럼요.”
나는 순간 내 몸이 열여섯 살임을 잊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뭐, 누가 의심하겠느냐만.’
그래도 일단은 적당히 넘기기로 했다.
“좋은 작품으로부터 배웠죠. ‘몰타의 매’나 ‘필립 말로’ 같은 하드보일드가 말하기를, 거래는 유리할 때 최대한 당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그 높으신 사장님 앞에서 잘도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 싶어서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리네요.”
“그 말이 사실이면 정말 놀랍군요! 작가님은 역시 남다른 분 같아요. 필립 말로를 통해 거래의 기술을 익히다니. 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요?”
“과찬이십니다.”
나는 그냥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이런 상황이 생길 때마다 무척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내가 자신을 숨기고 진실을 말할 수 없다는 데에서 오는 일종의 죄의식일 터였다.
나는 내가 미래로부터 돌아왔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말할 생각이 결코 없었다. 그런 비현실적인 일을 믿어줄 사람이 있을 리도 만무할뿐더러, 그 증거를 댄답시고 소련의 붕괴 시기 같은 걸 말했다가는 저기 어디 이름도 모르는 정부 놈들이 붙잡아 갈 테니까.
그동안 함께 일해 온 바, 나는 사이먼을 함께 일하는 동료이자 제법 친분을 쌓은 편한 상대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상대에게조차 결코 밝힐 수 없는 비밀을 가지고 있다. 그건 생각보다 더, 그리고 생각보다 자주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지만, 아무렴 어떠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냐면 나는 내 세계를 사이먼에게 보여줄 뿐이고, 사이먼은 그걸 알아주니까.
그것이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였다.
“그럼, 슬슬······.”
“아, 네. 작가님. 계약서는 다 검토해보셨을까요.”
“물론입니다. 진행하시죠.”
나는 계약서에 사인했다.
‘Mother’ 2부의 25화 연재로 총 7,500달러를 받는다. 금액의 지급 시점은 완성된 원고를 양도하는 일자로 한다.
그렇게 사인을 끝마친 뒤 나는 사이먼과 계약서를 나눠 가졌고, 가져온 가방에서 완성된 25화의 ‘Mother’ 원고를 꺼내서 내밀었다.
“그럼, 이 녀석도 잘 부탁드립니다.”
“············작가님?”
사이먼은 어안이 벙벙한 채 나를 바라보았다.
“네?”
“이게 대체 뭐죠?”
“물론, Mother 2부의 완성 원고입니다. 읽고서 피드백 주세요.”
“······뭔가, 용은 물리치지도 않았는데 보물을 손에 넣은 기분이군요.”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원고를 받아 챙기는 사이먼.
나는 그의 반응이 기대되었다.
***
편집자는 그 누구보다 원고를 객관적인 시선에서 봐야 하는 사람이다.
사이먼 카버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글을 읽는 독자가 어떻게 반응할지 추측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작가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느라 놓친 사실을 짚어주는 것. 더 나은 글을 만들기 위해서 퇴고 단계에서 수정해야 하는 부분은 반드시 존재했다. 정말 간단하게는 오타부터가 그랬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편집자는 그 누구보다 많은 글을 읽는 사람일 가능성이 컸고, 그렇기에 일반 대중의 인식과 어느 정도 괴리감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지식의 저주’였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편집자로서의 입장을 내려놓고 글을 읽는 태도가 필요했다.
‘그래야 하는데.’
늦은 밤.
일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사이먼 카버는 마침 내일이 주말임을 알아차렸다.
혼자서 아파트에 사는 남자에게는 금쪽같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별다른 취미가 없었고, 남는 시간이면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대신해 주로 책을 읽는 편이었다. 글과 연관된 직업을 택한 지금도 장르 소설의 팬이었고, 활자를 통해 다양한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걸 가장 좋아했으니까.
‘평소라면 읽다 만 소설을 읽거나 새 책의 포장을 뜯었을 테지만.’
지금 자신에게는 최근 들어 가장 즐겁게 읽었던 소설의 2부가 있었다.
마침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집안은 한적하고 조용했다. 밖은 어둑어둑했고 저 멀리 부엉이가 울어댔다.
마지막으로, 막 씻고 나와 편하게 가운만을 입은 채였다.
‘허어.’
담당으로서의 사이먼이냐. 아니면 팬으로서의 사이먼이냐.
고민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기획서로 다음 내용을 알게 된 이상, 온전히 팬으로는 돌아갈 수 없으니까.’
그렇기에 담당으로서 충실하게, 이 글을 읽을 독자의 반응을 생각하기로 했다.
그는 안락한 1인용 소파에 앉고 작은 등 하나만 켜둔 채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1부와 똑같은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첫 화를 보면서 사이먼은 어느새 자신이 본 적도 없는 세계로 들어갔음을 알게 되었다.
소위 말하는 몰입이었다.
2부의 마더는 예상했던 대로 ‘수지’였다.
그 사실을 안 순간부터 입맛이 딱히 좋지는 않았다. ‘Mother’의 담당 기자로서는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올라올 정도였다.
1부 완결 때도 신 작가에게 크게 티를 냈을 만큼, 사이먼은 수지라는 인물에게 깊은 동정심과 몰입을 느꼈다. 그녀가 1부에서 겪었던 일은 사이먼에게 생생하게 와닿았고, 그 불행은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역겨운 감정을 선사했다.
그랬던 캐릭터가 2부에서는 공포의 대상인 ‘Mother’가 된다고?
담당으로서는 독자들이 이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싶었고, 팬으로서는 그저 안타까웠다. 그렇기에 자칫 이 소설이 공포 장르를 벗어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정확히 3화를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게 대체······.’
사이먼은 순간적으로 뇌 정지가 온 것을 느꼈다.
1화에서는 앨리의 시점에서 공포의 대상인 수지를 묘사했다.
2화에서는 마더 1부로부터 십수 년이 지나 어른이 된 수지를 덤덤히 그려내며, 그녀가 여전히 환각에 시달려 제 딸을 죽이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3화.
『“어딨니. 앨리. 어디에 있니.”
수지는 천천히 주방을 나섰다. 그 손에는 식칼이 들린 채였다.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허벅지를 다시 찔러서 그런지 피와 고름이 섞인 물이 질질 흘러내렸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수지는 각 방을 돌았다. 앨리를 찾아 계속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는 동안, 서서히 이성이 돌아오기도 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하지만 저주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수지는 지하실로 내려가는 문 앞에 서서 잠깐 머뭇거렸다. 하지만 이내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그 아래에는 평소와 같은 지하실이 펼쳐져 있었다. 그에 안심하며 내려가던 그녀는 갑자기 발바닥에 격통을 느꼈다. 녹슨 못이 튀어나와 찔리고 만 것이었다.
비명을 지르며 굴러떨어졌다.
지하실 바닥 전체에 못이 깔려 있었다.
“아······! 아아······!!”
수지는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피투성이가 되어가며 몸부림치던 중, 그녀는 무언가 끼익거리며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다. 처음에는 그게 나무 바닥에 박힌 못이 몸에 박힐 때마다 튀어나오며 나는 소리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나뒹굴다 지쳐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숨만 겨우 쉬어도 그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바닥에 검은 그림자가 졌다.
“아, 아아······.”
수지는 고개를 들었고, 보았다.
지하실 대들보에 목을 매단 채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어머니를.
“꺄아아아아아악-!!”
비명을 내지르면서 그녀는 순식간에 몸을 일으켜 세웠다. 못에 찔리는 고통을 감수해가며 벌떡 일어서자 못은 무수히 많은 사람의 손으로 뒤바뀌었다. 안 돼, 안 돼. 손이 팔과 다리를 붙잡았다. 몇 번이고 넘어졌다. 하지만 수지는 필사적인 노력으로 겨우 빠져나왔다.
콰앙-!
지하실 문을 닫자, 깨달았다.
현실이었던 것은 처음의 낡은 못뿐이었다. 하지만 환각 속에서 느꼈던 충격은 그대로였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고통스러워하던 수지는 이내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다시금 계시가 내려왔다. 앨리를 죽여야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여야만 자신이 자유로워진다.
수지는 천천히 나아갔다.
1층과 정원은 다 뒤졌다. 이제는 2층뿐이었다. 수지는 못이 튀어나오지는 않았는지 조심스럽게 확인하며 계단을 올라갔고, 이어서 앨리의 방문에 대고 노크를 해보았다. 대답은 없었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또다시 환각을 마주했다.
사람의 팔 하나가 방 한가운데 덩그러니 떨어져 있었다.
팔꿈치부터 손까지.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수지는 천천히 그것을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거짓임을 인지하면 사라져야 할 환각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녀는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이게 진짜라는 사실을.
-Mother 2 4화에서 계속.』
“······Holy mother.”
3화를 다 읽은 사이먼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제 4화로 넘어간 순간, 이 손이 의미하는 바를 알게 된다.
수지가 정신적인 문제를 앓는 것처럼, 앨리 역시 그러했다.
문제는 바로, 태어나서부터 그랬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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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lit sec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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